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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적 중식에 관한 기억

2019년 3월 21일 — 0

노랫말 속 어머니는 줄곧 짜장면이 싫다고 하셨고, 막장 드라마 속 어머니는 집 나가기 전 아이에게 꼭 짜장면을 사줬다. 현 세기 통틀어 이토록 사무치는 음식이 또 있을까. 각계각층의 이들에게서 어릴 적 중식에 관한 기억을 물었다.

유지상 푸드 칼럼니스트

내가 어릴 적만 해도 중화요리는 1년에 한 번 먹을까 말까 한 고급 음식이었다. 지금은 ‘짜장면집’, ‘중국집’이라 만만하게 불리지만 당시에는 무려 ‘청 요릿집’이라 치켜세워졌다. 누군가 졸업이라도 한다, 집안에 경사가 있다 하면 짜장면을 얻어먹을 생각에 남 일이 내 일처럼 기뻤다. 어른이 되어서도 중국집은 단골 점심 행선지였다. 그런데 어느 날 함께 간 상사가 ‘울면’을 시켰다. 짜장면, 짬뽕의 이분법적 취향 속에서 울면이란 것이 어찌나 남달라 보이던지. 다음번에 똑같이 울면을 주문하고는 무진장 후회했던 기억이 있다. 유들유들 허옇고 보드라운 국물이 이리도 뜨거울 줄이야. 백이면 백 혀를 데는 매생잇국 같았다. 지금도 굳이 울면을 먹을 바엔 짜장면 한 그릇이 최고다. 그래도 울면을 먹어야겠다면 집에서 식초랑 고추기름을 약간 넣는다. 울면 한 그릇을 산라탕 같은 우아한 중식 수프처럼 즐길 수 있는 방법이다.

정지선 셰프

고기 짬뽕을 맛본 뒤로는 중식 먹을 일이 있을 때면 고기 짬뽕을 시켰다. 일반 짬뽕보다 1000원 정도 비싼 가격이었지만 고기의 육중한 맛과 시원한 채소 육수가 자아내는 혀에 딱 붙는 감칠맛은 그만한 가치가 있었다. 중식을 제대로 공부해 셰프가 된 지금도 고기로 맛을 낸 짬뽕이 원조라고 알고 있다. 새 메뉴를 개발할 때도 고기 짬뽕의 첫 감칠맛을 더듬으며 탕 육수 베이스를 만든다. 고기 짬뽕에 혼술을 즐겨온 내공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보니 나름의 팁도 생겼다. 산초유를 한 숟가락 넣으면 깔끔하면서도 톡 쏘는 향이 생겨 즐겨 먹는다. 색다르게 먹고 싶다면 두반장에 호부추를 곱게 다져 섞은 것을 곁들여 먹는다. 그도 아니라면 고기 짬뽕에 흑식초를 한 방울 떨어뜨린다. 그 맛은 중국 유학 시절 오래된 길목에서 먹은 500원짜리 식사가 생각나는 맛이다.

고건 명성관 대표

어릴 적 짜장라면 광고를 본 뒤에는 꼭 중국집에 전화를 걸었던 기억이 난다. 그땐 쟁반짜장, 짬짜면 같은 메뉴의 베리에이션도 없었고 조금 사치를 부릴 참이면 간짜장에 탕수육이 마지노선인 줄 알았다. 어느 날 아버지가 ‘양장피 하나 시켜라’ 했다. 양장피. 난생처음 입술에 실린 요상하고 이지적인 발음은 무엇이란 말인가. 짜장면과 탕수육이 아닌 미지의 영역을 개척한다는 설렘에 배달 아저씨가 오기만을 목 빠져라 기다렸던 기억이 생생하다. 알록달록하고 가지런한 재료 위로 아버지는 노란 소스를 전부 부었다. 한 젓가락 크게 집어서 입에 넣었는데 사나운 겨자 맛에 눈물이 핑 돌았다. 20년도 더 지난 지금 가끔 집 밖에 나가기 귀찮고 술 한잔 하고 싶으면 양장피 하나 시켜서 냉장고 구석에 있는 소주 한 병 꺼내서 먹곤 한다. ‘그래, 그때 이 맛을 어떻게 알았겠어?’ 아, 물론 지금도 소스를 한번에 다 넣지는 않는다.

