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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식의 의미@박찬일

2018년 9월 14일 — 0

최고급 요리에도 사람의 언술 안의 영역이 있다는 사실은 곧 음식은 인문학이라는 방증이다.

text 박찬일

전에 지리산 골짜기에 간 적이 있다. 이른바 귀농자라고 불리는 농업 이민자들, 아니면 그저 도시가 싫어서 온 사람들을 불러 모아 짧은 요리 강의를 했다. 말하자면, 어떤 작물의 재배량을 늘리는 기술이라든가 아니면 자식 명문대 보내기 특강 같은 것이 아니었는데도 호응이 뜨거웠다. 더구나 그날의 요리 주제는 ‘스테이크 잘 굽기’였다. 맙소사. 내가 제대로 감을 잡고는 온 걸까. 시골(!)이니까 호박오가리떡이나 토종닭 요리법을 알려줘야 하는 것은 아닐까 하고 걱정되었다. 결론적으로 강연은 엄청난 열기에 빠졌다. 심지어 ‘팬을 달구는 기름 종류는 무엇이 좋은가’까지 질문을 받았으니까. 도시든 시골이든 사람의 먹는 욕망은 비슷하다. 다만 도시는 돈이 없어서, 시골은 사먹거나 해먹을 방법이 없어서(물론 돈도 없을 것이다) 나 같은 떠돌이 요리사의 강연에 귀를 쫑긋했던 것이었다. 사람 사는 데는 어디나 비슷하다. 지리산에도 텔레비전을 켜고 유명 요리사가 나오는 프로그램을 본다. 프로그램에서 본 안심 스테이크 거리를 사기 위해서는 도시와 달리 미리 주문을 해야 한다는 게 다를 뿐이다. 요는 강연이 끝나고 나서였다. 서울에서 흔히 하듯 어디서 파는 스테이크가 맛있더라, 어느 백화점 고기가 좋더라는 얘기와는 결이 다른 이야기들이 흘렀다. 축사가 이 골짜기에도 많아서 토양과 수질이 나빠진다, 당신들(도시 사람)은 시골의 낭만을 생각하는데, 고기를 생산하는 이곳에 오히려 좋은 고기가 없다, 모두 도시로 팔려가기 때문이다, 소비력도 없고 생산하면 다 도시로 인터넷으로 내다 팔기 바쁘다…. 미식과 음식의 철학은 도시의 식탁에서 이루어지는 담론이다. 생산자는 철저하게 배제된다. 생산자들을 더러 만나러 가면 식탁을 받게 되는데, 농어촌에서 밥상을 받으면 제일 먼저 듣는 인사가 “좋은 건 다 팔아치우느라 우리는 이렇게(소박하게) 먹어요. 미안해요”다. 도시의 미식을 떠받치는 건 생산자이고, 그들은 도시인의 시각에서 보면 가장 낮은 단계의 미식을 하고 산다. 쉐이크쉑 버거도 없고, 드라이에이징 스테이크도 없다. ‘오마카세 스시야’에서 먹고 싶은 ‘우니와 노리마키의 환상적 조합을 특별히 내어주시는 셰프님’도 만날 수 없다. 우리가 먹는 일은 두 가지 동력을 얻기 위한 것이다. 하나는 세포에 에너지를 공급하는 것, 그 과정에서 혀에 기왕이면 즐거움을 주는 것. 시중의 말로 ‘다 똥으로 가는 건 마찬가지인데 왜 그리 먹는 걸 따지냐’의 기본적인 해명으로는 부족하다. 그렇다. 무엇을 어떻게 먹는가는 사람의 정신적 행위에 연결된다. 이것을 흔히 맛의 인문학이라는 이름으로도 부른다. 어처구니없는 일이지만, 매년 6·∙25 기념일이 되면 무슨 보수 단체에서 주먹밥 먹기 청소년 체험 행사를 연다. 기왕이면 살수대첩 당시 고구려군의 전투식량 체험도 했으면 좋겠지만 고증 부족(?)으로 아마 못할 것이다. 어쨌든 그것도 맛에 대한 인문적 행위다. 