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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진모의 묘미

2019년 2월 19일 — 0

실험적인 컨템퍼러리 요리로 주목을 받으며 괴짜로 통했던 그는 어느 날 조용히 무대를 떠났다. 2년 뒤, 그는 한식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의 주방에 서 있었다.

그의 정체성

논현동 골목길에 자리한 묘미의 문을 열고 들어섰다. 장진모 셰프의 트레이드마크였던 깔끔하게 빗어 넘긴 머리와 날 선 테일러 슈트가 아닌 새하얀 조리복 차림이 눈에 띄었다. 그는 지난해 11월, 한식 파인다이닝 레스토랑 묘미를 오픈했다. 2년 만의 귀환이었다. 한남동 앤드AND다이닝의 주방을 지휘했던 2014년 그는 요리계의 괴짜로 통했다. 메뉴는 단일 코스. 분자요리부터 미니멀, 네오노르딕&코리안 퀴진 등 당시로선 흔치 않던 그의 실험적인 요리에 참 재미있고 신선하다는 평이 쏟아졌다. 앤드다이닝은 태생 자체가 디자인 회사에서 오픈한 2년짜리 프로젝트성 레스토랑이었고 수익보단 특별함이 중요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카페 안쪽 깊숙이 숨어 있어 시크릿 다이닝이라고도 불리던 그곳은 ㄱ자 바 형태의 8좌석에 불과했다. 당시 한국에서 특별한 레스토랑이라는 입소문이 나 외국의 유명한 셰프나 푸드 크리에이터들이 종종 레스토랑을 찾아왔다. 그때마다 그들은 그에게 비슷한 이야기를 남기고 떠났다. “당신의 음식은 참 맛있고 훌륭해요. 하지만 유러피언 컨템퍼러리 레스토랑에서 많이 볼 법한 음식이죠. 당신만의 뚜렷한 독창성이 없는 게 조금 아쉽다고 할까요.” 마음 한 구석에 무언가 꿈틀거렸다.

그는 요리를 정식으로 배운 적이 없었다. 공대를 다니다 자퇴를 했고, 워킹 홀리데이로 떠난 캐나다에서 영어를 못해 들어간 곳이 그가 실질적으로 마주한 첫 주방이었다. 여러 레스토랑의 주방을 전전했기에 어떤 요리를 해야만 한다는 아집이 없었고 늘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자세가 되어 있었다. 손님들과 이야기를 나누면 나눌수록 그가 잘하는 요리가 아닌, 그를 나타낼 수 있는 정체성이 담긴 요리에 대한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대체제가 없을 장진모의 퀴진에 대해. 그렇게 내린 결론은 한식이었다. 앤드다이닝 운영이 한창이던 2015년부터 본격적으로 한식에 대해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틈나는 대로 도서관에 가서 우리 음식에 관한 옛 문헌과 고서를 찾아 읽었고 궁중음식문화연구원을 비롯해 조희숙, 박종숙 등 내로라하는 한식 선생님을 찾아다녔다. 그렇게 그의 색깔은 점점 선명해져갔다. 2016년에는 강민구, 임정식, 유현수, 최현석 셰프와 함께 뉴욕으로 날아가 전통 한식을 주제로 타파스와 전통주 페어링을 하는 갈라 디너를 선보였다. 비슷한 시기, 약속했던 2년의 계약 기간이 만료되고 앤드다이닝의 문은 굳게 닫혔다.

묘미의 시작

처음부터 2년이라는 시간 동안 주방을 떠나 있을 생각은 아니었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인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대신 드라마의 음식 자문을 하기도 하고, 메뉴 컨설팅도 맡으며 감을 잃지 않으려 노력했다. 주어진 시간만큼이나 자연스레 언젠가 그가 선보일 한식에 대해 생각할 기회가 늘어났다. 그가 주목한 부분은 과거와 현대의 단절이었다.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한국인의 일상 음식과 일제강점기와 전쟁을 겪지 않았던 100년 전 우리 조상이 먹었던 음식이 과연 같은 한식이라 말할 수 있을까. “보통 사람들에게 한식이 어떤 음식인 것 같냐고 물어보면 대부분 맵고 짠, 빨간 양념이 많은 음식이라는 답이 돌아와요. 고추가 양념에 적극적으로 쓰인 역사가 200년이 채 안 되는데 말이죠.” 그렇다면 한국 사람들에게도 생소한 과거의 한식을 현대적으로 풀어내면 어떨까. 원전의 레시피가 아니더라도 몇백 년간 아무도 찾지 않던 음식을 되살린다면 누군가는 그 음식을 통해 과거를 조망할 수 있게 되는 것이 아닐까. 맵고 짠 맛 외에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던 옛 우리의 한식은 한국인에게도, 외국인에게도 모두 매력적일 것이라는 결론을 얻었다. 때마침 앤드다이닝의 단골손님이었던 지금의 대표에게서 레스토랑 오픈을 함께 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았다. 묘미의 시작이었다.

