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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우지의 스시코우지

2019년 3월 18일 — 0

불계승을 안길 마지막 수를 두듯 비장하게 스시를 놓는다. 이 스시 한 점이 함의하는 세계에는 아스라한 꿈과 매일 한 뼘씩 나아가고자 한 코우지 셰프의 충직함이 서려 있다.

스시코우지의 다치에 선 코우지 셰프의 모습.
스시코우지의 다치에 선 코우지 셰프의 모습.

스시의 오묘한 세계

모양새는 꼿꼿한데 입 안에선 팔뚝 안쪽 살결처럼 보드랍게 풀어진다. 그처럼 온순하다가도 기조에는 개개의 요소들이 치열하게 정체하며 만들어낸 힘의 균형이 도사린다. 이우환 거장의 ‘조응’처럼. 그래서 ‘조응’의 사각 점인지 붓이 옮겨간 자리인지를 응시할 때면 언제나 스시가 떠올랐다. 연못 속에서 둥실 떠다니며 잠을 자는 물고기 같았고, 각진 생선이거나 생선 위 간장을 바른 흔적 같기도 했다. 고가의 스시야를 캐주얼하게 드나드는 이들은 단색화를 즐길 정도로 취향이 노숙해서 스시의 즐거움을 알고, 노숙하니까 지갑이 두둑한 것일지 모른다. 그런 이들이 자주 경유하는 청담동은 국내에서 고급 스시야가 포진한, 도쿄로 치면 긴자에 준하는 동네다. 청담동 1-1번지에 위치한 스시코우지는 신흥 스시야의 진입에도 흔들림 없이 좋은 반응을 이끌어내고 있는 스시야 중 하나다. 스시코우지를 이끄는 나카무라 코우지 셰프는 말한다. “스시 요리사는 야구의 타자 같아요. 얼마나 많은 안타를 쳤는지, 실점을 했는지에 따라 그 선수의 타율이 나오잖아요. 내 앞의 손님을 몇 팀이나 만족시켰는지가 중요하죠.” 스시를 나르시시즘적으로 대상화하는 것을 즐기는 사람으로서 얼마간 무안해졌다. 코우지 셰프에게 스시 요리는 정직하게 피땀 흘리고 결과로써 승부하는 스포츠에 비견됐다. 하지만 그의 말이 옳다. 스시 한 점을 두고 손님은 얼마든 몽글몽글하고 덧없는 꿈을 꿔도 되지만 셰프는 그래선 안 된다. 스시 셰프는 다치 앞의 손님에게 기쁨이든 만족이든 열망이든, 그게 무엇이 됐든 포만감 이상의 경험을 줄 책임이 있다. 스시 셰프는 마운드에 들어서듯 비장하게 다치 뒤에 선 아주 현실적인 타자이자, 수를 두는 마음으로 손님 앞에 신중하게 스시를 놓는 바둑 기사여야 한다.

이른 아침, 노량진수산시장에 방문해 제철 식재료를 점검하고 있는 셰프.
이른 아침, 노량진수산시장에 방문해 제철 식재료를 점검하고 있는 셰프.
생선을 손질하고 있는 코우지 셰프.
생선을 손질하고 있는 코우지 셰프.

스시코우지의 오너셰프

포만감 이상의 경험을 선사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요소들이 동반돼야 한다. 맛은 물론 프레젠테이션이나 서비스도 못지않게 중요하다. 더구나 스시야에서 셰프는 손님과 얼굴을 마주한 채 서비스한다. 밥을 쥐는 것부터 최종 한 점을 손님 앞에 올리기까지의 연속 동작은 춤같이 유려하고 가뿐해야 한다. 나카무라 코우지 셰프는 8년 연속 미쉐린 3스타를 받은 도쿄의 가이세키 레스토랑 ‘칸다’에서 경험을 쌓았다. 이후 아내의 나라인 한국에서 스시를 선보이고자 했다. 당시 국내에 유명하던 스시야 스시타츠와 63빌딩의 일식당 슈치쿠를 차례로 거쳐 2014년 4월 스시코우지의 문을 열었다. 스시코우지가 오픈할 당시 한국의 스시 시장은 도산공원을 주변 축으로 스시효, 스시마츠모토, 스시초희 등의 고급 스시야가 이끌고 있었다. “그때만 해도 스시야가 지금처럼 많지 않았어요. 스시야에 드나들던 손님도 고정적인 편이었고. 그래서 ‘거기 새로 스시야가 생겼던데?’, ‘일본에서 재미있는 요리사가 하나 왔던데?’ 하고 소문이 금방 나게 됐죠.” 스시코우지가 생긴 지 5년째, 그동안 한국 외식업계에서 스시야가 우후죽순 격으로 생겼고 스시를 맛보는 수준도 높아졌다. 그에 맞게 스시야 또한 하이엔드급, 미들급, 준미들급 등으로 세분화됐다. 그중에서 하이엔드급인 스시코우지는 본토 스시의 맛에 충실하면서도 한국인의 입맛을 고려한 포지셔닝으로 진앙을 넓혀갔다. 스시코우지의 시그너처라 할 수 있는 스시는 국내 스시야에서 쉽게 맛보기 힘든, 일본 북쪽 지방의 향토 요리 시메사바 보우다. 초에 절인 두툼한 고등어 안쪽에 생강과 시소, 와사비, 밥을 깔고 돌돌 말아 고정시킨 다음 숯으로 고등어 껍질에 불 향을 입히고 유자 제스트를 올린다. 그 위에 다시 흰 다시마를 얹어 마무리한다. 입에 넣자마자 황홀한 유자 향이 퍼지고 등 푸른 고등어의 농후함과 시소, 시큼한 밥알이 한 몸처럼 입 안에 넘실거렸다. 거기에 유쾌하면서도 정중한 태도에 한국어를 쓰며 예우를 차리는 코우지 셰프의 존재감이 가세한다. 셰프는 단골손님을 위해 색다른 메뉴도 계속해서 선보인다. 5년이란 시간에도 여전히 유효한, 사람들이 스시코우지를 찾는 이유다.

