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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영희의 품 10년

2019년 1월 31일 — 0

품 서울은 품을 많이 들여 정성스레 한식을 만드는 곳이다. 이곳이 문을 연 지 10년이 지났다. 한식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이 10년을 맞은 건 충분히 기념할 만한 일이다. 노영희 셰프는 그래서 요리책을 냈다. 그 이름도 <품>이다.

노영희 셰프의 스튜디오에 들어서면 또망과 뽀리라는 두 마리의 반려견이 손님을 반긴다. 사진은 노영희와 또망의 모습.
노영희 셰프의 스튜디오에 들어서면 또망과 뽀리라는 두 마리의 반려견이 손님을 반긴다. 사진은 노영희와 또망의 모습.

품 서울이 품은 한식

품 서울이 지난 12월 25일 10주년을 맞았다. 품 서울이 처음 문을 열던 2008년은 한식이 세계화를 위한 발상의 전환을 강요받던 시기였다. 퓨전 요리 바람을 타고 퓨전 한식이 세계화를 이뤄줄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스테이크 비빔밥이나 두부 퐁뒤 같은, 지금 와서 생각하면 한식도, 이탤리언도, 프렌치도 아닌 국적 불명의 요리가 세계 시장은 물론 국내 대중의 입맛을 사로잡을 수 있다는 발상 자체에 무리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한식은 어떤 방식으로든 계기가 필요했다. 모던 한식이나 뉴 코리안 등 퓨전 요리와는 다른 새로운 접근법을 취한 한식 레스토랑도 이 시기에 처음 문을 열었다. 난제는 한식이 집에서 삼시 세끼 먹는 집밥이라는 데서 시작됐다. 가장 익숙한 음식과 식재료이기에 객관적인 평가가 힘들었다. 그래서 한식이 파인다이닝으로 들어오면 가치를 인정하지 않고 폄하하는 경향이 있었다. 이전까지 한식 레스토랑이란 백반집이나 일반 음식점 같은 식당과 사시사철 같은 요리를 내는 한정식집에 그쳤기 때문이다.

품 서울은 ‘코리안 퀴진 나우Korean Cuisine Now’라는 콘셉트로 출발했다. 시대에 맞게 변화하는 오늘날의 한식을 추구하는 것을 원동력으로 삼았다. 이를 위해 반가 음식을 코스화하고 좋은 우리 제철 식재료로 맛을 극대화해 미적인 감각이 돋보이는 플레이팅으로 선보이는 코리안 파인다이닝을 추구했다. 모두 품 서울의 셰프이자 대표인 노영희의 구상에서 시작됐다. 그녀는 반가 음식의 대가인 고 강인희 선생에게 한식을 사사했다. 이후 한국 사람이 한식을 제일 잘 알기 때문에 한국 밥상 문화의 형태를 새롭게 만들어보겠다는 생각을 가졌다. “20년 전 일본 어느 세미나에서 발표된 내용을 보면 음식에 대한 인식은 시각이 86%를 차지해요. 그 시각적인 부분을 충족시키려면 보기 좋게 만들어야 하고 또 그 음식에 어울리는 그릇을 써야 하죠.” 기존 한식처럼 음식을 한 접시에 푸짐하게 담아내면 좋은 비주얼을 표현하기 어렵다. 세련된 한식, 이를 위해서는 결국 먹는 형태에 변화가 있어야 했다. “1999년에 푸드 스타일링 스튜디오를 오픈하면서 제 음식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고 할 수 있는데 손님이 오면 코스를 정하고 1인상으로 차렸어요.” 그렇게 해야만 찬 음식은 차게 먹을 수 있고, 따뜻한 음식은 따뜻하게 먹을 수 있다. 또 여러 음식이 한 번에 나오면 입 안에서 음식이 한데 섞여 자신이 먹은 요리가 어떤 재료를 썼는지 그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없다. 요리와 재료 각각의 맛을 즐길 수 있는 방법이 1인분씩 따로 담고 시간을 두고 코스로 내는 방식이다. 미식을 즐기기 위한 기본적인 방법이고 지금은 대부분의 한식 다이닝 레스토랑이 이런 추세를 따라가지만 불과 10년 전만 하더라도 한식에서는 생소한 광경이었다. 이러면 장점이 또 하나 있다. 음식물 쓰레기가 적게 나온다는 점이다. “기존 한정식처럼 한 접시에 여러 음식을 담아내면 먹을 때 눈치도 봐야 하잖아요. 10만원짜리 밥을 먹으러 갔는데 제대로 먹지 못하고 버려지는 게 많으면 5만원어치도 못 먹고 돌아오는 셈이죠.” 그녀는 그게 상당히 불합리하다고 생각했다. 음식이 문화라고 이야기하지만 정작 만드는 사람도 소비하는 사람도 자각을 못했던 거다. 이런 식습관 형태는 고치기가 어렵다. 노영희는 한식을 전공하지 않았기 때문에 오히려 그런 고정관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경주 최가 댁의 내림 음식인 수란채를 간소화하여 만든 게살잣수란. 유자가 더해져 고소한 맛과 상큼한 향이 잘 어우러진다.
경주 최가 댁의 내림 음식인 수란채를 간소화하여 만든 게살잣수란. 유자가 더해져 고소한 맛과 상큼한 향이 잘 어우러진다.

