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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인의 셰프가 말하는 진정한 중식의 맛

2019년 3월 21일 — 0

불판, 칼판, 면판이 만들어내는 진정한 중식의 맛. 이 3가지 맛에 담긴 의미를 3명의 셰프에게서 찾았다.

여경래

불판뿐만 아니라 면판과 칼판을 두루 경험한 걸로 알고 있다.
요리를 시작한 게 열다섯 살이던 1975년이다. 어린 나이였지만 그때 주방에서 본 것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바로 불판, 칼판, 면판이라는 요리 기술을 봤다. 그리고 이듬해인 열여섯 살 때부터 수타를 시작했다. 후에 보니까 나는 요리에 소질이 있었다. 그림을 곧잘 그리고 손재주가 있었는데 그 덕분이었다. 좋은 스승들과 선배를 만난 인연도 컸다. 1970년대와 1980년대에 중식으로 이름을 날린 왕춘량, 오학지 사부였다. 한 분은 칼판 주방장으로 유명했다. 나를 예쁘게 본 그 스승들이 수기로 쓴 요리책을 빌려주곤 했다. 그러면 새벽까지 베끼면서 공부했다. 그리고 칼판장이 됐다.

칼판장까지 됐는데 불판은 어떻게 시작한 건가.
나는 사실 칼판장으로 있을 때까지 불판 조리사는 게으르다고 생각했다. 칼판과 면판이 오랜 시간 재료를 준비하고 가공하면 불판은 그제야 잠깐 제 일을 하는 게 아닌가. 그래서 우습게 생각한 부분이 있었다. 그런데 타워호텔 부주방장으로 가면서 불판을 잡았다. 입사 첫날 호텔 상무가 짬뽕을 한 그릇 만들어 가져오라고 했다. 어깨너머로 불판 기술은 배웠지만 실전은 사실상 처음이었다. 홀 매니저가 가져간 짬뽕을 다시 들고 오면서 “상무님이 맛없어서 못 먹겠대요”라고 말했다. 그때 생각했다. ‘그래, 이제 시작이야.’ 노력하면 무엇이든 변한다. 내게 부족한 건 디테일이었으니 난 그 부분만 채우면 완벽해질 수 있었다. 그리고 잘 볶는 법과 간 맞추는 법을 터득했다. 그 후 상무뿐만 아니라 호텔 회장도 내 짬뽕에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한계를 극복하는 걸 즐기는 것처럼 보인다.
난 자부심이 있다. 호기롭던 시절도 있었다. 한번은 주방에서 일하다 보니 인상만 쓰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 ‘이러면 안 되지. 나를 바꿔야겠어.’ 그때부터 일부러 웃기 시작했다. 사람들 많은 곳에서 호탕하게 웃는 담력 테스트까지 할 정도였다. 사소한 것이라도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면 자부심이 생긴다. 그게 나를 만든다.

각 분야를 모두 섭렵하면서 깨달은 불판에 대한 철학이 있을 것 같다.
한국의 중국요리는 일본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실제 중국요리는 크게 베이징, 쓰촨, 광둥, 상하이 등의 지역으로 나뉘는데 그 안에 정말 다양한 요리와 조리법이 있다. 그중 광둥 요리는 신선한 재료를 사용해 그 맛을 최대한 살리는 조리법이 특징이다. 중식에서 불은 볶는 것만을 뜻하는 게 아니라 삶고 찌고 튀기는 것도 모두 포함한다. 다만 튀기는 데 사용되는 재료는 이류고 정말 좋은 재료를 쓰는 방법은 찌는 것과 삶는 것이다. 그리고 센 불로 아주 빠르게 조리해야 한다. 식재료의 본질을 지키기 위해서다. 중화요리가 기름에 튀긴 음식이라는 선입견은 한국인의 입맛이 그래서다. 또한 불 맛이 기름과 육수와 물과 소스가 잘 버무려진 맛이라면 맞는 말이다. 만약 불 맛이 그을린 맛이라면 그건 잘못된 거다.

하지만 여전히 잘못된 인식이 대중에 퍼져 있다.
본인이 먹는 요리가 무엇인지 몰라서다. 중식은 이름에 모두 요리의 설명이 들어 있다. 삼선은 3가지의 신선한 재료를, 팔보는 8가지의 귀한 재료를 사용한다는 뜻이다. 짜장면은 자는 튀기다, 장은 장을 사용한, 면은 면 요리라는 의미다. 그리고 맛은 조리 과정의 작은 차이에도 크게 변한다. 짜장면을 불판에서 몇 인분 볶느냐에 따라서도 맛이 완전히 달라진다. 우리가 쓰는 웍은 1~2인분을 볶아야 가장 맛있다. 그 이상의 양을 조리하면 맛이 떨어진다. 그래서 아무리 바빠도 짜장은 최대 2인분까지만 볶는다. 그게 불판의 자부심이다.


