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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컴플렉스 @정동현

2018년 12월 27일 — 0

남산 자락 제로컴플렉스는 언뜻 보면 쉽다. 간단한 재료와 조리법. 메뉴에 적힌 글자도 많지 않다. 하지만 그래서 쉬운 곳은 아니다. 단순하여 더 생각이 남고 그리하여 어렵다. 식자에게 숙제를 남기는 곳. 한국에서 희귀하여 더 값어치 있는 곳이다.

text 정동현 — illustration 왕조현

미니멀리즘Minimalism. 제로컴플렉스에 들어설 때 머릿속에 떠오른 단어였다. 미니멀리즘은 말 그대로 기능적으로 최소한만 남긴 채 불필요한 것을 걷어낸 생활 양식, 혹은 태도를 뜻한다. 언뜻 들으면 법정 스님의 ‘무소유’가 떠오르는 미니멀리즘은 그러나 종교적 구도에 가까운 무소유와는 출발점이 조금 다르다. 현재 서양에서 이야기하는 미니멀리즘은 소유 그 자체에 대한 반성과 성찰보다는 불필요한 기능을 제거해 원만하고 효율적인 삶을 얻는다는 기능적 측면에 기울어져 있다. 그래서 미니멀리즘을 이야기하며 애플의 디자인과 경영 철학, 이케아의 카탈로그 등이 그 예로 주어진다. 일상의 삶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불필요한 물건을 없애 공간을 효율적으로 쓴다, 혹은 물건 고르는 시간을 아낀다 등등 군더더기를 덜어내 더욱 만족스럽게 살겠다는 목적이 더 크게 부각된다. 제로컴플렉스가 추구하는 바도 아마 이와 비슷할 것이다.

서래마을 좁은 골목을 벗어나 초록 잎이 생동하는 남산 자락으로 자리를 옮긴 제로컴플렉스는 예전보다 넓어졌고 덕분에 더욱 여유로운 분위기를 풍겼다. 통창으로 눈부신 햇빛이 우아하게 쏟아져 내렸다. 짙은 남색 앞치마를 입은 서버들은 햇빛을 맞으며 테이블 사이를 춤추듯 빠르고 가볍게 걸었다. 휴일 점심이었다. 단정한 옷을 골라 꺼내 입고 구두끈을 조여맨 뒤 낡은 계단을 걸어 올라, 이곳에 다다랐다. 안내를 받아 자리에 앉으면 투명한 햇빛과 자기에 부딪히는 나이프와 포크 소리, 새처럼 지저귀는 연인들의 속삭임이 들렸다. 메뉴판은 사랑에 빠진 이들이 내뱉는 단말마처럼 간단했고 암호처럼 은밀했다. 제로컴플렉스의 메뉴는 이른바 네오비스트로노미 계열에서 흔히 보이는 구성을 하고 있었다. 새로운 비스트로풍 미식 정도로 해석할 수 있는 네오비스트로노미는 전통적인 음식 장르나 국적에 얽매이지 않고 요리사의 창의성을 극대화한 스타일을 의미한다. 즉 그 자체가 어떤 장르를 이뤘다기보다 요리사가 음식을 대하는 방법론에 더욱 맞닿아 있다. 이런 계열에서는 메뉴판에 음식명, 그러니까 김치찌개나 된장찌개라는 고유명사를 적는 경우가 거의 없다. 대신 재료명만 간단하게 기입하여 사람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요리사 또한 식재료의 가능성에만 초점을 맞출 뿐 음식의 장르나 이름에 얽매이지 않겠다는 의미를 전달한다. 테이블보 없이 차가운 대리석이 그대로 노출된 테이블에 팔을 올리고 메뉴판을 들어 올렸다. 손님의 입장에서 뭔가 고를 수 있는 여지는 와인 페어링을 하느냐 마느냐 정도였다. 와인 페어링을 주문하고 잠시 숨을 가다듬었다. 시간이 제한되어 있는 점심은 어느 레스토랑을 가나 템포가 빠르다. 오래 앉아 음식의 전후좌우를 즐기기보다 요리사가 자신 있는 몇 가지를 빠르고 정확하게 전달하는 데 목적이 있다. 홀 직원과 같은 복장을 한 요리사들이 몸을 앞뒤 좌우로 흔들며 음식을 조리했다. 한 가지로 고정된 코스 메뉴와 워크인 손님을 받지 않는 예약 정책 덕택에 요리사들의 몸짓에는 잡음이 껴 있지 않았다.

