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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냉면의 사회적 의미 @정재훈

2018년 6월 10일 — 0

지난 4월 27일, 남북정상회담의 만찬 자리에 ‘진짜’ 평양냉면이 등장했다. 몇 해 전부터 ‘미식가의 입맛’을 대변하게 된 평양냉면을 둘러싼 논쟁과 음식이 지닌 사회적 의미를 짚어보았다.

text 정재훈 — edit 양혜연 — photograph 이향아

지극히 평화로운 만찬이었다. 남북의 두 정상이 나란히 앉아 옥류관 평양냉면을 맛보는 자리에 다행히 까칠한 미식가는 없었다. 면 색깔이 거뭇하다, 육수 갈색빛이 너무 진해 보인다, 식초와 겨자로 모자라 양념장까지 넣는 건 평양냉면답지 않다, 꾸미로 올라갈 달걀이 국물에 빠진 모습이 어색하다는 불평도 들리지 않았다. 맛으로만 따진다면 최상의 맛과는 거리가 있었다. 냉면 제면기가 설치된 통일각에서 평화의집까지는 300m 이상 떨어져 있다. 철제 통에 냉면 사리를 담아 차에 싣고 옮기는 데 2분 30초, 다시 그릇에 옮기고 꾸미를 얹고 육수를 부어서 내어놓는 시간을 감안하면, 면을 뽑은 지 최소 10분 이상이 지난 시점에야 비로소 냉면을 맛보게 되었을 거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평양에서 공수해온 제면기가 고장 나는 바람에 주메뉴인 냉면이 예정보다 늦게 만찬장 식탁에 올랐다. 고치긴 했다지만 기계의 상태가 완벽하진 않았는지 북한 실무자들은 평양냉면 맛이 제대로 구현되지 않았다며 아쉬워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찬에 초대되었던 사람들은 그날 냉면이 “천하일미”였다는 평을 남겼다.

정상회담 냉면과 식사의 의미
남쪽 예술단이 4월 2일 평양에서 맛본 냉면이 4·27 정상회담에 오른 냉면보다 맛은 더 나았을 것임이 분명하다. 전날 성황리에 공연을 마친 예술단 멤버들은 다음 날 직접 옥류관을 찾아가 냉면을 맛봤다. 제면기를 옮길 일도 없었고, 기계가 고장 날 일도 없었으며, 네 번에 걸쳐 냉면 사리를 차와 사람이 이 건물에서 저 건물로 옮길 일도 없었다. 평양 창전거리의 옥류관에서 먹는 ‘진짜’ 평양냉면이었다. 언론과 대중의 관심도 온통 맛에 쏠렸다. 가수 백지영과 최진희의 맛 평가, 걸그룹 레드벨벳이 냉면을 먹는 모습, 냉면이 담긴 놋그릇, 고명으로 올린 잣, 무김치, 편육, 오이, 실처럼 채 썬 달걀지단, 빨간 양념장과 쇠젓가락까지 상세히 소개하는 기사가 여럿이었다. (개인적으로, 김정은 위원장을 비롯한 북한 사람들이 짜장면 비비듯 젓가락을 양손에 잡고 면을 풀어헤치는 장면에서 제일 놀랐다.)
하지만 평양냉면 붐은 그때 일지 않았다. 전국의 평양냉면집이 인산인해를 이룬 것은 4월 27일 점심부터였다. 마트의 즉석냉면 판매량도 두 배에서 세 배까지 급상승했다. 해외 언론도 평화의 상징이 된 차가운 면 요리에 큰 관심을 보였다. 애틀랜타에서 바비큐 식당을 운영 중인 가수 이지연이 <CNN투데이>에 출연해 평양냉면을 소개하기까지 했다.
종종 간과하지만 음식을 먹는다는 건 사회적 의미가 담긴 행동이다. 냉면 외교는 음식이 친교의 매개체이며, 함께 식사하는 일이 상호 신뢰를 구축하는 데 무엇보다 중요한 상징이 된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줬다. 맛과 건강 문제로만 생각해서는 음식이라는 대상을 온전히 이해하기 어렵다. 예를 들어, 치즈는 좋은 음식인가, 나쁜 음식인가? 2014년 9월 17일 영국의 타블로이드 신문 <데일리 미러> 기사를 보면 치즈는 비만의 원인이 되는 나쁜 음식으로 보인다. 그 기사의 헤드라인은 ‘치즈를 너무 사랑한 김정은, 터질 듯 뚱뚱해져 절뚝거려’였다. 과도한 치즈 섭취 때문에 체중이 불어나 건강에 문제가 생겼을 거라는 지적이었다. <데일리 미러> 기사는 정말 치즈와 건강에 대해 말하는 기사였을까? 그렇지 않다. 그보다 3년 앞서 같은 신문에는 케이트 미들턴 영국 왕세손비가 치즈를 먹고 체중을 감량했으며, 이를 따라 하려는 사람들로 인해 치즈와 육류의 판매가 급증했다는 기사가 실렸다.
같은 음식이 한 사람에게는 비만의 원인이 되고 다른 사람에게는 다이어트의 비결이 된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모순이다. 겉으로는 음식과 건강에 대한 이야기처럼 보이는 두 기사에 숨겨진 진실은 음식의 사회성이라는 거울을 통해서야 제대로 보인다. 음식의 가치는 다른 무엇보다도 사회적으로 결정된다. 저명한 인류학자 클로드 레비-스트로스의 말 그대로 인류에게 좋은 음식이란 “먹기에만 좋은 게 아니라 생각하기에도 좋아야 한다.” 그 생각은 개인적이면서 동시에 사회적이다.