최형진

중식에서 칼이 갖는 비중이 어느 정도인가.
나는 칼판과 불판 모두 경험했다. 요즘은 불에 대한 선호도나 비중이 갈수록 커지는 추세지만 불판보다 칼판을 더 선호하던 시절이 있었다. 중식당은 주로 칼판장이 그 식당의 전체 살림을 맡는다. 사람들은 칼판이라면 칼질만 잘하면 되는 일이라고 쉽게 생각하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재료 손질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식재료 관리와 메뉴 개발, 가격 책정, 수익 구조를 모두 다 책임지는 자리가 칼판이다. 그래서 칼판장이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 그 식당의 전체 수익이 좌지우지되는 경우도 허다했다. 당연히 중식에서 칼판의 역할이 상당히 클 수밖에 없다.

식재료에 대한 이해가 높은 덕분에 생기는 장점이 있겠다.
그렇다. 나는 원물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지금은 유통업체에서 기본적인 손질과 가공을 거쳐 납품을 많이 하기 때문에 손질 과정이 이전보다 간소화됐지만 예전에는 가공품이 거의 없던 시절이라 원재료를 사서 모두 칼판이 손질했다. 나는 아직도 후배들에게 재료를 통으로 사다가 손질하게끔 시키기도 한다. 닭을 가슴, 날개, 다리 부위로 정확하게 나눠 발골할 줄 아는 요리사가 불판에서도 잘하고 면판에서도 잘한다. 그리고 칼질을 잘하면 메뉴 개발에 대한 아이디어도 더 잘 떠오른다. 닭을 완벽하게 해체할 수 있는 요리사는 각 부위의 특성을 알고 있기 때문에 결정과 판단이 빠르다. 예를 들면 ‘이번에는 닭 날개의 특성을 활용한 요리를 고안해보자’라는 식이다.

그렇다면 칼질 방식이 요리의 맛을 어떻게 좌우하나.
오늘 보여준 쓰촨 라즈지를 예로 들면 닭고기를 얇게 써느냐 두툼하게 써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요리로 변한다. 나는 식감이 잘 느껴지도록 두툼하게 썬다. 어떤 요리든 각 요리에 맞는 재료의 사이즈가 있다. 칼 맛이 바로 그런 거다. 마라샹궈 같은 경우에는 20가지의 식재료가 들어간다. 사소한 연근마저도 어느 두께로 써느냐에 따라 익는 정도와 식감이 전혀 달라진다. ‘연근이 이 정도 두께로 썰어졌으니 적당히 익으려면 몇 분을 볶아야겠다’라는 감은 칼판 출신의 불판 요리사가 잘할 수밖에 없다. 반대로 익을 수 있는 두께에 맞춰 재료를 썰어주는 것도 불판 출신의 칼판 요리사가 잘할 수밖에 없다. 칼질에 따라 맛이 완전히 변한다기보다는 칼과 불 모두를 경험하고 재료의 특성을 총체적으로 이해한 요리사에게서 훌륭한 맛의 요리가 나온다. 이런 점을 생각하면 주방은 당연히 칼판만 잘해서 될 게 아니라 불판과 면판과의 조화가 중요하다.

칼의 형태와 요리의 상관관계가 있을 것 같다. 좋은 중식도의 기준이 있나.
셰프마다 기준이 다르다. 자기한테 맞는 칼이 있다. 무게, 손잡이 재질, 칼날 등 고려해야 할 요소가 많다. 두꺼운 칼은 고기나 생선을 토막 내는 데 유리하지만 나는 가볍고 섬세한 칼을 좋아한다. 10년 이상 현장에서 쓰던 나무 손잡이의 중식도가 있다. 이미 많이 닳았지만 더 닳을까 걱정이 되고 아까워서 집에 고이 모셔뒀다. 무척 소중한 칼이라서다.

칼은 본인에게 주방도구 이상의 의미가 있어 보인다. 그 의미를 설명해달라.
KBS 교양 프로그램 <여섯시 내고향>에서 ‘셰프의 선물’이라는 코너를 맡았다. 시청률이 10%씩 나온다.(웃음) 전국 팔도를 돌아다니며 그 지방 특산물을 활용해 사연을 보낸 분에게 요리를 해주는 형식이다. 나는 정말 중식도 하나만 들고 다닌다. 중식도는 활용도가 높은 칼이다. 양식에 쓰이는 칼이나 스시용 칼, 제빵용 칼, 과일칼 등등 다양한 칼들이 있지만 중국요리 하는 사람은 중식도 하나만 가지고도 모든 요리를 섭렵할 수 있다는 자부심이 있다. 내게도 중식도는 자부심이다.

새로 오픈한 진지아를 소개해달라. 중국 가정식이라는 생소한 콘셉트이다.
중식도 건강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1인 손님이나 워크인 손님도 가볍게 즐길 수 있도록 동파육, 어향 통가지 등의 요리를 가정식처럼 만들고 있는데 반응이 좋다.


