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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의 초콜릿 @정재훈

2019년 2월 11일 — 0

초콜릿에는 진정 쾌락을 일으키는 성분과 마약 같은 중독성이 있는 것일까? 우리가 사랑해 마지않는 초콜릿에 얽힌 진실과 사연.

text 정재훈 — edit 장은지 — photograph 최준호

포만감 가득한 저녁 식사를 마친 뒤에 호텔 방으로 돌아왔는데, 베개 위에 놓여 있는 조그만 초콜릿의 유혹을 거부할 수가 없다. 우리는 왜 초콜릿을 사랑하는가? 초콜릿 속 마약과 같다는 각성 성분이 제일 먼저 생각난다. 하지만 머릿속에 먼저 떠오른다고 답은 아니다. 실험해봐야 알 수 있다. 다행히 25년 전에 그런 실험이 있었다.

음식 심리학 연구로 유명한 펜실베이니아 대학의 폴 로진 교수는 초콜릿에 대한 우리의 욕구가 초콜릿 속 화학 물질 때문인가 아니면 감각적 경험 때문인가에 대해 실제로 알아보는 연구 결과를 1994년 <생리학과 행동> 학술지에 발표했다. 만약 초콜릿 속 화학 물질이 내는 약리학적 효과가 욕구의 원천이라면 코코아 가루를 캡슐에 넣어 삼키게 해도 비슷한 효과를 낼 것이고, 입 속에서 살며시 녹아내리는 초콜릿의 특별한 녹는점 때문이라면 화이트 초콜릿으로도 우리를 만족시킬 수 있을 것이다. 엄밀히 말해 화이트 초콜릿은 초콜릿이 아니다. 코코아 고형물이 전혀 들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카카오 버터에 설탕과 유지방, 향료를 넣어 만든 화이트 초콜릿은 달콤한 맛과 사람의 체온 부근에서 부드럽게 녹는 물성 면에서만 초콜릿을 닮았다. (실험에서는 밀크 초콜릿, 화이트 초콜릿, 코코아 가루를 넣은 캡슐, 화이트 초콜릿+코코아 가루 캡슐, 가짜 알약, 그냥 물만 마시는 여섯 가지 경우를 비교했다.)

실험 결과는 초콜릿의 마력이 그 물성에 있음을 보여줬다. 초콜릿 욕구를 강하게 느낄 때 실험 참가자를 가장 만족시킨 것은 물론 초콜릿이었지만, 화이트 초콜릿을 먹어도 초콜릿의 69%에 달하는 효과가 나타났다. 하지만 코코아 가루 캡슐에는 가짜 알약 이상의 효과가 없었다. 화이트 초콜릿과 코코아 가루 캡슐을 함께 먹은 경우에도 효과는 화이트 초콜릿만 먹었을 때와 비슷한 수준이었다. 코코아 가루 캡슐에 초콜릿과 동일한 양의 약리 활성 물질이 들어 있었음에도 초콜릿을 먹을 때만큼 온전히 만족하지는 못한 것이다. 음식에 관한 한, 상식은 진리가 아니다. 초콜릿 속 성분의 효과는 크지 않으며 만족감의 대부분은 물성에서 온다. 베개 위에 놓인 초콜릿을 보고 생겨난 욕구는 아름다운 갈색의 초콜릿을 눈으로 보고 입에 넣고 녹이며 다양한 화학 물질이 복합적으로 만들어내는 향기와 맛과 조직감을 혀와 코와 피부로 직접 체험하고 나서야 비로소 채워진다. 동일한 성분의 알약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초콜릿이 인체에 미치는 효과

하지만 의문이 생긴다. 초콜릿에 정신을 자극하는 화학 물질이 들어 있는 건 사실 아닌가? 역사를 뒤돌아봐도 그렇다. 아무 효과가 없는데 남미의 마야, 잉카, 아즈텍 문명에서 오래전부터 카카오 열매로 만든 걸쭉한 쓴맛 음료를 즐겨 마셨을 가능성은 낮다. 초콜릿에 처음부터 호의적이지만은 않았던 유럽에서 결국 초콜릿을 받아들인 것만 봐도 그렇다. 16세기만 해도 이탈리아 밀라노의 역사가 지롤라모 벤초니가 자신의 책 <신세계의 역사>에서 “인간의 음료라기보다는 돼지의 음료”라며 초콜릿을 혹평한 기록이 나온다. 비슷한 시기 가톨릭교회에서는 초콜릿을 사순절 기간에 먹어도 되는 것으로 허용했는데, 초콜릿의 맛이 워낙 고약하여 그걸 먹는다고 사순절에 신자들이 마땅히 수행해야 할 희생을 위반하는 게 아니라는 게 이유 중 하나였다. 이렇게 맛없는 음료가 엄청난 성공을 거뒀다면 뭔가 효과가 있긴 할 거라는 짐작이 가능하다.

성공의 비결 중 하나는 틀림없이 초콜릿이 고칼로리의 영양식이라는 사실에 있었을 거다. 카카오 열매를 발효한 다음 건조와 로스팅 과정을 거쳐 갈아 만든 액체에는 코코아 버터가 55%, 당분이 17%, 단백질이 10% 들어 있다. 액체에 무엇을 더하든 기본적으로 영양이 풍부한 음식이 된다. 이에 더해, 초콜릿 속의 각성 물질 카페인과 테오브로민의 효과도 빼놓을 수 없다. 테오브로민은 카페인보다 열 배 정도 많이 들어 있지만 카페인에 비해 각성 효과가 낮은 편이다. 다크 초콜릿 50g에 든 카페인 양이 20~30mg 정도로 커피 한 잔의 ⅓ 정도에 해당한다. 커피에 비해 적은 양이지만 집중력을 높이고 기분을 향상시키기에 충분하다. 맛볼수록 초콜릿이 더 좋아지는 이유다.