음식을 통해 기억을 소환하고자 하는 것이다. 의도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을 뿐이지만. 유대인들이 효모가 들어 있지 않은 맛없고 딱딱한 빵을 씹으며 계율을 실천하고 고난받았던 조상을 기억하려고 하는 것도 인문이다. 그건 조리법과 미각 이전의 ‘사람의 존재 가치’에 대한 공감이기 때문이다. 흔히 밥상 앞에서 기도를 하는 이들이 있다. 신에 대한 감사도 있겠지만, 음식을 준비한 이들, 재료를 짓고 포획한 이들, 이것을 먹을 수 있는 내 자신의 존재에 대한 감사를 할 수도 있다. 먹어서 존재하는 것! 그 절대적 명제에서 우리는 삶의 중요한 단서들을 포집한다. 왜 서양 식당에서 파는 스파게티는 2만원이고, 한식당의 국수는 5000원인가. 김밥은 2000원인데 몸에도 안 좋아 보이는 마요네즈와 색소 들어간 날치 알을 얹은 롤은 2만원인가 하는 데 의문을 갖는 것도 인문학이다. 그것은 우리가 먹는 음식을 사회 구조 안에서 풀어보려고 하는 시도로 이어진다. 소설가 권여선이 얼마 전에 책을 냈다. 그이가 즐겨 먹는 술안주에 대한 기억을 아프고도 유머러스한 필치로 그려낸 수필집이다. 식은 콩나물국이나 젓갈 한 종지도 그이에게는 완벽한 안주가 된다. 음식의 열량과 제조법보다 술안주로 간택된 사연이 담담하게 그려진다. 그것을 읽으면 우리는 작가가 펼쳐놓은 상에 다가앉고 싶고, 다 읽고 나면 어떻게든 이 사람이 즐겨 가는 어느 식당에 불쑥 가서 겸상으로 소주를 마시고 싶은 충동을 겪게 된다. 그것이 결국 우리가 살아가면서 맞닥뜨리는 ‘인생의 절반은 음식이고 그것을 먹는 일’에 깊이를 더하는 것이 되는 셈이다. 나아가 음식이 왜 사람과 글(인문)에 사무치는 일인지 돌아보게도 된다. 나는 요리라는 걸 배웠는데, 레시피를 수집하고 칼질을 하며 원가 계산과 마케팅을 했다. 이른바 전문 요리의 세계다. 그렇지만 진짜 요리는, 돌이켜보면, 어머니가 콩나물국을 끓이려고 하실 때 마늘 까는 일을 도와드리고 콩나물 껍질을 수습하면서 어머니의 움직임과 마음을 보는 것이 진짜 요리의 시작이었다고 생각한다. 천하의 유명 요리사들이 한 권에 수 만원짜리 요리책들을 수도 없이 많이 펴냈다. 레시피가 훌륭하고 사진이 멋지다. 그러나 그 책에서 제일 중요한 부분은 서문이다. 그가 어떻게 요리를 시작하게 됐는지, 감명받은 일은 무엇인지, 어머니가 해주시던 음식의 절절한 추억이 거기 실려 있다. 레시피와 사진이 요리 과학이라면, 서문은 최고급 요리도 사람의 언술 안의 영역이라는 걸 말해주는, 다시 말해서 인문의 영역이라는 걸 우리는 확인하게 된다. 그렇다. 그게 전부일 수 있다. 김치가 익는 건 발효 기술이 아니라 식구에게 먹이려는 엄마의 마음이라고 말이다.

박찬일은 이탤리언 요리를 하는 셰프다. 슬로푸드와 로컬푸드의 개념을 처음 한국에 도입했다. 재료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운 방식으로 무국적 요리를 선보이며 서교동 ‘로칸다 몽로’ 등의 주방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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