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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수정의 비거니즘

2018년 6월 7일 — 0

3년째 비건으로 지내고 있는 배우 임수정의 즐거운 채식 생활을 들어보았다. 그녀가 ‘다른’ 존재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시선은 바로 음식으로부터 출발했다.

몸과 마음은 따로 또 같이 움직인다. 말과 행동이 따로 놀기가 얼마나 쉬운 일인지 떠올려보면 이 둘은 함께 가는 것에 분명 더 큰 공력이 든다. 어쩔 수 없이 시차도 발생한다. 그렇기에 나아가고자 하는 생각의 방향과 몸가짐이 일치하는 사람은 드물고 귀할 수밖에. 최근 영화 <당신의 부탁>에서 생애 첫 ‘엄마’ 역할로 돌아온 배우 임수정이 귀인처럼 느껴진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그녀는 수년 전부터 독립 영화나 저예산 영화에 대해 관심을 갖고 노개런티로 출연하는가 하면 유기 동물을 후원하는 일에도 꾸준히 힘쓰고 있다. 크고 작은 행보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과 가치관을 살며시 내비치는 그녀에게 ‘먹는’ 문제는 삶에 어떤 화두를 던지고 있을까. 인터뷰를 위해 찾아간 곳은 그녀의 단골집으로 소개받은 종로구의 뿌리온더플레이트. 강대웅, 이윤서 부부가 7년째 운영해오고 있는 비건 카페&쿠킹 스튜디오로 채식인들 사이에서는 손꼽히는 채식 다이닝 공간이다. 그곳에서 만난 배우 임수정의 표정은 자주 발길이 닿았던 친숙한 장소인 듯 편안해 보였다. “3년 전, 살기 위해 찾아 들어온 곳이 바로 여기였어요. 아, 당시엔 혜화동에 있었죠.” 그녀는 다름 아닌 비건Vegan, 즉 고기와 생선은 물론 우유나 치즈 등 유제품, 달걀 등 동물에서 나오는 부산물도 일체 먹지 않는 가장 높은 단계의 엄격한 채식주의자다. 처음 채식을 시작하게 된 이유는 건강상의 문제였다. 푸드 알레르기 검사를 통해 동물성 단백질에 심각한 알레르기 반응을 보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몇 번의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완전 비건으로 정착한 지도 올해로 벌써 3년째. 그녀가 비건으로 살기를 본격적으로 결심했을 때 운명처럼 이곳을 만났다. “음식을 먹어본 순간 바로 사랑에 빠졌어요. 비건 요리의 세계가 무궁무진하다는 걸 깨닫게 해주었죠.” 그녀가 가장 즐겨 먹었던 메뉴는 현미 피자와 채소 초밥이다. 유기농 현미 가루로 직접 반죽한 도우에 콩으로 만든 치즈, 감자, 단호박, 방울토마토 등 제철 채소를 토핑으로 얹은 현미 피자는 비건 음식이 얼마나 풍요롭고 맛있을 수 있는지 신선한 충격을 안겨주었다. 생선이 아닌 버섯, 파프리카, 깻잎 등 유기농 채소를 현미밥 위에 올린 비건 초밥은 두말할 것도 없다. 이날 두 셰프가 준비한 메뉴는 헝가리식 스튜인 굴라시. 고기로 육수를 내지 않고 두부와 제철 채소를 넣고 끓인 개운한 맛의 비건 굴라시다. “제가 집에서도 가끔 해먹는 요리예요. 평소 식단에 변화가 생기면서 비건 음식도 직접 배우고 요리하기 시작했거든요.” 오이초무침, 된장찌개, 김밥, 커리 등 쿠킹 클래스에서 배운 채식 레시피도 이제 제법 쌓였다. 그중에서도 구운 새송이버섯으로 속을 채운 채소쌈을 가장 좋아한다. 된장찌개를 끓일 때 꼭 챙기는 유용한 팁도 있다. 바로 된장을 먼저 풀지 않는 것. “각종 채소를 차례대로 넣고 채수를 우려낸 뒤 마지막 단계에 된장을 풀어 살짝 끓이면 된장의 좋은 성분이 파괴되지 않는다고 해요. 사실 여기서 배운 노하우예요.” 이윤서 셰프가 장난 섞인 목소리로 경고성 멘트를 날렸다. “이제 더 이상 공개하시면 안 돼요!”

채식을 하며 발견한 맛의 즐거움은 맛집 투어에서 요리, 그리고 미식 여행으로까지 이어졌다. 서로 때가 맞으면 이윤서 셰프를 포함하여 채식하는 지인들과 함께 ‘베지 트립’을 훌쩍 떠났다. 첫 시작은 발리의 우붓이라는 작은 시골 마을이었다. 예로부터 요가의 본산으로 자리 잡은 우붓에는 전 세계의 수많은 요기들이 수련을 위해 찾아온다. 자연스럽게 요가원 주변에 훌륭한 비건 레스토랑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채식주의자에겐 ‘먹방 투어’를 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환경이다. 삼시 세끼는 기본이고 짬짬이 디저트까지 알차게 챙겨 먹었다. “분명 채식 여행을 다녀왔는데 왠지 살은 더 쪄서 왔어요.” 짐짓 채식과는 어울리지 않는 푸드 파이터들의 단합 대회 같았달까. 작년 10월에는 일본 교토에서 열린 ‘비건 페스티벌’을 즐기고 돌아왔다. “국내에선 접할 수 없는 비건 쌀국수와 라멘을 마음껏 맛보았죠.” 더 동그래진 눈동자와 웃음을 머금은 목소리. 분명 그녀는 비건으로서의 즐거운 삶을 충만하게 누리고 있었다.

