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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드신 @정동현

2019년 1월 14일 — 0

회현역 한편에 자리한 부티크 호텔 레스케이프의 붉은 심장과도 같은 곳이 있다. 과감한 적색의 인테리어에서 펼쳐지는 음식은 때로는 난해하고 때로는 놀라웠으며 결국에는 매혹적이었다. 의미를 알 수 없는 시처럼, 그러나 가슴 한 켠을 점령한 채 지워지지 않는 그 마지막 말처럼 오래고 오랜 여운을 남기는 중식당, 팔레드신이었다.

text 정동현 — illustration 왕조현

중식에 필요한 것은 두께가 2mm 채 안 되는 중화냄비와 직사각형의 중식도뿐이다. 섭씨 1000도 넘게 올라가는 가스 불과 길고 고된 노동, 높은 기술 수준도 필요하다. 다시 말하면 인력 이외에 필요한 것은 몇 안 되는 도구뿐인 것이다. 이런 가변성을 지닌 중식은 중국인과 함께 넓고 빠르게 퍼져나갔다. 여느 타향살이가 그렇듯 중국인도 낯선 타지에 정착할 때 생계로 삼은 것은 그네들의 요리였다. 두껍고 단단한 칼로 재료를 얇게 잘라내 높은 화력에서 빠르게 볶고 튀긴 중식은 어떤 식재료를 만나도 자기네 식으로 변환시켰다. 중국 대륙에 넘나든 이민족들 모두 만년을 넘는 중국 문화에 흡수되고 동화되었듯이 뜨거운 불과 기름 속에서 이국의 식재료들은 향기와 맛을 남긴 채 다시 중식이 되었다. 한국의 중식도 마찬가지였다. 산둥반도에서 넘어온 중국 노동자들이 인천에서 처음 중식을 선보인 지 백년이 넘었다. 그새 양파와 돼지 뒷다리처럼 싼 재료를 화학조미료와 같은 역시 낮은 단가의 조미료에 버무려낸 이른바 ‘중화요리’는 정부의 가격 통제를 받을 정도로 서민의 음식이 되었다. 하지만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경제 원리는 중화요리도 비껴나가지 않았다. 싼 재료를 이용하는 것이 기준이 되었고 그 싼 재료를 최대한 이용해 코스트를 낮추는 것이 기본 원리가 되었다. 사람들은 하향 평준화된 음식에 길들여졌다. 그 또한 나름의 가치가 있는 것이지만 어떤 문화가 이룩할 수 있는 높은 단계에는 쉽사리 도달할 수 없는, 낮은 출발점을 만들어버렸다. 1841년 영국이 처음 상륙한 홍콩은 한국과 비슷하지만 다른 길을 걸었다. 여전히 저임금의 숙련된 노동력이 만드는 딤섬과 같은 노동집약적인 음식을 싼값에 먹을 수 있는 곳이 홍콩이다. 물론 지금에 와서 젊은 인력들이 더 이상 낮은 처우를 받으며 요리를 하지 않으려 하는 추세가 두드러지지만 여전히 홍콩은 홍콩이다. 땀에 젖은 하얀 셔츠 하나 입고 중화냄비를 돌리는 무표정한 중년 요리사가 어떤 재료로 만들어냈는지 모를 정체불명의 요리를 파는 곳이 있는가 하면, 몇 억이 되는 연봉을 받으며 아는 광둥어는 오직 집주소뿐인 다국적 인력들이 법인카드로 수십만원을 지불하며 먹는 중식이 있다. 홍콩에 산재한 고급 레스토랑 중 모트32(Mott32)는 특별한 위치를 차지한다. 다른 곳과 달리 꼭대기 층이 아닌 지하에 위치하며 더 섬세하고 더 고급스럽고 더 감각적인 중식을 추구한다는 면에서 모트32는 큰 주목을 받았다. 어둡지만 화려하고 매혹적인 조명 아래에서 다른 인종과 다른 나라의 남녀가 마주 앉아 빨간 혀를 내밀어 딤섬을 삼키고 종잇장처럼 얇은 북경오리 껍질을 침으로 녹여 먹는다. 지난여름 한국 미식계에서 가장 뜨거웠던 존재는 바로 이 모트32와 제휴를 맺어 문을 연 레스케이프 호텔의 ‘팔레드신’이었다. 