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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숙의 한식공간

2019년 1월 9일 — 0

한식의 대모, 셰프들의 스승이라 불리는 조희숙 셰프. 그녀가 구축한 독자적인 한식 세계는 자기 자신에게 던졌던 끊임없는 질문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경험의 축적

조희숙 셰프의 첫 직업은 전남 지역 중학교 가정 선생님이었다. 부임한 지 채 2년이 되지 않았던 1983년 겨울, 서울 한 호텔의 한식당 책임자로 일하는 친한 선배의 권유 아닌 부탁으로 서울의 한 호텔 주방에 첫발을 들였다. 방학 동안만 잠깐 일을 도와줄 생각이었는데 거절을 못하는 성격 때문에 결국 눌러앉게 됐다. 그 당시만 해도 조리를 정식으로 배우는 학교나 학과가 존재하지 않았어서 가정과에서 실습을 했던 것이 전부였다. 호텔 주방은 번지르르한 겉과는 달리 속은 썩을 대로 썩어 있었다. 열악한 시설과 고된 일들로 힘들다는 한마디에 다 담을 수 없는 고충의 시간이 이어졌다. 그 당시 요리사라는 직업은 남에게 말하기 차마 부끄러운 것이었다. 초졸, 중졸이 대부분이었고 호텔에서 함께 일했던 아저씨뻘 요리사들은 직업을 숨긴 채 결혼을 하기도 했다. 남자가 앞치마를 두르고 주방에서 요리를 하는 것은 참 수치스러운 일이었다. 선생님을 그만둔 것을 후회하지 않기 위해 하루하루를 열심히 견뎠다. 어느새 10년이라는 시간이 흘러 있었다. 1993년, 노보텔 앰배서더 강남에서 한식과장으로 1995년 말까지 일을 했고 1996년부터는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호텔에 있었다. 그녀는 전쟁터와 다름없는 주방에서 유일한 여성 과장이었다. 남성들이 장악해 있던 호텔의 주방은 언제나 참으로 거칠고, 험하며, 드셌다. 물리적인 힘뿐 아니라 조직을 장악하는 카리스마도 반드시 필요했다. ‘여자라서’라는 소리가 듣기 싫어 남녀 일 가리지 않고 뚝심으로 버텼다. 시간이 흘러 한식의 씁쓸한 현주소를 자각했다. “손님들이 회 한 접시에는 20만원이라는 가격을 아낌없이 지불해요. 그런데 한식에서 20만원을 받으려면 그 당시 주방이 한번 뒤집어져야 했어요. 수많은 그릇과 수많은 요리가 손님 앞에 차려져야 합당한 가격이라 생각했으니까요.” 그 가격에는 셰프의 정성과 쾌적한 시설, 격조 있는 서비스에 대한 무형의 가치가 담겨 있는데, 대체 왜 사람들은 집에서 엄마가 끓인 된장찌개와 비교를 할까. 한식은 양식, 일식, 중식에 비해 손이 더 많이 가는데도 왜 그 노력의 대가와 값어치를 인정받지 못할까. 단지 너무 익숙하다는 이유에서? 한식은 왜 항상 값싸고 푸짐한 음식이어야 할까. 호텔의 한식은 무언가 다르고 차별화된 상품이어야 한다는 생각에 빠졌다. 단지 좋은 장소와 서비스 때문에 비싼 돈을 내야 하는 것이 아닌, 음식 자체로서 충분한 지불 가치를 느낄 수 있는 한식. 그녀는 한식의 미래와 변화의 필요성에 대해 매일 설파를 했다. 하지만 듣는 이가 없었다. 굳이 왜 그렇게까지 하냐는 눈총만 받았다. 지금의 요리사야 오너셰프라는 개념하에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하는 전문직에 가깝지만 그 당시 함께 일하던 호텔 요리사들은 좋은 기술로 음식을 만드는 월급쟁이에 불과했다. 호텔에서 한식당은 언제나 적자를 면치 못하는 구색 맞추기용 파트였고 같은 조직 내에서도 한식을 하면 ‘한식 하는 것들’로 취급받았다. 2003년, 그녀가 마지막으로 몸담고 있던 신라호텔의 한식당이 끝내 접히고 말았다.

