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열기

main

DiningExplore

우리 술을 찾아서

2018년 12월 6일 — 0

경상도의 양조장을 찾아 떠난 1박 2일 술 기행에 몸을 실었다. 이번 여행을 기획한 PR5번가 이지민 대표는 모름지기 술은 ‘공짜 술, 내가 만든 술, 양조장에서 먹는 술’이 제일이라 말했다.

발효 건축이 구현된 복순도가의 외부. 복순도가 김정식 대표의 맏아들 김인규 씨가 시공과 건축을 맡았다.
발효 건축이 구현된 복순도가의 외부. 복순도가 김정식 대표의 맏아들 김인규 씨가 시공과 건축을 맡았다.

바쁜 일정 탓에 계절은 스치듯 지나갔고 기어이 겨울의 문턱 앞이다. “이번 겨울은 유독 춥다던데…” 감기의 전조처럼 목구멍이 좁아지고 까끌까끌해지는 것을 느꼈다. 놀부의 처가 흥부의 뺨을 때리듯 찰랑찰랑한 술로 목젖을 때리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혔다. 그러던 중 솔깃한 제안이 들려왔다. 한국의 술을 알리는 데 앞장서고 있는 온라인 페이지 대동여주도(酒)를 운영하는 PR5번가의 이지민 대표가 경상도 양조장 여행에 초대한 것이다. 이번에 가는 곳은 전국의 우리 술 양조장을 체험과 관광이 접목된 지역 명소로 육성하는 프로그램 ‘찾아가는 양조장’에 선정된 곳들이다. 진정한 맛 고수 허영만 화백과 찾아가는 양조장의 홍보대사 요리연구가 홍신애, 그 외 미식을 즐기는 다수의 기자들과 전문가들이 동행한다 했다. 가지 않을 이유가 없었고 가지 않을 마음도 없었다.

(왼쪽부터) 연잎쌈밥집 사장, 허영만 화백, 홍신애 요리연구가, 복순도가 김정식 대표.

여행에서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울산 울주군의 복순도가다. 몽글몽글 연기가 피어오르는 시골집을 생각했건만 다분히 현대적이고 구조적인 외관에 ‘우리나라에도 이런 양조장이 있다니’ 하는 별안간 애국심이 치밀었다. 복순도가는 김정식, 박복순 부부가 집안 대대로 내려오던 가양주를 이어받아 술을 빚으며 시작됐다. 복순도가의 대표 제품은 지역 쌀과 전통 누룩을 옛날 방식으로 독에 넣어 발효하는 손 막걸리다. 술이 익으며 발효를 통해 발생하는 천연 탄산을 날려보내지 않고 병째 가두는 것이 특징이다. 병을 여는 동시에 야단법석을 부리는 기포에 의해 침전물이 액체와 섞이며 막걸리는 비로소 골고루 뽀얘졌다. 잔에 담기고 나서도 한동안 보글보글 예쁘게도 끓었다. 도가에서는 집에서만 먹는 것이라며 멜론을 갈아 넣은 달큰한 백김치를 내왔다. 입 안 가득 퍼지는 청량하고 크리미한 팽창감과 끼 많은 백김치의 산도가 궁합이 좋았다. 막걸리를 수육에만 먹을 것이 아니라 세비체에 곁들여도 좋을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다음으로 향한 곳은 영천 고도리 와이너리다. 영천은 일조량, 토질, 강수량 등의 조건이 좋아 한국의 보르도라고 할 정도로 와이너리가 많다. 고도리 와이너리에서는 MBA, 카베르네 소비뇽, 샤르도네 등의 유럽 품종을 비롯해 거봉, 복숭아 등 국산 품종으로 만든 와인을 만들고 있다. 고도리 와이너리의 복숭아 와인은 한국 와인의 메카 광명 와인 동굴에서 진행한 ‘2018 광명동굴 대한민국 와인 페스티벌’에서 전문가와 일반인 합산 1위를 수상하기도 했다. 유럽에서 와인은 포도주만을 칭하지만 한국 와인은 국내에서 나는 과실을 사용해 발효한 담금주를 의미한다. 우리가 고급 와인을 평가하는 것과 같이 섬세하고 복합적인 구조미를 기준 삼자면 국내 과일 와인의 맛은 자칫 가볍고 밋밋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긴 역사를 가진 유럽의 포도주는 온전히 맛과 향미로 자연을 표현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과학적 정밀함, 형이상학적 탐구, 문학적 감수성 등 복잡한 이해를 갖춰갔다. 그러나 한국 와인은 수십 년간 직접 재배한 과일을 여러 시도 끝에 가장 맛있게 발효시켜 만드는 농가형 와이너리에서 생산되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들에게 와인은 어렵게 만들어 먼 전문가를 만족시키기보다 가까운 이웃들부터 맛있게 마시고 우리가 평소 자주 먹는 음식과 어울릴 만한 것이어야 한다.

