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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ning

미토우 @정동현

2019년 5월 16일 — 0

두 명의 요리사가 지워지지 않는 미소와 흔들리지 않는 자세로 손님을 맞는 곳이 있다. 계절마다 새로운 요리를 내놓고 그윽한 향기로 작은 공간을 가득 채운다. 그들의 손은 바쁘게 움직이지만 번잡함과 분주함으로 손님에게 부담을 얹지 않는다. 때로는 무사 같고 때로는 고승 같다. 모두 한 가지 점에서는 같다. 끊임없이 정진할 것. 그리하여 이곳의 이름은 ‘아직 도달하지 못했다’ 하여 ‘미토우’다.

text 정동현 — illustrate 왕조현

한국 고급 외식 시장은 일식이 절반 이상이다. 정치인과 포털 댓글을 보면 이 나라는 반일을 넘어 극일을 외친다. 그러나 실제 먹고 마시는 일에 있어서 일식을 빼놓으면 말이 안 된다. 함박스테이크와 나폴리탄, 가츠샌드를 파는 일본 경양식집은 자기 복제를 하듯 서울 온 시내에 생기고 있다. 스시는 말할 것도 없다. 도산공원을 위시한 강남에 말 그대로 한 집 걸러 스시집이다. 반일을 해야 의식 있는 사람 취급을 받는 이 나라 국민들이 일식에 열광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입맛에 맞기 때문이다. 평범한 음식이라도 깊게 파고들어 새로운 장르를 만들어버리는 일식 특유의 집요함은 사실 전 세계인이 인정하고 또 감탄한다. 그 무수한 나라 중 한국은 일본과 제일 가깝다. 역사적으로도 일식을 전면적으로 접할 기회가 있었다. 지리적 위치 때문에 공유하는 무수한 식재료, 간장·된장과 같이 뉘앙스가 다를 뿐 큰 맥락에서 역시 공통된 식문화는 ‘이게 일식인가’라는 의식 없이 시나브로 젓가락질을 하게 만든다. 파인다이닝으로 가면 일식의 독주는 더 두드러진다. 편의상 인당 10만원 이상 지불하는 식사를 파인다이닝이라 한다면 한국에서 이탤리언은 파인다이닝을 자처한 적이 없다. 몇몇 특급 호텔 중식당을 빼놓고 나면 중식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이탤리언보다 더 낮은 자리에 있다. 해방 이후 지속된 ‘생필품’과 같은 지위 때문에 대중은 비싼 값을 치르길 거부한다. 몇몇 사부들이 문파까지 만들며 대가 소리를 듣지만 그들이 만든 짜장면은 1만원 이상의 값을 받지 못한다. 이제 남은 것은 프렌치와 일식뿐이다. 몇몇 프렌치 레스토랑이 미쉐린 별을 받았다. 장사가 잘되는 곳도 있다. 하지만 그 수가 많지도 않고 성업하는 곳도 드물다. 손님의 취향과 수준을 탓하는 것은 음식 ‘장사’ 하는 사람이 할 말은 아니다. 하나씩 따져보면 프렌치를 먹어야 할 이유가 적다. 일본과 거의 대부분의 식재료를 공유하고 또 구할 수 있는 한국은 일식에 있어 세계 2번째 수준이다. 더구나 주방과 홀의 거리가 멀고 그만큼 섬세한 서비스를 제공하기 어려운 프렌치와 달리(이는 홀 접객 수준이 떨어지기 때문이기도 하다) 다치라고 부르는 바 카운터를 사이에 두고 1:1로 접객하는 경우가 많은 일식당은 이른바 대접받는 느낌을 확실히 준다. 주방에 갇혀 수련 생활을 하는 일반 양식에 비해 본래 접객을 기본으로 하는 일식 요리사는 태생적으로 유리한 면이 있다. 이렇듯 지리적인 유사성, 역사적 배경, 더불어 일식이 가지는 특성이 어우러진 결과 한국인은 본의 아니게 ‘친일’을 하고 있는 셈이다. 일식 시장이 팽창하면서 스시 일색이었던 일식 장르도 하나씩 추가되고 있다. 