간단히 목례 후 바로 연주에 돌입한 오케스트라처럼, 숨을 두어 번 고를 시간이 흐르자 바로 음식이 나왔다. 시작은 ‘토마토, 천도복숭아, 바질’이었다. 짜릿한 고음이 귓속을 관통하는 것 같았다. 첫 숟가락을 들자 고도로 정제된 신맛이 느껴졌다. 토마토 가스파초라고 볼 수 있는 이 요리는 헝가리 작곡가 버르토크Bartók의 날 선 현악 사중주처럼 전주 없이 바로 가장 높은 음을 찍었다. 신맛은 어려운 맛이다. 사람마다 호불호가 강해 대중음식점에서는 쉬이 쓰지 못한다. 하다못해 중식당에서 따로 식초를 준비하는 이유도 주방에서 그 맛을 통제하기 어려우니 소비자가 알아서 취향껏 쓰라는 뜻에서다. 하지만 제로컴플레스는 신맛을 쓰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모두를 사로잡기보다 자신만의 목소리와 톤으로 노래를 부르겠다는 태도와 의지가 맛에 담겨 있었다. 동그랗게 잘라 올린 천도복숭아의 신맛, 토마토의 신맛, 그 위를 레몬 향을 머금은 바질과 일식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시소 잎이 사뿐히 떠다녔다. 그 뒤로 입 안을 정화시키는 찬 기운이 몸에 배었다. 어릴 적 덜 익은 자두를 먹던 기억이 났다. 기운이 넘쳐흐르던 그때, 땟국물이 줄줄 흐를 정도로 여름 한낮에 뛰어다니다 먹은 싱그러운 자두 한 알이었다. 이 흐름은 그다음 코스로 이어졌다. 서버들은 빈 접시를 오래 놔두지 않았다. 와인드업까지 오래 걸리는 법이 없는 성질 급한 선발투수처럼 접시가 치워지자마자 새 접시가 테이블에 놓였다. ‘광어, 샬롯’이라고 적힌 두 번째 메뉴였다. 역시 짙은 바이올린 선율처럼 신맛이 그 중심에 있었다. 굳이 음식의 종류를 따지자면 생선을 산에 절여 익힌 페루식 세비체였다. 사각으로 다진 광어회에 샬롯, 오일, 라임을 섞어 맛을 내고 핑크빛 세비체 주를 뿌렸다. 비트를 썼으리라 짐작되는 그 소스를 묻혀 광어회를 입에 넣었다. 흰살 생선의 은근한 단맛에 샬롯이 가진 양파류의 단맛이 올라탔다. 하지만 라임의 풋풋한 산미가 자칫 둔하게 느껴질 수 있는 생선과 채소의 단맛에 화려한 포인트를 줬다. 동글동글한 허브 쇠비름을 같이 씹으면 시큼한 향이 더해졌다. 단순한 조합일 때 식재료의 잠재력을 최대한으로 이끌어낼 수 있다고 요리사는 믿는 것 같았다. 이런 발상이 드문 것은 아니다. 알랭 뒤카스는 한 접시 위에 세 가지 맛 이상을 올리지 않는다는 원칙이 있다고 한다. 그 이상이 되면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없다고 여기는 것이다. 뒤이어 나온 메뉴 ‘총알 오징어, 먹물, 감자’도 그 맥락에 충실했다. 총알 오징어를 잘게 썰어 팬에서 익힌 뒤 그 위에 오징어 먹물과 매시트포테이토를 섞어 마치 스파게티 면처럼 얇게 뿌린 이 요리는 시각적 충격을 의도한 듯했다. 상앗빛 대리석, 하얀 접시 위에 올려진 검정색은 확연한 대조를 이뤘다. 손이 쉽게 가는 모양새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 도전적인 생김새와는 달리 맛은 전에 나온 요리들에 비해 친숙했고 부드러웠다. 감자가 가진 풍성한 질감이 미네랄 터치가 강한 먹물을 넉넉하게 감쌌다. 오징어는 조리가 잘되어 쫀득한 질감을 온전히 갖췄고 질기다는 인상은 전혀 남기지 않았다. 