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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ningExplore

쏠레이 @정동현

2019년 6월 19일 — 0

청담동은 몽마르트르 언덕이 아니다. 발레 기사들은 후진을 할 때도 액셀을 밟고 사람들은 하늘 대신 휴대폰을 바라볼 뿐이다. 그러나 그 언덕에 자리 잡은 작은 레스토랑에서는 파리의 향기가 난다. 맛이 난다. 그곳을 이끄는 요리사는 홀로 주방을 지키며 하루에 몇몇 손님을 받는다. 파스텔로 칠해진 문을 통과하면 나타나는 그곳의 이름은 ‘쏠레이’다.

text 정동현 — illustrate 왕조현

한식답다는 것은 무엇일까? 상다리가 휘어질 정도로 가득 차린 한정식이 한식의 정수일까? 아니면 발효 음식으로서 장류가 핵심이 되는 퀴진일까? 이도 저도 아니면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리는 건강식이 한식의 핵심일까? 이렇게 말을 이어가다 보면 아무 말 대잔치가 된다. 한 사람이 자기 자신에 대해 표현하는 것도 어렵다. 내 속엔 내가 너무 많다는 노래 가사처럼 본질적으로 다면적인 한 인간을 몇 마디 단어로 정의할 수 있다는 말은 거짓말이거나 농담일 뿐이다. 음식을 정의하는 것도 사실 난센스에 가깝다. 한식이 이러한데 프랑스 음식에 대한 이해는 더욱 어렵고 오해는 쉽다. 땅이 멀고 문화가 생경한 프랑스 음식에 대한 사람들의 동경은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 하나를 읽고 불문학을 논하는 것과 비슷하다. 이런 식으로 논리를 이어나가면 불가지론에 가깝게 된다. 아무것도 알 수 없다는 회의주의다. 무한한 세계를 한정된 사고와 언어로 정의 내리고 사유해야 하는 것은 인간의 한계이자 숙명이다. 음식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어떻게든 정의를 내리지 않으면 논의 자체를 할 수 없다. 그리하여 한식에 대한 정의를 해야 한다면, 결국은 표준어에 대한 것과 마찬가지로 이 땅에 사는 현대 사람들이 즐겨 먹는 음식과 그 양상이라고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스팸이 들어간 부대찌개도, 일본 라멘에서 비롯된 라면도, 짜장면과 짬뽕도 결국은 한식의 범주 안에 드는 것이다. 모든 서양 음식의 기본이요, 미식에 있어 절대적인 권력과 권위를 가지는 프랑스 음식 역시 다양한 변주와 굴곡 많은 역사를 지녔다. 지금과 같은 코스 요리는 19세기 나폴레옹이 워털루 전투 패배에서 비롯된다. 그 이후 파리에는 프로이센군, 러시아군, 오스트리아군이 머물게 되는데 그때 러시아 식사 습관이 파리에 전파된다. 추운 러시아 기후 특성상 음식이 식지 않도록 차례로 내놓는 이른바 ‘코스’였다. 이후 1970년대 프랑스 음식은 일식의 영향을 받는다. 재료에 최소한의 조리만 하고 버터와 루(Roux)같이 맛을 짙고 기름지게 만드는 식재료와 기법을 자제했다. 대신 과일이나 채소를 그대로 갈아 만든 퓌레(Purée), 육수를 졸이고 졸인 쥐(Jus)같이 산뜻하고 깔끔한 맛을 내는 소스를 썼다. 이른바 누벨 퀴진이 도래한 것이다. 지금도 그 변화는 지속되고 있다. 프랑스 파인다이닝에서 사시미와 같은 일식 터치의 요리를 내놓는 것은 놀랄 일도 아니다. 그렇다면 한국의 프렌치란 무엇일까? 무수한 질문으로 시작했지만 명쾌한 답은 없다. 답이 구축될 만한 시간도 경험도 없었다. 고급 호텔을 중심으로 극소수를 위한, 그대로 현지 음식을 카피한 레스토랑들이 있었고, 청담과 압구정을 중심으로 비스트로 형식을 띠는 조금 캐주얼한 레스토랑이 또 한 줌도 안 되게 있었다. 