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역사를 품고 있는 강화도는 화려했던 전성기를 지나 중년의 여유로움을 지닌 도시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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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rst Day
LUNCH 궁중의 음식 젓국갈비
강화도는 참 오랜만이었다. 서울에서 차로 2시간도 채 걸리지 않는, 당일치기 여행지로 손꼽히는 곳. 그래서 더더욱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갈 수 있다는 생각이 어딘가에 자리하고 있었다. 기해년의 새해 첫 뉴스에는 매년 그렇듯 마니산 참성단에서 손을 흔들어주는 사람들을 담은 영상이 흘러나왔다. 새해 첫날 산 정상에서 헬리콥터를 보면 그날 저녁 뉴스에 나올 것을 직감하고 약속이라도 한 듯 손을 흔들어주는 걸까. 급작스러운 강화도행 덕분에 기억 저편에 있던 흐린 조각들이 하나둘 선명해졌다. 어릴 적 강화도의 드넓은 갯벌에서 신나게 조개를 캐다 밀물 시간이라는 소리에 서둘러 배에 올랐던 기억, 엄마가 가끔 아빠 흉을 볼 때 쓰던 밴댕이 소갈딱지가 이곳에서 주로 잡히는 생선 이름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던 기억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강화도는 기후도 온화한 편이라 밴댕이 외에도 고구마, 순무, 쌀, 인삼, 새우젓 등 많은 특산물이 나고 오랜 세월을 자랑하는 도시답게 유적지와 역사가 섬 곳곳에 숨어 있는 멋진 도시다. 먼저 강화도의 향토 음식 젓국갈비를 맛보기 위해 원두막가든으로 향했다. 젓국갈비는 맑은 육수에 생돼지갈비, 두부, 버섯 등을 넣고 새우젓으로 간해 끓여 먹는 전골이다. 고려 시대 때 몽골군을 피해 강화도로 도읍을 옮겼을 당시 왕에게 진상하기 위해 강화의 특산물을 동원해 만든 궁중음식이라고 전해진다. 맑은 육수에는 청양고추의 칼칼함과 새우젓의 깔끔하고 시원함, 돼지갈비의 뼈와 살에서 우러나온 감칠맛이 온전히 녹아 있었다. 직접 만든 몽글몽글한 손두부, 푸짐한 돼지갈비 살, 쫄깃한 버섯까지 그 무엇 하나 모자람이 없었다. 한결 따뜻해진 몸과 마음으로 강화읍을 찾았다. 강화읍 내의 중심에 우뚝 서 있는 한옥이 눈에 띄었다. 기와지붕의 가장 높은 곳에 달린 십자가가 이곳이 강화성당임을 알려주고 있었다. 1900년에 지어진 이곳은 현존하는 한옥 교회 건물 중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참 신기하게도 성당의 내부 공간은 서양식인 바실리카 양식을 따랐고, 외관과 외부 공간은 서양식 장식이 거의 없는 불교 사찰의 형태를 따랐다. 큰 규모는 아니었지만 다른 어느 곳에서도 보지 못한 이국적인 성당이었다. 그 당시만 해도 참 과감한 시도였겠지. 초기 성공회 선교사들이 강화의 주민들과 함께 어우러지기 위한 방법이었을지도 모른다. 이어 고려 왕조가 몽골에 대항하기 위해 강화로 천도한 뒤 39년간 머물렀던 고려궁지를 찾았다. 아무리 잠시 피신해 있던 곳이라지만 궁궐이 있기에는 작아도 한참 작은 터였다. 지금은 돌계단만이 당시의 흔적을 알려줄 뿐이다. 이곳은 조선 시대에도 임금이 난을 피해 머물던 장소로 사용될 만큼 안전한 요새 같은 곳이었다. 조선 왕조 때는 중요한 국서를 안전하게 보관하기 위해 지방 곳곳에 실록을 분산해서 보관하였는데 강화의 고려궁지도 그런 곳으로 활용되었다. 외규장각에는 왕실의 족보, 의궤, 옥인 등 귀한 자료들이 가득했다. 1866년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에 의해 모조리 약탈당하고 건물이 불타기 전까지는 말이다. 