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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방에 숨겨진 과학 @정재훈

2019년 5월 10일 — 0

먹방이 유튜브로 넘어가면서 점점 더 자극적으로 변하고 있다. 그럼에도 조회수는 상상을 초월한다. 이런 먹방은 대리 만족일까, 야식을 조장할까. 뇌와 먹방의 두뇌 게임을 살펴봤다.

text 정재훈 — edit 안상호 — photograph 최준호

세상은 복잡하고, 내가 잘 모르는 것들로 가득하다. 유튜브 먹방 동영상을 보면 그런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 지난 2월 구독자 수가 밴쯔를 넘어섰다는 떵개떵 형제의 먹방만 봐도 그렇다. 출연자는 좋아요와 구독을 눌러달라는 가벼운 인사말 뒤에 바로 프라이드치킨을 먹기 시작한다. 조회수 2800만 회가 넘는 26분 13초 길이의 동영상 중 맨 앞과 뒷부분의 10초씩을 빼면 나머지는 말없이 닭다리 16개를 먹는 장면뿐이다. 통삼겹, 치즈볼, 탕후루, 연어, 참치 뱃살 동영상도 비슷하다. 리얼 사운드 먹방이라는 타이틀이 보여주듯 대사보다는 먹는 소리가 중심이다. 다른 나라 먹방에서도 트렌드는 비슷하다. ASMR(자율 감각 쾌감 반응)을 표방하는 먹방이 대세다. 미국의 인기 유튜브 채널인 수엘라는 사람 얼굴은 입 부분만 비추면서 햄버거, 파스타, 치킨, 피자를 먹는 장면을 소리와 함께 보여준다. 물론 이런 동영상을 본다고 해서 모두가 속칭 ASMR이라는 기분 좋게 전기가 오는 듯한 느낌을 경험하는 건 아니지만, 식탁에서 짭짭거리며 먹으면 예의 없는 행동이라는 규칙에 더 이상 신경 쓰지 않는 사람이 유튜브 세상에 수천만 명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그렇다고 만인이 먹방 동영상 소리를 즐긴다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동영상은 고사하고 실생활에서 옆 사람이 국수를 후루룩 삼키거나 사과를 아작아작 씹어 먹는 소리를 듣기만 해도 분노와 불안을 느끼는 사람이 있다. 청각과민증으로 불리는 이 증상은 뇌에서 감각과 감정을 연결하는 부위인 전방섬상세포군피질이 과도하게 활성화되어 생긴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이런 증상으로 고통받고 있는지는 아직 불분명하지만 2014년 미국 플로리다의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는 참여자의 20%가 이 증상을 경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청각과민증으로 괴로운 사람의 입장에서 누군가가 게걸스럽게 먹는 소리는 식문화 또는 에티켓의 문제가 아니라 신체적 고통인 셈이다. 리얼 사운드 먹방이 대세라 해서 동영상을 따라 소리를 내며 먹었다가는 주변의 따가운 시선을 피할 수 없는 이유다.

먹방이 건강에 미치는 효과

누군가에게는 쾌감을 줄 수 있는 먹방 동영상이 또 다른 누군가에겐 괴로움을 줄 수 있다. 먹방을 둘러싼 현실은 이렇듯 복잡하다. 하지만 먹방이 과식을 조장하는 것만큼은 사실 아닌가? 2018년 7월 먹방 규제를 표방하는 듯한 정책을 발표했던 보건복지부 관계자들은 아마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일반인 10명이 먹을 분량을 혼자 다 먹는 먹방 동영상을 보고 있으면 그런 생각이 드는 건 사실이다. 2015년 핫도그 먹기 대회 세계 챔피언 조이 체스트넛을 누른 것으로 유명한 맷 스토니는 한번에 1만kcal가 넘는 9인분의 칠리치즈프라이를 먹는가 하면 2만kcal의 햄버거, 윙, 피자를 먹기도 한다. 일본의 유명 먹방 유튜버 기노시타 유카는 무게를 합하면 7kg에 달하는 한국산 컵누들 30개를 웃으면서 해치운다. 먹방의 발원지답게 국내 유튜브에는 짜장면 빨리 먹기, 매운 떡볶이 빨리 먹기와 같이 여러 명이 경쟁하는 동영상이 넘친다. 아프리카TV 같은 실시간 방송 플랫폼에서 먼저 경합하고 뒤이어 유튜브에 녹화 동영상이 올라온다. 이처럼 엄청난 양의 음식을 한번에 먹는 게 출연자의 건강에 해로운 것은 자명하다. 일반인의 위가 기껏해야 1~2리터 정도로 늘어나는 데 반해 이들의 위는 4리터 이상으로 늘어나며 뇌의 포만감 신호를 무시한 채 음식을 계속 삼킬 수 있고, 또한 복부 지방이 위장 속으로 음식을 더 많이 집어넣는 걸 방해할까 봐 평소 운동을 통해 이들 중 다수가 마른 몸매를 유지하고 있는 건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폭식에는 위험이 따른다. 물리적으로 배가 터져 죽는 일은 극히 드물지만 목구멍이 막혀 사망할 가능성을 항상 걱정해야 한다. 지난 4월 일본의 한 유튜버가 생방송 도중 오니기리를 한입에 먹으려다 쓰러진 것처럼 공기와 음식물이 동일한 입구를 통해 들어가는 사람의 신체 구조상 빨리 먹는 것은 대단히 위험하다. 단 한 번 과식하는 것도 위험하다. 미국심장학회에 따르면, 평소보다 음식을 많이 먹고 나면 2시간 뒤 심장마비 위험이 무려 네 배 증가한다. 하지만 먹방이 시청자에게 비만을 유발하는지에 대한 과학적 근거는 아직 부족하다. TV 프로그램에서 음식을 소개한 후 배달 음식 주문량이 증가했다는 식의 이야기만으로 먹방과 과식의 인과 관계를 밝혀내기는 어렵다. TV 시청과 과식의 관계도 생각보다 복잡해서, 똑같은 에피소드를 두 번 볼 때보다 각기 다른 에피소드를 볼 경우 음식 섭취량이 14% 감소했다는 호주의 연구 결과도 있다. 언뜻 생각하면 먹방에 열광하며 볼 때 음식을 더 많이 먹게 될 것 같지만 내용에 집중해서 볼수록 (적어도 시청 중에는) 음식 먹을 시간이 줄어들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반면 2018년 영국에서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는 어린이들에게 소셜 미디어 스타가 고칼로리 스낵을 먹는 사진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실험에 참여한 어린이의 섭취 칼로리가 26%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먹방을 보면서 식사할 때 과식할까봐 걱정하기보다는 먹방을 보고 난 뒤에 과식을 조심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가 먹방을 좋아하는 이유