여전히 프렌치 레스토랑은 몇 되지 않는다. 이해하는 대중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미세하나마 시장에 변화가 생기고 있다. 대중적인 카테고리와 더불어 요리사 개인의 역량과 개성, 취향을 온전히 내보일 수 있는 작은 업장이 몇몇 문을 열었다. 호텔처럼 비싼 재료를 마음껏 쓸 수 없다. 하지만 그 제약이 오히려 간결한 멋과 맛을 낳는다. 많은 손님을 받을 수 없다. 그래서 더 따뜻한 접객을 할 수 있다. 청담동 ‘쏠레이’에서 보낸 시간이 그러했다. 파스텔 톤으로 칠해진 문만 보고도 프렌치 식당에 왔음을 알았다. 원색을 지향하는 중식당, 송판이 발하는 옅은 갈색과 흰색이 지배하는 일식당, 원목의 짙은 갈색으로 원초적인 식욕을 이끌어내는 이탤리언과 달리 프렌치 레스토랑은 더 오묘한 색, 특히 파스텔 톤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원하는 바를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않는 그 색들은 세련되고 몽환적이다. 다른 색보다 낫다는 뜻은 아니다. 그 의도를 쉽게 파악하기 어렵기 때문에 대중식당에서는 피해야 한다. 오히려 식욕을 저하시키고 접근 자체를 막을 수도 있다. 하지만 느긋이 앉아 코스를 즐기려는 사람에게 눈의 피로가 덜한 파스텔 톤은 심적인 안정감을 주어 식사를 더욱 편하게 할 수 있게 만든다. 서버는 소믈리에 한 명을 포함해 둘, 주방에는 요리사 홀로 있었다. 디너 코스는 하나였고 메인 육류 코스를 양갈비, 오리, 소고기 채끝 중에 하나를 고를 수 있었다. 메뉴를 선택하고 곧이어 나온 아뮈즈부슈는 소고기 타르타르, 브로콜리, 화이트 아스파라거스, 푸아그라 토스트 총 네 종류였다. 화려하게 장식된 종류는 아니었다. 하지만 각각의 맛이 명확했다. 부재료와 주재료의 역할을 나누고 주재료의 특징적인 맛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요리가 조합된 느낌이었다. 푸아그라 토스트는 원 모양으로 작게 자른 토스트에 푸아그라를 바르고 사과와 새송이버섯을 켜켜이 쌓았는데 각 재료 간에 일맥상통하는 맛, 그러니까 달고 기름지며 부드러운 맛과 식감이 조금씩 변주를 주며 이어지는 듯했다. 그 뒤로 이어지는 요리들도 초점을 잃지 않고 중심을 잡았다. 아뮈즈부슈가 치워진 다음 사워도우와 버터가 테이블에 놓였다. 주방에서 직접 굽는다는 사워도우는 웬만한 베이커리보다 맛이 나았다. 둔탁하게 부서지는 크러스트와 신맛이 팽팽하게 펼쳐진 속, 그리고 실내 온도에 맞춰 부드럽게 녹여진 버터까지 악기를 조율하는 기본음처럼 앞으로 식탁에 펼쳐질 음식과 시간에 대한 탄탄한 바탕을 깔았다. 본격적인 시작은 해산물이었다. 그중 첫 번째는 러시아식 팬케이크인 블리니Blini 위에 참치를 올리고 사워크림, 딜, 펜넬, 레몬 비네그레트로 마무리한 요리였다. 볼륨감 있게 자른 참치에서 느껴지는 옅은 산미에 사워크림 등 역시 신맛이 강한 재료를 조합해 신선한 맛이 더욱 강조됐다. 생참치는 일식의 것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딜과 사워크림, 레몬은 연어 그라블락스(Gravlax)와 같은 노르딕 음식의 주된 문법이기도 했다. 혀를 베일 듯한 산미가 지나가고 두 번째 전채 요리가 나왔다. 콜리플라워 퓌레 위에 팬프라이한 관자를 올린 이번 요리는 첫 번째 참치 요리에 비해 무겁고 진한 맛이 두드러졌다. 첫 번째가 땅 위라면 두 번째 요리는 땅 아래에 있다고 할 만했다. 