다행히도 남아 있는 몇몇 사료 덕에 유일하게 복원할 수 있었던 외규장각 건물만이 홀로 남아 그 터를 지킨다. 1930~60년대만 해도 강화도는 국내 방직 산업의 중심지였다. 그 중심에 있던 조양방직은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방직 공장이었다. 1500명이 넘는 직원들의 삶의 터전이었지만 1970년대 들어 대구 지역으로 섬유 산업이 집중되면서 사람들은 하나둘 이곳을 떠났다. 젓갈 공장, 단무지 공장으로 사용되다 30년간 버려져 있던 이 공간은 옛것의 가치를 아는 새로운 주인의 손에 의해 멋스러운 카페로 재탄생했다. 차라리 건물을 허물고 새로 지었으면 이렇게 힘들진 않았을 것 같다는 조양방직 대표의 넋두리 속에는 분명 자부심이 있었다. 재봉틀이 돌던 작업대 위에는 커피와 빵이 올랐고 여공들의 재봉틀 소리 대신 카페 곳곳을 담는 셔터 소리가 들렸다. 매장에서 직접 만드는 케이크 한 조각과 커피를 주문해 자리를 잡았다. 카페의 큰 규모 때문에 자리를 선정하는 데도 한참이 걸렸다.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소품들이 곳곳에 배치돼 있어 마치 빈티지 박물관에 온 듯한 기분도 들었다. 버려졌던 공간에 온기가 돌고 사람들이 다시 모인다. 카페를 찾아온 외지 사람들로 주말에는 줄이 길게 늘어선다.





Dinner 간장게장의 정석
단군이 신에게 제사를 지냈다던 참성단부터 고인돌 유적까지 강화도에는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고대 유적들이 많다. 특히 고인돌은 전 세계 중 한국에 가장 많이 분포되어 있는데 주로 강화도와 고창, 화순에 집중되어 있다. 크고 우뚝 선 모습 때문에 강화도의 대표 고인돌로 손꼽히는 강화 지석묘를 찾았다. 강화도의 고인돌은 2000년에 세계문화유산으로도 등재되었다. 넓은 공원 한가운데 두 받침돌이 커다란 윗돌을 아슬아슬하게 받치고 있었다. 탁자식 고인돌이라 했다. 설명글을 읽어보니 4개의 받침돌 중 2개가 소실되어 지금과 같은 모습을 갖게 되었다고. 부족장의 무덤인지, 제사 의식을 행했던 제단인지 정확한 용도는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았지만 그 당시 권력자를 위해 이 크고 무거운 돌을 나무에 의지해 옮겼을 대다수의 일반 사람들이 떠올랐다. 강화는 예상보다 넓은 섬이었다. 강화 지석묘에서 일몰 명소인 장화리 해넘이마을까지는 약 40분 거리. 해가 지기 전에 서둘러 남쪽으로 향했다. 대체 어떤 경관이기에 마을의 이름도 낙조마을 또는 해넘이마을로 불릴까. 일몰을 감상할 수 있도록 해안길을 따라 테마 공원도 조성되어 있다. 다행히 제 시간에 도착해 자리를 잡았다. 그 어떤 가림도 없이 넓게 펼쳐진 수평선 아래로 해가 천천히 천천히 내려갔다. 붉은빛을 띠었던 하늘은 어느새 차갑게 식어 있었다. 저녁은 강화도의 주민이 추천해준 편가네된장을 찾았다. 4대째 지켜온 전통 방식으로 된장을 만들어 판매하는 편가명가의 한식당이다. 조선간장과 몽고간장에 6년근 강화 인삼을 비롯한 황기, 감초 등 갖가지 한방 재료와 월계수 잎, 생강 등을 넣고 달여 간장을 만든다. 서해안의 연평도, 진도에서 제철에 잡은 꽃게만을 사용한다는 안내문을 보고 제대로 찾아왔구나 싶었다. 밥도둑과 맞서 싸우려면 좋은 무기를 갖춰야 할 터, 2000원을 추가해 공깃밥 대신 돌솥밥을 받았다. 살이 꽉 찬 알배기 꽃게 다리를 하나 물었다. 함께 동행한 포토그래퍼와 동시에 감탄사를 내뱉었다. 짜지도, 비리지도 않은 맛있는 간장게장의 정석이었다. 함께 나온 반찬들도 하나같이 밥을 약탈해갔다. 밥그릇은 어느새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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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cond Day
