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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마고 그릴 @정동현

2019년 4월 16일 — 0

한국은 숯의 나라다. 하지만 숯 이전에 나무가 있었다. 그 나무에 불을 붙여 연기를 뽑아내고 잔잔한 불길을 이뤄 음식을 내는 곳이 있다. 높은 곳에서 서울을 내려다보지만 음식은 전혀 불친절하거나 고압적이지 않다. 손님이 원하는 바를 조용히 알아내 잔잔히 내어놓는 그곳은 ‘더 마고 그릴’이다. 맹렬하지 않지만 꺼지지 않는 그윽한 불길을 품은 곳이다.

text 정동현 — illustrate 왕조현

고기를 불에 굽는다는 것은 가장 원시적인 조리 방법이다. 이런 상상을 할 수 있다. 벼락이 떨어진 숲에 불이 났다. 불이 한바탕 쓸고 간 산에는 군데군데 타 죽은 짐승들이 누워 있었다. 태초에, 조상이 처음 맛본 고기는 그렇게 사고로 타 죽은 시체였을 가능성이 높다. 불로 익힌 고기는 월등히 소화하기 쉽다. 요리 역사가 마이클 시먼스는 “역사상 요리사의 주된 목표는 한결같이 음식을 연하게 만드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고기를 연하게 만드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육회처럼 고기를 잘게 자르거나 절구에 넣고 찧거나 혹은 숙성을 시켜 효소를 통해 육질을 분해시킬 수도 있다. 하지만 불에 익히는 것만큼 고기를 연하게 만들지는 못한다. 그래서 세계 어디를 가나 고기를 굽는다. 한국의 불고기, 일본의 야키니쿠, 영국의 선데이 로스트, 미국의 텍사스 바비큐, 브라질의 슈하스코 등 그 방법만 조금씩 다를 뿐이다. 어느 쪽은 양념을 미리 재워놓고 불판에 올리고 어느 쪽은 복사열로 고기를 익힌다. 그러나 이런 방법들도 태곳적에 비해 많이 변형되고 발전된 형태다. 통제하기 까다로운 ‘불’을 통제 가능한 형식으로 변형시켜 열에너지를 얻는 것이다. 고기를 불에 익히면 고기는 연해지지만 동시에 질겨질 수도 있다. 콜라겐으로 이뤄진 결합 조직은 열을 만나면 녹아내려 고기를 연하게 만들지만 근섬유는 반대로 질기고 건조해진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수비드(Sous-vide)를 비롯한 조리 방법이 고안됐다. 본래 통조림 등 식품 대량 생산을 위해 고안된 수비드는 수조에서 일정한 온도(60~70℃)를 오랜 시간(12~24시간) 가열해 고기를 연하게 만든다. 그렇게 물컹해진 고기를 팬에 올려 살짝 구우면 누구도 실패하지 않는 스테이크를 얻을 수 있다. 즉 대량으로 빠르고 일관적인 서비스가 가능해진 것이다. 산업적으로 또 미학적으로 어떤 최적점을 찾았다고 생각되던 것이 지난 세기였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런 거의 완벽한 조리법에 싫증 나기 시작했다. 균일화된 품질이 오히려 비일상적인 경험을 필요로 하는 미식에 있어 흠이 된 것이다. 그리고 스페인 빌바오(Bilbao) 산속에 자리 잡은 레스토랑 ‘에체바리(Etxebarri)’에서 아주 오래된 그래서 새로운 조리 방식이 생겨났다. 다시 불이었다. 이곳의 오너이자 셰프인 아르긴소니스(Arguinzoniz)는 독학으로 50대에 요리사가 되었다. 그가 끊임없이 파고든 재료는 불이었다. 그의 레스토랑은 미쉐린 스타를 땄고 세계 베스트 레스토랑 50위 안에 늘 무조건 순위를 올린다. 