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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엉이 @정동현

2018년 6월 14일 — 0

돈으로 영혼과 눈물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은 강남역에 작은 가게가 있다. 밤에 조용히 날갯짓을 하며 하늘을 가로지르는 ‘부엉이’ 간판을 달고 노란 불빛을 발한다. 그곳을 아는 사람들은 숲에 모여든 작은 새처럼 가만히 앉아 술잔을 주고받으며 밤을 지새운다. 이자카야 ‘부엉이’의 밤은 헛된 몽상처럼 잔잔히 흘러갔다.

text 정동현 — illustration 왕조현

2016년 하루에 206명이 태어나고 119명이 죽었던 서울의 인구 밀도는 현재 1km2당 1만6288명이다. OECD에 가입한 국가의 도시 중 가장 높은 인구 밀도를 가진 이곳에서 가장 흔한 것은 사람이다. ‘타인은 지옥이다’라는 사르트르의 말을 빌리자면 서울은 확률적으로 제일 지옥에 가까운 도시다. 그뿐인가? 우리가 추구해야 할 가장 큰 덕목을 ‘행복’이라고 주장했던 그리스의 철학자 에피쿠로스는 자신의 책 <쾌락론>에서 인간관계를 최소한으로 하는 것이 행복을 얻는 가장 안전한 방법이라고 했다. 근대와 고대의 철학자 모두 진단하는 바가 같은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서울 강남역에 가는 것은 가장 불행해지는 빠른 방법이다. 나는 그래서 강남역에서 최대한 멀리 떨어져 있기를 바랐다. 하지만 늘 나의 바람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수상한 루머 같은 미세먼지가 공기 중에 부유했다. 버스가 공사 중인 강남역 사거리 코너를 거칠게 돌았다. 나는 손잡이를 붙잡고 중심을 잡았다. 몇 차선인지 세어볼 엄두가 나지 않는 강남대로에 차들이 가득 서 있었다. 택시는 안전선 밖으로 고개를 빼꼼히 내밀었고 횡단보도 양 끝 사람들은 휴대폰을 보느라 고개를 모두 땅으로 향했다. 이른 저녁이었다. 해가 비스듬히 도시의 중심을 가로질렀다. 사람들의 머리카락이 옅은 주황색을 반사했다. 알지 못하는 이들에 대한 적의敵意가 조금씩 샘솟았다. 신호를 받고 급히 커브를 돌며 어깨에 부딪히는 사람들, 교차로에서 경적을 울리는 택시들, 그들이 뿜어내는 매연과 무표정이 지겨웠다. 목적지가 가까웠다. 어차피 이어폰을 귀에 꽂아 듣지 못하는 이의 등 뒤에서 말했다.

— “실례합니다.”