Breakfast 여행지의 아침
여행지에서의 기상은 언제나 가볍다. 또 어떤 새로운 것을 보게 될지에 대한 기대감 때문이다. 아침을 먹기 위해 호텔 에버리치의 1층에 자리한 레스토랑 원플레이트를 찾았다. 가짓수가 많진 않았지만 빈속을 달랠 메뉴로는 손색이 없었다. 강화도의 주변에는 교동도와 석모도라는 큰 섬이 있다. 교동도는 2014년 개통된 교동대교 덕에 육로로도 다닐 수 있었지만 석모도는 그동안 뱃길로만 출입이 가능했다. 2017년, 석모대교가 개통되면서 보문사를 비롯한 자연휴양림, 온천 등을 찾는 이들로 부쩍 활기를 띠는 중이다. 보문사는 양양 낙산사, 남해 금산 보리암과 함께 우리나라 3대 해상 관음기도도량으로 손꼽힌다. 석모도의 랜드마크랄까. 국내 여러 곳을 다니면서 경치가 좋은 곳엔 늘 절이 있다는 법칙을 깨달았다. 가파른 언덕길을 오르자 보문사 입구에 다다랐다. 부처의 사리가 봉안된 사리탑 주변으로 오백나한의 형상이 둘러싸여 있다. 나한은 불교의 수행을 완성하고 깨달음을 얻은 성자를 일컫는 말이다. 오백나한의 눈, 코, 입, 머리 등 얼굴의 표정과 형태가 모두 제각각이었다. 대다수 합장을 하고 있었지만 머리를 긁거나 기지개를 켜는 듯한 포즈의 나한도 있었다. 모두가 바다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기이하면서도 멋진 광경이었다. 눈썹바위 아래 조각되어 있다는 마애석불좌상을 보러 400여 개의 계단을 오르고 올랐다. 높이 9.2m, 너비 3.3m의 석상이 모습을 드러냈다. 어떤 잘못이든 용서해줄 것만 같은 자비로운 미소로 사람들을 반겼다. 석상의 뒤편으로는 강화의 앞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역시나 경치 좋은 곳에는 절이 있었다.

Lunch 밴댕이는 억울해
석모도에서 강화도로 나오는 길목에는 외포항젓갈수산시장이 있다. 석모도로 가는 배를 타던 선착장이 있는 곳으로 다리가 개통하기 전까진 꼭 이곳을 지나야만 했다.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10월이 되면 이곳에서 외포리 새우젓 축제가 열린다. 김장철을 맞아 새우젓을 사러 온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구경도 할 겸 시장을 찾았다. 문을 열자마자 각종 젓갈이 풍기는 비릿하고 쿰쿰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파블로프의 개처럼 머릿속에는 새하얀 쌀밥 한 그릇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상점마다 육젓, 추젓 등 다양한 종류의 새우젓과 각종 젓갈들이 누가 더 밥도둑인가를 겨루고 있는 듯 보였다. 점심 메뉴는 그렇게 해산물로 정해졌다. 여행을 떠나기 전, 강화에 연고를 두고 있는 친구에게 무엇을 꼭 먹어야 하냐고 물었다. 돌아온 대답은 밴댕이회무침. 이상하게 서울에서는 밴댕이를 파는 곳이 많지 않다. 불과 50년 전만 해도 밴댕이는 말려서 사료로 사용하고 사람들은 먹지 않던 생선이었다. 40년 전, 현재 청강횟집 대표의 아버지가 처음으로 밴댕이를 무쳐 팔기 시작한 뒤로 강화도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밴댕이는 잡으면 바로 죽는 성질 때문에 선도가 관건이다. 조금이라도 신선하지 않으면 비린내가 나기 때문이다. 밴댕이회부터 직접 만든 초장으로 무친 밴댕이회무침, 뼈째 갈아 달걀노른자를 넣어 반죽한 밴댕이 완자탕이 한상 가득 차려졌다. 세꼬시 같은 비주얼인데 예상보다 부드러운 식감을 가졌다. 