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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과 인문학 @신재근

2019년 5월 14일 — 0

‘음식을 공급하는 자’에서 ‘셰프’가 되기까지의 시간들. 책을 통해 요리를 인문학으로 만든 사람들.

text 신재근

동양에서의 식구(食口)는 ‘한 집에서 함께 살면서 끼니를 같이하는 사람’이라는 뜻이고, 영어 Companion(동반자, 친구)의 어원은 ‘빵을 같이 먹는 사람’이라고 하니 ‘주식을 같이 먹는 마음은 가족과 같다’를 뜻한다. 음식은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중요한 고리이지만 학문으로서의 인정은 받지 못했다. 인간의 역사에서 문서로 확인되는 요리는 르네상스 시대 이전에는 찾아보기 힘든 분야였다. 리케이온에 도서관을 만든 당대의 최고 지식인 아리스토텔레스마저 그의 저서 <정치학>에서 “요리는 인간의 지식 중 종속적인 분야이고 노예에게나 알맞은 기술”이라고 서술한 걸 보면 고대의 요리에 대한 시각을 엿볼 수 있다. 모든 것을 기록으로 남겼다는 로마 시대에도 다르지 않아 인류 최초의 요리책으로 기록되는 당대의 유명한 미식가인 아피치우스(Apicius)의 레시피 모음집 <데 레 코퀴나리아De re Coquinaria(요리에 대한 모든 것)>가 겨우 남겨져 있다. 이후에도 기독교 중심의 유럽에서는 7대 죄악 중 하나인 ‘탐식’에 폭식을 포함한 식도락까지 그 범주에 끼워 넣어 음식에 대한 연구와 저술이 발전하는 데 큰 장애물로 작용했다. 르네상스 시대 인쇄술의 발전이 이루어지기 전까지 요리책은 아피치우스가 유일하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요리에 관한 저술적 의의에 큰 변혁을 가져다준 도서가 탄생되니 그것이 바로 기욤 티렐이 14세기에 쓴 <르 비앙디에Le Viandier>라는 프랑스 최초의 인쇄본 요리서이다. ‘르 비앙디에’는 ‘음식을 공급하는 자’라는 뜻의 프랑스어로 ‘셰프(Chef)’라는 단어가 없던 시절의 요리사를 이야기한다. 식사와 요리에 대한 관습이 변화하는 시절 이 책은 1486년과 1615년 사이에 25번이나 재발행되었으니 가히 그 인기를 짐작할 수 있다. 르네상스 시절 요리사는 ‘가르드 망제(Garde Manger)’로 불렸으며, ‘음식 저장소를 지키는 사람’으로 불리었다. 인문주의가 도래하면서 요리는 영양학과 건강 사이에서 관련성이 깊어지면서 학문으로 발전하기 시작한다. 요리는 건강한 식단과 미각이라는 관점으로 해석되어, 그제야 문서화되고 보존하는 작업에 착수하게 된다. 르네상스 시대 인쇄술의 발달과 함께 필사본으로 존재하던 프랑스의 요리에 대한 지식이 인쇄본 책으로 출간되기에 이른다. 1651년, 프랑스 루이 14세 때 프랑수아 피에르(필명은 라 바렌La Varenne)가 쓴 <프랑스 요리사(Le Cuisinier Francois)>는 건강과 영양학적 충고에 부수적인 방법을 계몽하는 요리책이 아닌 맛을 내는 방법과 조리법에 대한 기술을 다룬 최초의 책으로 발간된다. 요리책 <프랑스 요리사>는 초판 출간 이후 총 30판이 발행되며 영어, 이탈리아어, 독일어로 번역되어 유럽에 알려지고, 프랑스어로 된 요리 언어를 유럽에 소개하면서 요리는 곧 프랑스라는 인식을 만들었다. 프랑스 왕정 시대, 태양왕 루이 14세부터 프랑스 대혁명으로 막을 내린 루이 16세까지의 프랑스 요리는 엄청난 발전을 이룩하게 되는데, 이때를 프랑스 음식 문화의 대변혁기라 칭한다. 라 바렌이 막을 연 프랑스 요리는 ‘오트 퀴진Haute Cuisine(High Cooking)’이라 불리는 왕족과 귀족들을 위한 요리로 발전하게 된다. 이 시기 대략 100년의 역사에서 프랑스 음식 문화 발전의 가속이 너무도 빨라, 루이 14세는 루이 16세가 먹었던 음식을 상상할 수 없을 정도였다고 하니 변화의 속도를 직감할 수 있다. 18세기, 드디어 요리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이야기한 ‘종속 분야’가 아닌 학문의 한 분야로 발전하기에 이르게 되었다. 프랑스 혁명 이후 나폴레옹 시대에 이르러 ‘왕의 요리사’로 불리는 앙투안 카렘(Antoine Carême)은 ‘오트 퀴진’을 완성하고 프랑스 음식이 최고의 고급 요리라는 인식을 세계에 전파했다. 그는 조리법에 관한 여러 권의 책을 썼으며, 특히 요리백과사전인 <프랑스 요리 기술(L’ Art de la Cuisine Française 전 5권)>을 저술하고 수많은 조리법 외에도 메뉴 및 풍성한 테이블 세팅, 프랑스 요리의 역사, 주방 구성 지침까지 프랑스 요리의 방대한 자료를 정리한다. 레스토랑이 산업으로서 발달하면서 ‘오귀스트 에스코피에(Auguste Escoffier)’가 등장한다. 그의 저서 <요리 안내(Le Cuisine Culinaire)>에서는 주방 조직을 체계화하고 정리하여 주방 책임자를 ‘셰프 퀴지너(Chef Cuisinier)’라는 이름으로 명명한다. 그는 조리 교육의 체계적인 교육법을 세우고 주방장인 셰프를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직업으로서의 지위로까지 올려놓으며 ‘요리의 왕’이라는 칭호를 얻었다. 이때부터 ‘셰프(Chef)’는 주방장을 칭하는 용어로 전 세계에 알려졌다. 프랑스어로 정리된 이 책은 요리에 있어서 쓰이는 많은 언어를 프랑스어로 전파하고, 아직도 요리를 만드는 조리법과 동사, 주방 기기와 기구 등을 프랑스어로 불리게 하는 데 절대적인 위치를 차지한다. “그대 무엇을 먹는지 말하라, 그러면 나는 그대가 누군지 말해보겠다”라는 명언으로 유명한 브리야사바랭은 ‘미식학’ 또한 하나의 학문으로 발전시킨다. 그의 저서 <미식 예찬>은 미식학 장르의 경전급이 된 책으로 현대에도 가장 많이 읽히는 음식 인문학의 고전으로 불린다. 14세기 ‘음식을 공급하는 자’에서부터 오늘날 ‘셰프’가 되기까지의 시간. 이는 책을 통해 요리를 인문학으로 만든 사람들이 있었기에, 비로소 가능했다.

신재근은 연세대학교 대학원에서 식품공학 석사를 마치고 세종대학교 조리외식경영학과 박사를 수료했다. 1994년 셰프의 길에 들어서서 호주 코즈모폴리턴, 임피리얼 팰리스호텔 등에서 근무했으며, 현재는 청강문화산업대학교 조리학과 교수로서 학생들에게 서양 조리를 가르치고 있다. EBS에서 방영했던 <한국말 요리쇼>를 진행하기도 했으며, 카카오브런치에서 음식인문학을 알기 쉽게 풀어낸 ‘스키너의 식탁일기’를 연재하고 있다. 저서로는 <집밥의 역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