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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화복춘 골드 @정동현

2018년 9월 19일 — 0

연남동에 사람들이 줄을 서는 중식당이 있다. 그곳은 피가 끓고 눈빛이 형형한 젊은 요리사들이 칼을 들고 불을 다룬다. 그들의 손에서 나온 음식은 고함을 칠 것만 같은 기백이 서려 있다. 그리하여 중화복춘 골드는 젊음이었다.

text 정동현 — illustration 왕조현

한국 중식은 근대화의 산물이자 억압의 증거였다. 1900년대 건설 노동자로 바다 건너 산둥반도 중국 노동자들이 인천으로 밀려 들어왔다. 자연히 그들을 먹이기 위한 음식도 함께 들어왔다. 지향점은 미식이 아니었다. 노동자들의 배를 채울 수 있는 싸고 양 많은 음식이면 됐다. 중화냄비 몇 번 잡아보지 못한 이들도 음식 장사를 했다. 그 와중에 춘장에 비벼 먹던 자장미엔이 짜장면으로 이름을 바꿨고 일본에서 물 건너온 하얀 짬뽕에는 고춧가루를 쳤다. 해방 이후 중식은 위를 향하지 못하고 밑에 머물게 된다. 미국산 밀가루가 시장에 풀리고 덩달아 중식 면 요리가 급격히 대중화됐다. 그러나 박정희 정권은 화교를 정치적으로 탄압했고 그들의 사유 재산을 인정하지 않았다. 화교로서 먹고살 수 있는 길은 주방 일을 하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음식값조차 마음대로 정할 수 없었다. 짜장면과 짬뽕은 생필품으로 가격 통제를 받았다. 고급 요리는 사라지고 싼 재료로 많은 양을 만들 수 있는 기술만 남았다. 배달 음식의 대명사로 중식이 꼽히게 되면서 그 질은 더욱 하락했다. 사람들은 짜장면 한 그릇으로 끼니를 때우고 싼 고량주를 마시면서 중식 요리사를 ‘짱깨’라고 불렀다. 그것이 한국 중식의 백 년이었다. 시대는 변했다. 지금 2018년, 오랜 세월 낮이면 철가방을 들고 밤이면 주방에서 매를 맞아가며 요리를 배운 노사부老師父들이 텔레비전에 나와 요리 대결을 펼친다. 짱깨라는 비속어 대신 셰프라는 외래어가 그들 이름 앞에 붙는다. 무협지마냥 무슨 무슨 문파라는 말도 유행하듯 쓰인다. 그럼에도 여전히 한국 중식은 짜장면, 짬뽕, 탕수육이다. 대중들이 원하고 또 그래서 팔기 쉽기 때문이다. 조금씩 변화는 일어나고 있다. 조선족 동포들의 이주로 양꼬치집이 대거 생겨났다. 양꼬치집들을 중심으로 산둥반도가 아닌 연변을 비롯한 중국 동북성 요리들을 선보인 지 20년이 넘었다. 중국 사천의 훠궈도 중국 유학생들과 함께 대학가 중심으로 자리를 잡고 저변을 넓혀가고 있다. 중국 본토의 가장 큰 훠궈 레스토랑도 한국에 이미 상륙했다. 이 변화들이 외부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또 어디선가는 자생적으로, 젊음과 배움을 통해 스스로 변화해가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그중에서도 한국 중식의 오랜 터전인 연남동에서 자리를 잡은 ‘중화복춘 골드’가 있다. 중화복춘 골드는 찾기 쉽다. 위치가 좋지는 않다. 연남동 주 거리에서 족히 5분은 빠르게 걸어야 한다. 하지만 전면에 걸린 큰 간판과 거침없는 기세로 써내려간 한자 ‘중화복춘’에서 눈길을 돌리긴 쉽지 않다. 이곳을 찾는 사람이면 익히 알겠지만 중화복춘 골드는 중화복춘의 분점 격 되는 식당이다. 그러나 자기 복제하듯 만든 분점은 아니다. 오히려 본점보다 더 나아진 업그레이드 판에 가깝다. 반지하에 연기가 잘 빠지지 않았던 본점은 잊어도 좋다. 1층 전면에 자리한 주방에서 육식 동물처럼 빠르게 움직이는 요리사들 표정만 봐도 음식 맛이 짐작된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자연스레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이 떠오른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 나타났다.’