새콤달콤한 회무침을 아삭한 채소와 곁들이니 젓가락질을 멈출 수가 없었다. 완자탕의 시원한 국물은 치킨을 더 먹기 위한 치킨무 같은 존재였달까. 작은 체구로 이토록 다양한 맛을 주는 밴댕이는 소갈딱지라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갖게 되어 얼마나 억울할까. 만족스러운 점심 식사를 마치고 멀지 않은 곳에 자리한 초지진을 찾았다. 미국의 신미양요, 프랑스의 병인양요, 일본의 윤요호 사건까지 적들의 공격을 방어했던 요새다. 열강의 신무기 앞에 속절없이 무너지고 말았지만 끝까지 맞서 싸웠던 조선군의 모습을 대변하듯 초지진 앞 노송에는 당시 적의 공격으로 인한 포탄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어제 찾았던 선사 유적 고인돌부터 근대 유적까지 한반도의 역사를 총망라한 강화도. 언젠가 아이들과 함께 와도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여행의 마지막을 장식하며 해든뮤지움을 찾았다. 화려한 장식 없이 차분하고 모던한 외관이 눈에 띄었다. 길게 난 벽 사이의 통로를 따라 내려가자 입구가 드러났다. 개관 5주년을 기념해 특별 기획한 샤갈전이 한창이었다. 샤갈이 생전 제작했던 판화 작품들을 강화도에서 만나게 될 줄이야. 천천히 작품을 두 눈 가득 담았다. 전시 관광객이라면 누구든 미술관 내 위치한 카페에서 커피를 한 잔 마실 수 있어 여유를 부렸다. 강화는 힘든 유년 시절과 화려했던 전성기를 지나 어느덧 중년의 여유로움과 겸손을 갖게 된 그런 도시 같았다. 우리 선조들이 고민하고 남겼을 흔적과 발자취를 따라가다 보면 어떤 깨달음을 얻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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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rst day
원두막가든
젓국갈비전골 (소) 3만원, (대) 4만원
인천시 강화군 길상면 전등사로 60
032-937-7887
성공회 강화성당
인천시 강화군 강화읍 관청리 336
032-934-6171
고려궁지(외규장각)
성인 900원, 청소년 600원
인천시 강화군 강화읍 강화대로 394
032-930-7078
조양방직
아메리카노 7000원,당근케이크 8000원
인천시 강화군 강화읍 향나무길 5번길 12
032-933-2192
강화 지석묘
인천시 강화군 하점면 부근리 330-2
해넘이마을
인천시 강화군 화도면 해안남로 2407
편가네된장
한방간장게장(1인분) 3만8000원
인천시 강화군 화도면 가능포로89번길 11
032-937-64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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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cond Day
원플레이트
인천시 강화군 강화읍 화성길 50번길 43
032-934-1688
보문사
입장료 2000원
인천시 강화군 삼산면 삼산남로828번길 44
032-933-8271
외포항젓갈수산시장
인천시 강화군 내가면 해안서로 899-2
032-932-6408
청강횟집
밴댕이코스(회, 우럭, 완자탕) 8만원
인천시 강화군 화도면 해안남로 2845번길 19-1
032-937-1994
초지진
인천시 강화군 길상면 해안동로 58
032-930-7072
해든뮤지움
성인 1만원, 학생 7000원
인천시 강화군 길상면 장흥로 101번길 44
032-937-6911
edit 김민지 — photograph 최준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