코우지의 신념

아홉 살 때부터 트럼펫을 연주하고 대학은 기계공학과로 진학한 코우지 셰프는 스물셋 청년 시절 우연히 아르바이트로 동네 초밥집에서 일하며 스시에 눈을 떴다. “일했던 곳이 초밥을 팔면서도 이자카야에 가까운 편안한 분위기였어요. 스시를 내는 주인이 손님과 이야기도 나누고 술도 한잔씩 하고. 그러면서도 주인은 손님이 만족하는지에 늘 긴장하고 있어요. 그 세계를 경험하고는 ‘나도 뒷주방에서 음식을 하기보다 이런 서비스를 제공하고 싶다’, ‘아, 이게 내 일이다’ 하고 생각했죠. 더구나 일본 남자라면 누구나 스시를 만드는 데 로망이 있거든요.(웃음)” 이후 스시 요리사가 되기 위해 청소, 홀 서빙, 설거지, 뒷주방, 밥 짓기 등의 단계를 순차적으로 밟아나갔다. 스시 세계에서는 주방에 사람을 들이는 데 매우 엄격한 편이다. 스시 셰프는 손님을 직접 상대해야 하기 때문에 ‘요리사’가 되기 전에 먼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 이것이 스시 세계를 더욱 견고하게 받쳐주는 룰인 셈이다. “오너셰프인 저도 손님 앞에서 매일 100점일 순 없어요. 스시 셰프는 서비스를 하면서 실시간으로 반응을 지켜보니까 이 손님이 다음에 올지 안 올지 제일 먼저 알 수 있거든요. 손님이 좀 불만족스러워하는 것 같을 때 ‘아, 여기 스시가 입에 안 맞나 보네’ 하고 넘기는 게 아니라, 오늘 99점으로 잘했더라도 내일 그 1점을 어떻게 올릴까 고민해야 돼요. 좋은 셰프가 되기 위해서 기술을 배우기 전에 인성과 태도를 갖추는 것이 무조건 중요하다 믿어요.” 코우지 셰프는 ‘요리사는 자기가 알고 있는 요리보다 맛있는 요리는 절대 못한다’고 생각한다. 작년만 해도 일본에 15번은 다녀왔다. 도쿄의 긴자나 후쿠오카의 스시를 맛보기 위해서다. 사람의 혀는 영악하다. 먹은 것 중 가장 맛있었던 걸 기준으로 다른 부족한 것을 가려낸다. 결국 더 좋은 것을 먹었던 사람만이 차이를 아는 거다. 코우지 셰프는 스시의 최전선에서 지금 제일 맛있다는 스시를 맛보고 돌아온 다음 자기가 만든 스시를 가장 처음 먹어본다. 그렇게 했을 때 그제야 보이는 것이 있단다. 스시코우지가 문을 연 5년 전보다 지금 자신의 스시가 단연코 나을 거라 자부하는 이유다. 스시코우지에서는 스시에 최적화된 밥을 얻기 위해 쌀의 상태에 따라 밥 짓는 법을 매일 조금씩 바꾸고 있다. 정밀하게 계량해 물을 맞추고 쌀이 조금 건조하다 싶으면 불려놓는 시간을 늘리면서 맞추는 식이다. 요즘은 트렌드에 맞게 소금 간과 식초를 조금씩 높였다. 코우지 셰프가 그간 갈고닦은 스시 한 점을 내놓았다. 공기를 쥐듯 가볍게 쥔 샤리는 네타의 무게에 눌려 미세하게 꺼졌다. 냉큼 한 점을 입에 넣었다. 이에 엉기는 고슬고슬한 찰기, 끼 있는 밥알의 산도, 이 모든 것을 포용하면서 가로지르는 한없이 유약한 네타. 그리고 견실하면서 실체 없는 구조감이 입 안에 남았다. 한 점의 숨을 거둬가니 금세 다음 한 점에 애가 달았다. 구름처럼 몽실몽실한, 덧없고도 예쁜 꿈이었다.

완성된 스시코우지의 네타 박스.
완성된 스시코우지의 네타 박스.

스시코우지
스시야 스시코우지에서는 코우지 셰프의 오마카세와 사시미 코스를 즐길 수 있다.
런치 카운터 스시오마카세 11만원, 디너 카운터 오마카세 22만원, 런치 룸 사시미코스 9만원, 디너 룸 사시미코스 16만원
· 서울시 강남구 도산대로 404
· 매일 정오~오후 2시, 오후 5시 30분~10시
· 02-541-6200

edit 장은지 — photograph 박재현, 최준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