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고의 미식 격전지 뉴욕에서 연일 외국인들로 붐비는 한식 레스토랑이 있다. 오이지Oiji의 공동 대표를 맡은 김세홍 셰프가 한국에 잠시 방문한 틈을 놓치지 않고 그에게 인터뷰를 청했다.
오이지의 시작
세계 속 한식은 이제 막 꿈틀거리는 태동을 넘어 하나의 흐름을 만들고 있다. 김치, 비빔밥, 불고기에서 머무르던 한식의 평면적인 모습은 저물고 ‘모던 코리안’이라는 새로운 갈래가 두각을 드러낸다. 이를 두고 누군가는 ‘제2의 한식’, ‘누벨 한식’의 시대가 도래했다고 일컬었다. 세계 미식 트렌드의 최전선이라 할 수 있는 미국 뉴욕으로 건너가보자. 미쉐린 2스타를 보유한 임정식 셰프의 ‘정식’과 김훈이 셰프의 ‘단지’와 ‘한잔’은 뉴욕 한복판에서 모던 한식의 새 지평을 열었다. <미쉐린 가이드>를 펼쳐야만 나오는 파인다이닝 세계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캐주얼한 한식 레스토랑의 약진은 대중들에게 접근성이 높다는 점에서 더욱 가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단연 독보적인 존재가 있다. 트렌디한 ‘모던 코리안 다이닝’의 중심에 선 곳. 뉴욕 타임스(NYT), 이터 뉴욕(Eater NY)을 비롯해 현지 언론들의 찬사를 받은 한식 레스토랑 ‘오이지Oiji’를 두고 하는 말이다. 오이지를 운영하는 공동 대표인 김세홍 셰프가 잠시 한국을 방문했다는 소식을 접하자마자 황급히 인터뷰 일정을 잡았다. 그가 다시 뉴욕으로 출국하기 단 하루만을 앞둔 날이었다(동시에 3월호 마감일 이틀 전이기도 했다). 스튜디오로 걸어 들어온 김세홍 셰프의 얼굴에는 여유로운 미소와 어떤 비밀스러운 자신감이 내비쳤다. “생각해보니 3년 전 바로 이맘때 오이지를 오픈했군요.” 30평 남짓의 아담한 공간, 오이지에 마련된 40여 개의 좌석은 매일 저녁 외국인 손님들로 가득 들어찬다. 테이블 회전만 두 턴 반. 하루 평균 최소 100명이 다녀간다고 계산하면 한 달에 3만 명. 3년 동안 무려 100만 명 이상의 외국인이 오이지의 요리를 즐긴 셈이 된다. 믿기 어려울 정도의 쾌거다. 과연 오이지를 성공으로 이끈 김세홍은 대체 어떤 인물일까. 그가 셰프의 길을 걷게 된 데에는 우연보다 더 강한 필연이 작용했다. 그는 국내에서는 ‘레스토랑’이라는 개념 자체가 거의 희박한 외식의 황무지였던 1990년대부터 유럽 유수 레스토랑에서 다이닝 문화를 접하면서 외식업과 관련된 일을 하리라는 목표를 삼았다. 사업적인 밑거름이 어느 정도 다져졌을 무렵 본격적인 식당 영업을 시작했다. 이때 헤드셰프와의 크고 작은 갈등을 겪으며 ‘내가 레스토랑을 경영하려면 직접 요리를 할 줄 알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지체 없이 뉴욕 CIA로 유학을 떠났다. 그곳에서 배운 것은 단순히 요리만이 아니었다. 유학 시절 룸메이트로 만난 구태경 셰프와는 현재 오이지의 공동 오너셰프로서의 인연을 이어가고 있고, 무엇보다 뉴욕 현지에서의 한식에 대한 인식과 위상을 날것으로 느낄 수 있는 계기를 가졌다. “생각보다 세계적으로 한식이 저평가되어 있다는 것을 많이 절감했어요. 이 말인즉슨 거꾸로 글로벌 시장에서의 한식이 지닌 잠재적인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했죠.” 그렇게 오이지의 출발은 식물이 뿌리를 내린다는 것이 놀라울 만큼 척박한 한식 시장에서 처음 시작되었다.

