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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를 익히는 법과 건강 @정재훈

2018년 12월 13일 — 0

불과 물, 고기를 익히는 법에는 크게 두 가지 방법이 있다. 고기를 어떻게 익히냐는 맛뿐만 아니라 건강에도 영향을 미친다.

text 정재훈 — edit 양혜연 — photograph 박인호 — cooperate 콘래드 서울(02-6137-7000)

파리 15구에 북한 사람이 운영한다는 조그만 한식당을 찾았다. 냉면도 궁금했지만 우선 불고기를 시켰다. 바로 양념을 했는지 선명한 붉은빛의 소고기를 달콤짭짤한 국물을 두른 불판 한가운데 올린 채로 휴대용 가스레인지와 함께 내왔다. 별다른 채소 없이 양념에 무친 고기 위에 참깨만 살짝 뿌린 형태는 10여 년 전 이마트에서 팔던 모란봉소불고기와 비슷했지만 조금 더 두툼했다. (요즘에는 같은 브랜드의 양념과 소스만을 판다.) 그런데 깜짝 놀랄 일이 생겼다. 불판 위에서 고기 겉면이 70% 정도 익어갈 즈음, 식당 주인이 자리로 와서 고기를 뒤집는가 하더니 곧바로 국물에 빠뜨리는 것이었다. 고기가 타지 않도록 막기 위해서라고 했다. 특이한 방식이었지만 생각보다 맛이 좋았다.

가장자리에 두른 국물이 끓으며 수증기가 발생하긴 하지만 불판 위의 고기가 타는 걸 막기에는 역부족이다. 국물을 부은 받침대 부분은 100℃로 낮게 유지될지 몰라도 화구에 가까운 중심부는 온도가 높다. 불판 가운데 그대로 두면 고기가 탈 수밖에 없다. 특별한 환기 시설이 없어 식당 전체가 불고기 냄새와 연기로 가득 찰 가능성이 높았다. 1935년 평양 모란대 송림에서 고기 굽는 냄새가 산책하는 사람에게 불쾌감을 줄 지경에 이르러 당시 명물이었던 불고기 옥외 영업을 금지했다는 신문 기사가 떠올려질 만한 상황이었다.

두 가지 불고기의 경쟁

역사를 뒤돌아보면, 불고기에는 최근의 어원 논쟁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치열한 두 가지 조리 방법 사이의 경쟁이 있다. 보통 나누는 방식은 국물의 유무에 따른다. 등심, 안심 같은 연한 부위를 너비아니처럼 조금 두껍게 잘라 양념하여 석쇠에 구워 먹는 옛 방식과 목심, 앞다리, 설도, 우둔 같은 더 질긴 부위를 육절기로 얇게 잘라 국물이 자작한 불판에 구워 먹는, 현대에 더 가까운 방식이다.

하지만 진짜 경쟁은 불과 물 사이에 있다. 물이 조리에 얼마나 개입하느냐에 따라 화학 반응이 달라진다. 가운데가 봉긋 솟은 형태의 불고기판에 구울 때 고기의 상태는 숯불 위에서 석쇠를 돌려가며 구울 때와 비슷한 점이 많다. 불판 중심 부분의 온도가 140℃에 이르면 당과 아미노산이 화학적으로 반응하여 구운 고기 특유의 풍미와 갈색을 만들어내는 마이야르 반응이 격렬해진다. 경사진 불고기판을 처음 만든 사람은 물에 삶은 고기보다 불로 구운 고기를 좋아했던 것이 틀림없다. 고기에서 흘러나온 수분이 기울어진 불판을 타고 가장자리로 내려가므로 고기 표면 수분의 양이 줄어들고 온도가 상승하면 마이야르 반응이 일어나기 더 쉬운 조건이 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사이사이 구멍이 뚫린 불판을 벌건 숯 위에 올린 경우는 석쇠로 구울 때와 거의 차이가 없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이다. 반면에 전골냄비나 팬에 양파, 당근, 파를 듬뿍 올려 불고기를 조리할 때의 화학 반응은 다르다. 채소에서 흘러나온 수분과 양념이 섞여 만들어진 국물이 빠져나갈 여지가 없이 고기와 함께 끓는다. 100℃에서 끓는 물의 속성으로 인해 온도가 더 이상 높아지지 않으므로 마이야르 반응이 훨씬 느린 속도로 일어난다. 물을 매개로 익는 국물 불고기에 ‘불 맛’은 없다. 불고기라는 이름이 무색하다. 국물 자작한 서울식 불고기는 어찌 보면 불고기보다 물고기라는 이름이 더 어울리는 음식이다.

구운 고기 먹어도 괜찮은가

언양 불고기, 광양 불고기처럼 남쪽에는 수분 없이 불에 굽는 방식이 건재한데 서울에서는 왜 국물 불고기가 크게 유행한 걸까. 더 저렴한 부위를 사용할 수 있으며 빨리 익혀 먹을 수 있다는 장점에 더해 탄 고기와 건강에 대한 염려가 한몫했을 가능성이 있다. 1965년 10월 22일자 <동아일보> 3면에는 ‘불고기는 유해?’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송아지나 돼지를 통째로 구운 불고기 1인분은 담배 700개를 피우는 것만큼이나 암을 일으키게 하는 벤조피렌을 체내에 공급할 수 있다고 보건 전문가 R.S. 스폴딩이 영국 보건협회에 보고했다는 것이다. 연기에 그슬린 음식은 거의가 벤조피렌을 포함하고 있으며 불에 오래 구운 고기를 즐기는 아이슬란드 사람들에게 위암이 많은 것은 이 때문이라고 지적한 외신 기사 말미에는 그러한 주장이 충분히 근거 있다는 국내 전문가의 설명이 덧붙여졌다.