한편으로 국내에서 비건으로 살기에 힘든 점은 없을까. “회식 문화가 일반적이다 보니 사람들과 함께 식사하러 가는 일이 불편할 때가 있죠.” 사실 이런 경우는 사소한 축에 속한다. 마음이 고단한 이유는 따로 있다. 바로 채식하는 사람을 향한 사회의 시선이다. ‘고기를 먹어야 힘을 내지’ 혹은 ‘고기가 아니면 대체 무슨 맛으로 먹어?’라는 반응 등 순수한 호기심부터 채식에 대한 거부와 배척에 이르기까지 ‘나와 다름’을 존중하지 않는 말 한마디가 그녀의 말문을 턱 막히게 만들곤 했다. 그러나 ‘소수자’로서의 경험은 오히려 세상을 이해하는 영역을 넓혀주는 촉매가 되었다. 사회에서 소외된 노약자와 성 소수자, 길에 버려진 유기 동물 등 자연스럽게 나 자신에서 사회적 약자, 동물과 식물, 자연환경으로 세계관이 점차 확장된 것이다. “처음에는 개인적인 건강 문제로 시작했지만 이제는 단순히 건강을 넘어 동물 윤리와 환경 보호, 윤리적 소비에 대한 가치와 신념으로 비건을 지켜가고 있어요.” 건강한 음식을 먹는 행위가 곧 성숙한 사회로 나아가는 통로가 된다는 믿음에서다. “‘비거니즘Veganism’이라는 말도 있잖아요. 제게도 ‘철학’이 된 거죠.” 변화는 작은 것에서 일어났다. 평소에는 일회용품 대신 텀블러를 항상 지니고, 작업실에 오는 길고양이 밥도 꼬박 챙겨준다. 갖고 있던 대부분의 가죽 제품은 플리마켓을 열어 처분하고 수익금은 길고양이를 후원하는 일에 쓰이도록 했다. 화장품은 동물 실험을 하지 않는 유기농 제품으로 바꾸었다. 이처럼 채식은 식생활을 포함한 라이프스타일 전반에 걸친 삶의 양식과 절묘하게 결합되었다. “지금 저는 제가 살고자 하는 이 모든 방향이 함께 유연하게 흘러가고 있기 때문에 채식이 크게 힘들다는 생각은 들지 않아요. 제가 즐거울 때까지 채식을 계속 하고 싶어요.” 분명한 자기 기준으로 음식을 선택하는 일이 삶을 더욱 주체적으로 이끄는 동력이 되는 것일까. 그녀는 영화 팟캐스트 ‘필름클럽’을 1년 반 동안 끌어온 진행자로서 콘텐츠 제작에도 흥미를 가지고 있다. “넷플릭스에 다양한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즐겨 보는데 요리 다큐는 많지만 채식을 주제로 한 쇼는 없더라고요.” 사람들이 거부감 없이 자연스럽게 비건을 받아들일 수 있는 채식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고 싶은 희망을 드러냈다. 채식도 한식이나 일식, 프렌치, 이탤리언 요리처럼 다이닝의 한 장르이자 채식주의자가 아닌 사람들에게는 새로운 미식의 경험이 되기를 바란다는 것. “채식주의자로 알려진 베네딕트 컴버배치나 제시카 차스테인과 같은 할리우드 배우들과 인터뷰도 하고, 그들이 한국에 왔을 때 제가 즐겨 찾는 비건 레스토랑을 직접 소개해주고 싶어요.” 언젠가 근사한 다큐멘터리를 들고 우리 앞에 나타나는 것은 아닐지. 가녀리지만 특유의 단호함이 깃든 몸짓으로.

뿌리온더플레이트
유기농 현미 디저트를 만드는 남편과 유기농 채식 메뉴와 쿠킹 클래스를 담당하는 아내가 함께 운영하는 비건 카페&쿠킹 스튜디오다. 두부와 유기농 제철 채소로 만든 굴라쉬와 캐슈너트를 발효하여 만든 비건 치즈케이크 등 다채로운 채식 음식과 디저트를 맛볼 수 있다. 카페 휴무일
(일·월·화·수요일)에 운영하는 쿠킹 클래스와 이벤트 정보는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을 참고하면 된다.
· 비건 굴라쉬 2만2000원, 비건 치즈케이크(1조각) 8000원
· 서울시 종로구 계동길 57
· 정오~오후 8시(목·금·토요일)
· 070-4133-8126
· @ppurionthplate
· www.facebook.com/ppuriontheplate

edit 이승민 — photograph 이과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