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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저트로 밥 먹는 사람들 @정재훈

2018년 6월 29일 — 0

코스 요리처럼 전식, 본식, 후식으로 나뉜 파인 디저트 전문점이 생기고 호텔가엔 디저트 뷔페 경쟁이 뜨겁다. 이는 디저트로 식사를 대신하는 이들이 날마다 늘고 있다는 증거다. 여태껏 ‘식사 후 먹는 음식’으로 여겨졌던 디저트가 과연 식사를 대신할 수 있는지에 대해 논한다.

text 정재훈 — edit 양혜연 — photograph 이병주

초콜릿 타르트로 점심을 먹는다. 마카롱으로 저녁을 대신한다. 카늘레와 에클레르와 수플레, 몽블랑과 푸딩과 밀푀유, 그리고 케이크, 케이크, 케이크. 디저트로 식사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크렘브륄레가 밥이고 아메리카노가 국이다.

밥 대신 디저트가 지금 대세라고 보긴 어렵다. 2015년 4월 대학내일20대연구소가 전국 20대 남녀 400명을 대상으로 한 온라인 설문조사에서 자신이 생각하는 디저트의 이미지로 ‘식사 대용으로 먹을 수 있는 음식’을 꼽은 사람은 응답자의 3.6%에 불과했다. 열에 아홉은 식사 후에 먹는 입가심용 음식 또는 입이 심심할 때 먹는 음식이라고 답했다. 디저트를 밥으로 먹는 사람이 구체적으로 얼마나 되는지 보여주는 다른 통계 자료를 찾기는 어렵다. 하지만 그런 사람의 수가 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청담동 기욤 같은 디저트 전문점이 신기했던 게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디저트를 전식, 본식, 후식으로 코스처럼 즐길 수 있는 곳이 여럿이고, 다수의 특급 호텔에서 디저트 뷔페를 경쟁적으로 선보인다. 설문조사에서 밥 대신 디저트를 먹는다고 대답하는 사람의 수는 적지만 실상 그렇게 먹고 있는 사람 수는 많다고 볼 근거가 있는 셈이다. 백화점에서도 디저트 강세는 두드러진다. 보도된 바에 따르면 신세계백화점에서는 5년 전에 이미 디저트 매출이 조리식품을 앞질렀다. 롯데백화점 본점은 2014년 이후 디저트 매장 수를 21개에서 38개로 배 가까이 늘렸고, 현대백화점 판교점은 처음부터 78개의 디저트 브랜드를 입점시켜 문을 열었다. 다른 백화점 지하 매장에서도 가장 줄이 길게 선 곳은 대부분 디저트 매장이다. 타르트, 컵케이크, 마카롱, 티라미수, 브라우니, 생크림 롤케이크, 치즈케이크가 서로 순위를 바꿔가며 인파를 끌어 모은다. 국내 디저트 시장 규모는 2013년 3000억원의 일곱 배가 넘는 2016년 2조 2000억원 규모로 커졌다.

밥 대신 디저트 괜찮을까

이실직고하면 나도 종종 디저트를 밥 대신 먹는다. 이 글을 쓰기 직전에도 아침 식사 대신 편의점에서 사온 모찌롤 네 조각을 먹었다. 편의점에도 디저트 열풍은 대단하다. 인기 상품은 금방 소진되어버리는 수가 많아서 맛보려면 일찍부터 집을 나서야 한다. (중고등학생이 학교를 마칠 시간보다 앞서 들르는 게 특히 중요하다.) 일본 편의점에서 판매되는 제품을 그대로 직수입한 모찌롤과 국내에서 제조한 모찌롤이 모두 인기다.

맛을 보면 충분히 납득이 된다. 중심을 꽉 채운 크림이 도지마롤 못지않다. 게다가 우유 맛이 진하다. 잘 만든 제과점 생크림 케이크와 비슷한 유크림 맛과 질감이 느껴진다. 원재료를 확인하면서 또 놀란다. 유크림에 야자유, 팜유를 섞어 만든 가공유크림인데, 전처럼 구분이 쉽지 않다. 90년대 말 프랜차이즈 제과점에서 식물성 유지를 넣어 만든 생크림 케이크 논쟁이 벌어졌을 때만 해도 가공유크림으로 만든 케이크는 혀끝에서 녹지 않고 겉도는 듯한 특유의 질감과 인공적으로 느껴지는 향으로 우유크림 케이크와 구별할 수 있었다. 이제는 그렇지 않다. 라벨 뒷면의 원재료를 확인하지 않고는 편의점 디저트에서도 가공유크림 사용 여부를 알기 어렵다. 경이로운 기술 발전이다.

