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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과 인문학 @최홍규

2019년 3월 11일 — 0

때를 놓친 미역국, 깜빡 잊은 케이크, 샀어야 할 초콜릿, 주문했어야 할 삼겹살!

text 최홍규

역사적으로 음식은 인간의 밥때만이 아니라 감정의 한 부분을 채워왔다. 아직도 우리는 음식으로 웃고 울고 찡그리며 화해도 한다. “약 200년 전부터, 우리 조상들은 3월 3일이 되면 봄을 맞이하며 새로운 시작을 한다는 차원에서 삼겹살을 먹어왔어요. 한편으로 황사나 미세먼지를 대비하기 위해 즐겨 먹었다는 설도 있어요. 그렇지만 이는 설에 불과하죠. 우리 조상들에게 돼지고기는 친근한 음식이었기 때문에 3월 3일 삼겹살 기념일은….” 서기 2219년, 한 음식 전문가가 할 법한 말이다. 2002년 구제역 파동 이후 축협이 양돈 농가에 도움을 주고자 시작한 것으로 전해지는 ‘삼겹살데이’는, 이처럼 200년 후에는 조상 대대로 이어져온 풍습의 일부로 소개될 수 있다. 풍습은 규칙적인 습관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그 규칙적인 습관은 누군가 목적을 가지고 시작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우리 기억이나 삶에 보다 선명하게 남는 것은 풍습의 기원이나 목적 같은 것이 아니다. 풍습 그 자체가 남는다. 이것이 누가 시작했고 왜 시작했고 어떻게 변형되어왔는지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바로 지금 현재 우리가 하고 있는 습관, 그것만이 풍습의 한 조각으로 남으며 그것이 삶에 나쁜 영향을 끼치지 않는 이상 전승도 쉽다. 그래서 지금의 ‘삼겹살데이’도 훗날에는 조상들의 숭고했던 풍습으로 남게 될 수 있다.

음식은 ‘밥때’라는 시간을 할당받아 자연과 인간이 생산해낸 그 어떤 생산물보다도 우월적 지위에서 역사를 채워왔다. 때가 되면 먹어야 하는 인간에게 시간은 음식을 섭취해야 하는 때를 알려주는 기준에 불과했다. 그렇게 인간의 밥때를 점령한 음식은 인간사에서 ‘시간 점령’을 멈추지 않는다. 희로애락이 담긴 역사적 사건을 기억하고자 기념일이 만들어질 때면 어김없이 음식이 그 한 부분을 차지해버리는 것이다. 하루로 따져도 평균 세끼라는 밥때를 점령하는 데 그치지 않고 1년의 기간을 기준으로는 꽤 많은 인간사의 기념일들이 음식으로 채워진다. 생일이면 아침에 미역국을 끓이고 저녁이면 케이크의 촛불을 분다. 2월과 3월의 14일에는 초콜릿과 사탕을 사야 하고(물론 그 중간 3월 3일에는 삼겹살도 굽고), 11월 11일이 되면 기다란 초콜릿 과자를 포장해야 한다. 결혼하면 하객들을 위한 음식, 졸업하면 외식을 위한, 동창회, 동호회, 자잘한 모임들까지. 기념하기 위한 행사에서 이슈의 중심은 음식이 된다. 어떻게든 시간을 채워 살아내야 하는 것이 인간 삶에서의 숙명이라고 한다면, 기념일에 먹는 음식이 그 시간을 채우는 방식으로는 나쁘지 않은 선택이라 생각한다. 어차피 밥때가 있는 인간에게 특정한 날의 그 밥때에 한번쯤 다른 음식으로 허기를 채우는 것도 큰일은 아니다. 그러니 데이 마케팅(Day Marketing)이란 마케팅 기법이 음식과 결합되어 ‘무슨 무슨 데이’가 생겨나더라도 오히려 그날은 기분 전환을 하기에 좋은 날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기념일에서의 문제는! 먹었어야 할 음식을 먹지 못했을 때가 아니라 주고받아야 할 음식을 주고받지 못했을 때 발생한다. 특정한 기념일에 누군가에게 기대했던 음식을 ‘제대로’ 제공받지 못하였을 때 ‘서운함’이라는 감정이 피어오르는 것이다. 그래서 “미역국은 챙겨 먹었니?”라는 안부를 묻거나 “케이크 촛불은 불었어?”, “그 아이에게 초콜릿은 받았니?”, “사탕은 주더냐?”, “빼빼로는 몇 개나 받았어?” 등등의 질문들은 한편으로 부담스럽다. 음식의 영양이나 맛, 기능에 관한 질문이 아닌 음식이라는 ‘선사품’의 획득 여부를 묻는 질문이기에 그렇다. 생일날 미역국은 오히려 나를 낳아준 엄마가 드셔야 할 듯한데도, 굳이 바쁘면 케이크 대신에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될 듯해도 생일날 미역국 안 먹으면 서운하고 케이크 촛불 안 불면 왠지 나란 존재가 대접받고 있지 못한 듯하다. 사랑하는 사람이 밸런타인데이나 화이트데이를 챙기지 못해도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꼭 먹었어야 할 음식이 아니라 꼭 받았어야 할 음식. 그것이 사람들의 감정을 건드린다. 무심한 사람. 그런 것도 까먹다니… 밥때는 까먹어도 이날만은 기억하고 그 음식을 줬어야 하는 거 아니야? 이쯤 되면 음식은 이제 입으로 씹거나 혀로 느끼고 배에서 채워지는 음식‘물’만은 아닌 것이 된다. 인간관계를 형성하고 그 관계를 끈끈하게 맺어주는 물품의 역할을 한다. 소중한 사람에게 그 감정을 전달하는 매개체도 된다. 결과적으로 음식 때문에 미소 짓고 음식으로 눈물 흘리고 음식으로 화내거나 화해도 하게 되니, 이제 음식은 인간사의 시간 점령군을 뛰어넘어 감정 정복자가 되고 있다. 이처럼, 인문학이 인간에 관한 학문이라면 그 인간사를 채우는 시간을 기준으로 우리는 무엇에 가장 큰 영향을 받고 살고 있나 한번쯤 생각해보자. 바로 음식이다. 그것은 우리 삶 중에서 하루의 밥때와 한 해 동안의 기념일들을 점령한다. 시간을 점령해버리니 그 시간들에 스며든 감정들도 정복해왔고 때문에 중요한 날에 꼭 교환해야 할 음식들도 생겨났던 것이다. 설혹 그것이 맛이 없고 영양도 풍부하지 않다 하더라도 그것은 이미 우리의 감정을 좌지우지하는 물품이 되어버렸으므로. 음식이 인문학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한 답은 바로 여기에 있다. 자! 그런데 벌써 3월 14일이 다가오는군. 뭐를 준비해야 하나…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될 텐데….

최홍규는 학부에서 매체공학을 전공하고 이후 미디어학 석·박사를 취득했다. 미디어와 커뮤니케이션이 어떻게 사람들의 음식 선택에 영향을 미치는지에 관심을 가지고 집필 중이다. 저서로 <푸드 커뮤니케이션 전략>, <콘텐츠 큐레이션> 등이 있으며 한살림소비자생활협동조합, 식생활교육네트워크 등에서 ‘미디어와 푸드’, ‘식생활 교수법’ 등을 주제로 수년간 강의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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