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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시 시미즈@정동현

2019년 2월 20일 — 0

대치동 학원거리처럼 한국의 스시 시장은 치열하고 맹렬하다. 낮에는 푸르고 밤에는 먹먹한 도산공원 주위로 맑은 물이 흐르듯 작은 스시집 하나가 있다. 젊은 요리사가 큼지막하게 밥을 쥐고 크게 자른 생선을 올리는 그 집을 ‘스시 시미즈’라고 부른다. 생선 이름을 굳이 일어로 발음하지 않아도 되고 어색하게 미소 지으며 눈치 보지 않아도 된다. 그곳에서는 모두 투명하게, 배후 없이 서로를 대한다.

text 정동현 — illustrate 왕조현

경쟁은 잔인하고 아름답다. 홀로 달리는 100m 달리기는 그저 숨이 찰 뿐이다. 그러나 8명이 함께 달리면 100m 달리기는 숨찬 뜀박질에서 스포츠로 변한다. 그리고 말처럼 잘 단련된 사내 8명이 함께 뛴다면, 그들이 100m를 10초 이내에 달릴 수 있다면, 몇만 관중이 들어차고 총소리에 맞춰 함성을 지르며 지방 하나 없는 근육질 몸이 맹수처럼 골인 지점을 통과하면 모두가 축제를 맞이한 것처럼 날뛴다. 홀로 뛴다면 아무도 모이지 않고 아무도 소리 지르지 않으며 아무도 기록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함께 달리는 것보다 빨리 뛰지 못한다. 근래 한국 스시 시장은 본토 일본에 견주어봐도 별 차이 없을 정도로 격한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특히 그 경쟁은 도쿄의 긴자처럼 도산공원 인근이라는 매우 좁은 입지에서 이뤄진다. 몇 년 전만 해도 제대로 된 스시를 먹으려면 조선호텔의 스시조, 신라호텔의 아리아께밖에 선택지가 없었던 것을 생각하면 도대체 무슨 일이 있던 걸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이유를 찾자면 여러 가지다. 무엇보다 돈이 된다. 일본과 지리적으로 가까운 데다 식민 지배라는 역사적 사정까지 겹쳐 한국은 일식에 대해 높은 이해 수준을 가지고 있다. 그만큼 오랫동안 교류가 있어왔다. 최근의 불고기 어원 논쟁 역시 그 주장의 옳고 그름을 떠나 양국에 비슷한 성격의 음식이 존재하며 서로 영향을 받아 무엇이 시작이고 원조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공진화를 이뤄왔다는 방증이다. 스시(すし)는 초밥이란 새 이름을 얻었고 일본에서 시작한 김밥은 그 모양을 유지한 채 맛을 바꿨다. 한국에서 넘어갔다는 메밀국수는 일본에서 더 화려한 꽃을 피웠고, 중국인이 최초로 만들고 일본인이 재창조한 라면은 한국과 일본의 간단한 한 끼를 지배하기에 이르렀다. 고추냉이보다 와사비가 더 익숙한 시대가 됐다. 초밥은 이제 대형 마트 즉석 조리 코너나 저렴한 돈가스 세트에 딸려 나오는 종류를 일컫는 말이 됐다. 밥이라는 공통 매개체를 기반으로 한 스시는 한국인에게 고급 음식의 대명사가 됐다. 그리고 단체로 모여 떠드는 회식 문화가 주 52시간 근무라는 사회적 제도를 만나 사그라들었다. 그 사회적 변화에 발맞춰 스시가 말 그대로 떴다. 야근 없이, 회식 없이, 사람들이 돈을 쓰고 음식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다. 스시는 편해서 익숙했고 여전히 고급이었다. 외식의 대명사였던 이탤리언 레스토랑은 구색을 갖출 뿐이다. 프렌치 레스토랑은 여전히 어려웠다. 그렇게 해서 사람들은 스시 레스토랑에 몰렸다. 그중 ‘맑은 물’이라는 뜻을 가진 ‘스시 시미즈’는 크진 않지만 고유하게 자신의 목소리를 낸다. 그 소리에 이끌려 사람들은 간판 없이 포렴布簾만 나부끼는 지하로 모여든다.
실내는 어둡다. 조도가 낮고 천장은 높지 않다. 그런 까닭에 사람들은 고개를 빳빳이 들고 사방을 살피기보다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말소리를 낮춘다. 반짝이며 빛나는 형광등 불빛 없이, 넓고 광대한 홀 없이, 8석 남짓한 바 좌석과 룸 2개가 전부인 이곳에서 요리사는 늘 머리를 깨끗이 밀고 손님을 기다린다.