파리의 부티크 호텔을 본뜬 인테리어와 글래머러스한 꽃 장식은 호텔을 산업적인 관점에서 바라본 숙박업소가 아니라 문화와 트렌드를 만들어내고 이끄는 전위적인 작품의 경지로 이끌었다. 그중 팔레드신은 이 작품의 관능미가 시작되는 심장이었고 달콤한 유혹의 말이 샘솟는 입술이었다. SNS를 이끄는 이른바 인플루언서들이 메뚜기 떼처럼 이 호텔을 휩쓸고 지난 후 팔레드신에는 비록 주체할 수 없는 열기가 가셨을지언정 타오르고 타올라 이제 더 이상 꺼지지 않는 굳건한 맛의 중심이 새겨져 있었다. 우선 팔레드신을 가기로 마음을 먹었다면 며칠 전 북경오리와 챠슈바비큐를 미리 주문해놓아야 한다. 루브르 박물관에 가서 모나리자를 보는 것이 아무리 어렵고, 심지어 우스꽝스럽더라도 어쩔 수 없는 필수 코스이듯 정통 광둥식을 표방하는 팔레드신에서 북경오리와 챠슈바비큐를 빼먹는 것은 이곳을 의미 없이 방문하는 꼴이다. 이렇듯 팔레드신으로 가는 길은 이틀 전부터 시작됐다. 불어로 층을 안내하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팔레드신에 이르렀을 때 짙은 자두빛을 발하는 실내를 맞이했다. 넓은 공간에 촘촘히 자리한 원형 테이블을 보니 ‘중식당에 왔다’는 자각이 들었다. 서버의 안내를 받아 자리에 앉으니 우선 푹신한 착석감이 가장 먼저 느껴졌다. 딱딱하고 때로는 평형조차 맞지 않는 절름발이 의자에 앉아 비닐이 깔린 테이블 위에 놓인 음식을 먹을 때의 처량함은 아마 안녕인 듯싶었다. 이미 이른 저녁을 시작한 한 무리의 여자들은 비명과 같은 새된 소리를 내며 얇게 저민 북경오리를 먹고 있었다. 팔레드신의 메뉴에는 코스 요리는 없다. 그보다는 취향과 흐름에 따라 여러 요리를 조합해 자기만의 코스를 만드는 편이 낫다. 메뉴를 살펴보면 광둥식뿐만 아니라 마파두부 같은 사천식도 꽤 눈에 띄었다. 시작으로는 산미가 두드러지는 흑식초해파리냉채였다. 해파리의 부들거리는 식감에 거칠어진 입맛이 조금씩 되살아나는 듯했다. 무엇보다 흑초의 진하고 무겁지만 매끄러운 산미와 오이의 싱그러운 맛이 어울려 메뉴명을 다시 볼 만큼 멋들어진 맛을 냈다. 보통 프랑스나 이탈리아 요리가 친숙한 전통 요리를 재해석한 친숙한 아뮈즈부슈로 손님에게 아양을 떨듯 본식으로 이끈다면 이날 맛본 해파리냉채는 마치 무협소설의 고수가 내민 평범하지만 놀라운 초식처럼 방심하고 앉은 식자에게 놀라움을 안겨줬다. 이 냉채 하나에 기대치가 현저히 올라갔다. 그리고 간단하게 곁들인 마늘 소스 오이샐러드는 식사 내내 좌중을 웃기는 피에로처럼 혀에 얹혀진 무거움을 이겨내게 하는 청량제 역할을 했다. 그다음으로는 저녁이었지만 딤섬을 빼먹을 수는 없었다. 쌀가루피 안에 새우를 넣어 찐 창펀, 반숙으로 익힌 메추리알을 넣어 빚은 뒤 트러플 버섯을 갈아 올린 샤오마이, 뜨거운 육수가 뿜어져 나오는 소롱포를 곁들였다. 홍콩에서 딤섬을 먹다 보면 그 맛과 모양새에는 일견 감탄하게 되지만 입에 남는 풍미나 여운을 음미하다 보면 심심하고 때로는 격이 떨어진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한국보다는 중식 식재료 상황이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좋지만 절대적인 수준 자체를 낮게 가져가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다. 팔레드신에서 맛본 딤섬은 얇은 피를 다루는 기술도 기술이었지만 식재료의 수준과 그 고급스러운 식재료의 다치기 쉬운 맛을 조심스럽고 하나로 모아낸 감각의 성취가 두드러졌다. 