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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밥과 건강 @정재훈

2018년 9월 11일 — 0

20~30대의 70% 이상이 혼밥을 즐겨 먹는다. 요식업계 또한 이에 발맞춰 진화하는 중이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혼밥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갑론을박이 한창이다. 혼밥은 과연 건강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까.

text 정재훈 — edit 양혜연 — photograph 이향아

대세가 된 혼밥

세상 참 빨리 변한다. 20여 년 전, 내가 대학생이던 시절만 해도 달랐다. 나는 종종 혼밥을 즐겼다. 별맛 없는 학생회관 밥도 혼자 집중해서 먹다 보면 더 맛있게 느껴졌고 밥숟갈을 뜨며 상념에 빠져드는 재미도 쏠쏠했다. 하지만 그때만 해도 혼밥을 바라보는 주변 시선이 불편할 때가 많았다. 지나가던 친구들은 나를 보면 다가와 왜 밥을 혼자 먹는지 의아해하거나 다음에는 함께 먹자며 위로의 한마디를 건네기도 했다.
이제는 혼밥이 대세다. 2014년 구인구직 업체 알바몬이 대학생 674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대학생 72%가 하루 한 끼 이상 친구나 식구 없이 혼자 밥을 먹는다고 답했다. 2017년 11월 결혼정보회사 듀오가 20~30대 미혼 남녀 26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도 이와 비슷했다. 응답자의 71%가 혼밥을 즐겨 먹는다고 답했다. 혼밥하는 사람 수가 늘어나면서 이에 맞춰 공간을 재배치한 식당도 눈에 더 많이 띈다. 일본식으로 바 형태의 좌석을 늘리고 옆자리가 신경 쓰이지 않도록 칸막이를 친 곳도 있다.
혼밥 레벨 테스트도 인기다. 누가 어떤 기준으로 만들었는지 알 수 없지만, 편의점에서 밥 먹기부터 마지막 단계인 술집에서 혼자 술 마시기까지 모두 9단계로 되어 있다. 학생식당에서 밥 먹기는 겨우 2단계에 불과하다. 그래서인지 유튜브에도 패밀리 레스토랑, 고깃집, 횟집과 같은 상위 단계에 도전하는 이들의 동영상이 주류를 이룬다. 하지만 혼밥 레벨 테스트는 역설적이다. 난이도에 따라 혼밥의 단계를 나눈다는 것은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혼자 먹는다는 게 쉽지 않은 일임을 방증하기 때문이다. 거의 어디서나 1인 식사가 가능한 일본에서도 구루나비가 2116명의 회원을 대상으로 행한 설문조사 결과, 혼자 음식점에 들어가본 적이 없다는 사람이 14.6%나 됐다. 특히 고깃집에서 혼자 먹기는 꺼리는 사람이 많아서 전체 응답자의 40%가 넘었다. 혼밥의 원조로 불리는 일본 만화 <고독한 미식가>에도 주인공 이노가시라 고로가 남자 혼자 디저트 전문점에 들어가는 걸 어색해하는 장면이 나온다.

식사의 의미

인간에게 식사는 단순한 영양 섭취 이상의 사회적 의미를 지닌다. 편의점과 패스트푸드 레스토랑, 고깃집과 횟집이라는 장소에 따라 혼밥의 난이도가 달라지는 것은 영양이 아니라 사회적 의미 때문이다. 편의점과 패스트푸드 레스토랑에서 간단한 식사는 영양 보충에 주된 의미를 두는 식사이지만 고깃집과 횟집에서의 식사는 사회적 친교의 의미가 강하여 혼자 먹기 어려운 것이다. 장소는 그대로 두고, 시간적 배경만 바꿔도 혼밥의 빈도가 달라진다. 혼밥하는 미국인의 비율은 아침에는 61%에 달하지만 저녁 식사 때는 34%로 뚝 떨어진다. 같은 맥락에서, 평소 혼밥이 아무렇지 않던 사람도 명절이면 혼자 먹을 때 감정이 불편할 수 있다.
함께 모여 음식을 나눠 먹는 동물도 있긴 하지만, 서로 얼굴을 맞대고 대화를 나누며 때를 맞추어 식사하는 것은 인간뿐이다. 먹을거리를 앞에 두고 싸우거나 욕심내지 않고 자기를 조절하며 협동적으로 식사할 수 있는 능력 덕분에 오늘날 인간이 존재할 수 있게 되었다고 믿는 인류학자들도 많다. 우리가 다른 사람과 함께 먹는 것을 즐길 뿐 아니라, 다른 사람이 먹는 장면을 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워할 수 있는 것도 식사에 영양 공급 차원을 넘어서는 사회적 의미를 부여한 덕분이다. 혼밥하면서 책, 신문을 읽거나 TV를 보거나 스마트폰으로 먹방을 보는 것도 인간 특유의 사회성과 관련된 행동이다. 식당에서 혼밥할 때도 정도 차이는 있을지언정 식당 주인, 종업원과 약간의 인사를 주고받게 되기 마련이다. 혼자 먹는 동안이라고 절대적으로 혼자인 사람은 드물다. 무조건 혼밥을 반사회적 행동으로 치부할 수는 없다.

