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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과 인문학@주영하

2019년 4월 18일 — 0

한국에는 아직 ‘음식인문학계’가 존재하지 않는데 대중은 ‘음식인문학’을 소비하고 있다. 나는 한국의 학계에서 ‘음식인문학’이 시민권을 얻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

text 주영하

“전문적인 학자들은 오랫동안 아마추어의 취미로 비아냥거렸던 ‘음식 역사’를 마침내 고품격의 학문 중 하나로 인정했다.” 이 말은 캐나다의 동부 스카버러(Scarborough)에 있는 토론토 대학(University of Toronto)에서 ‘음식 역사’를 가르치는 필처(Jeffrey Pilcher) 교수가 한 말이다. 그는 2012년에 옥스퍼드 대학 출판부의 역사학 시리즈 중 하나인 <음식 역사(Food History)>의 서론에서 이런 말을 하였다.

내가 필처의 이 글을 읽은 때는 2013년 봄이다. 나는 2011년 봄에 10여 년 동안 쓴 음식 관련 논문들을 모아서 <음식인문학: 음식으로 본 한국의 역사와 문화> 책을 펴낸 적이 있다. 그리고 2년이 지나서야 발견한 이 글은 한참 동안 나를 고무시켰다. 필처는 이 글에서 구미 역사학계에서 얼마나 오랫동안 ‘음식 역사’와 관련된 글쓰기를 주저했는지를 상세하게 설명했다. 특히 19세기 독일 대학을 중심으로 역사학이 정식 학문으로 발돋움하면서 오히려 ‘음식 역사’에 대한 연구가 뒷걸음질했음을 밝혔다. 실증주의를 주장한 랑케(Leopold von Ranke, 1795~1886)와 그의 동료들은 근대 국민국가 건설에 역사학이 복무해야 한다고 믿었다. 그래서 주로 정부 소장 문서들에 대한 과학적인 객관성 확보와 정리를 역사학의 주된 연구라고 생각했다. 이로 인해서 ‘음식 역사’에 대한 연구는 정통 역사학자들이 다루면 안 되는 주제가 되고 말았다.

한국의 인문학계에서도 사정은 비슷하였다. 나는 1999년에 유럽과 아시아 각국의 역사와 문화를 연구하는 지역학(Area Studies) 전문가 10여 명과 함께 세계 각 지역의 음식 문화에 대한 프로젝트를 한국연구재단에 공모한 적이 있다. 결과는 탈락이었다. 심사위원 중 몇몇은 이 주제의 연구비를 한국 정부가 아니라 코카콜라와 같은 다국적 식품 기업에 요청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함께 연구 과제를 준비했던 나와 동료들은 그들의 지적에 헛웃음만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로부터 8년이 지난 2007년 봄에 나는 <비빔밥의 진화와 담론 연구>라는 주제로 한국연구재단에 개인 과제를 신청하였다. 혹여 이번에도 ‘물을 먹지’ 않을까 걱정을 하면서 말이다. 다행히 연구비 규모가 작고 개인 과제라서 그랬는지 몰라도 공모에 선정되었다. 그런데 심사위원 중 한 명이 이런 평가를 해놓았다. “자칫 잘못하면 학술적인 글이 아니라 저널리즘적인 글을 쓸 가능성이 있으니 유의하라.” 선정은 되었지만, 왠지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사실 그즈음만 해도 ‘음식’에 상당한 조예가 있는 대학교수들도 음식 관련 글을 취미 삼아 쓰는 에세이 정도로 여겼다. 아직 ‘먹방’이란 말도 생겨나기 전이니 음식 관련 프로그램은 일부 언론에서나 겨우 명절을 앞두고 기획하던 주제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니 고품격의 학술성을 무기로 삼는 인문학계에서 음식의 역사나 문화와 같은 주제를 연구 대상으로 인정하기란 어려웠다.

필처가 2012년에 27편의 논문을 모아서 펴낸 <음식 역사>의 필진에는 역사학자뿐만 아니라 문화인류학자·민속학자·지역학자·요리학자·지리학자·의료역학자·영양학자·사회학자·종교학자 등이 망라되어 있다. 엄격하게 말하면 이 필자들 모두는 역사학자가 아니다. 그러나 그들의 시선은 인문학과 사회과학의 이론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음식의 역사와 문화를 보고 있다. 그래서 필처가 편집한 이 책의 제목은 ‘음식 역사’이지만 실제로는 ‘음식인문학’의 이론서이다.

그러나 2011년에 내가 펴낸 책의 제목에 ‘음식인문학’이란 다섯 글자가 들어간 배경에는 필처처럼 오로지 학술적인 시선을 고집했기 때문은 아니다. 오히려 당시 한국의 인문서 출판계에서 한창 주가를 날리던 ‘인문학’이란 용어를 ‘상업적’으로 활용한 출판사의 의지가 주효했을 뿐이다. 그런데 제목 덕분인지 몰라도 나의 첫 논문집인 이 책은 지금까지 무려 5000부 넘게 판매되었다. 누가 이 책을 들고 오면 나는 “논문집인데 그다지”라는 말로 읽기를 말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러나 이 책의 독자들은 그다지 어렵지 않고 재미있다는 말로 나를 위로해주었다.

프랑스의 법률가 장 앙텔름 브리야 사바랭(Jean Anthelme Brillat-Savarin, 1755~1826)은 ‘미식(gourmandise)’을 “미각을 즐겁게 하는 사물에 대한 정열적이고 사리에 맞는 습관적인 기호다”라고 정의 내렸다. ‘먹방’의 시대인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이런 ‘미식’을 직업처럼 하는 ‘미식가’는 얼마나 존재할까? 오히려 ‘음식인문학’을 내세우는 분들이 더 많은 듯하다. 필처는 음식의 문제는 학술적인 연구의 대상일 뿐만 아니라, 대학과 학계의 밖에 있는 일반 대중에게도 자본주의, 환경, 사회 불평등 등에 대해 비판적으로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매력적인 매체라고 보았다. 분명 그렇다. 나는 최근 각종 사회교육 프로그램에 ‘음식인문학’이란 제목이 들어가는 것을 보고 묘한 ‘자괴감’을 느낀다. 한국에는 아직 ‘음식인문학계’가 존재하지 않는데 대중은 ‘음식인문학’을 소비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 다섯 글자를 논문집의 제목에 넣은 내 책임이 크다. 이 책임을 조금이라도 덜어보려고 지금도 분주하게 대학원생들을 가르치고 전문적인 책을 집필하려고 애쓴다. 그래야 ‘음식인문학계’가 한국의 학계에도 생겨날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주영하는 학부에서 역사학, 석·박사 과정에서 문화인류학을 공부했다. 현재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민속학 담당교수이다. 1987년부터 음식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현지 조사와 연구를 해오고 있으며 전공 지역은 동아시아이다. 그동안 펴낸 책으로 <음식전쟁 문화전쟁>, <그림 속의 음식, 음식 속의 역사>, <차폰 잔폰 짬뽕>, <음식인문학>, <맛있는 세계사>, <식탁 위의 한국사>, <한국인, 무엇을 먹고 살았나>, <한국인은 왜 이렇게 먹을까?>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