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 디저트 전성시대다. 편의점 디저트 영양정보의 생크림 함량으로 본 음식과 한국 사회의 역학 관계.
text 정재훈 — edit 안상호 — photograph 최준호
편의점과 특급 호텔의 시간은 나란히 간다. 편의점 냉장 진열대에 생딸기 샌드위치가 놓일 때쯤이면 호텔 라운지에서도 딸기 뷔페를 선보인다. 편의점 딸기 샌드위치의 인기가 시들해질 무렵 호텔 딸기 뷔페도 막을 내린다. 메뉴 차이는 크다. 딸기 수플레, 딸기 타르트, 딸기 마카롱, 딸기 슈크림, 딸기 티라미수까지 상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디저트의 딸기 버전을 내놓은 듯한 호텔 딸기 뷔페에 비하면 편의점 딸기 디저트는 단출하다. 생딸기를 넣은 크림 샌드위치, 에클레어, 떠먹는 롤케이크가 주종이고, 그마저도 다 진열된 곳은 찾아보기 어렵다. 대신 비용도 저렴하다. 호텔 딸기 뷔페 가격이 평균 6만원, 편의점 딸기 샌드위치는 2300원이다. 뷔페 한 번 갈 돈으로 편의점 딸기 샌드위치 26개를 사먹을 수 있는 셈이다. 먹을 수 있는 양에 제한이 없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대식가들에게는 호텔 딸기 뷔페가 가성비 면에서 더 나은 선택이 될 수도 있다. 9000kcal에 달하는 음식을 한 번에 먹은 뒤의 후폭풍을 감당할 수 있다면 말이다(딸기 샌드위치 내용량 157g 기준 열량은 340kcal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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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저트와 건강
호텔 딸기 뷔페와 편의점 디저트는 건강에 미치는 영향 면에서 어떻게 다를까? 딸기 자체의 칼로리는 그리 높지 않다. 100g에 27kcal 수준이다. 500g 한 팩을 다 먹어도 밥 반 공기에 불과하다. 하지만 딸기 디저트에는 딸기 외에도 설탕, 밀가루, 크림과 같은 다른 재료가 들어가므로 열량이 높다. 딸기 샌드위치만 해도 100g에 300kcal가 넘으니 금방 밥 한 공기를 넘어선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편의점 디저트와 호텔 뷔페의 차이가 드러난다.
한 번에 편의점 디저트 여러 개를 사다 혼자 다 먹는 경우는 드물다. 하지만 호텔 뷔페에서는 이야기가 다르다. 본전을 뽑아야 한다는 심리와 다양성으로 인한 식욕 자극이 결합하여 과식하기 쉽다. 생딸기 샌드위치 26개에야 못 미치겠지만 뷔페에 가면 누구나 평소보다 많은 양을 먹게 된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우리는 종종, 대량 생산된 저렴한 가공식품이 값비싼 레스토랑 요리보다 건강에 해로울 거라는 생각에 빠지곤 한다. 그렇지 않다. 자주 먹을 일이 없을 뿐이지, 매일 먹는다면 호텔 딸기 뷔페가 편의점 딸기 디저트보다 건강에 더 해롭다. 필요 이상으로 많이 먹게 되기 때문이다. 집 앞 청과물 가게에서 내가 좋아하는 품종의 딸기를 사다 직접 딸기 생크림 샌드위치나 또는 인스타그램에서 유행한다는 딸기 김밥을 만들어 먹어도 결과는 마찬가지다. 현대인의 식생활에서 질적 차이는 양적 차이를 능가할 수 없다. 케이크 하나를 먹어도 건강을 생각한다는 슬로건은 틀렸다. 건강에 중요한 건 어떤 케이크를 먹느냐보다는 케이크를 한 조각 먹느냐 열 조각 먹느냐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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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 디저트 전성시대
지난 3월 9일자 <머니투데이> 기사에 따르면 GS25 딸기 샌드위치는 5개월 동안 860만 개, CU 리얼 모찌롤은 1년 동안 600만 개, 쇼콜라 생크림 케이크는 1년 2개월 동안 350만 개가 팔렸다. 그야말로 편의점 디저트 전성시대다.
편의점 디저트 먹방과 시식 후기도 인기다. 모찌롤 해시태그 하나로 검색되는 인스타그램 게시물이 1만9000건이 넘는다. 가격, 가성비, 식감, 원재료 함량, 맛, 크림의 질감과 당도를 세세하게 분석한 시식평부터 손등에 립스틱을 지우는 방식으로 빵의 촉촉함을 테스트해 올린 통통 튀는 비교 분석까지 볼 수 있다. 대세가 된 편의점 디저트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젊음이다. 엊그제 모찌롤 케이크를 사러 편의점에 들렀을 때 이 사실을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는데, 나보다 앞서 방문한 고등학생들이 모찌롤을 전부 사가서 하나도 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편의점 디저트를 너무 많이 먹는 청소년을 걱정할 필요는 없다. 텔레비전에서는 간혹 극단적 사례를 보여주면서 공포감을 유발하지만 혼자 방 안에 박혀 편의점 디저트로 폭식하는 청소년보다는 여럿이 함께 나눠 먹는 경우가 훨씬 많다. 최근 출시된 카페 스노우 크림치즈 수플레처럼 여럿이 나눠 먹는 걸 전제로 출시된 제품도 있다. 이 제품 뒷면에는 “3명이 나눠 먹기 좋은 사이즈”라는 문구가 명시되어 있다. 학창 시절 깔깔대며 크림빵을 나눠 먹던 기억을 잊고 요즘 애들 큰일 났다며 걱정하는 꼰대가 되지는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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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 디저트로 본 한국 사회
맛은 또 다른 세계다. 몇몇 히트 상품만 놓고 보면 나아진 것 같지만,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전반적 품질은 아직 그대로다. 트렌드에 맞춰 내놓긴 했지만 조악한 제품이 많다. CU에서 내놓은 생딸기 에클레어는 생딸기라는 제품명이 무색하게 무른 딸기가 얹혀 있었고, 발효가 진행되었는지 아세톤 냄새를 풍겼다. GS25에서 구입한 카페 스노우 모찌롤 초코 속 크림은 혀에서 녹지 않고 불쾌하게 미끄러졌다. 일본 제품을 그대로 수입한 것과 비교해보면 차이가 더 확연했다. 이러한 맛의 차이는 원재료 때문인가 아니면 재료를 배합하는 기술 때문인가. 배합 기술의 차이야 공장 설비를 직접 보지 않고서는 확인하기 어렵지만 원재료는 제품 뒷면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역시 쉽지 않다.