나는 그를 살짝 피해 버스에서 내렸다. 버스는 다시 급한 길을 갔다. 심호흡을 했다. 상쾌한 공기는 없었다. 강남역과 신논현역 사이, 무질서하게 놓여 있는 건물들이 보였다. 그 사이를 걸었다. 곧 회칠을 한 벽에 일본어가 쓰인 천이 매달려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 부엉이가 그려진 작은 간판 하나가 나타났다. 이자카야 ‘부엉이’였다. 한국의 이자카야는 이 사회를 꼭 닮았다. 청담동에 가면 일본에서 음식을 배운 요리사들이 차린 이자카야가 한 집 걸러 있다. 여기서 가성비를 찾는다면 다른 곳을 알아보는 편이 낫다. 본토 일본에서는 편하게 먹고 마시는 선술집이 한국에 와서는 고급 주점이 되었다. 질을 따지자면 흠이 없지만 자주 찾기에는 통장 잔고 걱정이 앞선다. 일본에서 2만~3만원이면 살 수 있는 사케 한 병 값이 10만원을 넘는다. 그 차이를 생각하면 작은 한 잔을 여러 번에 나눠 먹게 된다. 적당히 먹고 마시면 인당 10만원은 족히 내야 한다. 혀는 즐겁지만 기분은 썩 유쾌하지 못하다. 강남역 뒷골목에 늘어선 또 다른 이자카야는 정반대편에 있다. 희석식 소주를 파는 것은 기본이다. 얼린 기름치와 노르웨이산 연어가 주종목, 업체에서 납품 받는 꼬치가 그다음이다. 거품이 금세 꺼지는 맥주 한 잔을 앞에 두고 어디나 비슷한 맛이 나는 꼬치 한 점을 먹으면 나는 이 세상이 꼭 내가 필요하지 않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내가 아니더라도, 또 다른 누군가라도 상관없을 것 같은 이 도시의 한구석을 내가 낭비하는 것만 같았다. 이자카야 ‘부엉이’의 작은 문은 강남에 어울리지 않았다. 다른 곳이라면 ‘이자카야’라고 크게 써붙인 간판 아래 주류업체에서 내건 할인 문구 POP가 놓여 있었으리라. 낮은 조명으로 밝힌 실내에는 머리를 뒤로 동여맨 여자가 주방에 섰고 눈이 크고 손가락이 긴 다른 여자는 홀을 봤다. 얇은 실로 공기를 이어 붙인 듯 섬세한 기운이 맴돌았다. 메뉴판에는 간판을 그린 것과 비슷한 글자체로 음식명이 띄엄띄엄 적혀 있었다. 덕분에 메뉴를 조금 더 유심히 볼 수가 있었다. 한 글자 한 글자에 의미가 담긴 듯했고 음식 하나하나 사연이 담긴 것 같았다. 꽤 오래 메뉴를 보다가 주문을 넣었다. 머리에 두건을 맨 여자가 작은 주방에서 부산히 움직였다. 테이블에 맨 처음 놓인 음식은 메추리알조림이었다. 미림의 단맛과 간장의 짠맛이 작은 알에 조심히 배어 있었다. 작은 요리였지만 이 집의 음식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그리고 어떤 마음으로 이뤄지는지 알게 되었다. 주류 메뉴판에는 처음 보는 사케가 가득했다. 그러나 첫 잔은 가볍게 시작하는 것이 순서. 하이볼 한 잔을 시켰다. 하이볼은 위스키에 소다수를 섞고 레몬즙을 살짝 탄 칵테일이다. 재료가 적고 만들기도 간단하지만 그 단순함이 오히려 결점을 극대화하기도 한다. 어떤 하이볼은 단맛이 강해서 입맛을 버리고 어떤 하이볼은 섞는 과정에서 탄산이 날아가 맛의 악센트를 잃고 만다. 하지만 너무 드라이하거나 너무 신맛이 강해도 제대로 된 하이볼이 아니다. 하이볼은 ‘적당히’라는 애매모호한 말 사이에 존재한다. 적당히 탄산감이 있고, 적당히 드라이하면서도 은근히 단맛이 치고 돌며 나중에는 입맛을 돋우는 신맛이 나긋한 바람처럼 입 안에 타고 돌아야 한다. 완벽한 하이볼에 대한 조건을 읊고 있으면 나는 완벽한 인생을 찾는 몽상가가 된다. 그런 생각을 하며 그녀가 하이볼 만드는 모습을 지켜봤다. 위스키를 먼저 넣고 탄산수, 레몬즙을 넣었다. 얼음을 칵테일 스푼으로 살짝 들어 올렸다 내려놓기를 반복해 음료에 찬 기운을 불어넣었다. 마지막으로 위스키 몇 방울을 표면에 떨어뜨렸다.