이쯤에서 마리화나 성분인 카나비노이드가 초콜릿에도 들어 있다는 사실을 이야기해보자. 그뿐 아니다. 초콜릿에는 뇌에서 암페타민과 비슷한 작용을 하는 페닐에틸아민이라는 각성 물질도 들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물질이 들어 있다는 사실만으로 초콜릿에 마약과 같은 효과가 있다고 믿는 과학자는 거의 없다. 그 양이 너무 적기 때문이다. 초콜릿 1kg에 든 페닐에틸아민의 양이 3mg에도 못 미칠 정도이다. 게다가 소시지와 김치에도 같은 성분이 들어 있다. 초콜릿 속 페닐에틸아민 때문에 기분이 좋아지는 효과를 볼 수 있다면 갓김치를 먹고서도 기분이 좋아져야 한다는 말이다. 마약 같은 물질이 들어 있다고 해서 그 음식이 마약은 아니다. 함량이 마약만큼 들어 있어야 마약이다.

초콜릿에 들어 있는 각성 물질 가운데 효과를 나타낼 정도로 들어 있는 것은 카페인과 테오브로민 둘뿐이다. 코코아 가루를 캡슐에 넣어 주었을 때와 그 속에 든 것과 동일한 양의 카페인과 테오브로민을 캡슐로 주었을 때를 비교한 실험에서, 두 경우 모두 기분에 미치는 효과에는 차이가 없었다. 코코아 가루 속에 카페인과 테오브로민 이상의 숨은 효과를 내는 각성 물질은 없다는 걸 보여주는 결과다. 초콜릿이 강력한 최음제라는 믿음도 오래되었지만 과학적 근거는 희박하다. 아즈텍의 황제 몬테수마가 최음 효과를 노리고 하루에 50잔씩 초콜릿을 마셨다는 기록이 사실이라면 그는 성적 흥분보다 카페인 과잉으로 인한 불안과 불면증에 시달렸을 가능성이 더 높다.

항산화 물질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초콜릿에는 폴리페놀과 같은 항산화 물질이 풍부하다. 코코아 가루에는 8%에 이를 정도이다. 초콜릿 폴리페놀은 체내 염증을 줄이고 혈압을 감소시키는 데 도움이 되는 성분이다. 파나마의 섬에서 고립된 생활을 하며 전통적으로 하루 다섯 컵이나 되는 코코아를 마시는 쿠나 인디언이 소금을 많이 먹으면서도 고혈압이 드물다는 것은 종종 거론되는 사례다. 도시로 이주하여 식생활을 바꾸면 쿠나 인디언에게도 고혈압이 증가한다. 초콜릿을 많이 먹는 사람이 심장병이나 뇌졸중 발생 위험이 낮다거나 노인이 되었을 때 인지 기능 저하가 느리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대부분 인과 관계를 알 수 없는 관찰 연구라는 한계가 있고, 얼마만큼을 먹어야 기대한 만큼의 효과를 얻을 수 있는지도 아직 분명치 않긴 하지만 매일 초콜릿 한두 조각을 먹어서 해가 될 일이 거의 없다는 것만큼은 확실하다.

양면성에 숨은 초콜릿의 매력

초콜릿에 관한 한 섭취량 조절이 전혀 안 된다는 사람도 있다. 일단 먹기 시작하면 멈출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앞서 살펴본 것처럼 초콜릿에 기분에 영향을 주는 화학 물질이 들어 있긴 해도 약물 중독을 일으키기에는 너무 적은 양이다. 심리학자들에 의하면 초콜릿 중독은 일종의 사회심리적 현상이다. 고지방 고칼로리 음식이므로 체중 조절을 위해 섭취를 제한해야 한다는 생각과 초콜릿의 감각적 쾌락을 양껏 즐기고 싶은 욕구 사이에서 벌어지는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중독을 내세우게 된다는 게 심리학자들의 설명이다. 음식 자체의 중독성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먹은 걸로 여기면 마음이 조금 더 편해질지도 모르겠다.

생각해보면, 먹으며 갈등하는 사람만큼이나 초콜릿 자체도 모순이 가득한 음식이다. 잘 만든 초콜릿은 손에서는 딱 부러지지만 입에서는 부드럽게 녹는다. 지방 함량을 생각하면 금방이라도 몸에 열이 날 듯한 음식이지만, 막상 초콜릿을 입에 넣으면 지방 결정이 녹으면서 입 안의 열을 흡수하여 시원한 느낌을 준다. 레드 와인 속 타닌이 스테이크 지방의 느끼함을 씻어내듯 초콜릿 속 지방과 타닌은 서로를 보완하며 균형을 맞춘다. 그래서일까.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 한 조각을 입에 넣을 때마다 인생의 모순과 갈등이 녹아내리는 듯한 기분에 행복해진다.

정재훈은 서울대학교 약학대학을 졸업한 후 캐나다 토론토에서 다년간 약사로 일했다. 음식만큼이나 사람들과 요리와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걸 좋아한다. 잡지, TV, 라디오 등 여러 매체를 통해 음식과 약에 대한 과학적 정보를 전하고 있으며, 저서로는 <정재훈의 식탐>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