그를 추종하거나 최소한 그의 조리 방법을 모방하는 셰프들과 레스토랑들이 생겨났다. 직접적으로 시드니의 파이어도어(Firedoor), 싱가포르의 번트엔즈(Burnt Ends)는 모두 그와 함께 일하던 이들이 차린 곳이다. 노마(Noma)로 대표되는 북유럽풍 자연주의를 표방하는 새로운 미식의 흐름도 이런 조리 방법과 맞닿는 면이 있었다. 한국은 그에 비하면 이른바 ‘직화’에 대한 수요가 그리 많지 않다. 어느 나라에 가도 한국처럼 숯을 많이 쓰지 않는다. 하지만 새로운 추세는 숯을 통한 강한 화력에만 있지 않다. 나무 자체에 밴 향을 열을 통해 끄집어내고 그 향기를 음식에 올려놓는 데 있다. 흔히 말하는 ‘불 맛’과는 조금 개념이 다르다. 불 맛이 극도의 열로 섬세한 탄 맛을 이끌어낸다면 지금의 세계에서 유행하는 그릴링(Grilling)은 강한 화력과 동시에 그 지역에서 난 나무의 향을 첨가해 또 다른 차원의 로컬리티를 추구하는 것이다. 한국에도 조금씩 이런 흐름이 보이고 있다. 식재료에 대한 탐구뿐만 아니라 조리 방법에 대한 새로운 접근, 그 원초적인 힘에 대한 탐미가 엿보이는 곳, 그 시작은 JW메리어트 서울의 ‘더 마고 그릴’이다. 지난해 리뉴얼을 통해 모든 업장이 새롭게 문을 연 JW메리어트 서울에서 가장 주목을 받은 곳은 단연 ‘더 마고 그릴’이었다. 원통형 방에 3500병의 와인을 가득 채운 인테리어, 야외 공간을 함께 쓸 수 있는 홀 구성 등 한국에서는 쉽게 볼 수 없던 모습이었다. 그중에서도 미국산 그릴 장치인 ‘그릴 웍스(Grill Works)’를 들여왔고 (처음은 아니다. 존쿡델리미트 압구정점에서 먼저 쓴 적이 있다.) 참나무 장작을 태우고 남은 잉걸불(Ember)을 쓴다는 것은 특히 보수적인 호텔 업계에서 참신한 시도였고 또 그만큼 주목을 받았다. 지난 8월 문을 열고 이제 반년이 지났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7층에 들어서면 먼저 은은하게 불의 향기가 공기로 전해진다. 목을 메게 하는 매캐한 냄새가 아니라 낙엽이 공중에 흩날리는 가을을 옮겨놓은 듯한 향기가 몸을 조용히 감쌌다. 고기가 올려진 투명 벽체 뒤로 요리사들이 바쁘게 걸으며 몸을 움직이는 모습이 보였고 더 뒤로는 몇몇 사람들이 이른 저녁을 먹고 있었다. 홀의 천장은 높고 원통형이었다. 마치 와인 배럴의 내부에 들어선 것 같았다. 그리고 홀 유리창 너머로 야외 정원이 펼쳐졌다. 조금만 날이 좋아진다면, 흐린 하늘이 말끔히 걷힌다면 그곳에 앉아 있어도 좋으리라 생각했다. 자리를 잡고 인당 15만원에 해당하는 프레스티지(Prestige) 코스를 주문했다. 식전빵이 빠르게 나왔다. 견과류가 박힌 고소한 맛이었다. 신맛이 강하게 치고 도는 발효빵이 어떨까 생각이 들었다. 고기가 중심이 되는 메뉴에서 자칫 견과류의 고소한 맛은 느끼하게 다가오기 쉽다. 이후 요리는 빠른 속도로 나왔다. 가리비 세비체는 상큼한 단감 오렌지 소스에 오렌지, 그리고 호박 피클이 함께 담겼다. 페루에서 시작된 세비체는 강한 신맛으로 맛의 중심을 잡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더 마고 그릴에서 맛본 세비체는 신맛은 보일 듯 말 듯 목소리를 낮추고 그보다는 단맛이 도드라졌다. 가니시로 올라간 호박씨를 씹었을 때는 식전빵의 맥락이 이어졌다. 그다음 메뉴였던 ‘버섯과 구운 밤 벨루테’에서 단맛과 고소한 맛이 더욱 증폭됐다. 