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열기

main

DiningExplore

몽탄 @정동현

2019년 3월 19일 — 0

돌아가는 삼각지에는 이제 사람들이 줄을 선다. 미식의 중심지도 아니었다. 집값이 가장 비싼 동네도 아니었다. 돼지 삼겹살과 소갈비를 파는 집이 들어선 것뿐이었다. 그 두꺼운 문 뒤로는 짚불에서 타오른 불길이 일고 고기가 층층이 쌓인 냉장고가 벽처럼 자리했으며 사내들은 땀을 흘리며 고기를 구웠다. 한바탕 꿈처럼 희미한 연기가 감도는 그곳은 ‘몽탄’이다.

text 정동현 — illustrate 왕조현

요즘 새로 생기는 식당은 스시집, 아니면 고깃집이다. 마치 바다와 땅을 가르듯 이 두 종류의 식당이 무더기로 쏟아진다. 이유는 간단하다. 장사가 되기 때문이다. 그중 고깃집은 그 수뿐만 아니라 세부 장르까지 나눠지며 발전하고 있다. 복고풍 냉동 삼겹살, 직원들이 일일이 다 구워주는 프리미엄 돼지고기집, 일본 오마카세 형식을 차용한 프리미엄 고깃집, 조금 더 시야를 넓히면 지역별로 맹주가 있는 곱창집까지 새로 생겨난 집만 다녀도 시간이 부족할 정도다. 왜 한국인은 이토록 고깃집을 좋아할까? 몇 가지 추측이 가능하다. 첫째로 여전히 외식 시장이 작은 점을 꼽을 수 있다. 시장 규모는 한정되어 있으니 외식 장르가 다양해지기에는 한계가 있다. 둘째로 고기는 사람들의 취향을 크게 타지 않는다. 높은 심미안이나 칼질이 필요 없다. 특히 접대 등의 목적으로 외식을 하는 경우에 가장 쉬운 선택지다. 한국인치고 고기 싫어하는 사람이 드물다. 여전히 인당 고기 소비량으로 보면 2014년 51kg으로 미국의 89.7kg의 절반 수준이지만 그 양도 점차 늘고 있다. 수요와 공급이 교차하는 우아한 곡선은 한국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자연히 경쟁이 치열해진다. 그럼에 따라 시장 수준이 올라간다. 자본주의적 경쟁의 선순환이다. 경쟁 우위를 가지기 위해서는 전략이 필요하다. 아이템 및 서비스의 차별화는 기본이다. 더 나아가 제대로 된 브랜딩이 필요하다. 고깃집의 콘셉트가 고깃집인 시대는 갔다. 이러저러한 정체성을 가지고 어떤 소비자 집단을 표적으로 하는, 브랜드 차원에서 기획 개발이 이뤄져야 한다. 그 최전선을 확인하려면 삼각지에 가면 된다. 그곳에 ‘몽탄’이 있다.

