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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틴 강 Passion on air

2019년 4월 12일 — 0

요리계에서 이만큼 후광이 나는 이가 또 있을까? 낯선 서울에서 요리에 대한 열정 하나만으로 5년을 달려온 오스틴 강을 잠시 멈춰 세웠다.

봄이 왔지만 아직은 봄이 아니었다. 이유는 단 하나, 미세먼지 때문이었다. 하늘이 아니라 주변이 온통 뿌옇고, 기분도 주변 풍경처럼 그저 그랬다. 오랜만의 이태원 나들이는 정체와 주차난에 살짝 걱정도 들었다. 다들 알겠지만 이태원은 특별한 동네다. 서울의 외국 문화 집결지. 하지만 지금의 이태원은 그 말로만 충족되지 않는다. ‘핫’이나 ‘힙’ 같은 수식어를 더 이상 붙이기 힘든 이미 한물간 관광지이지만 경리단이나 해방촌과는 또 다른 내버려진 자유분방함과 자본이 쓸고 간 흔적, 때 지난 트렌드, 그 사이의 새로운 시도가 뒤섞여 여전히 사람의 발길이 멈추지 않는 동네다. ‘이태원힐’이라고도 부르는 녹사평역 인근의 언덕은 이태원이 내려다보이는 전망 덕분에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로 알려진 곳이다. 이곳도 이태원의 그런 특성을 고스란히 품고 있다. 태국 음식점과 한식 주점, 햄버거 가게, 찻집, 타로 카페, 스시집, 라운지 바, 내추럴 와인 바 등 10년 전부터 최근의 트렌드까지 망라한 각양각색의 상점이 자리 잡고 있다. 5년째 영업 중인 멕시칸 레스토랑 ‘코레아노스’도 그중 하나다. <식신로드>와 <맛있는 녀석들>에 소개되면서 꽤 유명세를 탔다. 그 정도 시간이 지나면 세월의 흔적이 가게 곳곳에 묻어나기 마련인데 코레아노스도 그렇다. 사람의 흔적이 곳곳에 진하게 묻어 있다. 녹사평역 사거리와 이태원이 내려다보이고 햇살이 가득 들어차는 테라스도 유명하다. 그러나 촬영과 인터뷰를 위해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 다시 미세먼지를 마주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걱정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코레아노스에 서 있던 남자, 오스틴 강 덕분이었다. 오스틴 강은 조금은 비현실적인 남자다. 요리로 이목을 사로잡는 이들이 있지만 그는 요리와 멋짐 두 가지로 사람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방송에서 셰프테이너를 넘어 외모로 셰프 그 이상의 영역을 넘볼 수 있는 이가 바로 그다. 오스틴 강의 인터뷰 일정이 잡혔을 때 주위 반응도 모두 마찬가지였다. ‘어머, 너무 잘생긴 그 셰프?’, ‘모델이면서 셰프인 그 오스틴?’ 자기가 좋아하는 그 오스틴이냐는 호의적인 물음이 뒤따랐다. 미술계에 <나 혼자 산다>의 ‘충재 씨’가, 매니저계에 <전지적 참견 시점>의 ‘강현석’이 있다면 요리계에는 <마스터셰프 코리아 시즌4>와 <두니아~처음 만난 세계> 그리고 <아찔한 사돈연습>의 오스틴 강이 있다.

한때 자신이 일했던 코레아노스에서 봄의 여유를 만끽하는 오스틴 강.
한때 자신이 일했던 코레아노스에서 봄의 여유를 만끽하는 오스틴 강.