동영상 속 인물의 폭식을 지켜보며 즐거워하는 세태에 한숨이 나올 수도 있다. 순식간에 어마어마한 양의 음식을 먹어치우는 모습이 그리 아름답진 않다. 하지만 사실 먹방을 즐긴다는 것은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놀라운 특성에 기반한 행동이다. 내가 아닌 다른 개체가 뭔가를 먹고 있는데, 그저 지켜보며 즐기기만 하는 건 다른 동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아프리카의 사자와 하이에나만 사냥한 짐승의 고기를 두고 경합하는 게 아니다. 동물의 세계에서는 다른 동물이 먹는 걸 뺏을 수만 있으면 뺏어 먹으려 달려드는 게 정상이다. 그런데 인간에게는 그냥 보면서 즐기는 게 가능하다. 우리는 함께 모여 식사를 하는 동물이기 때문이다. 현대에 사는 우리들이야 음식이 넘쳐나는 환경에 살고 있으니, 다른 사람이 먹는 장면을 보고도 자제력을 발휘하기가 쉽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인류가 함께 모여 식사를 한 것은 지금보다 훨씬 더 음식이 희귀한 자원이었을 때 이미 시작되었다. 당시 욕구를 억제하고 다른 사람과 음식을 나눠 먹는 일은 상당한 자제력을 요구하는 일이었다. 과학자들은 인간의 대뇌 피질이 지금처럼 커진 것은 협동적 섭식, 즉 함께 모여 식사하는 데서 비롯되었다고 추측한다. 뇌 피질이 커져서 함께 식사할 수 있는 자제력을 갖추게 되기도 했지만, 반대로 함께 식사한 덕분에 뇌 피질이 더 발달하는 쪽으로도 작용했다는 것이다. 인터넷 먹방을 보며 즐거워하는 젊은 세대에 한탄할 수 있지만, 먹방 인기의 밑바탕에 인간 두뇌의 뛰어난 감정 조절 기능이 있다는 걸 생각하면 도리어 찬탄하는 게 맞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먹방 현상의 이면에는 이렇게 생각보다 복잡한 과학적 사실이 숨어 있다. 사실에 근거해 세상을 바라보기란 어려운 일이다. 조회수 기준으로 유튜브에서 가장 인기 있는 먹기 동영상은 뭘까? 닭다리, 불냉면, 편의점 음식, 벌꿀을 떠올렸다면 틀렸다. 답은 사람이 아니다. 영단어 ‘eating’을 키워드로 검색하면 카푸친원숭이 부가 물러진 바나나를 먹는 동영상이 조회수 2억4500만 회로 압도적 1위다. 레몬을 처음 먹어보는 아기들 동영상이 9700만 회로 2위, 인어를 먹는 가상의 장면을 실제인 것처럼 연출한 동영상이 9100만 회로 3위다. 키워드를 먹방으로 바꾸어 검색하면 비로소 먹방의 원조 대한민국에서 제작한 동영상이 1위로 등장한다. 하지만 이번에도 결과는 예상과 다르다. 떵개떵, 밴쯔, 도로시의 동영상을 제치고 조회수 6000만 회로 1위를 달리는 동영상은 열한 살 쌍둥이 루지의 2분 43초짜리 산낙지 먹방이다. 원숭이가 바나나를 먹는 장면을 본다고 우리가 바나나 과식을 하지 않을까 걱정할 이유가 없듯이, 자녀가 쌍둥이 루지의 산낙지 먹방을 본다고 산낙지를 더 많이 먹을 것이라 믿는 부모는 없을 것이다. 먹방의 세계는 직관적 생각과는 딴판으로 다양하고 복잡하다. 지난여름 정부가 입장을 바꿔 규제보다 실태를 조사하겠다는 쪽으로 돌아선 건 그런 면에서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다. 더 나은 세상은 지금의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때 열릴 터이기 때문이다.

정재훈은 서울대학교 약학대학을 졸업한 후 캐나다 토론토에서 다년간 약사로 일했다. 음식만큼이나 사람들과 요리와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걸 좋아한다. 잡지, TV, 라디오 등 여러 매체를 통해 음식과 약에 대한 과학적 정보를 전하고 있으며, 저서로는 <정재훈의 식탐>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