포르치니 버섯 수프는 늦은 가을과 겨울의 차가운 공기를 데우는 따스함을 간직하고 있었다. 밤은 더욱 볼륨감 넘치는 단맛을 품었다. 한 숟가락 수프를 먹을 때마다 입 속으로 그릴에서 날아온 장작의 향기도 같이 몸으로 파고들었다. 북중미, 남미에서 비롯된 바비큐는 공격적이다. 야구모자를 뒤집어쓰고 팔뚝에는 문신이 가득한 남자들이 밤을 새워가며 고기를 굽고 이튿날이 되면 커다란 칼로 내려치듯 고기를 잘라 일회용 용기에 담아 손님에게 낸다. 그러나 더 마고 그릴에서 그런 마초적인 감각은 느낄 수 없었다. 대신 가즈오 이시구로의 소설 <남아 있는 나날>에서 헌신적으로 충성을 다하던 스티븐스에게서 풍겨지던 편안함, 거칠고 폭력적인 세상으로부터 구별된 섬세하고 통제된 안락함이 느껴졌다. 그릴의 나무는 때때로 불길을 일으키며 뜨겁게 타올랐지만 곧 잠잠해졌고 요리사들은 빠르게 움직였지만 목소리를 높이거나 불필요한 동작을 하지 않았다. 서버들은 멈추지 않고 종종걸음으로 움직이며 그릇을 치우고 빈 와인 잔을 채웠다. 공간과 공간에 채워지지 않고 느슨하게 펼쳐진 구성이 조금은 아쉬웠지만 그 사이를 채우는 것은 사람들이었고 그리고 향기였다. 그릇을 비우자마자 곧 생선 요리가 나왔다. 우니 소스를 곁들인 그릴에서 구운 넙치였다. 살의 두께로 보아 최소 5kg은 되어 보이는 넙치 즉 광어였다. 살짝 그을린 그릴 마크가 생겨진 넙치를 조금씩 잘라 입에 넣었다. 달고 새큼한 우니에 버터를 넣어 만든 윤기 어린 소스가 혀에 닿았다. 뒤이어 두툼한 넙치 살이 약간의 저항감과 함께 씹혔다. 수비드로 익혔을 때처럼 극도로 부드럽진 않았다. 대신 불기가 느껴지는 식감과 고요히 남은 나무 향기에 나도 모르게 와인을 찾았다. 오크 향이 살짝 느껴지는 부르고뉴산 샤르도네 화이트 와인을 곁들이자 바람에 조용히 흔들리는 숲처럼 음식과 술이 잔잔히 공명했다. 그리고 메인 스테이크가 등장했다. 하동에서 올라온 한우 채끝은 불필요하게 느끼하거나 부드럽지 않았다. 살짝 느껴지는 겉의 크러스트를 지나면 ‘고기를 씹는다’고 느낄 수 있는 적당한 식감과 붉은 고기의 철분기, 그 사이에 박힌 지방이 균형감 있게 다가왔다. 체온으로 고기를 녹이듯 천천히 씹을수록 그 맛이 더욱 강해졌다. 기름기 없는 안심은 강한 지방의 맛 대신 부드럽고 촉촉한 식감이 핵심이었다. 실내악 연주를 듣는 듯 포근하고 안정감 있었다. 디저트는 스타우브에 담긴 발로나 초콜릿 푸딩과 피넛 아이스크림, 우유 크럼블이었다. 간간한 짠맛과 초콜릿의 밀도 있는 단맛이 경쾌했다. 고급스럽고 많은 세공이 들어간 류는 아니었지만 더 마고 그릴이 지향하는 바가 무엇인지 다시금 느낄 수 있는 마무리였다. 레스토랑을 빠져나올 때 파란 눈동자의 셰프는 한국말로 “감사합니다”라고 인사를 했다. 그 아래 호텔 주차장은 사람들과 차가 뒤엉킨 전형적인 서울 강남의 주말이었다. 다시 7층으로 올라가고 싶었다. 오래된 사랑처럼 잔잔히 일던 불길과 노장의 연주처럼 편안히 몸에 스며들던 연기 속으로.

정동현은 서울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대기업 유통 회사를 다니다가 훌쩍 영국의 요리학교 탕트 마리(Tante Marie)로 유학을 떠났다. 호주의 레스토랑에서 늦깎이 셰프로 요리 열정을 불사르며 일했다. 저서로는 <셰프의 빨간 노트>가 있으며, 지금은 신세계그룹 F&B팀에서 ‘먹고(Food) 마시는(Beverage)’ 일에 몰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