정재훈 약사

유치원 시절 집에 출장 요리사를 초빙한 회식에서 중국식 잡채를 처음 먹었다. 두껍고 넓적한 당면도 놀라웠지만 무엇보다 고열의 웍에서 조리된 중국 잡채가 뿜어내는 향기의 매력에 푹 빠졌다. 고등학교 때는 매일 동네 서점에 들르곤 했다. 어느 날 서점 아저씨가 잡채밥을 함께 먹자고 했다. 다른 분과 먹으려고 2인분을 주문해뒀는데 약속이 깨져서 하나 남게 된 걸 먹으면 어떻겠냐는 제안이었다. 예상치 못한 초대라 그랬는지 유난히 맛있게 먹었다. 이후 십수 년 동안 다른 사람들이 짜장면과 짬뽕과 볶음밥을 시킬 때도 꿋꿋이 잡채밥을 고수했다. 밥 위에 올려진 잡채를 먹다가 국물이 스민 밥만 따로 한번 먹고, 맨밥의 단맛으로 마무리한다. 한식 잡채를 좋아하는 분들에 대한 반감은 없지만, 한국식 잡채를 올린 밥은 내 기준에는 잡채밥이 아니다. 잡채밥은, 잡채밥만큼은 중국식이어야 한다.

남성렬 셰프

중식과 특별한 인연이 있다. 어린 시절 잠깐 중국집 배달 아르바이트를 했다. 사장님은 음식을 만들고 나는 배달을 하고, 둘이서 운영하는 조그만 식당이었다. 지금도 그때의 추억을 되새기며 가끔 배달 중식을 먹곤 한다. 배달 중식에서 나의 ‘최애’ 메뉴는 간짜장이다. 간짜장은 주문을 받자마자 바로 조리하기 때문에 채소의 아삭함이 살아 있다. 또 짜장 소스가 따로 포장되기 때문에 덜 불은 면을 즐길 수 있다. 간짜장을 즐기는 나만의 비법이 있다면 짜장 소스를 비비기 전 고추기름과 자차이, 고춧가루를 먼저 면에 비빈 다음 소스를 붓는 것이다. 그럼 면에 고추기름, 자차이, 고춧가루가 한 겹 입혀진 뒤 짜장 소스가 입혀져 첫 맛과 씹으면서 나는 맛, 끝 맛이 다 다르다. 매큼한 향미가 간짜장의 맛을 더욱 풍부하게 만들어준다.

장준우 칼럼니스트

초등학교 시절 살던 집 1층에는 ‘신승원’이란 중국집이 있었다. 부모님이 집에 안 계실 때면 늘 중국집으로 내려가 끼니를 때우곤 했다. 항상 먹던 건 짜장면이나 짬뽕, 볶음밥 정도였지만 어느 날 사장님이 작은 접시에 깐풍기를 내주셨다. 내 인생의 첫 깐풍기였다. 겉은 바삭하면서 짭조름하고 새콤 달콤 매콤한 소스가 잘 스며든 그 깐풍기를 처음 맛봤을 때 감동은 차마 지울 수가 없다. 깐풍기를 하는 곳은 많지만 잘하는 곳은 드물다. 중국집의 호오를 판단하는 내 기준은 깐풍기다. 내게 좋은 깐풍기란 신승원에서 맛보았던 그 맛이다. 소스가 과하지 않게 겉에 고루 묻어 있고, 먹는 마지막 순간까지 바삭함이 유지돼야 한다. 아쉽게도 신승원의 깐풍기는 더는 맛볼 수 없어졌다. 그때 중국술을 먹을 수 있는 나이였다면 어땠을까 가끔 생각해본다. 지중해 요리의 완성은 와인이 하듯, 좋은 깐풍기는 고량주나 백주 같은 중국술이 더해져야 진정 완벽해진다.

오영주 유튜브 크리에이터

중식에는 짜장면, 짬뽕과 양장피, 깐풍기 사이를 가르는 요리가 있다. 바로 탕수육이다. 탕수육은 본격적인 요리의 세계로 넘어가는 입구의 수문장이자 짜장면과 짬뽕보단 고차원의 호화로움이 깃들어 있다. 누구나 어린 시절, 요리의 단계로 접어드는 첫 단계인 탕수육에 대한 설렘이 있을 것이다. 나 역시 그랬다. 외식하는 날이면 달짝지근하면서도 새콤한 소스의 마성을 이기지 못하고 나와 동생은 함께 탕수육 돌림 노래를 부르곤 했다. ‘노론’, ‘소론’에 비견될 정도로 ‘부먹파’, ‘찍먹파’의 대치가 팽팽하지만 나는 두 가지 모두를 취하는 타입이다. 반은 부어 먹고 반은 끝에만 살짝 찍어 바삭함을 즐긴다. 짬뽕 국물을 곁들인 탕수육은 금상첨화다. 기름 옷에 새빨간 국물을 살짝 적셔 먹는다. 치맥만큼은 아니라도 떡볶이 국물에 오징어튀김을 찍어 먹는 것에 견줄 만하지 않을까.

edit 장은지 — illustrate 심유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