울산 울주군 복순도가를 찾아 마신 손 막걸리.
울산 울주군 복순도가를 찾아 마신 손 막걸리.
고도리 와이너리 포도밭에서 본 카베르네 소비뇽 품종.
고도리 와이너리 포도밭에서 본 카베르네 소비뇽 품종.

다음 날 아침, 경상도식 물회로 빈속을 채우고 다시 찾은 곳은 영천의 또 다른 와이너리 (주)한국와인이다. 하형태 대표가 이끄는 이곳에서는 MBA 품종으로 만든 레드, 화이트, 로제 와인과 오디로 만든 와인도 생산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한국 와인은 한식과 가장 잘 어울려야 한다’는 대표의 철학에 따라 달지 않고 드라이한 와인만 고집하고 있다. (주)한국와인에서 전개하는 레이블 뱅꼬레 와인의 맛은 전체적으로 한곳으로 모이기보다는 돌출된 개성이 느껴져 마치 내추럴 와인을 떠올리게 했다. 투어의 마지막으로 찾은 곳은 의성의 (주)한국애플리즈다. 사과 농장을 하던 한임섭 대표가 이끄는 이곳은 사과 와인과 사과 브랜디, 탄산을 더해 도수를 낮춘 애플사이더 등을 선보이고 있다. 특이하게도 옹기 숙성을 통해 저온 발효하는 것이 특징이다. 우리는 낮은 산과 밭을 마주한 본사 앞마당에 앉아 사과로 만든 애플사이더, 화이트 와인, 브랜디 순으로 맛봤다. 입 안부터 귀 뒤까지 온통 기분 좋은 사과 향이 찰랑였다. 앞산 너머로 해가 질 무렵엔 사과로 만든 화이트 와인을 한 잔 더 청했다. 와인은 애원하는 목구멍을 저무는 해처럼 뉘엿뉘엿 넘어갔고, 공기가 차가워진 조금 뒤에는 브랜디를 청하는 손길들이 조금 더 빨라졌다.

한국애플리즈가 거래하는 사과 농장.
한국애플리즈가 거래하는 사과 농장.

술 기행이 끝나고 서울에 돌아온 뒤 처음 맞은 휴일엔 늦잠을 잤다. 첫 끼로 맵싸한 오징어볶음을 정하고는 또 술이 당겼다. 오징어볶음에 전날 마시던 보르도산 레드 와인을 다시 곁들였다. 정교하고 복합적인 맛의 와인이 매콤한 소스를 쓴맛으로 변절시켰다. 날카로운 맛들이 중첩되며 동시에 모든 맛들이 뭉뚝해졌다. 고도리 와이너리에서 들고 온 복숭아 와인이 생각났다. 반신반의하는 마음으로 함께 곁들였다.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이렇게 맛있을 수가!” 복숭아 와인은 오징어볶음의 어떤 맛도 훼손하지 않은 채 입을 맞추듯 촉촉하고 가볍게 차올랐다. 한국 와인은 우리 음식과 이렇게 맞아가는 것이 분명하다는 확신이 들었다. 한동안 흐뭇했고, 앉은 자리에서 한 병을 전부 비웠다.

고도리 와이너리에서 마신 청포도로 만든 화이트 와인.
고도리 와이너리에서 마신 청포도로 만든 화이트 와인.
고도리 와이너리 와인 숙성 통에 사인과 즉흥적인 그림을 남기고 있는 허영만 화백.
고도리 와이너리 와인 숙성 통에 사인과 즉흥적인 그림을 남기고 있는 허영만 화백.

고도리 복숭아 와인 테이스트
올리브 매거진 독자를 위해 영천 고도리 와이너리에서 생산한 복숭아 와인을 집으로 배송받을 수 있는 특별한 기회를 제공합니다. 복숭아 와인 1병 3만5000원(택배비 별도)

주문방법
<올리브 매거진 코리아> 제철 명품 푸드마이스터 김희연(010-8699-8065, 평일 오전 10시~오후 6시)에게 문의하시면 상담해드립니다.

edit 장은지 — photograph 대동여주도(酒)

이 기사도 읽어보세요
백승욱의 도사 짧게 깎은 머리와 군복 바지가 트레이드마크인 라스베이거스의 요리사 아키라 백이 서울에서 백승욱으로 신고식을 마쳤다. 서울에서 도사가 된 아키라 백 최근 JTBC <냉장고를 부탁해> 모델 이소라 ...
홈메이드 감자튀김 레시피 집에서도 레스토랑 못지않게 맛있는 감자튀김을 만들 수 있다. 좀 더 색다르게 즐기는 6가지 레시피와 어울리는 소스를 찾았다. 에디터: 이진주 / 사진: 심윤석 / 요리: 김보선(스튜디오 로쏘) 맛있는 감자...
가볼 만한 채식 레스토랑 다음의 리스트를 기억하자. 외식할 때 눈치 볼 필요 없이 맛있게 식사할 수 있는 곳이다. © 심윤석 고상 고려시대를 테마로 한 웅장한 분위기 속에서 고급스러운 약선 사찰 요리를 맛볼 수 있는 곳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