여기서 모자란 신맛은 함께 나온 사워브레드가 책임졌다. 매시트포테이토를 사워브레드에 올려 한 입 먹으면 저녁노을처럼 아련히 흘러나오는 발효된 신맛과 감자가 오랜 친구처럼 살갑게 어울렸다. 워낙 단순한 요리들이라 양이 적어 보였지만 빵을 먹을 쯤 되어서는 꽤나 배가 찼다. 메인 요리로 넘어가기 전에 이곳의 와인 페어링을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제로컴플렉스는 오래전부터 내추럴 와인을 다루어왔다. 한국에서 내추럴 와인이 조금이나마 대중화된 데는 제로컴플렉스의 몫이 꽤 크다. 내추럴 와인 자체에 대한 호불호나 논란은 전문가들에게 맡겨두자. 단지 내추럴 와인을 통해 제로컴플렉스는 외국의 비슷한 레스토랑이 그러하듯 ‘자연’과 ‘원초적’인 무언가를 추구하지만 동시에 유행에 있어 ‘첨단’을 달린다는 이미지를 얻게 됐다. 서비스는 빈 잔을 빠르게 치우고 살짝 급하다는 느낌이 들기는 했지만 서버가 충실히 설명을 하며 와인을 다뤘다. 맛 자체만 따지면 역시 전반적으로 산미가 강하고 단맛은 절제되어 있었다. 두드러지는 강약이 아닌 전체적인 흐름과 이미지를 만들고자 하는 의도가 엿보였다. 이윽고 나온 메인 요리는 ‘브란지노, 호박, 새우’였다. 브란지노는 지중해 농어를 뜻하는 말로 근래 꽤 여러 곳에서 쓰이는 식재료다. 한국 농어보다 흙 맛이 덜해 조금 더 깔끔한 맛을 낸다. 역시 간단한 조리와 구성이었다. 이전 여느 요리와 다르게 식재료가 품은 단맛이 두드러졌다. 농어의 부드러움을 해치지 않을 정도까지, 살이 붉은기를 떨쳐버릴 때까지, 그 경계선에서 멈춘 조리에서 이 레스토랑이 지향하는 바를 알 수 있었다. 염분기 있는 생선은 탄성을 잃지 않았고 호박과 새우는 본래 머금은 살가움을 놓지 않은 채 탄성과 단맛을 여전히 가지고 있었다. 그 후는 디저트였다. 루이보스 티를 머금은 아이스크림과 허브 처빌Chervil과 소스가 하얀 도자기에 담겨 나왔다. 지금까지 있었던 모든 요리를 한번에 지워버리는 날카롭고 청량한 입맞춤처럼, 밝게 생동하는 달고 차가운 아이스크림을 입 안에 담고 밖을 바라봤다. 여전히 햇살은 밝고 사람들이 머금은 미소는 지워지지 않았다. 주방의 요리사들은 좁은 주방에서 잘 단련된 댄서처럼 걸음을 잘게 나누며 몸을 움직였고 홀의 서버들은 귀 밝은 전령이 되어 사람들의 숨소리, 웃음소리에 맞춰 걸음을 놓았다. 밖으로 나온 세상은 여전히 먼지와 군중과 소음에 뒤덮여 그중 무엇이 옳고 그른지 알기 어려웠다. 하지만 잠시 제로컴플렉스에 있던 그 시간에, 내가 알고 느꼈던 맛과 공간은 전혀 복잡하지 않았고 난해하지 않았다. 의도가 명확했고 또 그래서 정직했다. 그 정직함 속에 편안했다. 단순한 세상이었다. 쉬워 보이지만 누구도 쉽게 이룩할 수 없는 세상이었다.

정동현은 서울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대기업 유통 회사를 다니다가 훌쩍 영국의 요리 학교 탕트 마리Tante Marie로 유학을 떠났다. 호주의 레스토랑에서 늦깎이 셰프로 요리 열정을 불사르며 일했다. 저서로는 <셰프의 빨간 노트>가 있으며, 지금은 신세계그룹 F&B팀에서 ‘먹고(Food) 마시는(Beverage)’ 일에 몰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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