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헐적 단식은 요즘 대세로 떠오른 다이어트 방법이다. 심지어 수명 연장, 노화 방지, 인지 기능 향상, 치매를 비롯한 다양한 질병 예방 효과까지 있다는데 과연 사실일까? 간헐적 단식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알아본다.
명절은 끝났다. 불어난 체중을 어떻게 원상회복할 것인가. 16:8, 5:2, 1:1을 놓고 고민이 시작된다. 간헐적 단식을 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낯익은 숫자비다. 각각 16시간을 굶고 8시간 동안 식사하느냐, 일주일에 닷새는 평소대로 식사하고 이틀은 굶거나 최소한의 칼로리(500~600kcal)만을 섭취하는 방법, 하루 건너 하루꼴로 단식하는 방법을 뜻한다. (이렇게 격일로 단식하면 실제 굶는 시간은 자는 시간을 합해 36시간에 달한다.) 간헐적 단식은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식사법이며 동시에 요즘 대세로 떠오른 그야말로 핫한 다이어트다. 비욘세, 베네딕트 컴버배치, 휴 잭맨 같은 할리우드 스타의 체중감량법으로 유명하다. 몇 년 전 유행했던 구석기 다이어트가 원시 인류가 무엇을 먹었을까에 초점을 맞춘 다이어트라면 간헐적 단식은 우리 선조가 어떻게 먹었을까에 초점을 맞춘 다이어트 방법이다.
농사를 짓고 추수철 축제를 열기 전, 사냥과 채집으로 식량을 구해야 했던 인류 역사 초기에 매일같이 먹거리가 풍족했을 리는 만무하다. 주변 상황에 따라 잘 먹을 때도 있었을 테고, 도저히 먹을 것을 구할 수 없어 굶주리는 때도 있었을 테다. 간식은 고사하고 삼시 세끼를 챙겨 먹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우리 선조들의 기본적 식생활 패턴은 자신의 선택 의지와 무관하게 굶다가 먹다가 하는 일이 반복되는 간헐적 단식으로 맞춰졌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니 굶주림에 버틸 수 있는 방식으로 최적화된 몸은 가끔 굶어줘야 더 잘 작동한다는 생각이다. 앞서 소개한 것처럼 간헐적 단식의 구체적 실행 방법은 다양하지만, 원리는 모두 동일하다. 가끔은 배가 고파야 건강에 이롭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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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헐적 단식의 실제 효과
단식이 필요한 이유는 인슐린 때문이다. 식사를 하고 나면 잘게 쪼개져 소화, 흡수되는 포도당을 에너지로 쓰거나 또는 저장한다. 이때 세포 속으로 당이 들어갈 수 있도록 문을 열어주는 호르몬이 인슐린이다. 인슐린이 있어야 인체 세포가 당을 에너지원으로 사용할 수 있지만 동시에 인슐린에는 쓰고 남은 포도당을 지방 세포로 밀어 넣어 저장하는 효과도 있다. 식사 뒤에 배가 고파지면 처음에는 간과 근육에 저장된 글리코겐을 포도당으로 분해하여 사용한다. 하지만 여기서 시간이 더 흐르면 지방 세포에 저장된 지방을 꺼내 쓰기 시작한다. 이렇게 지방을 에너지원으로 사용하려면 먼저 인슐린이 줄어들어야 하고, 그러려면 굶어야 한다. 반대로 끼니와 끼니 사이에 간식을 하면 인슐린 수치가 떨어지기 어렵고 그만큼 지방을 에너지원으로 쓰기도 어렵다. 복부 지방을 줄이고 싶으면 최소한 10~12시간은 굶어야 한다는 말은 여기서 나온 것이다.
이론은 그렇다 치고 실제 효과는 어떨까? 간헐적 단식에 대한 현재까지의 연구 결과는 긍정적이다. 2015년 호주 연구팀에서 40건의 연구를 모아서 분석한 결과 10주 동안 체중이 3~5kg 줄어든 경우가 제일 흔한 것으로 나타났다. 간헐적 단식을 하면 다음 날 폭식을 하게 되지 않을까 염려하는 경우가 많은데, 실제로는 식욕이 줄어들 가능성이 높았다. 하루 굶는다고 해서 다음 날 두 배를 먹는 게 아니라 평소보다 10~20%를 더 먹는 정도에 그친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간헐적 단식의 체중 감량 효과가 기존 방식의 칼로리 제한 다이어트보다 더 효과적이진 않았다. 2017년 미국에서 발표한 다른 연구에서도 100명의 과체중자를 세 그룹으로 나눠 간헐적 단식, 기존의 칼로리 섭취 제한 다이어트의 효과를 비교한 결과 둘 다 평소대로 먹는 것보다는 낫지만 체중 감량 정도에서 별 차이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섭취 칼로리 제한이 살빼기의 핵심이라는 명제에는 변함이 없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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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중 감량이 다가 아니다