한식공간의 창 너머로는 창덕궁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한식공간의 창 너머로는 창덕궁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저녁 상차림 메뉴 중 하나인 한우양념구이.
저녁 상차림 메뉴 중 하나인 한우양념구이.
제철 채소와 소고기를 꼬치에 정성스럽게 꽂아 만든 산적꼬치.
제철 채소와 소고기를 꼬치에 정성스럽게 꽂아 만든 산적꼬치.
가장 맛있는 제철 재료들로 전을 부친 뒤 육수를 부어 끓이는 전유화 전골은 신선로에서 착안해 만든 메뉴다.
가장 맛있는 제철 재료들로 전을 부친 뒤 육수를 부어 끓이는 전유화 전골은 신선로에서 착안해 만든 메뉴다.

고립무원의 시간

호텔 생활에 작별을 고하고 2005년 주미 한국 대사관저 총주방장으로 임명됐다가 1년 뒤 다시 강단에서 3년간 학생들을 가르쳤다. 2007년부터는 아름지기 식문화 연구 전문위원으로 있으며 온지음의 주방 기틀을 다지고, 자문 활동과 연구에 주력했다. 그녀는 어느 곳에서도 보지 못한, 그 누구도 생각해내지 못한 한식을 세상에 내놓고 싶었다. 전공이 한식이었기에 기본적인 맛과 양념, 재료를 바꿀 엄두는 나지 않았다. 하지만 너무 당연해서 익숙한 것들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하고 타파하려는 시도를 했다. 주위 모든 것을 주의 깊게 관찰하고 끊임없이 생각하는 것은 그녀의 오랜 습관이었다. 새로운 한식의 모습을 구상하다보니 무의식에 축적되어 있던 경험이 영감처럼 터져나왔다. 한식 본연의 맛은 유지하되 형태에 변화를 주었고 식기 사용과 담음새에 다양한 시도를 했으며 재료와 조리법의 조합도 다각적으로 모색했다. 밥과 반찬으로 구성된 반상 차림의 한식을 코스로 풀어내는 것 또한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동안의 한식과는 다른 모양새를 한 그녀의 한식을 처음 마주한 사람들마다 이게 무슨 한식이냐는 소리를 냈다. 하지만 막상 음식을 맛보고 나선 늘상 먹던 익숙한 맛에 이내 조용해졌다. 조희숙만의 독자적인 한식 세계가
점점 구축되어갔다.

한식공간의 홀에서 바라본 주방의 전경. 나무 프레임 때문에 마치 하나의 무대 같은 느낌을 자아낸다.
한식공간의 홀에서 바라본 주방의 전경. 나무 프레임 때문에 마치 하나의 무대 같은 느낌을 자아낸다.
디너에 서비스될 전유화 전골을 담고 있는 조희숙 셰프의 모습.
디너에 서비스될 전유화 전골을 담고 있는 조희숙 셰프의 모습.
점심이 끝나고 저녁 서비스 전 주방의 전경, 저녁 시간을 위한 준비가 한창이다.
점심이 끝나고 저녁 서비스 전 주방의 전경, 저녁 시간을 위한 준비가 한창이다.
2017년 가을에 첫 오픈한 한식공간은 2019 <미쉐린 가이드 서울>에서 별 1개를 획득했다.
2017년 가을에 첫 오픈한 한식공간은 2019 <미쉐린 가이드 서울>에서 별 1개를 획득했다.

