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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과 인문학 @김화성

2018년 6월 14일 — 0

음식 맛은 ‘밥의 무늬’이자 추억이다.

text 김화성

사람의 창자는 하나의 생산 라인이다. 공장의 생산 라인과 하나도 다를 게 없다. 인간이나 지렁이나 그 생산 라인의 원리는 똑같다. 밥이 입으로 들어가 항문으로 나오면 곧 똥이다. 이 세상 숨탄것들은 단 하나도 예외 없이 배설물을 눈다. 그럴 수밖에. 그들은 끊임없이 무언가 입 속으로 투입을 해댄다. 그러니 그 투입물은 밀리고 밀려, 결국 몸 밖으로 나오지 않고는 배길 수 없다. 그렇다. 인간의 생산 라인은 쉼 없이 ‘가동 중’이다. 늘 연동하며 꿈틀대고 요동친다. 무엇이든 잘게 부수고, 으깨고, 뭉개어, 컨베이어 벨트에 실어 자꾸만 아래로 밀어낸다. 나, 너, 몸, 해, 달, 별, 땅, 산, 술, 차, 책, 붓, 꿈, 길, 눈, 코, 입, 귀, 손, 발, 팔, 쌀, 벼, 낮, 밤…. 한 글자로만 된 단어들은 단순명쾌하다. 그대로 사물의 본질을 꿰뚫는다. ‘밥’도 단도직입적이다. ‘똥’도 즉자적이다. 밥! 똥! 입으로 중얼거리기만 해도 온몸이 즉각 반응한다. 밥! 하는 순간 입 안에 침이 스르르 괸다. 똥! 하면 한순간 괄약근이 간질간질 옴죽거린다. 아궁이에서 굴뚝까지는/입에서 똥구멍까지의/길/비좁고,/컴컴하고,/뜨겁고,/진절머리 나며,/시작과 끝이 오목한 길/무엇이든지 그 길을 빠져나오려면/오장육부가 새카매지도록/속이 타야 한다/그래야 세상의 밑바닥에 닿는다, 겨우 (-안도현, ‘굴뚝’) 사람의 입맛에는 다섯 가지가 있다. 이른바 ‘5미味’다. 단맛, 쓴맛, 짠맛, 신맛, 감칠맛이 그것이다(매운맛은 맛이 아니라 통증痛症). 하지만 단맛이라고 어디 한두 가지인가. 감미로운 맛, 달콤한 맛, 달곰삼삼한 맛, 달곰새금한 맛, 달큼한 맛, 달달한 맛, 달보드레한 맛, 달착지근한 맛, 들큼한 맛, 들척지근한 맛, 달콤새콤한 맛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다. 쓴맛도 마찬가지. 쌉쌀한 맛, 쌉싸래한 맛, 쓰디쓴 맛, 떠름한 맛, 떨떠름한 맛, 삽삽한 맛…. 곰곰이 하나둘 주워섬기다 보면 입 안이 타분해진다. 짭짤한 맛, 찝찔한 맛, 짭조름한 맛, 간간한 맛, 건건한 맛, 짐짐한 맛의 짠맛이나 새큼한 맛, 시큼한 맛, 새콤한 맛, 새척지근한 맛, 시척지근한 맛, 시디신 맛, 시어터진 맛, 시지근한 맛의 신맛 그리고 구수한 맛, 꼬소롬한 맛, 맛깔스러운 맛, 사근사근한 맛, 괴미있는 맛, 구뜰한 맛, 엇구수한 맛, 삼빡한 맛의 감칠맛도 늘어놓기 시작하면 끝이 없다. 음식 맛은 혓바닥이나 코로만 느끼는 게 아니다. 음식은 귀와 눈으로도 먹는다. ‘바삭바삭 소리’를 들으며 감자칩을 먹으면 온몸이 오글오글 자지러진다. 는개가 자욱하게 젖어오는 봄날, 막걸리에 파전을 먹고 있으면 시도 때도 없이 시나브로 눈물이 난다. 시월의 마지막 밤이라면 꾀복쟁이 동무들과 찧고 까불며 왁자지껄한 생맥줏집에서 코가 삐뚤어지도록 퍼부을 일이다. 단맛은 경쾌한 음악을 들으며 먹어야 한결 몸이 달뜬다. 시끄러운 음악 속에선 달콤한 초콜릿도 고릿한 맛이 난다. ‘인간꾀꼬리’ 조수미의 청아한 소프라노 고음은 새콤달콤한 신맛을 더욱 상큼하게 해준다. 