지아오지앤화

한국의 중식 주방은 불판과 칼판, 면판으로 분야가 구분되는데 중국도 마찬가지인가.
중국도 기본 틀은 같다. 다만, 칼판에서 준비한 식재료를 불판에서 조리하는 일은 결국 하나의 요리를 만드는 과정이기 때문에 중국에서는 둘을 따로 나누지 않고 운영하는 곳도 있다. 면판에 국한해 설명하면 한국의 면판은 짜장면과 짬뽕 등 면을 전문적으로 만드는 분야를 가리키지만 중국은 밀가루로 만드는 음식을 총체적으로 관리하는 용어로 쓰인다. 좀 더 넓은 시각의 정의다. 면 전문기술학교도 있다. 나도 열일곱 살 때부터 산시성의 유명한 면 전문학교에 들어가 본격적으로 요리를 배웠다. 이후 중식 대가인 왕지앤중 셰프에게서 사사하고 산시성 성장의 전담 요리사로 근무할 정도로 능력을 인정받았다. 면 요리 대회에서도 수차례 우승했다.

면 전문학교까지 있을 정도면 중국은 면이나 밀가루에 대한 애착이 커 보인다.
중국에서 면은 주식 중 하나다. 내륙 지방은 강수량이 적어 자연스레 벼농사보다 밀농사가 주를 이룬다. 당연히 면 요리가 발달했다. ‘세계의 면 요리는 중국에 있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니까. 저 말 뒤에 따라붙는 한 문장이 더 있다. ‘중국의 면 요리는 산시에 있다.’ 내 고향인 산시성(山西省·산서성)은 그 말처럼 정말 다양하고 독특한 면 요리로 유명하다. 칼로 자르는 도삭면, 반죽을 꽈배기 모양으로 꼬아 늘리는 산서수랍면, 반죽의 양 끝을 당겨 얇고 납작하게 만드는 차면, 고양이 귀 모양처럼 반죽을 엄지손가락으로 눌러 빚어낸 묘이면, 장수를 기원하는 의미로 한 줄로 길게 뽑아낸 일근면 등 면 만드는 방법만 수십 가지다. 대체로 쫄깃한 식감이 특징인데, 그 비법은 알칼리수에 있다. 반죽할 때 알칼리수를 넣으면 점성이 높아지고 다른 면에 비해 쫄깃한 식감이 배가된다. 이런 다양한 종류의 면이 산시성에서 다른 지역까지 퍼졌고 중국 각 지역 고유의 조리법을 만나 더 다양한 풍미의 음식으로 변했다. 앞서 설명한 면 종류는 내가 덕후선생에서도 사용하는 방법이다.

중국요리가 가진 특징이 면 요리에 더해진 부분도 있을 것 같다.
그렇다. 중국요리는 ‘다양성’이라는 특징이 있다. 떠오르는 조리법만 해도 10가지가 넘는다. 둥(凍)·저우(粥)·탕(湯)·차오(炒)·자(炸)·젠(煎)·먼(燜)·카오(烤)·둔(燉)·웨이(煨)·쉰(燻)·정(蒸) 등이다. 당연히 면을 만드는 데도 이런 다양성이 크게 작용한다. 면 모양만 수십 가지가 넘고, 여기에 지역의 특성이 더해진다. 중국 각 지방의 대표 면 요리가 있을 정도다.

한국은 베이징과 광둥, 쓰촨 요리가 주를 이룬다. 본인이 보기에 중국 현지와 어떤 차이가 있나.
비교가 쉽지는 않지만 현실적인 차이는 식재료다. 중국은 넓은 만큼 식재료 선택의 폭이 매우 광범위하다. 한국에서는 특수 식재료로 취급되는 제비집이나 상어 지느러미도 쉽게 구할 수 있다. 향신료도 마찬가지다. 기본적으로 한국에서 많이 쓰이는 마늘이나 파, 생강 외에도 산초나 정향, 계피, 팔각 등 특유의 풍미를 가진 향신료를 더 적극적으로 사용하고 그에 따른 조리법도 다양하다. 이런 향신료 조리법이 한국은 많이 순화된 형태가 주인 것 같다. 물론 요즘은 중국 현지 스타일 요리도 늘어났다고 알고 있다. 덕후선생도 중국 현지 스타일 요리를 선보이고 있다.

당신이 만드는 덕후선생의 면 요리는 벌써 정평이 나 있다.
덕후선생의 면 요리는 현지에서와 동일한 방식으로 만든다. 다만 씹는 식감을 선호하는 한국인의 입맛에 맞춰 약간의 변화를 줬다. 가짓수는 현재 7~8가지다. 우육면과 유발면이 대표 메뉴인데 우육면은 소고기를 서너 시간 푹 삶아 우려낸 육수에 채소와 아롱사태를 올린다. 유발면은 간장과 두반장을 사용한 고기와 고춧가루 위에 파기름을 붓는다. 일종의 비빔면이다. 내가 있던 산시성의 역사는 3000년인데 아직 그중 극히 일부만 선보였다. 앞으로 중국 사람도 모르는 특색 있는 중국 면 요리를 기대해도 좋다.

edit 안상호, 오수현 — photograph 양성모, 류현준, 최준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