코스로 내놓는 덴푸라집들도 몇 생겼고 가이세키를 하는 곳도 몇 보인다. 그중 작년 문을 연 가이세키를 표방하는 ‘슌노카오리 미토우旬の香り 未到’는 단연 돋보이는 곳이다. 미토우의 문을 열었을 때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하얗게 타오르는 듯한 긴 바 카운터였다. 저녁 무렵 강남을지병원 사거리의 신경증적인 교통 체증도, 찾기 어려워 몇 번 주변을 돌아야 했던 몇 분 전의 기억도 한꺼번에 사라졌다. 사실 9자리 정도 남짓한 크기이니 길다고 볼 수도 없다. 실내가 워낙 군더더기 없이 정리된 탓에 실제 공간보다 더 넓어 보인 듯싶었다. 그 인상은 바 카운터 뒤 주방에 선 두 요리사를 보았을 때도 이어졌다. 새하얀 조리사복을 입은 남과 여는 각각 뜨겁고 차가운 섹션에 나눠 섰다. 오래 단련한 자만이 가질 수 있는 단단한 자세와 표정이었다. 둘의 동선은 겹치지 않았고 몇 마디 하지 않아도 서로의 움직임을 꿰뚫고 있었다. 자리에 앉으니 준비되는 뜨거운 물수건으로 손을 닦았다. 손끝에서부터 온몸으로 전해지는 온기에 몸에 남아 있던 긴장이 풀렸다. 어차피 주문할 수 있는 메뉴는 오마카세 한 가지뿐이었다. 메뉴가 올라오기 전 사케를 먼저 주문했다. 병으로 주문할 수 있는 사케가 꽤 되고, 만약 도쿠리를 원한다면 그날그날 달라지는 추천 사케가 나왔다. 그날 마신 사케는 봄날 아침 바람처럼 화사한 준마이 긴죠였다. 차가운 술이 흘러들어가고 나서야 비로소 몸이 음식을 받을 준비가 됐다. 첫 번째 요리는 데친 주꾸미에 애호박 소스, 두릅을 곁들인 전채였다. 가이세키의 가장 중요한 요소인 계절감을 살리기 위한 의도가 확연히 드러났다. 소매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계절감을 살리는 가장 큰 이유는 소비자에게 새로운 경험을 안겨줌으로써 구매의 피로도를 낮추는 데 있다. 국밥이나 찌개 같은 대중 음식을 일상재로 본다면 이런 유의 계절감은 크게 중요한 요소가 되지 않는다. 어차피 매일 끼니를 때워야 하고 국밥과 찌개를 피해나가긴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파인다이닝에서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1시간 넘게 이어지는 특성상 매번 같은 음식이 이어지게 되면 피로도는 배가된다. 물론 시그너처 요리를 찾는 경우도 있지만 높은 가격은 조금 다른, 새로운 뭔가를 바라게 된다. 특히 단골 관리를 위해서도 식상함을 벗어내는 것이 필수적인데 제철 재료를 사용함으로써 얻게 되는 계절감은 그 모두에게 적절한 테마를 부여한다. 봄날 주꾸미는 질기지 않고 부드러워 씹히는 감각조차 즐거웠다. 소스와 재료는 각각 개성이 강하기보다는 실내악 연주처럼 작은 앙상블을 이뤘다. 다음으로 찐 찹쌀밥 위에 붕장어구이를 올린 접시가 나왔다. 보통 스시 마지막 코스로 나오는 붕장어처럼 달게 다레 소스를 올리지 않고 대신 짭짤한 간이 되어 부담스럽지 않았다. 접시를 물린 뒤에는 국물 요리가 나왔다. 국을 내기 전 요리사는 뚜껑에 일일이 살짝 물을 뿌려 앞이 어딘지 표시를 했다. 이때 뚜껑을 손님이 직접 여는 것이 예법이고 또 뚜껑 안에 맺힌 물방울이 떨어지지 않게 거꾸로 뒤집어 옆에 놓는 것이 그네들이 따지는 예의다. 다 먹고 난 후에는 또 뚜껑을 제대로 덮어놓아야 한다. 이날 나온 국물 요리는 은은히 우린 다시 국물에 소고기와 톳을 소로 넣은 연근 만주(연근을 갈아 뭉쳤다)를 튀겨 넣었다. 