가니시로 쓰인 돼지감자, 감자, 대파는 모두 흔히 미네랄 풍미라고 하는 땅의 맛과 혀 깊숙한 곳에서 느껴지는 단맛에 방점이 놓여 있었다. 콜리플라워를 갈색으로 볶고 갈아 만든 퓌레는 감칠맛에 가까운 관자의 단맛을 넓게 감싸 안았고 강원도에서 주로 먹는 돼지감자는 칩으로 튀겨내 식감과 맛에 대조를 줬다. 세 번째 전채는 SNS 상에서 화제가 되었던 버섯 라자냐였다. 모렐 버섯을 맨 위에 올리고 느타리버섯, 체더치즈, 베샤멜소스, 버섯크림소스, 닭 육수를 졸여 만든 줄라이 소스, 방풍나무 폼이 올라간 이 요리는 맛의 대조보다는 강약을 이용한 중첩을 통해 맛의 총합을 극대화했다. 치즈와 크림이 가진 지방의 맛과 풍미를 닭과 버섯에서 이끌어낸 짙은 육즙이 수묵화의 농담처럼 희미한 경계를 구축했다. 지나치게 많은 기교와 장식으로 맛을 흐리기보다 재료들이 가진 핵심적인 맛과 질감에 집중한 요리였다. 그날그날 올라오는 생선을 낸다는 생선 요리에는 옥돔이 쓰였고 시금치가 가니시로 나왔다. 속을 살짝 레어 상태로 익힌 옥돔, 그 옆에 뿌려진 유지방이 분리되지 않고, 화이트 와인과 식초의 산미가 정확히 살아 있는 뵈르블랑(Beurre Blanc) 소스는 프렌치에서 기대할 수 있는 간결한 생선 요리 그 자체였다. 지중해와 대서양을 끼고 유럽에서 가장 넓고 비옥한 토양을 지닌 프랑스의 특징이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며 그래서 코스 중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게 생선 요리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보통 육류에 치중된 코스 조합이 보통이다. 양식 하면 스테이크를 바로 연상시키는 짧은 이해 때문이다. 소스를 핥듯 접시를 비우고 뒤이어 메인 육류 요리인 오리와 양갈비가 나왔다. 굳이 나누자면 소고기를 좋아하는 쪽은 영국이고 프랑스는 양고기 쪽에 가깝다. 즉 미국, 영국, 호주 등 범앵글로색슨 계열이 소고기에 치중된 식습관을 보인다면 프랑스는 조금 더 다양한 육류를 소비하는 편이다. 핑크빛이 살아 있는 양갈비와 푸아그라, 오리 다리살과 가슴살을 페이스트리 안에 넣어 구운 일종의 파이인 오리 뚝뜨는 모두 ‘이것이 프랑스 요리’라는 전형성을 지니고 있었다. 끝을 장식한 디저트는 앞선 요리들에 비해서는 힘이 살짝 빠져 있었다. 요리사 혼자 해결할 수 있는 노동력의 범주를 벗어나는 영역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깔끔하게 떨어지는 바닐라 아이스크림과 사블레, 장미크림은 누군가에 바치는 장미 한 송이처럼 모자라다는 느낌을 주지 않았다. 최선을 다해 그 한 송이를 골라 앞에 놓았을 마음이, 홀로 하나의 식사를 책임지는 그 자세가 전해졌다. 천연덕스럽게 능청스럽지 않았다. 엄숙한 무게를 잡지도 않았다. 대신 파스텔 톤 빛깔처럼 노골적이지 않게, 우아한 리듬감이 곁들여진 맛이 다가왔다. 정의할 수 없고 평가할 수 없지만 다다를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프랑스의 맛이었다.

정동현은 서울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대기업 유통 회사를 다니다가 훌쩍 영국의 요리학교 탕트 마리Tante Marie로 유학을 떠났다. 호주의 레스토랑에서 늦깎이 셰프로 요리 열정을 불사르며 일했다. 저서로는 <셰프의 빨간 노트>가 있으며, 지금은 신세계그룹 F&B팀에서 ‘먹고(Food) 마시는(Beverage)’ 일에 몰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