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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과 인문학 @함혜리

2019년 7월 8일 — 0

채식은 비단 인간이 육류를 소비하기 위해 저지르는 야만적인 행위를 배척하는 것만이 아니다. 보다 인간답고 가치 있는 삶으로 나아가려는 인문학이다.

. 함혜리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들은 내게 이런 말을 한다. “하나도 안 변했네. 그대로야! 나이를 거꾸로 먹나봐.” 인사치레임을 알지만 듣기에 나쁘지 않다. 그럴 때면 으레 나의 대답은 이렇다. “방부제를 많이 먹어서 그런가봐요.”

솔직히 농담 반, 진담 반이다. 직장 생활 하면서 거의 대부분을 밖에서 먹었으니 아무리 좋은 것을 골라 먹는다 한들 화학 첨가제를 피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30년간 몸에 쌓였다고 생각해보라. 직업의 특성상 바쁘게 오가고, 늦게 자고, 마감에 쫓기다 보니 항상 피곤하고, 잦은 회식에 먹는 모임도 이것저것 많았던 날들이다. 많은 사람들이 은퇴 후에 크고 작은 질병을 앓는데 이유의 상당 부분은 그동안의 잘못된 식생활과 생활 태도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원인 없는 결과가 어디 있나. 나도 예외가 아니었다. 사람들에게는 아무렇지 않게 보이려고 애는 썼지만 사실은 병원과 약국 출입이 잦았다. 물론 나이 때문일 수 있지만 체력에는 개인 간 편차가 클 터인데 체력이 고갈된 느낌이 드니 참 억울했다. 청춘을 바쳐 열심히 일한 대가가 결국 지친 마음과 망가진 몸이라니. 이런 몸으로 100세 시대를 어떻게 감당한단 말인가.

이제부터라도 내 건강을 살뜰하게 챙겨야겠다고 결심하고 마음과 몸의 치유에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 남 신세 안 지고 건강하게 잘 살기 위해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조건은 갖춰졌다. 시간도 좀 생겼고 전처럼 약속이 많지 않으니 식단을 컨트롤하기가 훨씬 수월해졌으니 말이다. 몸과 마음의 균형을 잡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했다. 우선 아침저녁으로 스트레칭과 요가, 명상을 생활화하려고 노력 중이다. 유튜브에 좋은 콘텐츠들이 많아서 큰 도움이 되고 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섭생이다. 내 몸에 맞는 식생활을 하겠다는 각오로 팔상체질을 감별하는 한의원을 찾아갔다. 한의학적 장기인 5장(간, 심, 비, 폐, 신)과 5부(담낭, 소장, 위, 대장, 방광)의 상대적 강약에 따라 체질을 8가지로 구분하는 것이 팔체질의학이다. 두 번 방문해 진맥한 바에 따르면 나는 대장이 강하고 담낭이 약한 금음체질이다. 이 체질은 선천적으로 간이 약해서 육식과 화학 조미료가 들어간 음식과 대부분의 약이 해롭다. 그동안 아무 생각 없이 섭취한 음식과 그 많은 화학 조미료, 그 많은 약들이 해로운 것이었다는 말이다. 체질 얘기를 하면 그런 것 아무 의미 없다며 입맛에 당기는 음식이 내게 맞는 것이라고들 한다. 하지만 이왕이면 몸에 이로운 것을 취하고, 해로운 것을 멀리하는 게 좋은 것 아닐까. 그런 확신을 가지고 하나둘씩 가능한 선에서 실천하기로 했다. 불가피한 경우를 빼고는 채식 위주로 식습관을 고쳐나가고 있다. 비단 체질 때문만이 아니다. 앞으로 육식을 자제할 계획이다. 감히 말하자면 인문학적 식생활을 추구하는 지구 생활자로서의 선택이다.

인문학의 목표는 보다 인간답고 가치 있는 삶을 영위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우리가 발붙이고 살아가는 지구를 본래의 지구답게 되돌리는 노력부터 해야 한다. 음식의 인문학은 궁극적으로 지구 중심의 사고를 갖고 그런 태도로 식생활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세계적 석학 제레미 리프킨은 <육식의 종말>에서 “곡물로 키운 소의 쇠고기는 불에 탄 삼림, 침식된 방목지, 황폐해진 경작기, 말라붙은 강이나 개울을 희생시키고 수백만 톤의 이산화탄소, 아산화질소, 메탄을 허공에 배출시킨 그 결과물”이라고 했다. 이 책에서 리프킨은 “육식 문화를 초월하는 것은 우리 자신을 원상태로 돌리고 온전하게 만들고자 하는 징표이자 혁명적인 행동”이라고 강조한다. 육식을 안 하고 어떻게 사느냐고 할 테지만 음식으로 병을 치료해 유명한 황성수 박사에 따르면 곡식 중에서도 현미, 채소, 과일만으로도 충분히 건강하게 균형된 식생활을 할 수 있다. 세계보건기구도 암이나 심장 질환, 당뇨병, 고혈압 등 성인병 예방을 위해 채식 위주의 식생활을 적극 권장하고 있다. 가능하다면 익히지 않고 먹는 완전 생식도 한번 해볼까 생각 중이다.

이런 생각이나 행동을 유독 나만 하는 게 아니다. 채식 인구는 꾸준히 늘고 있다. 채식에도 여러 단계가 있는데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나름의 방식으로 채식을 실천하고 있다. ‘비건’이라는 단어도 이제 생소하지 않다. 한국채식연합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채식 인구는 10년 전에 비해 10배가량 늘어났다. 채식 메뉴 음식점을 소개하는 애플리케이션에 등록한 식단 수는 지난해 3월 300곳에서 올해 5월 1700여 곳으로 늘어났다. 채식을 시작한 사람들 중에는 20~30대가 많은데 이들 세대가 소비할 때 실용성 외에 윤리성까지 중시하는 성향을 보인다는 설명이 설득력이 있다. 젊은 채식주의자들은 건강보다는 환경과 동물권 보호를 위해 채식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많다. 육식 때문에 잔인하게 도살당하는 동물이 적지 않은 상황에서 동물 착취를 방지하는 최선의 방법으로 채식을 선택한다. 내게 좋은 것, 하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을 먹는 이기적인 소비보다는 이타적 소비 성향이 채식주의 확산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 같다. 모두가 당장에 육식을 끊어야 한다는 것은 물론 아니다. 하지만 나를 위한 치유의 음식이 지구의 건강에도 좋다면 더 좋지 않을까. 그런 노력을 하는 사람이 좀 더 많아진다면 지구는 좀 더 수준 높고 건강한 별이 될 것이다. 지구야말로 치유가 필요하다.

함혜리는 <서울신문>에서 30년 넘게 기자 생활을 했다. 고려대학교 미디어학부 초빙교수, 강원대 신문방송학과 초빙교수로 후학들을 가르쳤다. 예술과 문화를 테마로 삼아 공부하고 여행하며 글을 쓴다. <프랑스는 FRANCE가 아니다>, <아틀리에, 풍경>, <미술관의 탄생>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