용산에서 멀지 않은 삼각지는 낙후된 곳이다. 대중의 트렌드도 매체의 주목도 받지 못했다. 한국 요식업에 있어 첨단을 달리는 청담, 압구정, 한남동과도 거리가 있다. 삼각지 주변으로 ‘평양집’, ‘삼각정’과 같이 곱창, 삼겹살 등을 파는 오래된 고깃집이 있긴 하다. 그들은 노포로서 경쟁력이 있을 뿐 하나의 독립된 상권을 이룰 수 있는 영향력을 갖추진 못했다. 그러나 효창공원으로 가는 삼각지 고가도로 옆에 자리한 몽탄은 <미쉐린 가이드>의 평가 기준 ‘오직 그 식당에 가기 위해 그 지역을 방문’하는 것처럼 멀리서 사람을 이끈다. 저녁 6시가 채 되지 않은 시간이었다. 해는 일찍 졌다. 찬 바람이 칼을 휘두르듯 매섭게 몰아쳤다. 아무리 옷깃을 여며도 한기가 몸에 스며들었다. 몽탄이 있는 2층 건물은 예스럽게 외관을 타일로 마감하고 주황색으로 빛나는 작은 간판을 달았다. 성에 들어서듯 무거운 철제 문을 밀었다. 낮은 조도 아래 굵직한 구조물들이 어렴풋이 보였다. 그중 전면에 놓인 큰 화덕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검은 옷을 입은 남자가 연기를 맞아가며 고기를 굽고 있었다. 그 불길은 짚단에서 나왔다. 짚으로 고기를 굽는 것이 새로운 일은 아니다. 단지 짚단을 계속 공급하고 화력을 조절하는 게 쉽지 않다. 이 두 가지가 가능하다면 확실한 이점이 있다. 먼저 화력이 높다. 이 말은 고기 표면을 쉽게 익힐 수 있다는 뜻이다. 높은 온도의 불길에서 마이야르 반응 등 맛을 좋게 하는 화학 반응이 일어난다. 짚불에서 나오는 연기도 맛에 영향을 준다. 이 연기는 그 자체로 훈연 효과가 있는데 이 연기 향을 맡으면 사람들은 ‘불 맛’이 난다고 말한다. 이 불 맛에 사람들이 끌리는 이유는 확실하지 않다. 단지 태초에 불을 쓰기 시작한 무렵 구운 음식에 대한 확실한 선호가 생겼다는 것이 정설이다. 음식을 불에 구워 익혔을 때 훨씬 많은 칼로리를 빠르고 효율적으로 흡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짚불구이가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도 비슷한 까닭이다. 짚이라는 향토적 소재를 이용한 직화구이라는 이미지는 한국인이 거부하기 힘든 종류다. 그리고 그것을 직접 목격할 수 있도록 무대처럼 1층 중앙에 화로를 놓은 의도는 명확했다. 가게에 들어서자마자 불길이 치솟았고 그 열기는 공중에 흩어졌다. 태곳적 불을 피우고 짐승을 태워 제사를 지냈던 것처럼, 그 불길에 둘러앉아 피가 고양되는 열기를 느꼈던 군중처럼, 사람들은 묘한 흥분감에 휩싸여 가게에 들어섰다. 테이블에는 가스관이 닿았고 불판 자리에는 방패 같은 솥뚜껑이 놓였다. 메뉴는 생각보다 단출했다. 고기 메뉴는 짚불삼겹살과 우대갈비 두 종류였다. 돼지고기와 소고기 각각 한 부위만 파는 것이었다. 가장 수요가 많은 두 종류에 집중하여 효율적인 운영을 이루겠다는 뜻이었다. 그러려면 이 두 가지 메뉴에 확실한 강점이 있어야 한다. 좁은 선택지로도 충분히 만족할 수 있는 상품력 없이는 소비자의 선호가 금방 떨어질 위험이 있다. 맛의 강약을 고려해 짚불삼겹살을 먼저 시켰다. 5분 정도 후에 나온 삼겹살은 높은 온도의 불길을 만난 흔적이 선명했다. 이때 너무 그을리면 입맛을 해치고 살짝 불길에 스치듯 익히면 거칠지만 탐미적인 맛이 난다. 가스 불에서 얌전히 구울 수도 있다. 프렌치로 대표되는 파인다이닝에서는 절대 고기에 센 불을 입히지 않는다. 그들이 높이 치는 것은 황금빛으로 노릇하게 익힌 정도다. 여기에서 조금 더 나아가면 과거 들불이 번졌을 때, 짐승이 그 화마에 휘말려 죽었을 때 풍겼던 원초적인 맛이 생겨난다. 솥뚜껑 위에 그 고기를 올려 조금 더, 그러니까 가장 안쪽이 아직 핑크빛을 발할 때 젓가락질을 시작했다. 바삭한 겉과 부드럽고 말캉한 속살이 명확한 대비를 이뤘다. 