노벨문학상을 받은 역사적인 소설의 역사적인 첫 문장처럼, 중화복춘 골드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니 40도에 가까운 열기가 치닫는 한국이 아닌 중국 대륙 어딘가, 작은 방에서는 진한 화장을 한 여인들의 입에서 하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작은 주방에서는 요리사가 땀을 흘리며 진귀한 재료를 다듬는 은밀한 식당에 와 있는 듯했다. 닫힌 듯하면서도 열린 식당의 앞 공간에는 윤이 빛나는 의자와 탁자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금색과 적색으로 치장한 내벽을 바라보며 더 안쪽으로 들어서면 반원을 바탕으로 짠 룸들이 여럿 나타났다. 마작판을 펼쳐 해야 할 듯한 작은 룸에 앉으니 멀찍이 주방이 보였다. 액션 영화 세트 현장처럼 조명을 받는 요리사들이 보였다. 여느 식당에서 쉽게 볼 수 없는 시각적 장치였다. 이곳을 만든 이가 주방과 홀의 역학 관계와 손님의 시선 모두를 잘 헤아릴 수 있는 경험이 많다는 걸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메뉴판을 살피기도 전에 조리복을 잘 차려입은 종업원이 와서 정중히 물었다.

— “차는 어떤 걸로 하시겠습니까? 재스민차와 보이차 두 종류가 있습니다.”