오스틴 강의 포털사이트 프로필에는 두 가지 직업이 쓰여 있다. 모델과 요리연구가. 이미 ‘엘레브Éléve’라는 레스토랑을 오너셰프로 운영한 그가 요리연구가라니. 이유는 그의 출발점 때문이다. 오스틴은 LA에서 태어나 자랐다. 열여섯 살에 초콜릿 CF를 통해 모델로 데뷔했고, 이후 수영과 수구, 농구 선수로 활약했다. 호텔 외식 경영을 전공했지만 정작 취업한 곳은 IT 스타트업 회사였다. “호텔 벨보이부터 프런트까지 다 일해봤지만 성에 차지 않았어요. 친구가 스타트업 회사를 차린다며 함께 일하자고 제안해서 알겠다고 했죠. 그러다 친구가 한국에서 스타트업 회사를 육성한다고 해서 한국으로 오게 됐어요.” 오스틴에게 한국이라는 나라에 대한 정보는 거의 전무했다. 부모님의 나라지만 자신은 가본 적이 없고 잘 모르는, 그러나 호기심이 생기는 나라였다. 한국으로 오게 된 건 IT 회사의 한국 프로젝트 때문이었지만 그리 신통치 않았고, 결국 오스틴은 회사를 그만두고 고민에 빠졌다. 미국으로 돌아갈 것인가, 한국에 머무를 것인가. 그는 두 달 동안 머무르며 한국에 대한 호기심을 채우기로 했다. 그리고 미국으로 돌아가려는데 집안에 여러 문제가 생기면서 한국에 계속 머무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한국어를 전혀 하지 못했던 시절이라 사실상 낯선 땅에 혼자 버려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엄청 힘들었을 때죠. 돈을 벌어야 했고, 호텔 외식 경영을 전공했으니까 이 부분을 살려보기로 했어요.” 식당을 하고 싶었지만 그럴 만한 자본이 없어 서울에서 처음 시작한 게 햄버거 노점상이었다. 가지고 있던 돈을 털어 잠원 한강공원에서 미국식 수제 햄버거를 판매했는데 야속하게도 첫날부터 비가 쏟아졌다. 판매가 생각처럼 안 됐고, 서울에서의 첫여름이 끝났다. 그때 코레아노스의 본점이자 첫 번째 레스토랑인 압구정점을 갓 오픈한 제임스 권을 만났다. “자기도 LA에서 왔고 지금 타코 가게를 한다고 했어요. 저도 음식을 할 줄 아니까 코레아노스에서 일하겠다고 했죠.” 당시는 국내에 멕시칸 레스토랑이 드물던 시기였다. 당연히 사람들은 타코나 부리토가 생소했고, 오스틴은 멕시코와 인접해 멕시칸 음식이 소울 푸드나 다름없는 LA 출신이었다. 거기에 여성 고객의 이목을 확 끌어당기는 외모까지. 그래서인지 제임스는 오스틴을 고객 접대를 위한 직원으로 채용했다. “저도 요리를 할 줄 아니까 주방에서 일하고 싶었어요. 일주일 정도 홀에서 일했는데 제가 한국어도 서툴고 사람을 대하는 게 너무 어색하니까 결국 주방에서 일하라고 하더라고요.” 주방은 오스틴에게 집이었고, 주방에서 함께 일하는 이들은 가족이었다. 영업 준비부터 마감까지 장장 10시간을 일해야 했고, 갓 문을 연 레스토랑이라 할 일이 많았지만 너무 행복한 시간이었다. 메뉴를 개발하고 손님의 반응을 보고 수정하는 사이 어느덧 자신이 자란 LA 스타일과 한국의 입맛이 섞이게 됐다. 좋은 반응을 얻기 시작했고, 맛집으로 자리 잡았다. 그렇게 2년 가까이 코레아노스에서 일했다. “처음에는 저와 제임스를 포함해 4명이 일했는데 모두 저에겐 가족이나 다름없죠.”

타코를 먹으면서 멋짐을 소위 ‘뿜뿜’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모히토를 마실 때의 퉁명스러움까지 시선이 꽂힐 정도다.
타코를 먹으면서 멋짐을 소위 ‘뿜뿜’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모히토를 마실 때의 퉁명스러움까지 시선이 꽂힐 정도다.

멕시칸 요리의 인기가 점점 높아지자 코레아노스 이태원점이 생겼고, 오스틴은 그때 일을 그만뒀다. 한국에 와서 힘들었던 시간과 심적인 부담과 압박감을 요리를 통해서 덜어냈지만 자신의 요리 실력에 대한 의문과 함께 요리를 더 배우고 싶다는 갈망이 커졌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찾은 곳이 이형준 셰프의 수마린이었다. 주방의 막내로 들어가 온갖 궂은일을 떠맡았다. 일을 제대로 할 줄 모른다고 구박도 많이 받았지만 그만큼 배우는 게 더 많았다. “이형준 셰프는 아티스트적인 기질이 있는 사람이에요. 그리고 수마린은 클래식한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이니까 그에 맞는 테크닉을 많이 배웠죠.” 클래식한 요리부터 플레이팅, 프렌치 조리법까지 요리에 필요한 다양한 지식을 습득했고, <마스터셰프 코리아 시즌4>의 바탕도 모두 수마린과 에피세리의 주방에서 터득한 것이었다. 그 시간이 인연이 돼서 이형준 셰프와는 지금도 매일같이 요리로 대화를 나눈다.

