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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과 인문학 @정동현

2018년 12월 14일 — 0

음식에는 개인의 선호나 경제적 결과물만이 담겨 있는 것이 아니다. 음식은 인간의 본성과 그 진화의 역사, 사회와 경제, 제도, 이 모든 것을 아우른다.

text 정동현

“회나 먹을까?” 이 말이 아버지 입에서 나오면 어머니 얼굴이 밝아졌다. 회 한 접시에는 많은 반찬이 필요 없었다. 동네 횟집에서 준 초장과 마늘, 고추, 상추쌈에 김치와 따뜻한 흰밥이면 족했다. 이 모두를 한데 담아 슥슥 비벼내면 쉽게 한 끼 식사가 끝났다. 부산에는 분식집만큼 횟집이 흔했다. 동네 횟집에 가서 회를 끊어 오는 건 내 몫이었다. 만원짜리 달랑 한 장 들고 횟집에 가서 주문을 넣었다. “머로 해주까?” 억센 사투리에 핏줄이 올라선 팔뚝, 머리털은 산발에 안광이 남달랐던 횟집 아저씨가 두꺼운 칼을 들고 물었다. 그러면 십중팔구 내 입에서는 “아나고요”, “광어요”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하지만 내가 먹고 싶던 생선은 따로 있었다. 스모키 화장을 한 것처럼 눈 주위가 검고 앞으로 튀어나갈 것처럼 몸매가 유선형에 쉴 새 없이 헤엄을 치는 방어였다. 그런데 어렸을 적 방어를 먹어본 일은 손에 꼽는다. 비싸서? 아니었다. 방어는 싼 생선이었다. 미사일처럼 늘씬한 몸매에 덩치는 크고 잘생겼거늘 방어 찾는 어른이 많지 않았다. 어릴 적 살던 부산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생선은 광어와 우럭, 그리고 아나고라고 부르는 붕장어였다. 아니면 아예 잡어를 더 좋아했다. 잡어는 자연산이라 좋고 광어는 광어니까, 그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방어는 살이 많지만, 즉 수율이 좋지만 맛이 단순하다고 했다. 등푸른 생선이라 쉽게 죽고 또 상했다. 무엇보다 그 시절 사람들은 방어 맛을 즐기지 않았다. 20여 년이 지났다. 겨울이 되면 모두가 방어 타령이다. 회 맛을 아나 싶은 서울 토박이들도 방어를 먹어야 한다며 자신의 취향을 디펜스(방어)한다. 그 사람들이 간장, 맛술에 익힌 방어조림이나 혹은 방어구이를 찾는 것은 아니다. 기름기 하나 없는 붉은 방어 등살을 원하는 것도 아니다. 사람들이 찾는 것은 기름이 잔뜩 낀 새하얀 방어 뱃살이다. 예전에는 느끼하다고 먹지 않는 부위였다. 그 감각이 10여 년 만에 바뀌었다. 그 이유를 찾자면 방어만 쳐다봐서는 안 된다. 방어를 둘러싼 식생활 전체를 바라봐야 한다. 1995년 우루과이 라운드 타결로 인해 소고기 시장이 개방됐다. 한국 정부는 소고기 시장을 지키기 위해 소고기 자체의 품질을 높여야 한다는 문제 의식을 품고 있었다. 시장 개방에 대한 선제적 차원에서 1993년 소고기 등급제가 정해졌다. 근내지방도에 따라 소고기 등급을 나눈 것이다. 미국, 일본, 한국에서만 쓰이는 이 등급 기준의 옳고 그름, 혹은 유효성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마블링을 얻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많은 사료가 필요하고 또 오랜 사육 기간이 뒤따른다. 이 말은 소고기값이 자연적으로 상승하게 된다는 뜻이다. 하지만 한우가 고급스럽다는 인식을 얻게 되었다는 것도 무시할 수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소비자들의 입맛은 점차 기름진 맛에 익숙해져갔다. 제도로 규정된 등급은 소비자의 인식과 소비 방식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우선 생산자들은 더욱 기름진 소고기를 만들기 시작했다. 1등급 소가 나오는 비율이 점차 높아졌다. 한 예로 수소 거세율은 1995년 1.4%였던 것이 2000년대를 넘어서면서 50%를 넘겼다. 1등급 출현율은 2000년대에 30% 안팎을 유지하다가 2018년에 들어서서는 70%를 넘겼다. 소 사육 방식, 품종 개량 등 전방위적인 노력이 펼쳐졌고 그 결과는 숫자로 나타났다. 자, 그럼 이 영향은 어떻게 나타났을까? 소고기뿐만 아니라 다른 음식에 대한 선호에도 변화가 나타났다. 그게 바로 방어다. 사람들은 방어의 기름진 맛을 즐기기 시작했다. 그전에는 바닷가에 사는 사람들도 찾지 않는 기름진 부위가 높은 값을 받으며 팔렸다. 쫀득한 활어의 식감이 아니라 숙성된 대방어의 서걱거리는 식감도 받아들여졌다. 그렇다면 이게 모두 제도의 힘일까? 애초에 기름진 부위가 고급 취급을 받았던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닐까? 이런 물음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여기에 대한 설명으로 인류학자 ‘마빈 해리스’는 자신의 책 <음식문화의 수수께끼>에서 밝히길, 애초에 인류는 지방 낀 살코기를 좋아했다고 말한다. 순수한 단백질만 섭취하면 아미노산이 인체를 구성하는 데 쓰이지 못하고 열량으로 소모되어버리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여러 원시 부족들이, 특히 에스키모인들이 기름기 많은 내장을 선호하며 살코기만 먹는 경우는 드물다고 설명한다. 한우와 와규의 눈 같은 마블링은 인간이 만든 제도와 원초적인 선호가 이룩한 공진화인 셈이다. 마블링이 덜 낀 이탈리아나 프랑스의 소고기는 무엇이냐고 반문할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은 조리 과정에서 올리브유나 버터 같은 지방을 적극적으로 사용하며 조리 후에도 소스 등을 이용해 지방을 적극적으로 가미한다. 이쯤 되면 왜 음식이 인문학인지 아리송해진다. 못된 삼촌이 여섯 살 먹은 조카에게 우라늄, 플루토늄 따위를 던지는 끝말잇기처럼, 결과와 이유가 끝없이 이어지고 때로는 이유도 결과도 아리송한 음식 이야기. 그 근본에는 우리의 입맛이, 가성비를 따지며 먹는 백반 한 끼가 단순한 개개인의 선호나 혹은 경제적인 결과물이 아니라는 함의가 숨어 있다. 음식에는 인간의 본성과 그 진화의 역사, 사회와 경제, 제도, 이 거창한 말들이 모두 담겨 있다. 그러니 방어 한 접시 앞에 두고 누가 쏘니 마니 다투지 말자. 대신 “사람들이 왜 방어를 좋아하게 되었는 줄 알아?”라고 한마디 던지자. 그러면서 제일 귀한 배꼽살을 젓가락으로 콕 집어 예를 들자. 그렇게 음식은 인문학이 되고 배꼽살은 당신 것이 된다.

정동현은 서울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대기업 유통 회사를 다니다가 훌쩍 영국의 요리 학교 탕트 마리Tante Marie로 유학을 떠났다. 호주의 레스토랑에서 늦깎이 셰프로 요리 열정을 불사르며 일했다. 저서로는 <셰프의 빨간 노트>가 있으며, 지금은 신세계그룹 F&B팀에서 ‘먹고(Food) 마시는(Beverage)’ 일에 몰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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