존스홉킨스 대학의 신경과학자 마크 맷슨 교수는 여기에 딴지를 건다. 간헐적 단식에 체중 감량 이상의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간헐적 단식 연구의 권위자인 맷슨 교수는 수명 연장, 노화 방지, 인지 기능 향상, 치매를 비롯한 다양한 질병 예방 효과가 칼로리 제한과는 관계없이 간헐적 단식으로 얻을 수 있는 유익이라고 믿는다. 실제로 그가 생쥐를 대상으로 행한 실험에서 교차식단에 따라 하루 건너 하루 단식시킨 생쥐의 뇌에 뇌유래 신경영양인자(BDNF)라는 뇌 신경 세포를 보호하고 연결성을 향상시키는 물질이 더 많이 생기는 것으로 나타났다. 배고픔이 주는 스트레스를 극복하기 위해 뇌가 적응하는 과정에서 더 건강해지는 것이라는 게 맷슨 교수의 설명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대다수의 연구가 동물을 대상으로 한 것이라 사람에게도 동일한 효과가 있는지는 불분명하다. 노화 방지와 장수에 효과가 있느냐는 또 다른 차원의 문제다. 생쥐나 원숭이가 아닌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장수 연구를 하기엔 인간의 수명이 너무 길다. 수십 년의 연구 도중에 연구자가 먼저 사망할 수도 있고, 대를 이어 연구한다 치더라도 비용이 어마어마하게 든다. 하지만 간헐적 단식과 장수에 대한 연구가 있긴 있다. 1957년 스페인의 요양원에서 120명의 60대 노인을 두 집단으로 나누고 한쪽은 평소대로 식사하도록 하고, 다른 한쪽은 하루는 평소의 절반 정도로 섭취 칼로리를 제한하고(약 900kcal), 하루는 평소대로 먹도록 하는 실험을 했다. 그 결과는 놀라웠다. 3년 뒤 두 집단을 비교한 결과 평소대로 먹은 환자들이 병원을 찾은 날이 간헐적 단식 집단에 비해 2배 더 높았고 사망자 수도 13명으로 단식한 집단(6명)에 비해 7명 더 많았던 것이다. 하지만 너무 오래전 연구인 데다 참여자 수가 너무 적어서 우연에 의한 차이가 나타났을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60대 노인 환자를 굶기는 방식의 실험은 요즘 관점으로 보면 무모하다. 윤리적 문제로 시작조차 어려운 연구다 보니 재현도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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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까 말까, 간헐적 단식
간헐적 단식이라고 장점만 가득할 수는 없다. 우선 생각보다 힘들다. 많게는 실험 참가자의 65%까지 중도 포기자가 나온다. 부작용도 생긴다. 드물지만 불면증, 입 냄새를 경험하는 사람도 있고 불안하거나 쉽게 짜증 내는 경우도 생기며 탈수 증상이 나타나거나 낮 시간에 졸려서 힘들 수도 있다. 간헐적 단식이 장기적으로는 당뇨병 발병 위험을 높일 수 있다고 우려하는 목소리도 들린다. 간헐적 단식이 기대와는 반대로 복부 지방을 늘리고 인슐린 저항성을 높여 췌장에 부담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도 아직 논란이 있긴 하지만, 만성 질환을 앓는 사람이 전문가와 상의 없이 과도한 간헐적 단식을 시도하면 위험하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한창 성장기에 있는 청소년이나 영양 결핍을 조심해야 할 노년층에게도 간헐적 단식은 답이 될 수 없다.
만약 한다면 어떻게 먹어야 할까? 정답은 없다. 하루 건너 하루 굶거나, 일주일에 이틀 단식 또는 절식하거나, 하루 중 8시간만 먹고 16시간은 굶는 방식 중 본인에게 맞는 방법을 택하면 된다. 과거 인류가 그랬던 것처럼 도저히 참을 수 없을 때는 조금이라도 먹고, 참을 만할 때는 가끔씩 굶기도 하는 정도로도 충분하다. 어제 저녁 가족이 함께 모여 즐거운 잔치를 벌인 뒤에도 아침을 건너뛰면 안 된다는 생각에 억지로 먹지는 말자는 거다. 사실 끼니는 생리적 배고픔에 따라 먹는 자연스러운 행동과는 거리가 멀다. 인간이 만든 사회적 약속일 뿐이다. (명절 잔칫상 역시 생리적 필요가 아니라 사회적 필요에 따라 먹는 것이다.) ‘배가 안 고프면 안 먹어도 된다, 끼니를 거른다고 건강에 해로울까봐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다.’ 이 사실을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체중을 적절히 유지하는 데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부자와 가난한 사람의 차이는 이것이니, 부자는 먹고 싶을 때 먹지만 가난한 사람은 먹을 수 있을 때 먹는다.” 4세기 전 영국의 정치인 월터 롤리 경이 이런 말을 남겼을 때만 해도 음식이 눈앞에 보이기만 하면 일단 먹고 봐야 할 궁핍한 처지의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먹고 싶을 때 먹는 게 어려운 건 요즘도 마찬가지다. 간밤에 늦게까지 회식을 했건 말건 오늘 점심은 다 같이 정오에 먹어야 하고, 저녁에는 또다시 빠질 수 없는 식사 모임에 참석해야 한다. 간헐적 단식도 쉽지 않은 현실이지만, 언젠가는 누구나 먹고 싶을 때 먹을 수 있는 세상이 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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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훈은 서울대학교 약학대학을 졸업한 후 캐나다 토론토에서 다년간 약사로 일했다. 음식만큼이나 사람들과 요리와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걸 좋아한다. 잡지, TV, 라디오 등 여러 매체를 통해 음식과 약에 대한 과학적 정보를 전하고 있으며, 저서로는 <정재훈의 식탐>이 있다.
text 정재훈 — edit 양혜연 — photograph 문성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