다른 제품도 원재료를 읽기 쉬운 건 아니지만 GS25 모찌롤 뒷면의 원재료 표시는 읽는 사람의 눈에 고통을 줄 정도로 가독성이 떨어진다. 동일 제조사에서 만든 생딸기가 올라간 떠롤(떠먹는 롤케익)도 이 점은 마찬가지여서, 까만 배경에 올려두어야 가까스로 글씨를 알아볼 수 있다. 이렇게 비교해본 결과, 제품별 맛의 차이는 주로 원재료에 있다는 심증이 굳어졌다. 크림이 잘 녹지 않고 입에서 겉도는 제품의 경우 식물성 크림이 가공 유크림보다 앞자리에 표시된 경우가 많았다. 많이 사용된 순으로 원재료가 나열되므로 식물성 크림이 가공 유크림보다 많이 쓰인 제품이라는 의미이다. 원재료로 사용된 가공 유크림의 조성도 제품별로 차이가 있어서, 유크림과 카라기난만 표시되어 있는 것도 있고, 팜유와 야자경화유가 들어 있는 경우도 눈에 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식물성 크림보다 가공 유크림이 우선 표시된, 즉 더 많이 사용된 제품이 크림의 풍미와 식감에 있어서 더 낫다는 원칙을 일관성 있게 적용할 수 있다. 가공 유크림과 식물성 크림을 각각 15.21%의 동일 비율로 넣은 쇼콜라 생크림 케이크와 함량 표시 없이 식물성 크림을 가공 유크림 앞에 표시한 바나나 오믈릿의 크림을 비교 시식해보면 혀에서 느껴지는 질감의 차이가 두드러진다.
배합 기술의 차이도 무시할 수 없다. 언뜻 생각하면 유크림을 많이 넣을수록 맛이 좋을 것 같지만, 유지방 농도와 기포 속에 붙잡힌 공기의 양에 따라 맛이 다르다. 가볍고 산뜻한 맛을 내기에는 유지방 농도를 낮추고 공기 비율을 높인 크림이 더 유리하다. 일본 편의점의 모찌롤에도 식물성 유지와 우유로 만든 휘핑크림이 주원료로 들어가지만 그냥 맛봐서는 유크림 100%라고 착각할 정도로 맛이 뛰어나다. 지방산의 조성이나 물리적 성질, 공기 포집 비율을 어느 정도로 세밀하게 맞추느냐에 따라 소비자의 맛 평가가 달라진다.
미식 담론서 <미식 예찬>의 저자인 브리야 사바랭 식으로 표현하면 편의점 디저트는 우리가 어떤 사회에 살고 있는지 그대로 보여준다. 제일 잘 팔리는 제품을 놓고 보면 뭔가 나아진 것 같지만, 이를 뒤따르는 제품은 그냥 분위기에 편승한 카피캣이 대부분이다. 일본에서 직수입한 모찌롤이 히트를 치면 그보다 나은 제품을 개발해서 들고 나오는 국내 제조사가 한 곳이라도 있을 법한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우리는 따라가는 데 익숙하다. 편의점 디저트뿐인가. 특급 호텔의 딸기 뷔페도 그렇고, 한식 퓨전 레스토랑도 그렇다. 기왕이면 더 뛰어난 기술과 제품으로 앞서갈 생각을 하면 좋으련만 우리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으로 적당히 묻어가려는 데 급급하다.
음식은 우리를 바꿀 수 없다. 지금보다 음식의 품질이 나아진다고 사회가 바뀌지도 않으며, 편의점 디저트에 유크림이 더 많이 들어간다고 해서 편의점 이용자의 삶에 큰 변화가 생길 리도 없다. 하지만 우리는 음식을 바꿀 수 있다. 양질의 음식은 실패해도 괜찮은 사회, 공정한 보상을 받을 수 있는 사회에서 만들어질 가능성이 더 높다. 편의점 디저트가 나아지길 바라는 진짜 이유는 그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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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훈은 서울대학교 약학대학을 졸업한 후 캐나다 토론토에서 다년간 약사로 일했다. 음식만큼이나 사람들과 요리와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걸 좋아한다. 잡지, TV, 라디오 등 여러 매체를 통해 음식과 약에 대한 과학적 정보를 전하고 있으며, 저서로는 <정재훈의 식탐>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