나는 하이볼 한 모금을 마시고 나서야 그 의도를 알았다. 그 몇 방울이 전체 용적의 도수를 높이지는 못했다. 하지만 입 안에 먼저 퍼지는 위스키의 향이 자칫 묽게 느껴질 수 있는 하이볼 향의 얼개를 잡아줬다. 서서히 마셔도, 빠르게 마셔도 너른 벌판과 바다를 닮은 거칠지만 부드러운 향이 약해지지 않았다. 나는 짧은 순간 한 잔을 비우고 또다시 한 잔을 시켰다. 그녀는 다시 허리를 숙이고 건물의 기초를 다지듯 하이볼을 만들었다. 이 집의 요리와 술은 두건으로 머리를 동여매고 허리를 숙여 하이볼을 만드는 모습을 닮아 있었다. 빨갛게 익은 토마토와 루콜라 잎을 밑에 깔고 바질 페스토 소스를 올린 샐러드는 맛이 층층이, 그러나 두껍게 쌓였다. 토마토의 산미와 채소의 거칠지만 고소한 맛은 사중주의 베이스였다. 바질 페스토는 그 위에 올려진 첼로 선율처럼 부드럽지만 강하고 묵직한 맛을 냈다. 현이 떨리는 비브라토처럼, 갈아 넣은 바질과 갈아 넣은 견과류의 식감이 화학적 미감이 아닌 물리적 촉감으로 몸속에 닿았다. 흔히 섬세하다는 말은 세부를 이해하지 못할 때, 변명하듯 쓰는 말이다. 하지만 이 음식 앞에서 섬세하다는 표현을 쓸 수밖에 없었다. 그 섬세함은 소스의 입자 크기, 소금 간의 정도, 재료의 비율과 위치, 그리고 온도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통제되고 배치되었을 때 완성되는 종류였다.

주인장의 추천으로 시킨 ‘지옥나베’는 구로나 건대 입구에서 흔히 보는 홍탕이 아니었다. 위에 얇게 저민 소고기가 쌓이고 밑에 채도 낮은 빨간색 육수와 쥐똥고추가 깔린 것은 비슷했다. 하지만 이런저런 잡다하고 질 낮은 재료를 독한 국물에 속여 파는 류가 아닌 것이 차이였다. 매운맛은 살아 있지만 반주를 곁들이는 데 어색하지 않았다. 고기가 익고 떠올랐다. 젓가락질을 할수록 자세가 편해졌다. 하이볼을 치우고 사케 메뉴판을 펼쳤다. 꽤 많은 종류의 사케를 잔으로 팔기에 고르는 재미도 있었다. 주인장이 권해준 사케는 봄바람을 마시듯 연하고 생기로웠다. 연두색 이파리와 고운 꽃잎을 살짝 물에 달여 넣은 것 같았다. 원래 몸속에 있었던 것처럼, 저항감 없이 술이 들어왔다. 취기가 따스한 온기처럼 몸에 번졌다. 그 취기에 습관적으로 가라아게(닭튀김)를 시켰다. 기대는 하지 않았다. 오래 튀겨 퍽퍽하거나 단단한 경우가 대다수이고 염지가 제대로 되지 않아 간이 맞지 않은 경우도 흔했다. 그러나 막상 앞에 나온 가라아게는 그 모양새부터 달랐다. 닭 허벅지살을 골라 쓰고 양파와 간장으로 만든 양념을 끼얹은 튀김은 흡사 즙이 많은 과일을 씹는 것 같았다. 포만감에 숨이 가빴지만 야무진 맛에 빈틈이 없어 먹기를 그만둘 수 없었다.

식당의 온기는 달빛을 받는 바다처럼 잔잔했다. 문밖으로 나도는 소란스러움도 이곳에서는 그 목소리를 낮췄다. 사람들은 숲속에 모여든 작은 새처럼 조용히 이야기하고 오래 웃었다. 두 명의 여자는 작은 주방과 홀에서 소리 없이 그러나 빈틈없이 사람들을 바라보며 움직였다. 나는 점차 그곳에 모인 사람들이 좋아졌다. 그들을 미워하거나 싫어하지 않을 수 있었다. 그들과 함께 새근새근 잠들고 싶은 강남의 밤이었다.

정동현은 서울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대기업 유통 회사를 다니다가 훌쩍 영국의 요리 학교 탕트 마리Tante Marie로 유학을 떠났다. 호주의 레스토랑에서 늦깎이 셰프로 요리 열정을 불사르며 일했다. 저서로는 <셰프의 빨간 노트>가 있으며, 지금은 신세계그룹 F&B팀에서 ‘먹고(Food) 마시는(Beverage)’ 일에 몰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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