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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명품을 찾아서 @해남 해창주조장

2019년 5월 3일 — 0

지금 막 걸렀다는 뜻과 마구 걸렀다는 중의적 어원을 가진 막걸리. 우리 민족과 오랜 세월 함께해온 친근한 술이다.

주조장을 찾아오는 이들에게 술과 안주를 내어준다.
주조장을 찾아오는 이들에게 술과 안주를 내어준다.
해창주조장의 4대 주인인 오병인, 박리아 부부.
해창주조장의 4대 주인인 오병인, 박리아 부부.

무첨가 막걸리의 시대

작년부터 주류업계에는 내추럴 와인 돌풍이 불었다. 포도의 성장부터 발효까지 화학 성분의 개입을 최대한 자제하고 이산화황을 줄이거나 없앤 와인을 지칭하는데, 내로라하는 레스토랑의 와인 리스트라면 응당 가장 윗부분에 내추럴 와인의 이름이 자리하는 추세다. 최근 모 주류 대기업에서도 자연 발생 탄산을 저장해 만들었다는 라거 맥주를 출시할 만큼 주류업계에서는 자연주의 바람이 거세다. 우리 술도 예외는 아니다. 전국 전통주 전문점 협의회에 소속된 30여 개 전통 주점이 판매 순위를 공개했는데 이 중 막걸리 분야가 재미있다. 1위부터 7위 중 인공 감미료를 첨가하지 않은 자연 발효 막걸리가 5개나 되기 때문. 막걸리는 마신 다음 날 유독 숙취가 심하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발효 기간을 앞당기기 위해 첨가한 화학물질 때문이다. 자연 발효 방식을 따르지만 아쉽게도 유통 과정상의 변질을 막기 위해 최소한의 인공 감미료를 첨가하는 곳도 종종 있다. 무첨가 막걸리의 대표 주자로 손꼽히는 해창주조의 해창막걸리는 쌀과 누룩 외에 그 무엇도 첨가하지 않는다. 판매 1위에 오른 이유가 바로 그뿐일까.

살림집과 주조장 사이에는 과거에 사용하던 우물터가 남아 있다.
살림집과 주조장 사이에는 과거에 사용하던 우물터가 남아 있다.
옛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물건이 전시돼 있다.
옛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물건이 전시돼 있다.
1927년부터 한자리를 지키고 있는 해창주조장의 외관.
1927년부터 한자리를 지키고 있는 해창주조장의 외관.

땅끝마을 해남으로부터

한반도 최남단, 그곳에는 땅끝마을 해남이 자리한다. 해남은 깨끗한 물, 온화한 해양성 기후, 풍성한 일조량, 비옥한 간척지 등 농업을 하기엔 최적의 자연조건을 갖췄다. 땅 좋고 물 좋은 환경에서 자란 쌀과 고구마, 배추는 각각의 수확철이 되면 전국으로 퍼져나가 해남의 위상을 드높인다. 좋은 쌀이 넘실대고 깨끗한 물이 넘쳐흐르는데 우리 술이 없겠는가. 해남 어귀에 자리한 해창주조장 앞길에는 바다로 이어지는 삼산천이 흐르고 그 주변으로는 너른 들이 펼쳐진다.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살림집과 주조장 건물 앞에는 40여 종의 수목이 사계절 번갈아가며 꽃을 피우는 일본식 정원이 있다. 살림집은 1927년에 일본인 시바다 히코헤이가 마을에 들어와 살며 지은 집이다. 이곳에서 쌀 창고를 운영하면서 일본을 오가며 미곡상을 하던 그가 일본으로 돌아간 후 2대 주인이 이곳에서 주조장을 시작했고 3대 주인을 거쳐 2008년 오병인, 박리아 부부가 4대 주인이 되었다. 사실 부부는 서울에서 택배로 해창막걸리를 주문해 먹던 손님이었다. 막걸리에 대한 애착이 남달랐던 이들 부부를 눈여겨본 3대 주조장 주인으로부터 4대 주인이 되어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았다. 고심 끝에 박리아 씨는 아들과 함께 먼저 내려와 막걸리학교에서 양조를 익혔다. 2년뒤 오병인 대표도 다니던 직장까지 정리한 뒤 해남으로 내려와 양조법을 익히고 익혔다.

고두밥에 누룩을 섞고 있는 모습.
고두밥에 누룩을 섞고 있는 모습.
찹쌀과 멥쌀은 모두 계약 재배를 통해 공수한다.
찹쌀과 멥쌀은 모두 계약 재배를 통해 공수한다.
찹쌀 고두밥을 찌고 있는 모습.
찹쌀 고두밥을 찌고 있는 모습.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해창주조장

해창막걸리에 처음부터 감미료를 넣지 않은 것은 아니다. 멥쌀이 가진 떫고 쓴 맛을 잡기 위해 극소량의 아스파탐을 첨가했던 것. 그러나 느리고 손이 더 가지만 자연이 주는 맛을 포기할 수 없었던 부부는 고심 끝에 몇 년 전 그마저도 넣지 않기로 정했다. 대신 떠올린 것이 바로 찹쌀이다. 해창막걸리는 국내산 찹쌀과 멥쌀을 더해 만드는데 계약 재배로 얻은 유기농 찹쌀만 고집한다. 찹쌀을 사용하면서부터 해창주조장의 시간은 더 천천히 흐르기 시작했다. 일반적인 막걸리의 발효는 5일이면 끝나지만 찹쌀 함유량이 높은 해창막걸리는 발효에만 한 달의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 찹쌀의 찰기로 인해 쫀득한 식감을 지닌 고두밥은 누룩과 함께 섞여 35℃ 이상의 고온에서 3일간 발효된 뒤 14℃의 저온에서 약 25일간의 시간을 보낸다. 12도, 900ml 한 병에 1만원이 넘는 가격이 합당하다고 여겨지는 이유다. 해창막걸리는 여느 막걸리에 비해 점도가 높다. 흡사 드링킹 요거트 같은 걸쭉함이다. 찹쌀이 가진 당분 때문인데, 풍부한 단맛과 약간의 산미가 함께 어우러져 혀끝에 착 감긴다. 해창주조에서는 6도, 9도, 12도의 막걸리를 시판 중이다. 곧 출시 예정이라는 18도의 막걸리를 한 모금 마셨다. 해창막걸리의 묵직하고 되직한 질감이 혀끝에서 목까지 넘어오는 그 찰나의 시간마저 천천히 흐르게 만드는 듯했다.

쌀 창고로 사용되던 해창주조장의 옛 현판.
쌀 창고로 사용되던 해창주조장의 옛 현판.
해창주조장은 90년 전 일본식 정원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해창주조장은 90년 전 일본식 정원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해창주조장
· 전라남도 해남군 화산면 해창길 1
· 오전 9시~오후 6시
· 061-532-5152(견학 및 체험 사전 문의)

edit 김민지 — photograph 최준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