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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제 식품의 진실 @정재훈

2018년 11월 20일 — 0

식생활의 수준이 높아지며 수제 식품에 대한 수요도 날마다 증가하고 있다. 수제 식품의 맛과 영양은 과연 2~3배에 달하는 거금을 들이면서까지 먹을 만한 가치가 있는지 짚어보았다.

text 정재훈 — edit 양혜연 — photograph 류현준

식품 사기 전성시대

터질 것은 언제든 터지고야 만다. 유기농 밀가루로 만든 수제 쿠키와 케이크라며 팔던 제품이 대형 마트 완제품을 사다가 단순 재포장한 것이었음이 드러났다. 처음에는 아니라고 발뺌하던 업체는 결국 잘못을 시인하고 문을 닫았다. 정확히 언제부터 어떤 제품을 가지고 사기를 친 걸까. 나는 언제부터 속은 걸까. 사람들은 자괴감에 빠졌다. 충북 음성의 수제 과자점 미미쿠키는 이렇게 SNS로 흥해서 SNS로 망했다.

강력한 법적 조치 없이 식품 사기꾼들을 막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식품 사기를 쳐서 얻는 이득이 엄청나게 크기” 때문이다. 제품 포장만 바꾸고 수제품이라 속여 두 배 이상의 가격으로 폭리를 취한 미미쿠키 사태를 두고 국내 전문가가 한 말이 아니다. 영국의 식품 안전 전문가 크리스 엘리엇 교수가 ‘말고기 스캔들’ 이후 3년을 되돌아보며 <가디언>지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세기의 식품 사기로 불리는 말고기 스캔들은 2013년 1월 테스코, 알디 등의 영국, 아일랜드 대형 할인 마트에서 판매한 소고기 햄버거 패티에 말고기, 돼지고기 같은 다른 고기가 섞여 있음이 확인되며 촉발됐다. DNA 검사 결과 제품 다수에 돼지 DNA가 검출되었고, 테스코가 자사 브랜드로 판매한 제품에는 말고기가 무려 29%나 들어 있음이 밝혀져 소비자들을 화나게 했다(심지어 말고기 100%인 볼로네즈 스파게티도 있었다). 소비자의 관심이 전보다 높아지고, 전보다 더 까다롭게 식품을 고르는 사람 수가 늘어나면서 식품 사기 범죄도 더 극성을 부린다. 건강에 더 좋은 음식, 더 신선한 식품, 또는 환경에 더 나은 식품에 비싼 값을 치를 수 있는 소비자가 존재한다는 것은 식품 사기꾼이 소비자 기만으로 한몫 잡기에 딱 좋은 상황인 셈이다. 말고기 사건이 터지기 2년 전에 이미 영국의 농산물 판매점, 델리카테센, 레스토랑 여섯 곳 중 한 곳이 허위로 유기농, 신선, 수제 식품이라 선전하며 일반 상품을 판매한다는 충격적 조사 결과가 있었다. 수제 포테이토 케이크(감자채로 만든 전 비슷한 음식)라고 광고한 메뉴가 실제로는 냉동 해시브라운이었고, 수제 카빙 햄은 미리 포장된 냉동품이었으며, 홈메이드 파이로 판매된 제품이 실제로는 대량 생산품을 사다가 소포장한 것이었다. 오늘날 식품 사기는 세계 공통의 걱정거리다. 미미쿠키와 비슷한 사건이 지구촌 여기저기서 알게 모르게 벌어지고 있다. 미국 미시간 주립대학의 추산에 따르면 전 세계 식품 사기는 매년 56조 5000억원이 넘을 정도로 엄청난 규모이다. 미국에서 판매되는 와사비 제품의 95%는 호스래디시로 만든 가짜다. 2017년 미국 전역의 28개 레스토랑에서 판매 중인 랍스터 메뉴를 DNA 분석한 결과, 그중 35%에 저렴한 다른 해산물이 들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1981년 스페인에서 무려 2만 명이 독성 물질을 함유한 유채유로 제조한 가짜 올리브유를 먹고 그중 300명이 사망한 비극이 벌어졌지만, 30년 뒤인 2011년 스페인 코르도바에서 해바라기씨유 70~80%에 올리브유 20~30%를 섞어 팔던 업자들이 또다시 적발됐다. 등급이 낮은 올리브유를 섞어 만든 가짜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유와 다른 종자유로 만든 가짜 올리브유도 여전히 유통된다.