위의 기사에서 언급한 불고기는 스테이크다. 영자 신문을 통해 확인해보면 송아지나 돼지를 통째로 구운 불고기라는 말은 없고, 바비큐라는 말이 나온다. 집 뒷마당 바비큐로 구운 큼지막한 스테이크 한 장에 담배 700개비만큼의 벤조피렌이 들어 있다는 이야기다. 여기에 바비큐라는 단어를 풀이하는 과정에서 송아지나 돼지를 통째로 굽는다는 설명이 잘못 추가된 셈이다. (여염집 뒷마당에서 스테이크, 소시지, 갈비를 구울 수는 있어도 송아지나 돼지를 통째로 굽기란 어려운 일이다.) 이후에도 벤조피렌에 대한 기사는 신문 헤드라인을 종종 장식하여, 벤조피렌이 뭔지는 몰라도 어디서 들어본 느낌이 드는 용어 중 하나가 되었다.

어쨌거나 그릴에 고기를 구우면 유기물이 불완전 연소하여 벤조피렌을 비롯해 PAH라고 불리는 성분이 증가하는 것은 사실이다. 큼지막한 스테이크를 직화로 겉이 까맣게 되도록 구워 먹으면 담배 수백 개에서 흡입하는 만큼의 벤조피렌을 섭취하게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비교해서 담배보다 스테이크가 더 나쁘다고 말할 수는 없다. 담배 연기에는 그밖에도 수많은 유해 성분이 들어 있으며, 흡연이 폐암의 원인이라는 것은 1950년대에 이미 입증된 사실이다. 음식 속 벤조피렌의 경우도 발암 물질로 간주되지만, 흡연과 비할 바가 못 된다. 국제암연구소(IARC)에 의하면 매년 흡연으로 인한 암으로 사망하는 사람 수는 100만 명, 과도한 가공육 섭취로 인한 암으로 사망하는 사람의 수는 3만4000명이다. 동물 실험에서 벤조피렌을 포함한 PAH, HCA(고기를 150℃ 이상에서 조리하면 생성되는 물질)가 암을 유발하기는 했으나 사람이 일상생활에서 음식으로 섭취하는 양의 수천 배를 주어 실험한 결과를 그대로 적용하기도 어렵다. 2015년 10월 국제암연구소에서 적색육을 2군 발암 물질로 분류하면서도 PAH, HCA와 암 발생률의 관계에 대한 결론을 내리지 않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구운 고기를 너무 자주, 너무 많이 먹어서 좋을 건 없지만, 지나치게 걱정할 필요도 없다. 2011년 식약처에서 밝힌 자료에 따르면 식품을 통한 한국인의 1일 벤조피렌 섭취량은 하루 37ng으로 외국에 비해 낮으며 유해 영향이 거의 없는 수준이다.

고기 어떻게 먹을 것인가

“양념에 재운 고기를 꺼내어 그릴에 굽는다. 겉은 갈색이 되고 속은 아직 덜 익을 정도까지 구워야 한다. 어느 한 쪽으로도 1, 2분 이상 굽지 말아야 한다.” 70년대 불고기 요리법 같지만 실은 2011년 미국 <뉴욕 타임스>에 실린 푸드라이터 마크 비트먼의 불고기 레시피이다. 요즘 서울에서 불고기 하면 국물 불고기를 먼저 떠올리는 것과는 달리 뒷마당 바비큐를 즐기는 미국에서 불고기의 대세는 그릴에 구운 방식이다. 하지만 이렇게 유독 구운 고기를 좋아하는 미국인들의 경우에도 그릴에 굽거나 바비큐한 고기가 하루 벤조피렌 섭취량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21%에 불과하다. 벤조피렌을 포함하여 하루 섭취하는 PAH의 대부분은 곡물, 식물성 기름, 채소에서 온다.

그래도 걱정이라면, PAH는 기름이 불에 타면서 생기므로 350~400℃ 이상의 고온에서 조리할 때 주로 생긴다는 사실을 기억해두자. 삼겹살을 숯불에 구울 때 숯에 기름이 떨어져서 고기에 검댕이 묻을 때를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고기를 구울 때 생성되는 다른 화학 물질들의 유해성에 대한 논란도 많지만, 일주일에 한 번 정도 구운 고기를 즐기는 사람이 걱정할 이유는 없다. 국물 불고기처럼 삶고 끓이고 찌는 식으로 낮은 온도(100℃)로 조리하면 거의 생성되지 않으며, 200℃ 부근에서 로스팅해도 적게 생긴다. 열원으로 목재보다는 숯을 사용하는 게 낫고, 열원이 위쪽에 있는 브로일러에 고기를 구워도 기름과 열원의 접촉을 막아 PAH 생성을 줄일 수 있다. 고기를 자주 뒤집으면서 굽거나 심하게 탄 부분은 도려내는 것도 PAH를 줄이기에는 좋은 방법이다. 어떻게 먹느냐야 각자의 선택이지만, 적당히 조금씩 맛보면 고기만큼 훌륭한 음식도 없다는 사실만은 잊지 말자.

정재훈은 서울대학교 약학대학을 졸업한 후 캐나다 토론토에서 다년간 약사로 일했다. 음식만큼이나 사람들과 요리와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걸 좋아한다. 잡지, TV, 라디오 등 여러 매체를 통해 음식과 약에 대한 과학적 정보를 전하고 있으며, 저서로는 <정재훈의 식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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