— “바 좌석을 더 많이 만들었어야 하는데.”

요리사는 수줍은 소년처럼 웃으며 말했다. 강남 보통 스시집들은 바 좌석을 일자로 길게, 혹은 기역자로 놓아 좌석 수를 최대한 많이 뽑는다. 국밥집이 아닌 이상 한 번 손님을 돌릴 수 있는 회전수는 제한된다. 특히 스시집은 한 회전이 2시간 남짓 걸리니 저녁 장사라고 해봤자 1회전이 전부다. 그런데 만석이라고 해도 8명이라니. 아쉬울 수밖에 없는 숫자다. 그럼에도 두 자리가 안 되는 숫자 덕분에 이 집의 매력이 살아난다는 생각을 했다. 바 카운터에서 손님을 맞는 요리사는 한 명. 주인장이기도 한 그는 먼저 뽐내거나 으스대지 않았다. 재료든 실력이든 맛을 보고 느끼면 된다는 생각인 듯싶었다. 부질없이 날아가고 사라지는 말 대신 요리사가 내세우는 것은 간결한 스시 한 점, 요리 한 접시다. 형용사와 부사가 덕지덕지 붙은 문장이 아닌, 명사와 동사로 이루어진 힘 있는 단문처럼 이 집에는 맥락을 해치는 군더더기가 없었다. 짙은 고동색 바 테이블에 앉아 자세를 바로잡았다. 기합을 넣듯 요리사가 뒷주방을 향해 나직이 외쳤다.

— “자왕무시요.”

조그만 자기에 담긴 일식 달걀찜이 앞에 놓였다. 새우 살이 올라간 달걀찜에 나무 숟가락을 담갔다. 작은 숟가락을 통해 연한 조직감이 전해졌다. 달걀찜의 단맛은 절제되어 있었다. 부들거리는 달걀 사이에 숨은 다시의 감칠맛은 가볍게 손을 내밀어 이끌듯 입맛을 서서히 돋웠다. 온도는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았다. 체온보다 살짝 낮은 정도였던 달걀찜은 원래 그 일부에 속해 있던 것처럼 몸속으로 사라졌다. 한겨울 차가운 공기에 기가 죽어 있던 미각이 고개를 들었다. 자연스레 사케 한잔이 떠올랐다. 이 집은 작은 메뉴판 한쪽 가득 사케 리스트가 올라 있다. 모두 1홉(180ml) 단위로도 판다. 미소를 띠듯 달달하게 입 안을 적시는 아마구치(甘口)풍 사케도, 칼같이 단호하게 단맛 하나 없이 정제된 가라구치(辛口)풍 사케도, 혹은 살균하지 않아 오래 유통할 수 없는 나마 사케도 날씨에 따라 기분에 따라 고를 수 있다. 그윽하게 몸을 감싸는 분위기 탓인지 이곳에 오는 손님들은 거의 대부분이라고 할 정도로 술을 시켰다. 취기를 숨겨주는 낮은 조도에 아지트처럼 지하에 자리한 이곳의 그 무언가에 휩쓸려 허리를 꼿꼿이 세우기보다 팔을 괴고 고개를 숙이며 모두 술잔을 넘겼다. 두어 잔 마실 즈음 전복 술찜이 나왔다. 일본 시즈오카산 와사비를 전복에 올려 입에 넣었다. 맑은 계곡물을 먹고 자란 와사비는 맵다기보다 박하를 먹은 듯 상쾌했고 그 향이 지나고 난 뒤에는 라임을 뿌린 것처럼 향긋한 과실 향이 풍겼다. 그리고 스시 시미즈의 대표 메뉴 중 하나인 바다장어구이가 나왔다. 하얀 살은 두껍고 촉촉했으며 두꺼운 껍질은 묵직한 질감을 남기며 부서져내렸다. 오이초무침을 살에 올려 입에 넣으니 지난여름의 뜨거움을 몸에 품은 오이의 푸른 향이 얕게 장어를 덮었다. 은어구이에서 난다는 수박 향이 장어 살에서 느껴졌다. 아마 오이 때문이었을 것이다. 살짝 뜨거운 그 살을 아껴가며 씹었다. 혀에 닿는 염분기에 조금씩 그러나 끊임없이 사케를 따라 마셨다. 츠마미(撮み)라고 부르는 술안주는 거기서 끝이었다. 그리고 곧바로 스시가 시작됐다. 요리사는 피아노를 칠 법한 기다란 손가락으로 밥을 쥐고 그 위에 생선을 올렸다. 생선은 도미였고 밥과 생선 사이에 쪽파를 썰어 넣었다. 제아무리 근래 흔해졌다고 하지만 도미를 따라잡는 흰살 생선은 드물다. 두툼한 살에서 새어나오는 단맛과 치밀한 조직감을 느낄 때, 나도 모르게 한숨이 쉬어졌다. 익숙한 곳에 다다랐다는 안도의 한숨이었다. 다시마에 절인 도미의 감칠맛을 이겨내는 밥은 양이 많고 간과 초가 셌다. 강남에 있는 스시집들 중에 아마 스시 시미즈의 밥, 즉 샤리는 양이 가장 많고 그 맛이 강한 편에 속할 것이다.