한국의 어느 중식당에 가도 차 선택권을 주는 곳이 없다. 차라리 외국 중식당처럼 차를 사 마실 수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그런 사소한 배려를 이 나라에서 찾기는 힘들다. 무엇보다 향을 중시하는 중식에서 차를 즐기지 못하면 식사의 즐거움이 절반 이하로 떨어진다. 중화복춘 골드는 차를 고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질도 부끄럽지 않은 수준이었다. 꽃향기가 나는 재스민차를 마시며 사진 액자처럼 생긴 메뉴판을 펼쳤다. 노란 바탕에 메뉴가 가득 보였다. 일반 중식당에서 보기 힘든 메뉴가 다수였다. 친숙한 메뉴가 있다 하더라도 설명을 차근히 읽다 보면 예사롭지 않은 재료가 보였다. 우선 전채 격으로 양장피를 시켰다. 큼지막한 원형 접시에 담겨 나온 양장피는 기하학적인 현대미술 작품처럼 색의 배열이 예사롭지 않았다. 가로로 넓게 채를 썬 오이와 토마토, 갑오징어, 편육 등이 회중시계의 숫자처럼 대칭이 되는 지점에 정확히 자리를 잡았다. 중앙에는 굴소스 등에 볶은 해물과 채소가 갈색이 되어 김을 뿜어냈다. 종업원은 겨자를 중앙에만 살짝 뿌려 조심스럽게 버무렸다. 우악스럽게 겨자를 붓고 엉망이 되도록 섞어버리는 광경은 이곳에 없었다. 대신 상대방의 의중과 기분을 헤아리는 섬세한 배려가 있었다. 양장피는 보는 순간 탄성이 나올 정도로 거대했는데, 그것이 기괴하여 놀랐을 때의 나는 탁한 소리가 아니었다. 잘 정제된 작품에 대한 탄성이었고 뒤이어 맛을 봤을 때는 은근한 신음 소리가 흘러나왔다. 갑오징어, 편육과 같은 차가운 재료에는 각각에 맞는 소스가 올라가 있었다. 차가운 음식이기에 맛을 이끌어낼 수 있는 소스는 필수적이다. 뒤이어 어향가지와 라즈지가 나왔다. 어향가지는 한 면에는 찹쌀 반죽을 입혀 도톰하고 폭신하게 튀겼고 한 쪽은 가지를 그대로 남겨둬 가지 특유의 쫀득한 식감을 살렸다. 일반적인 어향가지가 가지를 통째로 튀겨내는 것에 비하면 몇 번의 세공을 더 거쳐야 하는 음식이었다. 밑에 잔잔히 깔린 어향 소스와 중앙부에 놓인 채소볶음을 곁들여 가지를 한 입 먹었다. 입에서 느껴지는 양감量感에 솜사탕을 깨문 것처럼 절로 눈이 감겼다. 튀김옷으로 소스가 배고 씹을 때마다 고기를 닮은 가지의 육질이 이에 엉겼다. 밝고 경쾌한 매운 소스가 혀를 총총히 울렸다. 그다음은 뼈째 튀긴 라즈지였다. 닭과 연근을 튀긴 뒤 사천 후추와 쥐똥고추 등을 잔뜩 넣은 소스에 살짝 버무려 건조하게 낸 라즈지는 유산지를 바닥에 깐 채 거대한 크기로 나왔다. 이를 통해 울리는 바삭한 식감이 몸에 전해지면 그다음은 날카롭게 쏘는 매콤한 맛이었다. 그리고 잠시 뒤에는 묵직하게 몸을 울리는 얼얼한 맛이 위장을 타고 올라왔다. 식감과 맛의 결이 같았다. 아웃복서처럼 빠르게 치고 빠지다가 한번씩 얹는 보디샷에 냉수를 찾았다. 매운맛에 정신을 못 차릴 무렵 동파육이 테이블에 올라왔다. 연잎에 싸서 찐 동파육은 모양새와 향, 맛 모든 면에서 특이했고 탁월했다. 동파육은 삶고 튀기고 찌는 조리 특성상 고기의 식감이 아주 부드러워진다. 그런데 그 식감에 초점을 맞춘 나머지 맛이나 향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는 곳도 많거니와 조리에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아예 메뉴에서 빼버리는 경우도 잦다. 이 집의 동파육은 다른 메뉴와 마찬가지로 등장할 때부터 이목을 끌었다. 종업원은 마치 신전에 제물을 바치듯 연잎을 한 꺼풀씩 벗겨냈다. 그 안에 남국의 그을린 청춘처럼 갈색빛으로 빛나는 동파육이 있었다. 여름을 닮은 연잎 향이 조용히 자리를 비우고 정념의 힘이 담긴 계피 향이 몸에 스며들었다. 엿을 달여 넣은 듯 수더분한 단맛이 올라오고 돼지 지방의 나긋한 질감이 그 뒤를 이었다. 그리고 테이블 가운데 사자두완탕이 놓였다. 고기 경단이 사자 머리를 닮았다 하여 사자두완탕이란 이름이 붙은 이 탕국은 강인한 생강 향이 함께했다. 고대 유물처럼 커다란 자기 안에 놓인 완탕은 중국 황제의 수라상에 올라왔을 것 같은 당당하고 웅장한 자태였다. 하지만 숟가락으로 조심스럽게 경단을 잘라 입에 넣었을 때 봄처럼 부드럽고 향기롭게 경단이 흩어져 내렸다. 모두 익숙하고 편안한 방식이 아닌, 용기와 기백으로 뭉친 요리였다. 타협하지 않고 대신 고민하며 밤을 지샌 요리였다. 몸을 움직여 뜯고 던지고 그을려낸 젊음의 맛이었다.

정동현은 서울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대기업 유통 회사를 다니다가 훌쩍 영국의 요리 학교 탕트 마리Tante Marie로 유학을 떠났다. 호주의 레스토랑에서 늦깎이 셰프로 요리 열정을 불사르며 일했다. 저서로는 <셰프의 빨간 노트>가 있으며, 지금은 신세계그룹 F&B팀에서 ‘먹고(Food) 마시는(Beverage)’ 일에 몰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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