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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과 인문학 @이독실

2018년 8월 14일 — 0

역사, 유전, 진화, 심리, 문화에 이르기까지 음식은 세계를 변화시키는 원동력이다.

text 이독실

음식은 세상을 구성하고, 세상을 변화시킨다. 어쩌면 세상 그 자체인지도 모른다. 오죽하면 먹기 위해 산다는 말이 있을까. 음식이 무엇이냐에 따라 문화가 달라졌고, 풍습이 달라졌다는 것은 굳이 이야기하지 않겠다. 원시 인류가 불을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드라마틱하게 변한 것 중 하나가 생고기를 익혀 먹기 시작했던 것이고, 그것이 영양 흡수율을 높이고 보관 기간도 늘려주며 기생충 감염을 막아주면서 원시 인류의 수명 연장과 에너지원으로서의 효율 증가가 이루어졌음을 언급할 필요도 없겠다. 근대까지도 귀족 계급과 평민 계급의 음식은 판이하게 달랐으며, 서양의 경우 프랑스 대혁명을 지나 부르주아지들이 귀족들의 음식 문화를 흉내 내면서 테이블 매너가 널리 보급된 것도 익히 알려져 있다. 당시 세계 문화의 중심이라기엔 한참 촌스럽던 유럽이 사실상 세계를 제패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된(그 후 끔찍한 제국주의를 불러온) 대항해 시대도 동방의 향료를 성공적으로 유럽에 실어오기만 하면 떼돈을 벌 수 있기 때문이 아니었던가. 이 모든 것이 먹거리와 연관이 있다. 음식이 문화를 변화시키고 지배한다는 것은 비단 인간에 국한된 것만은 아니다. 동물들은 섭취하는 음식에 따라 이빨의 형태, 턱의 구조 등이 전부 변하게 된다. 그러나 인류가 동물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다양한 음식을 각각의 특성에 맞게 영양 흡수율을 높이거나 ‘맛있게’ 요리하는 것을 개발하고 연구하며 살아왔다는 점이다. 이것은 단순한 미식이 아닌 과학이자 영양학이다.

샐러드에 오일 드레싱을 뿌리는 것은 지용성 비타민의 흡수를 도울 뿐 아니라 분명히 더 맛있다. 빵을 기름에 찍어 먹는 것은 대항해 시대의 선원들에게는 거의 허락되기 어려웠던 사치였다. 인류의 진화 과정에서 단맛을 쓴맛으로 느껴 극도로 싫어하는 개체가 발생했다고 해보자. 과연 그 개체가 도태되지 않을 수 있을 것인가. 지방을 고소함으로 느끼지 못하고 느끼함으로 여겨 지방이 많은 음식들을 싫어하는 개체들이 가득한 집단은 아마도 오랜 시간 생존에 실패했을 것이다. 단맛을 선호하고, 단맛에 행복을 느끼도록 진화한 것은 유전적이다. 여기에 돌연변이가 발생하면 분명 생존에 크게 위협이 되었을 것이고, 후대에 그 돌연변이 유전자를 남기지 못했을 것이다. ‘지방 맛’에 대한 최근의 연구는 지방의 맛에 둔감한 사람이 비만이 많다는 것을 밝혀내기도 했다. 지방에 지나치게 예민해서 지방 섭취를 피하도록 만든 유전자는 지금과 같은 공급 과잉의 시대엔 적합할지 몰라도, 과거에는 생존에 불리했을 것이다. 사냥에 성공한 고기를 나눌 때 지방 가득 영양 만점인 내장을 모두에게 양보하고 혼자 살코기만 먹었을 테니까. 인류의 주 영양 공급원인 탄수화물은 어떤가. 흔히 인류를 부양하는 3대 곡물로 벼, 밀, 옥수수를 꼽는다. 이 곡물들은 위도, 고도, 강수량 등 자연환경에 따라 그 생산량이 차이가 난다. 우리에겐 쌀이 익숙하지만 서양 사람들에겐 밀이 더 익숙하겠다. 이때 어떤 문화권이 어떤 곡물을 주식으로 하느냐에 따라 특성이 달라진다. 밀을 재배하는 과정은 기본적으로 독립적이다. 협업보다는 각자가 알아서 근면 성실하게 일을 하는 것이다. 물론 밀 문화권에서도 집단주의는 나타난다. 중세엔 밀가루를 만들기 위한 방앗간(혹은 풍차)과 빵을 굽기 위해 필요한 화덕을 마을 공용으로 사용했고, 개인은 가질 수 없었다. 이를 사용하기 위해선 제법 부담되는 사용료를 지불해야 함은 당연했다. 중세 장원의 소유주, 근대 방앗간 주인은 모든 농부들에게 미움의 대상이 되며 농부들은 같은 마음으로 뭉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서양의 집단주의는 쌀 문화권인 동양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보잘것없는 것으로 느껴진다. 물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벼의 특성상 관개 시설이 중요하고, 제한된 물을 자신과 이웃의 논에 적절하게 분배해야 한다. 관개 시설 공사는 혼자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논에 물을 대는 것도 공동체 전체가 지혜롭게 분배해야 한다. 쌀 문화권에서 주로 나타나는, 나를 축소하고 공동체를 확대하는 집단주의는 이렇듯 주식으로 삼는 곡물이 무엇이냐에 따라 각인되고 발현될 수 있는 것이다. 기호식품이 세상을 바꾼 것은 어떤가. 술이, 커피가, 차가, 담배가, 후추가 세상을 어떻게 뒤집어놓았는지는 차차 알아보도록 하자. 각 키워드들을 살펴보면, 각자가 음식 문화, 아니 세상 그 자체를 크게 움직여온 것을 알 수 있다. 자, 지금까지 이야기한 모든 것들은 사실 역사, 유전, 진화, 심리, 문화에 대한 것들이자 음식에 대한 것들이었다. 어쩌면 인류 문화의 발달은 더 질 좋은(혹은 선호하는) 식재료를 확보하기 위함이었는지도 모른다. 이렇게 힘들게 확보한 음식인 만큼 그것을 공유하는 문화 안에서는 공동체 의식이 생겨나고, 다른 음식을 먹는 사람들과 이질감을 느끼는 것은 자연스럽다. 예나 지금이나 손님이 주인에게 가장 좋은 인상을 심어주는 방법은 주인이 대접하는 음식을 (심지어 난생처음 보는 음식이라도) 맛있게 먹는 것이 아니었던가. 음식은 관계이고 동질감이다.

그렇다. 음식은 인문학이다. 음식물을 발견하고, 채집하여 확보하고, 재배하고, 투쟁하고, 다양하게 요리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조합하여 섭취하고, 함께 음식을 나누고, 빼앗고, 공급하고, 한쪽은 비만이 문제가 되고 한쪽은 기아에 허덕이는 이 모든 것들이 우리의 역사이며 과학이며 문화이며 기술이며 윤리이지 않은가.

이독실은 과학 칼럼니스트이자 과학커뮤니케이터다. 팟캐스트 ‘지대넓얕’을 통해 대중들에게 이름을 알렸다. 현재는 TV와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과학 및 인문학 패널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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