봄날 유채꽃 향기가 하늘거리며 몸에 다가왔다. 국물을 마실 때는 어떤 음식을 먹는다기보다 숨을 쉬는 것처럼 맑고 가벼운 느낌이 들었다. 곧이어 사시미가 나왔다. 일본에서 제일 고급으로 치는 일본산 능성어와 단새우였다. 곁들인 장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다시마 간장으로 다시마와 간장을 걸쭉히 끓여낸 종류였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포화염수’였다. 간단히 말해 소금이 더 이상 녹지 않을 때까지 녹여낸 소금물을 뜻한다. 단새우와 곁들일 때 단맛과 짠맛이 대비를 이루며 맛이 살아났다. 찰진 식감에 기름기가 밴 능성어의 경우에는 감칠맛 방점을 둔 다시마 간장이 더 맞는 듯했다. 모두 평범히 간장을 대체하며 손님에게 특별한 경험을 제공하려는 디테일이었다. 이윽고 핫슨八寸이 방점을 찍었다. 지름이 24cm인 나무 상자에 7가지 음식을 담아내는 핫슨은 장식, 배치, 색 등 모든 면에서 계절감을 담아내는 가이세키의 중심 코스다. 마치 봄을 상자에 담아 선물 받는 듯했던 이날의 핫슨에는 마를 곁들인 가다랑어, 두릅튀김, 잣 소스를 곁들인 미나리표고, 초된장을 곁들인 가리비관자, 오키나와에서 나는 해초류 ‘모즈쿠’가 나왔다. 기물의 선택, 조리의 방법과 정도, 내놓는 몸동작 모두 섬세함의 극단에 있었다. 핫슨 다음은 비늘이 하나하나 솟아 올라오게 튀기고 구운 옥돔이었다. 비늘은 햇살이 부서지는 것처럼 어떤 이물감 없이 입 속에서 파열해버렸다. 오랜 시간을 들인 만큼이나 완성도가 높았다. 그리고 미국산 와규 구이가 뒤이었다. 자칫 피곤해질 수 있는 가이세키 코스 중에 소고기를 만났을 때 반가운 마음도 들었다. 곧이어 반가움은 놀라움으로 변했다. 작은 숯화덕에서 이런 구이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울 정도였다. 미디엄으로 구운 소고기는 겉부터 속까지 포토샵을 한 것처럼 점진적으로 붉은 기가 돌았다. 곁들인 민들레나물과 우엉 소스는 잊고 살았던 한국의 봄을 다시 일깨워줬다. 마무리는 벚꽃새우를 가득 올린 솥밥이었다. 일본에서 들여온 벚꽃새우는 한국에서 나지 않는다. 봄이 제철인 이 새우를 올린 솥밥이 담긴 그릇을 손으로 올려 잡고 밥을 입에 넣었다. 고슬고슬한 밥과 고소한 새우, 참나물이 어울린 밥에 항복하고픈 마음마저 들었다. 다시 국물을 부어 오차즈케로 한 그릇을 더 청하고 남은 밥은 오니기리로 따로 포장까지 했다. 그 끝이 포만감뿐이었다면 다르지만 또 같은 한 끼였을 것이다. 하지만 고승처럼 식사 내내 은은한 미소를 잃지 않고, 수련한 무사처럼 손끝의 예민함을 놓지 않던 그 두 요리사의 모습을 지켜보며 음식이 음식으로만 끝나지 않음을 다시 느꼈다. 사람의 마음을 전하는 것이란 지척에서 같이 숨을 쉬는 것일지도 모른다. 서로 마주 보고 서서 서로를 지켜보는 것일지도 모른다. ‘정성’이라는 식상한 말 한마디를 품고.

정동현은 서울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대기업 유통 회사를 다니다가 훌쩍 영국의 요리학교 탕트 마리Tante Marie로 유학을 떠났다. 호주의 레스토랑에서 늦깎이 셰프로 요리 열정을 불사르며 일했다. 저서로는 <셰프의 빨간 노트>가 있으며, 지금은 신세계그룹 F&B팀에서 ‘먹고(Food) 마시는(Beverage)’ 일에 몰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