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열기

main

Trend

화교의 요리, 한국인의 중식 @정재훈

2019년 3월 15일 — 0

한국의 중식은 화교의 요리로 시작됐다. 이는 한식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 그렇다면 한국의 중식에 대한 선입견은 누가 만든 것일까.

text 정재훈 — edit 안상호 — photograph 최준호

<중국집>. 최근 읽은 책 제목이다. 피아노 조율사이자 중식 애호가인 조영권 씨가 쓴 중식 노포 탐방기인데, 내공이 담긴 저자의 글과 이윤희 작가의 만화가 잘 어울린다. 오늘은 그중 다섯 번째로 소개된 평택 육교반점에 갔다. 책에는 잡채밥만 소개되었지만 기왕 간 김에 탕수육까지 주문했다. 조리할 수 있는 화구도 하나, 요리사도 한 명이어서 양해를 구한다는 안내문대로 주문한 메뉴가 모두 나오는 데는 10분이 조금 넘는 시간이 걸렸다. 바로 튀겨내 소스를 부어낸 탕수육은 바삭한 식감을 끝까지 유지하면서 잡내 없이 깔끔한 모범생 스타일이었다면, 잡채밥은 여러모로 특이했다. 맛은 웍의 숨결이 가득한 잡채밥의 전형이었지만, 맨밥이 아니라 볶음밥, 그냥 볶음밥이 아니라 돼지고기와 채소를 잘게 썰어 넣어 제대로 만든 볶음밥이었으며, 잡채 위에 반숙 달걀 프라이를 얹어냈다. 중국 음식은 논쟁적이다. 탕수육은 부먹인가 찍먹인가 아니면 볶먹인가. 탕수육 소스에 케첩과 간장은 사용해도 무방한가. 잡채밥에 달걀 프라이를 올려야 하나 말아야 하나. 탕수육과 잡채밥만으로도 열띤 토론이 가능하다. 여기에 지역별 중국 음식의 다양성이 더해지면 논쟁은 불타오른다. 부산 잡채밥에 짜장 소스를 얹는 것은 잡채 맛을 해치는가 더 다양한 맛의 변주를 즐기도록 하는가. 전주의 물짜장은 짜장인가 울면인가. 다들 열변을 토할 때, 누군가 끼어든다. “중국 음식 많이 먹어봤자 건강에 좋지 않다.”

중국 음식과 졸음

논쟁의 시작은 1960년대 미국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중국에서 미국으로 이민한 지 얼마 안 되었던 로버트 호 만 궉이란 의사가 1968년 뉴잉글랜드 의학 저널(NEJM)에 중국음식점에서 식사하고 나면 목에 감각이 마비되고 힘이 빠지며 가슴이 두근거린다며 MSG 부작용을 의심하는 글을 쓴 것이다. 하지만 MSG를 먹어도 뇌혈관 장벽을 거의 통과하지 않는다. 뇌 속 글루탐산 농도에 별 영향이 없으니 중추신경계에 졸음과 같은 효과를 나타내기 힘들다. 이런 전문 지식 없이도, 역사적 사실을 되돌아보면 중국음식증후군은 MSG에 대한 공격을 가장했을 뿐, 실은 중국 음식에 대한 비난과 공격의 시작이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당시 MSG가 미국인이 사랑하는 캠벨 수프부터 이유식까지 다양한 식품에 사용되고 있었는데도 그것들을 먹고 중국음식증후군과 비슷한 증상을 느낀다는 사람이 없었던 것이다. 중국 음식을 먹고 나면 졸린 건 사실이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다. 하지만 식곤증은 보편적 현상이다. 학창시절 어머니가 싸주신 점심 도시락을 먹고 나서도 졸렸던 때를 생각해보라. 음식과 졸음의 관계는 복잡하다. 2016년 미국 스크립스 연구소에서 초파리를 대상으로 실험한 결과 단백질, 염분이 식후 졸음을 유발했다. 이들의 연구에 따르면 음식 속 단백질은 잠을 유발하기도 하고 반대로 깨우기도 한다. 탄수화물 섭취가 인슐린 분비를 자극하여 뇌로 수송되는 음식 속 세로토닌의 양을 늘려서 졸릴 수도 있으며, 영양 성분과 관계없이 음식을 소화하는 과정에서 부교감 신경이 활성화되어 긴장이 풀리고 잠이 쏟아질 수도 있다. 많은 사람의 의심과 달리 중국 음식만 졸리거나 중국 음식에 특별히 졸음 유발 성분이 들어 있다고 보기 어렵다.