음식의 효능에 관심을 갖는 이유
정상회담 다음 날 집 근처 평양냉면집을 찾았다. 벽면 액자에 메밀의 효능이 눈에 띈다. 체지방 감소, 비만 예방, 간 기능 회복, 이뇨 작용, 노화 예방과 피부 미용, 변비 예방과 치료에 도움. 문구를 읽다 보면 내가 병원에 온 것인지 음식점에 온 건지 헷갈릴 때가 있다. 메밀에 다양한 영양 성분이 들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들 성분에 나열된 질병을 치료하는 효과가 있다는 근거는 부족하다. 양적 계산도 잘못된 경우가 많다.
신문 기사와 방송에 심심찮게 등장하는 메밀의 단백질 함량이 두부보다 높다는 이야기도 그렇다. 메밀 100g당 단백질 함량은 11.5g으로 같은 무게의 두부(9.3g)보다 높다지만 도정한 메밀 생것이 그렇다. 수분 함량이 적기 때문이다. 생면을 삶은 메밀국수의 단백질 함량은 100g당 6.6g이다. 건면 메밀국수에는 밀가루가 상당량 섞여 있어서, 밀국수 건면 삶은 것(4.6g)과 메밀국수 건면 삶은 것(4.8g)의 단백질 함량은 비슷하다. 메밀이 다른 곡물과 비교해서 단백질 함량이 높긴 하다. 하지만, 메밀 생것을 그대로 먹지 않는 사람에게, 메밀이 두부보다 단백질 함량이 높다는 이야기는 과장이다. 음식의 효능에 대한 이야기들 거개가 따져보면 엉터리다.
사실도 아닌데 왜 음식의 효능에 대한 광고와 안내판은 사라지지 않는 걸까. 인류 대부분이 겪어온 식량 부족을 우리 역시 겪었고, 전쟁과 수탈의 상처가 아직 채 가시지 않았으며, 과거의 극심한 영양 부족에 대한 아픈 기억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50~60년 전보다 경제적 형편이 나아지고 평균 기대수명이 늘어나면서 건강에 대한 관심이 늘어났지만, 음식의 효능에 대한 거의 본능에 가까운 믿음을 버리기란 어려운 일이다. 과학자들의 복잡한 설명을 이해하기보다 특정 음식을 먹었더니 이렇더라는 이웃의 체험담이 훨씬 쉽게 다가온다. 지구상 다른 어떤 나라보다 더 빠른 현대화를 경험한 나라지만, 과학적 사고방식을 받아들인 사람의 수는 아직 많지 않다. 냉면집에 메밀의 효능 광고판이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 이유다.

평양냉면 논쟁에 숨은 진실
평화로운 정상회담이 끝나기도 전에 논쟁이 시작됐다. ‘진짜가 왔다’, ‘면스플레인의 종말이 왔다’며 환호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현대 평양의 평양냉면보다 원형에 가까운 것은 서울의 평양냉면’이라고 반론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국수의 질김도를 보정하기 위해 메밀가루에 녹말가루를 넣어 매끈하고 질깃하게 뽑은 면에 간장육수를 탄 것보다는 100% 순면에 소금으로 간한 서울의 냉면이 진짜라는 주장이다. 일견 맞는 말 같기도 하다. 음식문헌 연구자 고영이 자신의 칼럼에서 소개한 1936년 6월 4일자 <조선중앙일보>의 신문 기사를 보면 평양냉면이 서울로 올라오며 “담박한 맛은 없어지고”, “간장국이 짭짤히 엉킨” 서울식 미각으로 변했다는 설명이 등장한다.
덜 자극적이다, 싱겁다는 맛 평가를 보면 북한의 평양냉면은 여전히 담박한 듯하나, 정상회담 평양냉면 육수의 간장 빛깔을 보면 평양과 서울이 현대에 와서 조금 엇바뀐 느낌이다. 그럴 수밖에 없다. 음식은 사회를 반영하기 때문이다. 서울의 평양냉면은 오늘날 서울 사람들이 추구하는 음식과 사회의 한 단면을, 평양의 평양냉면은 그들이 추구하는 가치의 한 단면을 반영한다. 비슷하면서도 다른 서울과 평양의 냉면이 만나는 순간, 각자의 정체성은 더 선명하게 빛난다. 이대로 글을 마치려니 미식가들에게 미안하다. 세상에 까칠한 미식가만 있는 건 아니다. 무던한 미식가도 있고 사교적인 미식가도 있으며 고독한 미식가도 있다. 맞다. 고정관념의 좁은 틀에 맞춰 바라보기에 미식가의 세계는 너무도 다양하다. 그런데 잠깐! 평양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면에 식초를 뿌려 먹는 걸 즐기는 사람도 있을 거고, 육수를 그대로 마시는 걸 좋아하는 사람도, 면스플레인하기 좋아하는 사람도 있을 테다. 그리고 마침내 휴전선 너머 저편의 다양한 사람들과 그들의 음식을 있는 그대로 만나볼 수 있는 세상이 시작됐다. 정상회담 뒤 평양냉면 맛을 보겠다며 줄을 선 시민들의 얼굴이 하나같이 즐거워 보인 건 아마도 그런 이유에서였을 거다.

정재훈은 서울대학교 약학대학을 졸업한 후 캐나다 토론토에서 다년간 약사로 일했다. 음식만큼이나 사람들과 요리와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걸 좋아한다. 잡지, TV, 라디오 등 여러 매체를 통해 음식과 약에 대한 과학적 정보를 전하고 있으며, 저서로는 <정재훈의 식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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