— “제가 일본에서도 먹어보고, 한국에서도 먹어봐도 입 안에 밥이 가득 찰 때 느껴지는 맛이 좋더라고요.”

그 까닭을 묻자 요리사는 또 멋쩍게 말했다. 말 그대로 스시를 입에 넣고 씹을 때마다 입 안의 모든 감각이 살아나는 듯했다. 조심스럽게 오물거리며 체면을 차리기보다 우물우물 밥을 씹고 생선을 이로 으깼다. 캘리포니아산 우니의 단맛도, 식초에 절인 큼지막한 고등어 지방의 단맛도, 참치 등살에서 느껴지는 산미도, 살이 오를 대로 올라 기름기가 번쩍이는 방어의 아삭한 식감도, 술이 오르면 다시 한 점 청해 먹고 마는 청어도, 일본에서 들여오는 날렵한 전어도, ‘자 한번 드셔보십시오’라고 호방하게 외치는 듯 큼지막한 크기에 절로 거칠 것 없이 입을 벌리고 마는 것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이 되자 작은 그릇에 밥을 담고 그 위에 구운 금태를 만났다. 나는 어릴 적 밥그릇을 들고 퍼먹듯 그 작은 그릇을 손에 쥐고 얼굴 가까이 들어 올려 젓가락으로 입에 쓸어 넣었다. 와사비 향이 묻혀버릴 정도로 풍성한 기름기가 입술에 닿았고 혀를 감쌌고 위장을 채웠다. 그러고 나서 걸쭉하고 달달한 소스를 올린 붕장어 스시를 먹었을 때는 몸을 작은 의자에 기댈 수밖에 없었다. 전쟁에서 승리한 듯 기쁜 포만감이 들었다. 고등학교 시절 땀을 뻘뻘 흘리며 뛰어놀고 밥을 한껏 먹었을 때, 온몸에 핑핑 돌던 뻘건 피와 푸른 기운이 몸에 돌았다. 파랗게 머리를 밀어버린 요리사는 또 넉살 좋은 친구처럼, 툭툭 쥐어박고 놀려도 결국 같이 걷던 친구처럼 웃었다. 그 웃음이 물처럼 맑아 모두 함께 따라 웃었다.

정동현은 서울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대기업 유통 회사를 다니다가 훌쩍 영국의 요리학교 탕트 마리Tante Marie로 유학을 떠났다. 호주의 레스토랑에서 늦깎이 셰프로 요리 열정을 불사르며 일했다. 저서로는 <셰프의 빨간 노트>가 있으며, 지금은 신세계그룹 F&B팀에서 ‘먹고(Food) 마시는(Beverage)’ 일에 몰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