우리 제철 식재료의 레시피

품은 당시부터 제철 우리 식재료를 고집하고 있다. 약식동원이 한식의 기본인 만큼 재료 본연의 맛을 최대한 해치지 않아야 하고, 제철의 좋은 식재료만큼 가장 맛있는 한식은 없기 때문이다. 품 서울이 지난 10년 동안 여러 노력을 했지만 손품을 많이 팔아야 하는 한식에 대한 세간의 인식은 여전히 부족한 편이다. “청담동의 유명한 고깃집은 식자재 가격이 오를수록 메뉴 가격도 올려서 등심 1인분이 6만8000원인데 손님들이 아무도 따지지 않고 잘 먹어요. 씁쓸하죠. 반면 저희는 3년 전보다 식재료 가격이 50% 정도 올랐는데도 사람들이 음식값에 민감해서 처음 가격 그대로 유지하고 있어요.” 바뀐 게 있다면 제일 저렴한 런치 코스가 하나 없어진 거다. 품 서울을 운영하는 일이 돈이 되는 일은 아닐 거라고 이미 생각을 한 터라 유지만 되면 계속 하겠다는 마음을 가졌던 그녀는 그렇게 초심을 잃지 않고 10년을 보냈다. 이 10년을 기념하고 축약한 것이 요리책 <품Poom>이다. 본래는 품 서울의 5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준비했다. 출판 비용이 마땅치 않아 차일피일 미루다 빛을 보는 데 5년이 더 걸렸다. “제가 2005년까지 초보자가 볼 수 있는 쉬운 요리책을 여러 권 냈어요. 책을 내고 나면 완성되지 않은 걸 품었다는 느낌이 들었고, 보람도 생기지 않아서 이후부터 더 이상 책은 출간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죠.” 그러다 품 서울이 5주년을 맞았을 때 마지막 책을 낸 지 이제 10년 정도가 됐으니까 다시 책을 내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때 이미 기획뿐만 아니라 촬영까지 다 진행했다. 자비 출판을 하고 싶었지만 비용 때문에 상황이 여의치 않았고 6주년이라고 내는 것도 마음에 걸려서 덮어뒀다. 그런데 슬슬 10주년이 다가오니까 마음이 조급해졌다. 그녀는 사정을 함영준 오뚜기 회장에게 풀어놨고 오뚜기재단이 출판을 지원해줘서 빛을 보게 됐다.

