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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식의 의미 @김성윤

2018년 10월 12일 — 0

음식을 먹는 ‘방식’은 본능적으로 아는 것이 아니다. 학습을 통해 익히는 것이다.

text 김성윤

‘맛’이 학문의 영역에 들어온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미각에 대한 과학적 연구가 본격화된 건 20세기, 큰 성과가 나온 건 21세기에 접어들면서다. 혀에서 쓴맛을 감지하는 수용체는 2000년, 단맛 수용체는 2001년에야 발견됐다. 음식을 인문학으로 다룬 최초의 교육기관인 미식학대학(University of Gastronomic Sciences)이 국제슬로푸드협회에 의해 이탈리아에 개교한 게 2004년이니 이제 14년밖에 되지 않았다. 인간이 하루 세끼 음식물을 섭취한다는 걸 감안하면 놀라울 정도로 늦다. 이러한 미각 무시는 역사가 오래됐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은 멀리 우주와 보이지 않는 이데아까지 연구하면서도 자신의 세 치 혀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서는 관심 갖지 않았다. 그들은 맛을 연구 가치가 없는 분야라고 폄하했다. 시각·청각·후각·촉각과 달리 미각은 공유할 실체가 없고, 사람마다 차이가 크기 때문에 과학 또는 학문으로서 추구하기 힘들다는 어려움이 있기는 했지만 말이다. 음식이 학문의 영역으로 발전하기까지 오래 걸린 또 다른 이유는 우리가 음식 혹은 먹는다는 행위를 본능이라고 착각하기 때문이다. 즉 음식물을 섭취하는 행위, 단맛과 짠맛을 좋아하고 쓴맛을 싫어하는 선호도는 타고나는 것이지 학습이 필요 없다고 믿는다. 과학자들은 인간의 뇌가 수천 년에 걸쳐 단것을 선호하도록 진화했다고 설명한다. 수렵과 채집을 했던 구석기 시대 인류의 조상은 에너지원이 될 수 있는 단맛이 나는 열매를 쓴맛 나고 건강에 해로운 독소와 구분하는 방법이 필요했다. 이러한 조상들의 후손인 현대인들은 단맛을 거부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단것을 보면 뇌에서 즐거움 반응을 유발하는 부위가 활성화되며, 약물이나 알코올처럼 진통 효과까지 있다고 한다. 하지만 식습관은 본능만이 아니다. 학습 행동이다. 단맛과 짠맛은 누구나 좋아하지만, 얼마큼 달거나 짜야 좋은지는 개인마다 차이가 난다. 이 차이는 개인이 속한 문화와 가정에서 이뤄진 학습에 의해서 발생한다. 미국에서 태어난 사촌이 10년 전 여름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했다. 엄마는 콩국수를 만들어줬다. 사촌이 “얼마나 소금을 넣어야 하느냐”고 물었다. 엄마는 “먹어보고 간이 맞을 때까지 넣으라”고 했다. 사촌은 소금을 치고 맛보기를 반복하며 멈추지 못했다. “얼마나 소금을 넣어야 간이 맞는 건지를 모르겠다”며 난감해했다. 소금 간은 누구나 당연히 아는 것인 줄 알았지만 아니었다. 취재차 덴마크에 갔다. 수도 코펜하겐에서 가장 비싸고 맛있다는 레스토랑에서 저녁 식사를 초대받았다. 식당에서 내놓은 수프가 짜다 못해 소태 같았다. 먹지 않고 있으니 초대자가 “왜 먹지 않느냐”고 물었고, 나는 “너무 짜다”고 답했다. 그는 수프를 조금 맛보더니 “짜다고? 풍미가 좋은데(Flavorful)?”라며 의아해했다. 코펜하겐에서 오랫동안 성공적으로 영업해온 음식점이니, 아마도 대부분의 덴마크인들 입에는 나를 초대한 사람처럼 이 식당 음식 간이 딱 맞는 듯했다. 우리가 먹는 음식은 모두 먹는 법을 배운 음식이다. 잡식동물인 인간은 어떤 음식이 좋고 안전한지 알려주는 지식 없이 태어난다. 과거에는 어떤 음식을 먹어야 하는지 혹은 먹지 않아야 하는지만 배우면 됐다. 오늘날에는 어떤 음식을 ‘얼마나’ 먹어야 하는지도 배워야 한다. 옛날에는 먹을 음식이 부족했다. 음식물 섭취는 생존의 문제였다. 현대는 과식, 즉 음식물 과잉 섭취가 문제다. 값싼 고칼로리 식품이 사방에 널린 환경은 이제껏 인류가 경험해보지 못한 환경이다. 어떤 사람들은 설탕과 소금, 지방이 잔뜩 든 음식을 적정 수준으로만 섭취하고 멈춘다. 이들은 모든 인간이 본능적으로 맛있다고 느끼는 음식에 대해 다르게 반응하는 법을 배운 것이다. 배고프면 먹고 배부르면 멈추고, 고기·채소·탄수화물 등 영양의 균형이 잡히지 않으면 제대로 된 식사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스스로를 보호하는 섭식의 기술을 배워 익힌 이들이다. 어렸을 때 올바른 식습관 형성은 그래서 중요하다. 프랑스를 비롯 이탈리아, 일본, 미국 등 여러 국가에서는 그래서 어렸을 때부터 음식을 제대로 알고 바른 태도를 갖도록 ‘미각 교육’을 하고 있다. 다행히 식습관은 어른이 된 후에도 다시 학습할 수 있다는 게 최근 음식에 대한 연구 성과의 결론이다. 식습관을 결정하는 요인은 음식을 대하는 태도를 배운 방식에 있다. 행동심리학자 엡 쾨스터르는 “식습관은 경험을 통해 다시 배움으로써만 바꿀 수 있다”고 말한다. 우리가 어떤 음식을 선택하는지 수십 년 동안 연구한 쾨스터르는 “나쁜 식습관을 고치려면 ‘즐거움을 주는 음식’으로 만들어야만 바꿀 수 있다”고 주장한다. 브로콜리, 당근처럼 ‘올바른’ 음식을 건강에 좋다고 해서 억지로 먹으려고 노력한다면 결코 맛있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먹는 법은 숨쉬기처럼 태어나면서부터 자연히 아는 것이 아니다. 학습을 통해 익혀야 한다.

김성윤은 <조선일보> 음식전문기자이다. 이탈리아에 있는 국제슬로푸드협회 설립 미식학 대학에서 ‘이탈리아 지역별 파스타 비교 분석’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지은 책으로 <커피 이야기>, <식도락계 슈퍼스타 32>, <세계인의 밥>, <이탈리아 여행 스크랩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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