유기농, 수제 식품과 건강

미미쿠키 사례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식품 사기 속에 숨은 또 다른 거짓말이 보인다. 바로 유기농과 수제가 건강에 더 좋다, 더 안전하다는 거짓말이다. 유기농 달걀과 유기농 밀가루를 재료로 하여 솜씨 좋은 제과사가 소량으로 구워낸 과자와 대량 생산된 과자의 영양상 차이는 크지 않다. 어린 자녀에게 수제 쿠키를 먹인다고 마트에서 파는 과자를 먹을 때보다 더 건강해진다고 볼 만한 근거도 없다. 일부 소비자는 미미쿠키가 재포장된 대량 생산품이었음을 알고 나자 아토피성 피부 증상이 악화되었다고 호소하기도 했지만, 이는 노세보 효과였을 가능성이 높다(가짜 약으로 유익한 효과를 얻는 것과 반대로, 가짜 약으로 약 부작용을 경험하는 것을 노세보 효과라고 한다). 수제 쿠키나 케이크가 건강에 특별한 유익이나 차별점을 주지 못한다는 건, 수제 맥주로 바꿔 생각해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수제 맥주라는 번역이 적절한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지만, 소규모 양조장에서 만든 크래프트 맥주를 마신다고 공장에서 대량 생산된 라거 맥주보다 건강에 좋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드물다. 맛과 향이 독특할지는 몰라도 인체에 미치는 영향 면에서는 차이가 없다. 그냥 둘 다 술이다. 마찬가지로 내추럴 와인의 다름과 새로움을 논하는 건 납득할 만한 일이지만, 이산화황 미첨가 또는 최소 사용으로 건강에 더 좋다고 주장하는 건 무리다. 발효 과정에서 자연히 이산화황이 생겨나기도 하지만, 세간에 나도는 이산화황과 두통의 관계에 대한 속설도 아무 근거가 없다. 내추럴 와인을 마셔도 머리 아프다. 와인 속 두통 유발 성분이 정확히 무엇인가는 아직 모르지만, 발효 중에 생겨나는 티라민, 히스타민과 알코올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인구의 1% 이하로 추정되는 이산화황에 과민 반응인 사람(주로 천식 환자)을 제외하면 건강 때문에 내추럴 와인을 마실 이유는 없다. 과일과 채소를 많이 먹느냐, 술과 고기를 자주 즐기느냐에 따른 건강상의 차이에 비하면 일반 과일, 공장 맥주, 기존 와인과 유기농 과일, 수제 맥주, 내추럴 와인의 건강상 차이는 무시할 만큼 작다. 사람의 건강에 중요한 것은 수제나 유기농 식품이 아니라 전체 식사 패턴이다.

블라인드 테이스팅의 진실

음식 사기의 범람은 우리의 감각과도 관련된다. <백종원의 골목식당>으로 뜨거웠던 막걸리 논쟁의 이면에는 웬만한 전문가라도 맛만으로 무슨 막걸리인지 맞추기 어렵다는 사실이 있다. 12종의 막걸리 중 백종원은 겨우 셋, 막걸리집 사장은 둘을 맞혔다. 영국과 아일랜드 사람들은 냉동식품에 들어간 게 DNA 테스트 결과가 언론에 보도되기 전까지 소고기인지 말고기인지 구분하지 못했고 미미쿠키에서 판매한 쿠키와 롤케이크를 구입한 소비자들은 자신들이 맛본 게 실은 코스트코에서 판매 중인 양산품이었음을 누군가 문제 제기를 하기 전까지 깨닫지 못했다. 맛으로는 수제인지 유기농인지 구분하기 어렵다. 맛으로 어떤 막걸리인지 맞히는 게 불가능하다는 얘기는 아니다. 저명한 와인 칼럼니스트 제이미 구드가 말한 것처럼 “어떤 상황에서도 정확히 블라인드 테이스팅할 수 있는 사람이 극소수 또는 단 한 명만 존재한다고 해도 그러한 능력이 실재한다는 것을 증명하기에 충분”하다. 미미쿠키 과자가 수입 양산품이었음을 먼저 눈치챈 사람이 있었다는 사실은 소수이지만 감각이 더 예민한 사람이 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우리 대부분은 다른 사람의 말에 흔들리는 상대 미각을 가진 사람들이다. 수제라는 말만 들어도 더 맛있게 느껴지고, TV에서 과자를 굽고 음식을 만드는 과정을 멋지게 보여주면 미처 맛보기도 전에 맛좋을 거라는 생각에 빠진다. 한국인의 미각만 특별히 뒤처지거나 둔감한 게 아니다. 어디서부터 직접 만든 것인지 알 도리가 없는 정체불명의 홈메이드 음식이 메뉴를 장식하고 있는 건 세계 공통의 현상이다. 인간의 감각은 쉽게 흔들린다. 실험 정신이 투철한 <푸드 랩>의 저자 켄지 로페즈알트는 달걀노른자에 색소를 넣어 더 짙은 오렌지색으로 만들어주면 방사 사육 달걀이겠거니 생각하고 더 맛있게 느낀다는 점을 간단한 실험으로 보여줬다. 반대로 녹색 색소를 넣어 색깔을 구분하지 못하게 하면 방사 사육 달걀과 일반 달걀을 맞히기 어려워졌다. 수식어와 색깔만으로 음식 평가를 높일 수 있는 현실에서 레스토랑 주인이 손님을 속이고 싶은 유혹에 빠지기란 얼마나 쉬운 일인가.

그러나 상대 미각 때문에 불행할 이유는 없다. 덕분에 우리는 닭이 뛰노는 모습만 상상해도 달걀을 더 맛있게 즐길 수 있고, 수제라는 말만 들어도 과자의 향을 더 깊이 느낄 수 있다. 맛으로만 승부하면 대다수가 제일 좋아하는 보편적 양산품이 승리하는 게 당연할지 몰라도, 음식 이면의 풍성한 스토리는 감각의 총합으로서 다양한 음식을 즐길 수 있게 해준다. 다만 그 스토리가 허구가 아닌 진실이기만을 바랄 뿐이다.

정재훈은 서울대학교 약학대학을 졸업한 후 캐나다 토론토에서 다년간 약사로 일했다. 음식만큼이나 사람들과 요리와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걸 좋아한다. 잡지, TV, 라디오 등 여러 매체를 통해 음식과 약에 대한 과학적 정보를 전하고 있으며, 저서로는 <정재훈의 식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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