특히 샤오마이 안의 메추리알이 이에 닿을 때 터져나오는 노른자의 고소한 맛과 대지의 향을 담은 트러플이 만나는 형식과 구성은 달걀과 트러플이라는 프랑스의 오래된 공식을 따름에도 불구하고 딤섬이라는 장르를 차용하여 또 다른 차원을 만들어냈다. 하나를 먹고 허기져 바로 다음을 기다리게 되는 것이 아니라, 생각을 낳고 고민을 이끄는 맛이었다. 채소 요리로는 새우장으로 맛을 낸 브로쉘스프라우트, 해산물 요리로는 소흥주 칠리새우였다. 미니 양배추를 XO소스에 볶은 채소 요리는 불꽃 위에서 중화냄비를 돌리는 요리사의 빠른 손놀림이 느껴질 정도로 소스와 재료의 흡착도, 소스의 농도가 오래 합을 맞춘 록밴드 음악처럼 빈틈없이 맞물려갔다. 칠리새우는 그 자체로는 평범한 메뉴였지만 역시 평범함을 이겨내는 숙련도와 정교함이 존재했다. 하지만 이 모두는 전주였다. 두꺼운 커튼 뒤에서 매끄럽게 구워진 북경오리를 카트에 올려 밀고 나올 때 나는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탐욕과 욕망이 조금씩 흘러나오는 것 같았다. 요리사는 얇디얇은 북경오리의 껍질을 조심스럽지만 과감한 손놀림으로 걷어냈다. 그리고 투명하고 붉게 빛나는 오리 껍질을 접시에 담아 테이블 위에 올렸다. 아마 인간이 이룩한 음식 중 손에 꼽힐 정도로 낭비적이고 과시적이며 장식적인 요리일 것이다. 칼로리와 영양소와 그 모든 유용한 것들을 드러내고 무용無用한 것들만 모아놓은 요리일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입 안에 들어가는 순간 찬란하고 덧없는 것들이 그러하듯 찰나에 부서지며 짜릿한 식감을 남기고 부드럽게 녹아 들어가며 오리가 품은 지방의 고소함과 달콤함, 불꽃에서 이끌어낸 짙은 감칠맛이 혀와 위장으로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다. 백일몽 같은 맛이었다. 남은 고기를 아무리 먹어도 허기가 지는 맛이었다. 뒤이은 챠슈바비큐는 북경오리에 비하자면 더욱 현실에 발을 디딘 맛이었다. 부드러운 고기의 육감은 현현顯現했고 혀에 느껴지는 단맛의 존재감은 두터웠다. 뒤이어 광동식 우육면, 양주볶음밥으로 지워지지 않는 공허함을 달래려 했지만 바닷물을 마신 난파선의 선원처럼 아무리 먹어도 그 허기가, 목마름이 가시지 않았다. 그 얇은 껍질에 담긴 함의는 일본의 단시 하이쿠처럼 난해했지만 직감적이었고, 누군가의 미소처럼 종잡을 수 없지만 가슴에 파고드는 집요함이 있었다. 팔레드신이 이야기하려 했던 것, 소리 없이 보여주려 했던 것도 아마 비슷했을 것이다. 말로 설명하지 않고, 주장하지 않아도 되는 아름다움. 매혹. 공허함과 허기, 유혹과 타락, 이 모든 단어와 은유가 뒤섞인 인간의 삼라만상. 작은 혀 위에서 이뤄지는 날카로운 감각의 향연, 중식이 만들어지고 중식으로 이끌어낸 저 중국 문화의 난해함과 깊이에 대하여.

정동현은 서울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대기업 유통 회사를 다니다가 훌쩍 영국의 요리 학교 탕트 마리(Tante Marie)로 유학을 떠났다. 호주의 레스토랑에서 늦깎이 셰프로 요리 열정을 불사르며 일했다. 저서로는 <셰프의 빨간 노트>가 있으며, 지금은 신세계그룹 F&B팀에서 ‘먹고(Food) 마시는(Beverage)’ 일에 몰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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