중국 음식과 건강

고지방 고칼로리에 나트륨 함량이 높아서 건강에 해롭다는 주장은 어떤가. 식약처 외식영양성분자료집에 의하면 짜장밥의 칼로리는 1인분 742kcal로 비빔밥(707kcal), 김치볶음밥(755kcal)과 크게 다르지 않다. 셋은 지방 함량에 있어서도 비슷하다. 짜장밥, 비빔밥, 김치볶음밥 1인분으로 섭취하는 지방은 각각 22g, 19g, 20g이다. 짬뽕의 나트륨이 4000mg으로 외식 메뉴 중에 제일 높게 나타나지만 열무냉면(3152mg)과 소고기육개장(2853mg)도 만만치 않다. 국물을 남김없이 다 먹으면 나트륨 과잉이 되는 것은 다른 대중 음식에서도 고르게 나타나는 특징이다. 짜장면이나 짬뽕과 같은 면 요리에 나트륨 함량이 유독 높은 것은 면에 소다를 넣어 반죽하기 때문이다. 특히 배달을 주로 하는 곳일수록 면이 불어터지는 것을 막기 위해 소다를 넣은 면을 사용할 확률이 높다. 고혈압 때문에 걱정이라면 짬뽕 국물까지 싹싹 비우는 것보다는 면을 먼저 먹고 국물은 적게 먹는 게 낫다. 하지만 매일 점심으로 짜장밥을 먹는 사람이 비빔밥을 먹는 사람보다 건강에 대해 더 염려할 이유는 거의 없다. 저명한 영양학자 매리언 네슬의 말처럼 영양은 ‘미션 임파서블’이 아니다. 충분한 칼로리와 영양소를 섭취하되 과하지만 않으면 된다. 중국 음식을 많이 먹으면 건강에 해롭다는 이야기는 그래서 틀렸다. 어느 나라 음식이든 많이 먹으면 건강에 해롭다. 적당히 먹으면 어느 나라 음식이든 훌륭한 건강식이 될 수 있다. 고지방에 파스타 위주의 이탈리아식이나 저지방에 쌀 위주의 일본식이나 마찬가지다.

한국식 중화요리의 불편한 진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풍미 원산지>를 보라. 광둥성 차오산 요리만 해도 재료의 다양성이 엄청나다. 양념게장부터 푸닝 된장, 말린 무, 해초, 날생선, 액젓, 어묵, 익모초까지 이어지는 요리의 향연을 보고 있으면 기름에 볶고 튀기는 방식의 고열량 음식이 중화요리의 전부가 아니며 전통 한식에도 중국의 영향이 상당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왜 오늘날 한반도에서 중국 음식 하면 짜장, 짬뽕, 탕수육으로 범위가 좁아졌을까. 음식에만 초점을 맞추고 사람을 빠뜨린 미식 담론은 공허하다. 이 시점에서 한국식 중화요리는 누가 만든 것이며 누가 먹는 음식인가에 대한 질문을 해봐야 한다. 본래 세계 화교의 주류는 광둥성(廣東省·광동성), 또는 푸젠성(福建省·복건성) 출신이며 중국요리도 이들 중심이다. 반면 근대 한반도의 중화요리는 거리상 가까운 산둥성(山東省·산동성)에서 넘어온 화교를 중심으로 발전했다. 초창기 중국음식점은 중국에서 이주해온 화교를 주요 고객으로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주요 고객층은 한국인으로 바뀌었다. 인천대학교 중국학술원의 이정희 교수는 자신의 책 <화교가 없는 나라>에서 일제강점기 중화요리점에 세 가지 종류가 있었다고 설명한다. 종업원이 20~40명 되는 고급 중화요리점, 그보다 규모가 작은 종업원 2~10명의 중화요리 음식점, 그리고 호떡집이다. 고급 중화요리점에서는 산둥 요리에 더해 베이징 요리와 광둥 요리 등 다양한 고급 요리를 팔았고, 중화요리 음식점은 우동, 잡채, 양장피, 만두를 주메뉴로 했다. 호떡집에서는 호떡만 판 게 아니라 꽈배기, 계란빵, 국화빵, 공갈빵과 같은 중국식 빵을 팔았다. 이정희 교수가 책에 쓴 것처럼 “화교 중화요리점은 한국식 중화요리를 창조하고 조선과 한국의 외식 산업을 주도했다.” 오늘날 한국의 중화요리가 기름지고 고열량에 채소는 부족한 음식인 것처럼 무시당할 때가 많지만 과거 화교는 조선 주요 도시의 상업용 채소 재배에서 커다란 비중을 차지했다. 조선 화교는 오이, 가지, 파, 양배추, 토마토, 호박과 같은 다양한 채소를 집약적으로 재배했다. 이들의 고향이 채소 재배의 오랜 역사를 가진 산둥성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음식에 대한 편견은 그것을 만들고 먹는 사람에 대한 차별과 편견에서 비롯된다. 중국 음식의 범위가 좁아지고 중국 음식이 건강에 해롭다는 편견이 생긴 것은 대중이 중화요리 음식점에서 다양한 요리를 즐길 만큼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았던 것과도 관련되지만 1960년대 말 한국 정부의 화교에 대한 규제와 차별이 강화되면서 많은 화교 중화요리점 업주가 식당 문을 닫고 해외로 재이주한 사실과도 무관치 않다. 더 근본적으로는 한국 화교의 고향인 중국 본토와 한국 간의 교류가 줄어들면서 이들의 활동이 위축되고 사회가 정체되었기 때문이다. 1992년 한중 수교와 함께 중국과의 교류가 다시 활발해지고 대림 차이나타운으로 대표되는 신화교 사회가 빠른 속도로 커지면서 양꼬치, 마라탕, 훠궈와 같은 새로운 중국 음식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작년에 드디어 한반도 화교 137년사를 조망하는 이정희 교수의 역작 <한반도 화교사>와 <화교가 없는 나라>가 출간되었고 올해 2월에는 주간지 <시사IN>이 특집 기사로 기자들의 ‘대림동 한 달 살기’를 다뤘다. 음식 너머의 사람에 대한 관심과 존중심으로 일독을 권한다.

정재훈은 서울대학교 약학대학을 졸업한 후 캐나다 토론토에서 다년간 약사로 일했다. 음식만큼이나 사람들과 요리와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걸 좋아한다. 잡지, TV, 라디오 등 여러 매체를 통해 음식과 약에 대한 과학적 정보를 전하고 있으며, 저서로는 <정재훈의 식탐>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