이 짚불삼겹살은 이런 조리적 의도와 전남 무안군 몽탄면의 전통 음식이라는 역사적 맥락에 맞닿는다. 따지고 보면 몽탄면의 전통 음식이 삼겹살일 리는 없다. 몽탄면 소재의 한 식당이 큰 인기를 끈 것이 전부다. 그러나 맛과 음식에 역사적 맥락을 넣어 의미를 부여한 것이다. 몽탄면이라는 지역적 상징은 양파김치와 같은 밑반찬으로 이어진다. 의도와 결과 모두 만족스러웠다. 기름진 삼겹살에는 찌르듯 맛이 강한 양파김치가 서로 대결을 펼치듯 맛의 합이 맞았다. 이 짚불삼겹살도 결국은 우대갈비를 먹기 위한 준비 단계에 불과했다. 우대갈비는 소의 큰 갈빗대를 이야기한다. 거창한 이름만큼이나 그 생김새는 주변의 탄식을 절로 일으켰다. 긴 낫과 같은 형상을 한 우대갈비 역시 숯과 짚불로 초벌을 마친 상태였다. 직원은 자신감과 자부심이 묻어나는 표정으로 갈비를 가위로 자르기 시작했다. 이미 예열을 마친 불판 위에서 소갈비 살은 빠르게 익어갔다. 2분여가 흐른 뒤 직원은 고기들을 갈빗대 위에 가지런히 일렬로 올려놨다. 준비가 끝났다는 신호였다. 낮은 채도의 갈색빛을 발하는 고기를 집어 들었다. 익은 소고기 특유의 향기가 느껴졌다. 달고 가벼운 돼지고기의 맛과 다른 묵직하고 짙은 맛이 공기 중을 타고 흘러왔다. 고기를 입에 넣었다. 다이아몬드 커팅을 한 것처럼 매우 부드럽지는 않았다. 절대 질긴 고기는 아니었다. 이에 얹히는 질감은 그 양단의 중심을 정확히 잡고 있었다. 맛도 그러했다. 짠맛과 단맛이 이루는 힘의 균형은 하늘을 가르며 날아가는 활시위처럼 부드럽고 우아했다. 여기에 맛의 변주를 줄 수 있는 방법이 또 있었다. 맛에 무게감을 더할 때는 간장 양념을 찍었고 맛에 다이내믹을 증폭시킬 때는 일부러 얼린 무생채를 얹었다. 한식을 구성하는 작은 요소를 비틀고 덧칠해 전체적인 느낌에까지 변화를 주는 것이 이 집의 장기였다. 돼지고기와 소고기를 번갈아 먹는 것도, 특히 삼겹살과 소갈비를 동시에 메뉴에 올린 것도 그러했다. 한국의 식당은 돼지고기와 소고기 다루는 곳이 다르다. 두 종류의 고기를 동시에 취급하면 전문성이 떨어지는 것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그 요소에 더욱 집중하여 맥락과 의미를 더하자 소비자들은 아무런 거부감도 보이지 않았다. 그 이음새가 워낙 말끔하기 때문이다. 주메뉴뿐 아니라 이어지는 식사 메뉴에서도 그 완결성을 엿볼 수 있었다. 아삭하게 씹히는 양파를 주재료로 쓴 양파볶음밥은 기존 소고기집에서 자주 차용하는 깍두기볶음밥의 새로운 모습이었다. 냉이를 한 움큼 집어넣은 된장찌개는 고기를 갈아 넣은 것처럼 걸쭉했고 맛 또한 수프가 아닌 스튜에 가까울 정도로 밀도가 있었다. 돼지 품종의 일종인 버크셔K로 육수를 냈다는 냉면과 온면은 시중 웬만한 평양냉면집 수준을 넘어섰다.

이런 집을 경험하면 몇 가지 감정이 찾아온다. 우선 대단하다. 사람들이 줄 서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드는 비주얼, 구성, 맥락, 맛을 만드는 업력은 쉽게 갖출 수 없다. 흔히 접하는 대중적인 음식을 또 다른 차원으로 이끄는 것은 더더욱 그렇다. 그리고 종국에는 자기반성이 찾아온다. 전체를 조망하고 부분을 다듬어 새로운 뭔가를 만드는 것. 그 일은 식당이든 한 사람이든 어떻게든 이뤄야 한다. 그 꿈같은 일이 몽탄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정동현은 서울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대기업 유통 회사를 다니다가 훌쩍 영국의 요리학교 탕트 마리Tante Marie로 유학을 떠났다. 호주의 레스토랑에서 늦깎이 셰프로 요리 열정을 불사르며 일했다. 저서로는 <셰프의 빨간 노트>가 있으며, 지금은 신세계그룹 F&B팀에서 ‘먹고(Food) 마시는(Beverage)’ 일에 몰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