그의 한식

묘미를 오픈한 지 이제 갓 3달 차. 그가 찾은 한식의 묘한 아름다움을 맛보러 찾아온 사람들의 평가는 명확히 갈린다. “잘하는 거 포기하고 왜 어려운 길을 가냐는 질문도 받았고, 플레이팅 기깔나게 하던 장진모 2년 쉬고 오더니 밥 짓고 있더라는 우스갯소리도 들었어요.(웃음)” 하지만 묘미에는 그가 2년간 했던 고민의 총체가 온전히 담겨 있다. 이전에는 고려하지 않았던 수익성과 대중성도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 되었다. 그는 특히 코스의 구성에 차별화를 두었다. 일반적으로 식사의 마무리에 등장하는 국수가 첫 접시로 등장하고, 코스 중간에 만두를 내놓는다. 코스의 흐름을 조선 시대 진찬, 진연의 기조 구성에서 차용해왔기 때문이다. 소고기구이가 있지만 구태여 정성 들여 지은 쌀밥과 국, 그리고 김치를 메인으로 정한 이유 또한 과거에서 현대로 전해진 것 중 그나마 변치 않은 것이기 때문이다. 묘미의 영업시간은 오후 6시부터 새벽 2시까지. 그는 대부분의 낮 시간을 메뉴를 구상하며 보낸다. 지금까지 문헌으로 전해져 내려온 한식의 영역이 굉장히 좁기 때문에 좋은 식재료의 조합과 양념이 겹치는 것에 대한 경계를 풀지 않는다. “초기에 메뉴 작업을 하면서 고의로 다른 레스토랑의 메뉴를 보지 않았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디선가 본 음식이라는 평을 듣기도 했어요.(웃음)” 그는 다양성에 관한 담론을 즐긴다. 그동안의 한식은 밥을 짓는 일반 요리사나 호텔이 전부였지만 이제 한식으로 할 수 있는 하나의 영역이 더 생겼다고 말한다. 또 하나의 분야가 늘어난 것이다. 요즘 한식 다이닝이 주목받게 된 것도 한식을 바라보던 회의적인 시선을 꿋꿋이 버틴 몇몇의 셰프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컨템퍼러리 퀴진 셰프라 불리던 그는 이제 어떤 셰프로 불리길 바랄까. 한식 셰프일까. “컨템퍼러리라는 말을 참 좋아했어요. 한마디로 이 시대에 자기 색깔을 담은 음식을 하는 셰프잖아요. 저는 제 요리를 하되 그 안에 한국의 문화와 시간을 녹여내고 싶어요. 이번엔 어떤 셰프로 불릴지 궁금하긴 하네요.”
인터뷰를 마치고 나서는 묘미의 입구에 모노파의 거장 이우환 화백의 작품이 걸려 있었다. 정제에 정제를 거쳐 붓질 한 번이 작품이 되기까지 그가 그렸을 수많은 초안과 세월, 그 모든 과정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이제 갓 학파를 정한 것 같다고 말하는 장진모 셰프의 얼굴에는 철든 어른에게서만 발견할 수 있는 기대와 두려움이 섞인 미묘한 미소가 서려 있었다.

묘미 MYOMI
장진모 셰프가 선보이는 한식 파인 다이닝을 경험할 수 있는 곳.
· 디너 코스 14만원
· 서울시 강남구 학동로53길 20 1층
· 오후 6시~새벽 2시, 일·월요일 휴무
· 02-515-8088

edit 김민지 — photograph 박재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