<품>은 계절별로 맛이 들고 철이 든 제철 재료를 선별하고 이를 바탕으로 요리 150여 가지를 골랐다. 계절별로 꾸린 요리 앞에는 계절과 식재료에 대한 설명도 덧붙였다. 이런 식이다. “봄은 낮은 곳에서부터 온다. 들에서 시작해 야산으로, 깊은 산으로 옮아간다. 그래서 가장 먼저 봄맛을 전하는 봄나물은 들에서 난 것이다. 늦겨울부터 맛이 든 시금치와 함께 가장 먼저 얼굴을 내미는 쑥을 비롯해 냉이, 달래 등 갖가지 봄나물 덕에 밥상에도 향긋하게 봄이 내려앉는다.” 여기에 봄나물과 새싹삼, 죽순, 꽃게에 대한 이야기를 짧지만 담백하게 풀어놓는다. 이는 단지 레시피만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좋은 것을 알아보는 안목과 함께 합리적인 요리법을 익히도록 돕기 위해서다. 이 레시피들 중에서 품 서울을 오랜 기간 지키고 있는 요리가 떡갈비다. 떡갈비는 10년이 된 품 서울의 시그너처다. 이처럼 <품>에 수록된 모든 요리가 품 서울에서 선보인 요리 중에서 추린 것들이다. 그녀에게 요리를 배우는 제자들에게도 동일한 레시피를 가르쳐왔는데 그 내용을 그대로 선보이는 까닭은 맛의 기본을 알아야 이를 토대로 자신의 취향에 맞게 변형이 가능해서다. 그녀는 레시피를 보고 만든 요리에 대한 생각이나 더하고 뺄 내용, 만든 후의 맛 등을 책에 꼭 메모하라고 조언했다. 그래야 자신의 취향이 짙어진다고. “지난 10년 동안 품 서울에서 사용한 레시피는 200~250가지 정도를 기본으로 계절에 맞게 돌렸을 거예요. 물론 제가 가지고 있는 레시피는 그보다 많죠. 하지만 어느 퀄리티 이상의 요리를 하려면 식재료에 한계가 있어요. 음식이 고급스러우려면 재료부터 고급이어야 하니까요.” 품 서울은 한식의 베이식한 맛을 기본으로 하기 때문에 메뉴의 무한 변신은 불가능하다. 그렇지만 다시 찾을 고객을 위해 매달 메뉴를 3~4개 정도 바꾼다. 떡갈비가 품 서울의 시그너처 메뉴지만 갈비찜은 가장 호응이 좋은 메뉴다. “저희 갈비찜이 특별히 맛이 있어요. 손님들이 갈비찜은 정말 하나도 안 남겨요. 그저께도 외국인 두 사람이 사무실로 들어가는 저를 붙들고 너무 맛있다고 칭찬을 하더라고요.” 책에 나온 사진과 품 서울의 실제 갈비찜은 차이가 있다. 커틀러리로 숟가락과 젓가락만 사용하기 때문에 품 서울의 갈비찜은 모양보다 뛰어난 맛과 먹기 편한 방식이 더 중요하다. 그래서 뼈에서 살을 바르고 기름까지 잘라내 한 입 크기로 썰어 담는다. 코스트가 높아서 더 많이 내놓고 싶지만 그럴 수 없다. “저는 재료에 있어서는 가격을 따지지 않아요. 장사가 부적합한 사람이죠. 식재료의 원가를 절감하면서 좋은 맛을 내는 건 불가능하거든요. 재료가 가지고 있는 맛에 사람이 조금 터치를 해서 좋은 맛이 나오는 거지 사람이 기교를 부려서 좋은 맛이 나지는 않아요.”

그런 결실은 <미쉐린 가이드 서울>에서도 이어졌다. 3년째 1스타를 획득한 것. 하지만 노영희는 <미쉐린 가이드 서울>의 시상식장에 나간 적이 한 번도 없다. 그랬더니 지난해 <미쉐린 가이드 서울> 측에서 왜 시상식장에 안 오냐고 메일이 왔다. 하지만 별도의 답장은 하지 않았다. 자신은 품 서울의 셰프지만 좀 다른 형태의 셰프고 별을 받을 수 있도록 실제로 운영한 건 품 서울의 스태프이기 때문이었다.

노영희는 품 서울을 시작했을 때처럼 기존 형태가 아닌 자신만의 철학과 스타일로 여러 시도를 했다. 비스트로 품이나 도시락집, 지금 운영 중인 그릇 가게가 그렇다. 앞으로 꿈꾸는 건 찻집과 요리학교다. 한식을 바탕으로 한 후식을 그에 맞는 그릇에 담아내는 형태의 찻집이다. 요리학교는 음식을 좀 더 제대로 배울 수 있는 기반을 가진 형태다. 좋은 식재료를 실제로 만지고 이해하며 요리에 대한 기반을 튼튼하게 다질 수 있는 학교다. 노영희가 마지막 말을 덧붙였다. “제가 말한 건 꼭 지키는 사람이라 앞으로 10년은 그 두 가지에 매진하려고요.”

품 서울의 테이블 장식을 손수 챙기는 노영희 셰프. 한 달에 한두 번씩 직접 스타일을 정해서 꾸민다.
품 서울의 테이블 장식을 손수 챙기는 노영희 셰프. 한 달에 한두 번씩 직접 스타일을 정해서 꾸민다.
남산 소월길에 자리 잡아 해방촌과 강남을 내려다보며 식사를 즐길 수 있다.
남산 소월길에 자리 잡아 해방촌과 강남을 내려다보며 식사를 즐길 수 있다.

edit 안상호(프리랜서) — photograph 양성모, 최준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