생각보다 복잡한 혼밥과 건강의 관계

혼밥이 건강에 해로운 것은 사실 아닌가 반문할 수 있다. 혼밥에 대한 연구가 아직 그리 많지는 않다. 하지만 점점 늘어날 것임이 분명하다. 세계적으로도 혼밥이 대세이기 때문이다. 마켓리서치회사 NPD그룹에 따르면 2016년 유럽 레스토랑 전체 방문의 30%가 1인 식사로 사상 최고 수준이었다. 혼밥에 더 관대한 미국에서는 전체 식사의 절반이 나 홀로 이루어진다. 혼밥과 건강에 대한 연구 결과가 뉴스 헤드라인에 최근 몇 년 동안 전보다 더 자주 등장하는 이유다.
이제껏 혼밥에 대해 보도된 연구 결과 대부분은 부정적이다. 2013~2014년 국민건강영양조사에 참여한 한국 성인 남녀 7725명을 분석한 결과, 하루에 두 끼 이상 혼밥을 하는 남성은 비혼밥족에 비해 대사증후군에 걸릴 확률은 64%, 비만 위험은 45%가 높게 나타났다. 일본에서 행한 다른 연구에서는 혼밥하는 사람이 비혼밥족에 비해 우울증 위험이 높게 나타났다. 하지만 혼밥이 건강에 해롭다는 결론을 내리기에는 아직 이르다. 상관관계가 인과관계를 보여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것만 기억해도 음식, 식습관과 건강에 대한 엉터리 뉴스 절반 이상을 거를 수 있다.) 비만으로 인해 대사증후군을 걱정하는 사람들이 혼밥을 많이 하는 것일 수도 있고, 우울한 사람들이 다른 사람과 함께 식사하기를 꺼리는 것일 수도 있는 것이다. 알약의 효과를 알아볼 때에야 한쪽에는 진짜 약, 다른 한쪽에는 가짜 약(Placebo)을 주고 실험할 수 있지만, 혼밥과 같은 생활 방식이 가져오는 차이를 알아보기 위해 사람을 대상으로 실험을 설계하고 실행하기란 실로 어려운 일이다.
연령대에 따라 혼밥이 미치는 영향이 다를 수도 있다. 호주와 일본의 20~40세 성인 72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 결과 혼자 식사하면 더 건강한 식생활을 하게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친구들과 어울려 먹고 마시다가 과식, 과음하고 다음 날 후회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연구 결과다. 하지만 반대로 그룹으로 모여서 식사하면 식사량이 줄어든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헷갈린다며 과학자를 탓할 수는 없다. 사람의 행동은 복잡하다.

진짜 문제는 외로움이다

공통의 다른 요인으로 인해 혼밥과 질병 위험이 함께 증가하는 것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아이스크림 판매량이 증가하는 동안 익사 사망자 수도 증가하지만 아이스크림 판매 증가가 익사 사망자 증가의 원인이 아닌 것과 같다. 마찬가지로 잦은 혼밥과 질병 위험 증가에도 공통적 원인으로 지목할 만한 요소가 하나 있으니, 바로 외로움이다. 사회신경과학의 대가이며 외로움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로 유명한 시카고 대학의 존 카치오포 교수는 자신의 책 <인간은 왜 외로움을 느끼는가>에서 중년에 외로움을 느끼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술을 더 많이 마시고 운동은 더 적게 하며 기름진 음식을 즐겨 먹는다는 점을 지적한다. 혼밥은 외로움으로 인한 결과인가 아니면 혼밥 때문에 더 외로운 기분이 드는 것일까? 답은 사람마다 다르다. 외로움에 대한 개인의 감성이 다르기 때문이다. 인간은 다양한 유전적 성향을 가지고 있다. 사회적 환경이 더 중요하긴 하지만 사람에 따라 유전적으로 외로움에 더 취약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매일같이 친구를 만나야 만족스러운 사람이 있는가 하면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기고 더 적은 수준의 사교에 만족스러운 사람도 있다. 사람마다 혼밥에 대해 느끼는 감정이 다를 수 있다.
<고독한 미식가>의 주인공 고로는 책 제목과 달리 전혀 고독하거나 외로워 보이지 않는다. 혼밥 시간 동안 낯선 사람들과의 교류를 즐기고, 때로는 자신만의 사색에 빠지며 오롯이 혼밥을 즐기는 사람이다. 최근 배달 음식이나 간편식을 넘어서 미리 자신만의 프렙밀을 만들어두고 소분하여 먹는 사람이 늘고, 혼밥족을 위한 요리책 출간이 이어지는 것 역시 비슷한 흐름이다. 혼자 먹는다고 외롭지 않은 사람에게 혼밥이 어떤 해를 주기는 어렵다. 하지만 자신의 선택과 관계없이 매일같이 고독을 씹으며 괴롭게 혼밥을 이어가는 사람도 분명히 존재한다. 카치오포 교수에 의하면 외로움이 신호가 되는 순간이다. 이럴 때 외로움이 주는 감정적 신체적 괴로움은 끊어진 사회적 유대를 얼른 회복하라고, 잠시 혼밥을 멈추고 함께 밥을 찾아가라고 몸이 보내는 신호인 것이다. 건강한 삶을 살기란 실로 어렵지 않으니 그때그때 다른 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기만 하면 된다.

정재훈은 서울대학교 약학대학을 졸업한 후 캐나다 토론토에서 다년간 약사로 일했다. 음식만큼이나 사람들과 요리와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걸 좋아한다. 잡지, TV, 라디오 등 여러 매체를 통해 음식과 약에 대한 과학적 정보를 전하고 있으며, 저서로는 <정재훈의 식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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