온고지신의 미래

조희숙 셰프는 현장에서 35년간 몸담으며 얻은 경험을 제자들과 공유하고, 더 나은 방법을 모색해나가기 위해 2017년 삼성동에 한식공방을 열었다. 평소에는 한식을 연구하기도 하고 클래스를 열어 그녀의 노하우를 후배들에게 아낌없이 풀어낸다. 강민구, 유현수, 최현석 등 쟁쟁한 셰프들의 스승이라는 호칭을 얻은 것도 이 때문이다. 비슷한 시기 그녀는 좀 더 많은 사람들과 음식을 나누기 위해 창덕궁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구 공간사옥 4층에 자리한 한식 파인다이닝 레스토랑 한식공간의 주방도 맡았다. 어느샌가 그녀는 모던 한식을 하는 셰프로 불리고 있었다. 통상적으로 사람들은 양식 베이스에 한식적인 요소를 가미한 음식을 모던 한식이라 부르지 않았던가. “처음에는 잘 이해가 가지 않았어요. 양식이나 일식을 모르기 때문에 어떤 요소를 어설프게 넣을 수도 없었고 양념이나 재료도 전통 한식 범위에서만 쓰는데 ‘왜 내 음식이 모던 한식일까?’ 어느 날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우리가 옛날에는 짚신을 신고 한복을 입고 살았지만 시대가 바뀌면서 요즘 사람들의 생활에 맞게 현대화되고 감각에 맞게 변화했단 말이에요. 아, 나는 그런 모던 한식을 하는 사람이구나. 그 모던과 이 모던은 다른 분야구나 했죠.” 올해 한식공간은 <미쉐린 가이드 서울>의 별을 받았다. 오랜 시간 동안 고민하며 걸어온 길을 인정받은 기분이었다. 그녀가 그토록 바랐던, 사람들이 아낌없이 돈을 지불할 만한 가치가 있는 한식의 모습으로. 요즘 그녀는 한식공방과 한식공간을 오가며 계절이 바뀔 때마다 메뉴의 기틀을 짜고 제자들과 함께 다듬어나간다. 조금은 편해도 될 60이라는 나이에 현직에 머무는 이유를 조심스레 물었다. “어디에 있을 때 나의 존재 가치가 가장 효율적인가를 생각했어요. 학교에도 있어봤지만 논문보다는 손님이 좋아하는 메뉴를 개발하는 일이 더 즐겁더라고요.” 조희숙 셰프는 전에 비해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 세계 속 한식의 위상과 대중들의 관심, 젊은 셰프들의 열정을 보며 안도한다. 특히 먹거리에 대한 문화적 소양이나 인문과학적인 관점이 일찍이 발달해 있던 해외에서 한식을 알아보기 시작했다는 사실이 반갑기만 하다. 해외에 한식이라는 존재를 알리는 데 급급해 맛과 모양을 무리하게 재단했다면 이제는 그 축을 옮겨와 우리의 색깔을 보여줄 때가 되었다. 그녀는 우리가 먹어왔던 그대로를 소개하되 함께 공감할 수 있는 음식으로서 한식을 다듬어나가는 과제가 남아 있다고 말한다. 그 과제는 한식 코스 전개에 대한 사회적 합의일 수도, 대중들이 한식을 바라보는 문화적 소견일 수도 있다. 한식에 대한 이런저런 논란은 어느 시대나 있어왔고, 이는 바른 쪽으로 나아가기 위한 하나의 과정일 뿐이다. 조희숙 셰프는 틈틈이 책을 집필 중이다. 제자들이 현장에서 언제든 꺼내 보며 참고할 수 있도록 한식의 기본을 총망라해놓은 사전 같은 책을 쓰려한다. 책의 페이지는 35년의 세월을 견뎌내며 자연스레 생긴 두 손의 굳은살처럼 단단한 경험들로 가득 채워질 것이다.

(위에서부터 시계 방향으로) 반상 차림을 코스화하기 위해 밥과 반찬을 한 디시에 담아낸 젓갈 올린 보리밥전, 제철 재료로 부친 전을 신선로가 아닌 뚝배기에 담아 끓인 뚝배기 신선로, 채소와 전복에 전분을 묻혀 데친 뒤 사과즙고추장 소스를 뿌린 전복어채, 된장찌개에 쌀을 갈아 넣어 소스처럼 만든 뒤 두부 위에 올린 된장소스 두부구이, 최소한의 쌀가루에 제철 채소와 콩류, 소고기를 한데 넣어 떡을 식사 대용으로 할 수 있도록 만든 영양버무리.
(위에서부터 시계 방향으로) 반상 차림을 코스화하기 위해 밥과 반찬을 한 디시에 담아낸 젓갈 올린 보리밥전, 제철 재료로 부친 전을 신선로가 아닌 뚝배기에 담아 끓인 뚝배기 신선로, 채소와 전복에 전분을 묻혀 데친 뒤 사과즙고추장 소스를 뿌린 전복어채, 된장찌개에 쌀을 갈아 넣어 소스처럼 만든 뒤 두부 위에 올린 된장소스 두부구이, 최소한의 쌀가루에 제철 채소와 콩류, 소고기를 한데 넣어 떡을 식사 대용으로 할 수 있도록 만든 영양버무리.

한식공간
조희숙 셰프와 제자 정경일 셰프의 정통 한식 파인다이닝을 경험할 수 있는 곳.
· 점심(7코스) 6만원, 저녁(10코스) 12만원
· 서울시 종로구 율곡로 83
· 정오~오후 3시, 오후 6~10시, 일요일 휴무
· 02-747-8104

edit 김민지 — photograph 박재현, 박인호, 강태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