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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과 인문학 @정소영

2019년 2월 7일 — 0

인간은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해 문화를 만들고 음식도 그 일부다. 삶에 대한 의미가 적극적이고 심오하게 투영된 문화로서의 음식은 인문학의 중심이다.

text 정소영

바다표범과 펭귄은 1910년 남극 탐험에 나선 영국 탐험대의 주요 먹을거리였다. 현지에서 조달할 수 있는 열량과 단백질의 최선의 공급원이었을 것이다. 탐험대를 이끌었던 로버트 팰컨 스콧의 일기를 보면 바다표범의 간은 거의 매일 저녁 식사 메뉴였다. 튀김을 비롯하여 수프, 카레, 스테이크, 파이 등 다양한 방법으로 요리해 먹어서 전혀 질리지 않았고 식사 시간이면 요리에 대한 감탄과 탄성이 터져나왔다고 적혀 있다. 새로운 요리법 개발에 대한 열의도 대단해서 한 번은 바다표범의 간을 펭귄의 지방을 정제하여 만든 기름에 튀겼는데 펭귄 특유의 역한 냄새 때문에 대부분의 대원들은 도저히 먹을 수가 없어서 코코아와 비스킷으로 저녁을 때웠다고 한다. 수개월 동안 혹독한 추위와 싸우며 탐사 작업을 하는 대원들에게 식사는 생존의 조건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실한 저녁 식사에 대해 불평한 사람은 없었고 요리의 실패는 유쾌한 이야깃 거리였던 듯하다. 남극 탐험이라는 극한의 상황 속에서도 그들은 음식에서 생존 수단 이상의 의미를 찾았던 것이다. 먹어야 산다는 생각보다 어떻게 먹을 것인가에 대한 창의적 고민에 몰두함으로써 생존의 위협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한 것이 아닐까? (1912년 1월 남극점에 도달한 후 돌아오는 길에 스콧과 4명의 대원은 조난을 당하고 결국 식량 부족과 동상으로 목숨을 잃었다.)

문화인류학자 어니스트 베커에 따르면 그렇다. 그는 저서 <죽음의 부정>에서 죽음에 대한 공포와 그것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것이 대부분의 인간 활동의 핵심적인 동기라고 설명한다. 언젠가는 죽을 운명일 뿐만 아니라 죽음을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이유로 또 예기치 않은 순간에 맞아야 한다는 사실은 공포스럽다. 우연히 발에 밟혀 죽은 이름 모를 벌레와 같은 운명이라는 것을 매 순간 자각한다면 누가 아침에 눈을 뜨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하루를 계획할 의욕이 생기겠는가? 베커는 인간이 죽음의 공포를 이겨내고자 문화를 만든다고 설명한다. 뜻을 같이하는 집단을 만들고 제의, 예술 작품, 저술, 건축물 등을 통해 삶에 의미를 부여하고 또 그것들을 통해 삶이 영원히 지속되리라는 희망을 갖는다. 문화는 인간이 만든 의미와 상징 시스템으로 그곳에서는 죽음도 삶의 끝이 아닌 통과의례가 된다. 죽음의 공포에 대응하는 가장 강력한 문화 장치는 종교다. 그리고 종교의 중심에는 음식이 있다. 먹는 행위는 우리의 삶이 죽음과 맞닿아 있다는 것을 가장 적나라하게 일깨워주는 행위다. 식물이든 동물이든 생명 있는 모든 개체는 생명 있는 다른 개체를 섭취함으로써 생명을 유지한다. 음식은 죽음 또는 죽임의 결과물이고 인간도 자연의 먹이사슬의 한 부분임을 부정할 수 없다. 이렇듯 죽음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음식은 다양한 종교에서 특정한 신념과 가치 실천의 상징으로-빵과 포도주든, 특정한 방식으로 도축한 고기든, 또는 금기시하는 음식이든-변환된다. 이는 인간의 삶이 생존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는 확신을 준다.

종교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수많은 의례와 의식을 통해 음식에 끊임없이 상징성을 부여한다. 설이면 떡국을 먹고 돌잔치에 가면 어김없이 팥으로 만든 떡이 나온다. 시험을 앞두고 미역국을 먹을 대범함을 가진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반복되는 의식을 통해 음식의 상징적 의미의 겹은 점점 두터워지고 또 상징성은 종종 그것의 사회적·역사적 기원을 넘어 강력한 전파력을 가진다. 밸런타인데이의 초콜릿, 크리스마스 즈음에 우리나라 마트에도 등장하는 칠면조와 빵집에서 앞다투어 내놓는 슈톨렌을 생각해보라. 우리는 또 일상에서 음식에 끊임없이 ‘끼니’가 아닌 다른 의미를 부여한다. 축하, 위로, 사랑, 추억, 그리움, 국가 정체성, 사회 계층의 정체성 등. 그리고 음식을 먹는 다양한 도구와, 예절, 무엇을 먹고 먹지 말아야 할지에 대한 수많은 규범은 또 어떤가. 음식은 가장 사적인 일상의 영역에까지 정교하게 엮여 있는 상징 체계다. 상징으로 겹겹이 쌓여 음식은 생존의 수단이 아닌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매개가 된다. ‘인간은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 이외엔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역설한 실존주의 철학자 사르트르에게도 물론 모든 음식은 상징이었다. 그는 식재료가 인간 스스로 고안해낸 기술과 문화의 산물로서의 의미를 갖게 되었을 때 음식으로 받아들였다. 그래서 과일을 있는 그대로 먹는 것을 거부하고 제빵사의 손을 거쳐 과일 타르트 등으로 재탄생한 것만 먹었다. 죽음의 숙명을 인간의 조건으로 인정하지 않았던 그였으니 당연히 죽은 동물을 떠올리는 고기를 먹지 않았지만 소시지 같은 음식은 좋아했다. 피가 모두 제거되고 사람이 고안한 특정한 방식을 거쳐 살과 피와 지방과 내장이 기다란 창자 안에 한데 담기고 양쪽이 끈으로 묶인 소시지는 그에게 죽은 동물과는 다른 것, 인간의 창조물을 의미했던 것이다. 인간의 삶에 대한 의미와 가치가 이렇게 절실하게, 또 적극적이고 심오하게 투영된 음식은 문화이고, 그래서 당연히 인문학의 중심이다.

정소영은 영문학, 미디어, 문화연구, 사회학을 전공한 문화사회학자이다. 런던대학교에서 (인)문학의 위기 담론에 대한 사회학적 분석으로 박사 학위를 받고, 런던대, 서강대 등에서 강의했다. 저서로 소설 속에 등장하는 다양한 음식과 맛을 통해 등장인물의 성격과 함께 당대의 사회·문화적 상황 등을 현재 사회적 이슈와 맞대어 풀어내는 <맛, 그 지적 유혹>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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