밥 대신 디저트를 먹는 게 건강 면에서 걱정스럽게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따져보면 식후에 디저트를 먹는 게 더 걱정할 일이다. 편의점 모찌롤 케이크는 열량이 395kcal, 밀크카라멜 생크림 케이크는 740kcal이다. 카페 디저트도 1회 제공량이 300kcal에서 600kcal 사이를 넘나든다. 지방 함량이 높은 음식이다 보니 열량 폭탄이 되는 것을 피하기 어렵다. 반면, 높은 지방 함량은 위에 더 오래 머물고 천천히 소화 흡수된다는 면에서 장점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치즈케이크와 브라우니의 당지수(GI)는 40~50 수준으로 밥이나 빵에 비해 당분 흡수 속도가 더 느린 편이다. 디저트를 밥 대신 먹어도 생각보다 포만감이 오래가는 이유다.
영양 면에서 디저트는 한 끼 식사를 끝낸 뒤 굳이 추가로 먹을 필요가 없는 음식이다. 당분과 지방에 치우쳐 있기도 하고, 과잉 칼로리 섭취 면에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디저트를 먹고 나야 비로소 식사를 제대로 한 느낌이 든다면, 당신과 나만 그런 건 아니라는 데서 조금이나마 위안을 얻을 수 있다. 고대 페르시아인들도 그랬다. 그들은 후식으로 아몬드절임, 벌꿀에 적신 치즈케이크, 달콤한 견과류와 같은 것들을 먹고 나야 식사다운 식사를 했다고 여겼다. BC 5세기의 역사가 헤로도토스의 기록에 따르면 페르시아 사람들은 당시 그리스인들이 식사를 마쳐도 여전히 배가 고플 거라고 놀려댔다. 그리스에서는 식후 디저트라 할 만한 음식이 없었다는 사실을 비웃은 것이다.

디저트와 다이어트의 관계

후대 유럽에 설탕과 함께 페르시아 식문화가 영향을 미치고, 마침내 차려진 음식을 치운 다음에 먹는 것이라는 뜻의 디저트라는 말이 사용되기 시작했지만, 페르시아에서처럼 식사 끝에 디저트를 먹는 관습이 정착하기까지는 제법 오랜 시간이 걸렸다. 19세기 프랑스의 천재 요리사로 불리는 앙투안 카렘의 기록에서도 식사의 처음부터 디저트가 등장한다. 식탁 중앙에 과일, 설탕절임, 캔디를 꽃과 함께 화려하게 장식하여 식사 시간 내내 놓아두었던 것이다. 각 코스가 끝날 때마다 디저트를 내기도 했고, 식사 중에 달콤한 요리를 제공하는 경우도 많았다. 디저트를 밥 대신 먹는 게 아니라 디저트를 밥과 함께 먹는 게 과거에 오래도록 유행한 식사 방식이었다.

식사 끝부분에 디저트를 먹는 현대인의 관점에서는 우스꽝스럽게 보이지만, 건강 면에서는 디저트를 본식과 함께 먹는 과거식이 더 나을 수도 있다. 2013년 미국 퍼듀대학교 연구팀이 발표한 소규모 실험 결과, 디저트를 후식으로 주면 식사 중에 함께 줄 때보다 2~5살 어린이들의 음식 섭취량이 9% 늘어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칼로리만 측정했고 음식의 종류를 따지진 않아서 이것만으로 바람직한 결과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디저트를 함께 주면 식사량이 줄어든다는 면에서는 긍정적이다. 식사 전에 입맛 떨어지게 단 거 먹지 말라는 어머니의 훈계를 거꾸로 소식과 다이어트를 위해 활용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이야기다. 인터넷에도 디저트를 먼저 먹으면 다이어트에 도움이 된다는 주장이 심심찮게 돌아다닌다.

그러나 방심은 금물이다. 평소에 식사량을 줄이려고 애쓰는 제한식이자(Restrained Eater)들에게는 역효과가 날 수 있다. 칼로리가 높은 디저트를 먼저 먹고 나면 보통 사람은(단것을 먹고 난 어린아이처럼) 식사량을 줄이지만 평소에 늘 식욕을 누르고 있던 사람은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스스로 무장해제하고 과식하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밥 대신 디저트는 장기적으로 효과가 증명된 다이어트 방법도 아니며 모든 사람에게 통하는 방법은 더욱 아니다.

디저트는 궁극의 미식이다

대중매체는 음식 문화를 건강을 위한 최선의 선택으로 신화화하곤 하지만, 식문화가 현대인을 비만과 성인병으로부터 구원하는 영웅은 아니다. 러시아에서 프랑스를 거쳐 세계로 퍼진 코스식 서빙은 다양한 음식을 우아하게 즐기는 방법이지만 종국에 과식하게 되는 건 마찬가지고, 식사 끝으로 달콤한 디저트를 먹는 진행 방식 역시 세련된 식문화일 수 있지만, 건강 면에서 합리적 명분을 찾긴 어렵다. 건강만 생각한다면 식사 대신 디저트를 먹는 게 식사 뒤에 고열량 후식을 또 먹는 것보다는 나은 선택이며, 영양 균형을 생각한다면 그마저도 자주 먹는 것보다는 드문드문 즐기는 게 좋다.

미식의 차원에서는 다르다고 반문할 수 있다. 나도 동의한다. 디저트는 요리 기술의 정점이며 궁극의 미식이다. 디저트는 식재료 본연의 맛을 살려야 한다는 강박관념으로부터 자유로운 음식이며, 영양 기능의 굴레로부터도 온전히 벗어나 있는 음식이다. 인간의 생존에 필수적이지 않은 음악과 미술 작품처럼, 안 먹어도 살 수 있는 음식을 먹고 즐기는 순간 미식은 예술이 된다. 밥 대신 디저트를 먹는 것은 식사를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리는 숭고한 행위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인간은 예술만으로는 살 수 없다. 밥도 필요하다. 디저트를 오래도록 즐기고 싶다면 꼭 기억해야 할 사실이다.

정재훈은 서울대학교 약학대학을 졸업한 후 캐나다 토론토에서 다년간 약사로 일했다. 음식만큼이나 사람들과 요리와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걸 좋아한다. 잡지, TV, 라디오 등 여러 매체를 통해 음식과 약에 대한 과학적 정보를 전하고 있으며, 저서로는 <정재훈의 식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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