베르디 오페라에 나오는 ‘축배의 노래’를 들으며 술을 마시면 아무리 짜디짠 안주도 간간하고 곤곤한 맛으로 변한다. 서정적이고 부드러운 김광석의 노래를 들을 땐 쌉쓰레한 맛이 혀끝에 살짝 감도는 필즈너 맥주가 안성맞춤이다. 쓴맛은 부드러운 음악과 궁합이 딱이다. 기분이 꿀꿀할 땐 ‘다람쥐 밤 까먹듯’ 아귀아귀 고기나 뜯을 일이다. 사람의 입맛은 거의 변하지 않는다. 프랑스 브리야사바랭의 “당신이 무엇을 먹는지 말한다면, 나는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말할 수 있다”라는 단언은 상당히 일리가 있다. 사람의 입맛이야말로 ‘천하의 보수꼴통’인 것이다. 중앙아시아 고려인 3, 4세 경우를 보면 쉽게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들은 모국어는 거의 잊었지만 음식만은 아직도 김치 등 고려식 위주로 먹고 있다.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정크 푸드를 입에 달고 산 것도 가난했던 어린 시절 식습관과 질기고 아리게 이어져 있다. 결국 이 세상의 음식 맛은 어머니의 숫자만큼 있다. 부엌기피증의 한국 남자들에게 ‘어머니의 손맛’은 절대적이다. 돌아가신 어머니가 그리울 땐 어김없이 어머니의 음식이 생각나는 이유일 것이다. 어머니가 눈을 감으면 그 맛의 추억만 남고 그 본질은 사라진다. 한 시대 음식 도서관 한 채가 순식간에 사라진다. 맛은 그 어머니의 자식들에 의해 끊임없이 생성되고 재창조된다. 나 같은 전주 사람에게 어머니 음식은 매콤하고, 알싸하고, 간간하고, 엇구뜰하고, 괴미있고, 칼칼하고, 아릿한 요술 세계 바로 그것이다. 오묘한 풍미와 양념이 차고 넘쳐 생각만 해도 숨이 막힌다. 김치마다 온갖 젓국이 들어가 그 곰삭은 맛이 사람을 홀린다. 음식 맛의 주인은 사람의 ‘뇌腦’다. ‘요리를 누가 해주었나’가 으뜸 요소다. ‘누구와 함께 먹느냐’도 빼놓을 수 없다. 만약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먹는다면, 그 음식 맛은 먹어보나 마나 이 세상 최고일 것이다. 그래서 ‘사랑은 위胃를 통해서’ 온다. 사랑은 곧 누군가를 위해 음식을 만들고, 한 밥상에서 함께 밥을 먹는 일인 것이다. 밥은 똥이다. 삶은 죽음이다. 밥은 식도를 타고 흘러내려가 항문에 이르면 똥이 된다. 삶은 구르고, 깨지고, 내동댕이쳐지고, 패대기쳐져서 만신창이가 되는 과정이다. 더 이상 깨질 게 없으면 죽는다. 삶은 결국 똥과 오줌이 되는 길이다. 입과 항문은 하나다. 인풋과 아웃풋일 뿐이다. 밥의 사리가 배설물이라면, 맛은 밥의 무늬이다. 잔주름이다. 맛은 라인을 지날 때 느끼는 바람 같은 것이다. 음식 맛이란 8할이 바람이다. 추억이다. 아련한 기억의 저편이다. 추억은 누구에게나 있다. 추억은 정답이 없다. 모든 맛은 옳다. 기쁜 우리 젊은 날! 우리 언제 밥 한번 먹자!

김화성은 전 동아일보 음식·여행·스포츠 전문기자다. 음식인문학 책인 <꽃밥>, <CEO히딩크>, <전라도 천년>, <길 위에서 놀다> 등 10여 권의 책을 썼다. 현재는 대학과 기업 연수원 등에서 강연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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