오스틴 강에게 코레아노스의 제임스 권 대표는 은인이자 가족이며, 형이자 사업 파트너다.
오스틴 강에게 코레아노스의 제임스 권 대표는 은인이자 가족이며, 형이자 사업 파트너다.

오스틴이 엘레브를 시작하게 된 이유는 단순하다. 요리를 더 배우고 실력을 쌓고 싶었지만 <마스터셰프 코리아 시즌4> 출연 이후 자신을 직원으로 채용하는 레스토랑을 찾기 힘들어서였다. 그래서 요리를 배우는 마음으로 엘레브를 열었다. 연남동에 수많은 유명 카페들이 막 들어서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엘레브를 운영하면서 여러 가지를 배웠지만 셰프로서 가장 큰 배움은 한국의 식재료였다. 마음에 드는 신선한 식자재 구입을 위해 노량진이나 마포농수산물 시장에서 장을 보면서 제철 식재료와 좋은 식재료를 구분하는 방법, 조리법 등을 터득하게 됐다. 시장에 갈 때마다 너무 재미있어서 2~3시간씩 머무르며 장을 봤다. “이제는 한국 사람보다 제가 한국 식재료에 대해 더 많이 알 거예요.” 하지만 오스틴은 최근 엘레브의 문을 닫았다. 엘레브를 통해 자신의 요리 색깔에 대한 해답을 어렴풋이 봤고 좀 더 자신을 발전시킬 수 있는 형태의 레스토랑을 꿈꿨지만 경기 악화와 바쁜 스케줄 등으로 요리와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이 많이 떨어져 있었다. 그래서 최근 재충전과 마음을 홀가분하게 정리하기 위해 한국에 온 지 5년 만에 처음으로 LA로 돌아갔다. “내 생각과 내 목표에 다시 자신감을 가지는 계기가 됐어요. 엘레브도 좋았지만 제 색깔은 아니었죠. LA가 요리나 미식 트렌드가 빠른 곳이라고 하지만 전 서울이 더 빠르고 대단한 푸드 신 같아요. LA보다 실력이 뛰어난 요리사도 많고, 수준도 꽤 높아요. 이곳에서 요리로 변화에 살아남는 방법을 습득하면서 살아가고 싶어요.” 오스틴에게 요리는 위안이자 살아가는 이유다. 가장 힘든 시기에 가장 가까이 있었던 것이 요리였고, 자신의 열정을 가장 많이 쏟아부은 것이 요리였기 때문이다. “하루에 16시간씩 고되게 일하면서도 열정을 가질 수 있는 건, 또 천천히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건 결국 요리가 즐거워서죠.” 그렇다고 요리로만 살아가겠다는 다짐은 아니다. 그는 MBN의 새 예능 프로그램 <한국어학당> 출연을 결정했고 공중파 예능 프로그램도 논의 중이다. 방송도 겸하지만 결국 메인은 요리다. 사실 오스틴 강을 만나기 전까지 그는 어떤 사람이고 그를 규정짓는 것은 무엇인지 많이 고민했다. 그는 요리사인가, 모델인가, 방송인인가. 그리고 지금 생각하는 그의 직업은 하나다. 요리사다.

코레아노스는 멕시칸 음식을 편하게 즐길 수 있는 분위기에 초점을 맞췄다.
코레아노스는 멕시칸 음식을 편하게 즐길 수 있는 분위기에 초점을 맞췄다.
코레아노스

2010년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에서 푸드 트럭으로 시작한 코레아노스는 멕시칸 퓨전 요리 전문점이다. 미국에서 큰 인기를 끌며 ‘미국 최고의 푸드 트럭’ 중 하나로 꼽히기도 했다. 한국 코레아노스키친은 LA 스타일의 멕시칸 요리를 바탕으로 한국인 식습관에 맞는 새로운 메뉴를 추가해 누구나 편하게 즐길 수 있다.

· 타코 플래터 3만2000원, 키친 퀘사디아 1만2000원, 베지테리안 부리토 1만500원
· 서울시 용산구 녹사평대로40길 46
· 매일 정오~오후 11시
· 02-795-4427

edit 안상호 — photograph 양성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