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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과 인문학 @장준우

2019년 1월 23일 — 0

지금 우리가 먹는 음식에 대해 진지한 질문을 던지고 생각하는 행위는 곧 인문학이다. 그리고 이러한 성찰은 더 나은 미식의 세계를 만들어낼 것이다.

text 장준우

작년 초 일반인을 대상으로 음식 인문학과 쿠킹 클래스를 합친 일종의 미식 모임을 기획해 진행한 적이 있다. 취지는 이랬다. 단지 맛집 정보나 원초적 본능을 자극하는 텔레비전 먹방으로만 음식을 소비하지 말고, 어떻게 음식을 소비하는 것이 나와 주변, 그리고 세상에 의미가 있는 일이 될까를 함께 고민해보자는 나름 거창한 목적을 갖고 시작한 일이었다. 평소 밥 먹듯 고민하고 있는 주제지만 음식과 관련된 업을 하지 않는 일반 사람들은 어떻게 받아들이고 느낄지 사실 좀 염려됐다.

막상 모임을 진행해보니 걱정은 기우였다. 음식과 식재료, 요리법이 역사문화적 요소의 맥락을 품고 있다는 설명을 들은 참가자들은 흥미롭고 재미있다는 반응을 보였다. 직접 요리를 만들어보고 맛까지 보며 각자의 생각을 나누다 보니 매번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진행됐다. 이윽고 한 시즌이 끝나고 마지막으로 모인 뒤풀이 자리. 그간의 모임을 통해 음식에 대한 심도 있는 대화가 이뤄지기를 기대했건만 웬걸, 대화의 주제는 어느새 각자가 새로 발견한 맛집 이야기로 수렴되는 것이 아닌가. 기운이 빠지긴 했지만 일련의 과정을 통해 음식 인문학이 실제 우리 삶 속에서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란 고민과 성찰을 할 수 있었다.

음식은 인문학의 대상이 될 수 있을까. 물론이다. 인문학은 인간에 대한 학문이다. 여기에는 인간이 하는 행위도 포함된다. 요리는 인간만이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보면 음식도 인문학적 고찰이 가능한 대상이다. 어떤 문화권에서 특정한 요리법이나 식재료를 사용하게 된 이유, 똑같은 재료이지만 지역에 따라 선호 식품이기도 혐오 식품이기도 한 이유 등을 살피기 위해선 인문학이라는 도구를 사용할 수밖에 없다. 음식에 담긴 맥락과 현상을 파헤치고 이해하는 일은 결국 인간을 이해하는 길이기도 하다. 이미 십수 년 전부터 불고 있는 인문학 열풍에 이젠 음식도 가세했다. 철학, 사회학, 언어학, 역사학 등에 비해 친숙해 음식은 매력적인 콘텐츠로 소비된다. 다른 인문학 분야와는 달리 음식에 관해서는 누구나 하루 종일 이야기할 수 있다. 꽤 오랫동안 이런 음식 담론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한 것은 ‘맛집’에 관한 이야기였다. 맛집 담론은 새로운 음식을 접하는 거의 유일한 창구가 식당뿐이기에 생겨난 현상이다. 특정 정보를 독점하는 것이 아니라 공유하려 한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이지만, 미각적 쾌감과 소비에만 집중된 맛집 위주의 담론은 자칫 음식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인문학적 성찰의 기회를 앗아갈 수 있다. 맛있는 음식을 먹으려는 인간의 욕구는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주관적인 ‘맛있음’에만 관심이 모이고 어떤 리스트에 권위를 부여하게 되면 인문학적 성찰이 끼어들 틈이 없어진다. 음식이 인문학의 대상이라면, 세상 모든 식당이 너도나도 맛집이라 외치는 상황에서 도대체 누가 정한 목록인지, 누구의 입맛을 기준으로 만든 리스트인지 한 번쯤 합리적인 비판을 해볼 필요가 있다. 음식의 인문학적 담론 그 대척점에는 맛집 담론이 자리 잡고 있는 셈이다. 왜 음식에 인문학의 시선이 필요할까. 그에 대한 답은 인문학의 본질에서 찾을 수 있다. 인문학은 단순히 인간을 탐구하는 데에만 그치지 않는다. 인간은 인문학적 성찰을 통해 지금의 삶을 보다 나은 방향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을 얻는다. 종교에 질식되던 유럽에서 르네상스가 꽃피고, 결코 무너지지 않을 것 같던 절대 권력에 대항한 시민혁명을 이끌어낸 것은 바로 인문 정신이다. 음식을 인문학의 시선으로 살핀다는 건 단지 음식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지식을 줄줄이 꿰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일방향적인 음식 지식을 습득하는 건 단순한 지적 유희일 뿐이다.

인문학에서 지식은 도구다. 중요한 건 기존의 질서에 의문을 품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낼 수 있는 인문 정신이다. 지금 먹고 있는 음식이 우리와 환경에게 있어 최선인지, 더 나은 먹거리를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지, 무엇을 바꿀 수 있는지 고민하는 것이 바로 음식 인문학의 출발점이다. 인문학은 딴 세상 이야기가 아니다. 요리사가 인문학적인 소양을 갖추면 음식과 요리법에 대한 이해를 한층 더 높이고 보다 창의적인, 더 나은 음식을 만들 수 있다. 본인이 만드는 요리가 어떤 맥락 속에 있고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 설명할 수 있는 철학을 품을 수 있게 만든다. 더 나아가 ‘지속 가능한 식탁’을 주창한 댄 바버나 전통과 현대의 공존을 이끌어낸 마시모 보투라 셰프처럼 세상을 바꾸기 위한 일을 할 수도 있다.

무엇보다 소비자에게 인문 정신이 필요하다. 해외에서는 인간과 동물, 자연을 위한 윤리적 소비, 지속 가능한 소비 등이 앞으로의 생산자, 식당이 추구해야 할 가치로 꼽힌다. 우리도 이러한 가치에 공감하는 식당과 생산자가 점점 늘고 있다. 모두가 가성비와 맛집에 정신이 쏠려 있을 때 누군가는 더 나은 먹거리, 더 나은 환경을 위한 고민을 하고 있다.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그들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맛집을 찾는 소비자가 아니라, 가치를 인정하고 흔쾌히 지갑을 열 수 있는 소비자가 필요하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소비가 나와 가족, 그리고 나아가 미래 세대에 어떤 영향을 줄지 생각해보는 것, 그것이 음식을 둘러싼 인문학의 정신이자 존재 이유다.

장준우는 신문기자 생활을 하다 홀연히 이탈리아로 요리 유학을 떠났다. ICIF를 졸업한 후 시칠리아로 날아가 펜 대신 팬을 잡고 주방에서 분투했다. 유럽 10개국 60여 개 도시를 발로 뛰고 혀로 취재한 <카메라와 부엌칼을 든 남자의 유럽 음식 방랑기>를 펴냈다. 현재 <서울신문>에 ‘장준우의 푸드 오디세이’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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