오이지에 숨겨진 뒷이야기
전 세계에서 가장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는 뉴욕이라는 도시에서 두 한국인이 레스토랑을 열기란 ‘맨땅에 헤딩’이라는 표현이 부족할 정도로 무모했다. “다시는 기억하고 싶지 않을 만큼 힘들었어요.” 그와 함께 뜻을 모은 구태경 셰프와 자리만 찾는 데 2년이 걸렸고, 공사와 준비 기간으로 다시 1년을 보냈다. 브루클린을 포함해 맨해튼 지역의 구석구석을 하루에 6~7시간씩 몇 달이고 돌아다녔다. “맨해튼에 구멍가게 하나라도 운영해보았느냐는 것이 건물주들의 첫 질문이었어요. 그들에겐 자금보다 경험이 더 큰 신용이었던 거죠.” 실로 어마어마한 렌트비를 자랑하는 뉴욕은 단 한 평의 땅도 그들에게 허락하지 않았다. 그러다 1년 반 만에 드디어 브루클린에서 완공 예정인 신축 건물에 계약을 따냈다. 한숨을 돌리기도 전에 또 사건이 터졌다. 유대인 큰손이었던 건물주가 납치당해 한 쓰레기통에서 사체로 발견되었던 것이다. 건물은 부도가 났고 결국 1년 반 동안 들인 노력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이제 자금은 거의 바닥이 보이는 상황. 3개월이라는 마지노선을 두고 자리를 끝내 찾지 못하면 한국으로 돌아가자고 자포자기한 상태였다. 때마침 구태경 셰프가 다니던 병원에서 의사 선생님의 지인이 맨해튼에 한 가게를 내놓으려고 한다는 이야기를 우연찮게 들었다. 곧장 그에게 가까스로 연락을 취해 가게를 인수했다. 그곳이 현재 오이지의 자리가 되었다. 그런데 난관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인테리어 업자가 잠적을 하는 바람에 공사가 한동안 중단되는 시련도 겪었다. “결국 저희가 직접 나무를 구해서 목공을 하며 이 작은 공간을 완성하는 데 8개월이나 걸렸죠.” 이루 말할 수 없는 우여곡절을 거듭한 끝에야 오이지는 문을 열 수 있었다. 이 험난한 과정을 피부로 겪었기에 그는 ‘한식의 세계화’에 대한 시각도 조금 남달랐다. “문제는 음식이 아니라 환경이에요.” 그에 따르면 한식 자체는 이미 훌륭한 경지에 이르렀을 뿐만 아니라 이를 구현할 실력 있는 젊은 셰프들도 충분하다. 문제는 이들이 해외에서 요리를 할 수 있도록 뒷받침해줄 구조적인 시스템이 빈약하다는 것이다. “타임스퀘어 전광판에 나오는 한식 광고가 효과를 보려면 실제로 양질의 한식을 판매하는 레스토랑이 많이 있어야 해요. 실체가 없는 이미지를 광고하는 것은 크게 소용이 없지 않을까요?” 그는 철저히 시장 논리로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탤리언이나 프렌치 레스토랑만큼, 혹은 그보다 더 많은 돈을 기꺼이 지불하고서라도 손님들이 찾을 수 있는 한식 레스토랑이 많아져야 비로소 진정한 한식의 세계화가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오이지, 짠지 같은 가지각색 반찬들이 상에 올라야 푸짐한 상차림이 되는 것처럼 말이다.


오이지의 다음 단계
최근 세계 미식 트렌드에서 가장 중요하게 대두되고 있는 것이 ‘정통성(Authenticity)’ 개념이다. ‘진짜 음식’은 ‘진짜 그 나라 사람’이 해야 한다는 것. 테크닉과 스킬은 부차적인 문제다. 본토에서 먹고 자라며 그 나라 음식의 맛에 대한 ‘스탠더드’를 갖는 것이 핵심이다. 오이지에서도 한국인 요리사(혹은 한국계 미국인)를 고용하는 것이 원칙이다. “스패니시 요리사들의 칼질과 손질의 스피드는 한국인이 절대로 따라갈 수 없어요. 그렇다고 그 친구들에게 한식 레시피를 주고 만들라고 하면 그 맛이 제대로 나오지 않아요. 이유는 간단해요. 그 맛의 스탠더드를 잘 모르기 때문이에요.” 한식의 형태도 같은 맥락이다. 그는 결국에는 외국에서도 퓨전이 아닌 ‘정통 한식’으로 승부를 봐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가 궁극적으로 하고 싶은 음식도 바로 그것이다. 다만 순차적인 단계가 필요하다. 오이지의 요리가 한식을 기본 베이스로 하되 조리법과 테크닉에 프렌치 악센트를 가미한 ‘모던 코리안’으로 풀어내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에서다. 외국인에게 낯설지 않은 방식으로 한식에 대한 세련된 미식의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 먼저라고 본 것이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뉴요커들은 열광했다. 뉴욕 매거진의 애덤 플랫Adam Platt 기자는 안심과 성게 알, 겨자씨 피클이 어우러진 ‘육회’를 ‘2016년 뉴욕 베스트 비프 타르트’로 선정했고, 이터Eater의 라이언 서튼Ryan Sutton 기자는 프랑스식 버터로 찐 밥에 소고기를 얹은 ‘장조림버터밥’을 ‘2015 올해의 베스트 디시’로 발표했는가 하면, 뉴욕 타임스가 선정한 ‘2015년 뉴욕의 10대 식당 메뉴’에는 ‘솔잎 고등어’가 이름을 올렸다. 3연속 스트라이크. 이로써 뉴욕의 3대 음식 비평가의 극찬을 모두 이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오이지가 안정권에 든 지금 김세홍 셰프는 다음 단계를 구상 중이다. 그는 이번에 한국에 들른 것도 다음 프로젝트를 준비하기 위해서라고 살짝 귀띔해주었다. 오이지보다 더욱 대중적인 캐주얼 레스토랑과 디저트 숍을 빠르면 올해 안에 만나볼 수 있을 것이라는 사실. 오이지는 ‘모던 코리안’의 단계를 거쳐 정통 한식을 펼칠 수 있는 단단한 토대를 차츰차츰 다져가고 있다. “언젠가는 설렁탕이나 국밥도 외국인들이 거부감 없이 이해하고 즐길 수 있는 날을 꿈꾸고 있어요.” 그의 눈동자에는 결연한 의지와 설렘이 함께 맺혀 있었다.


edit 이승민 — photograph 이과용(인물), 오이지(레스토랑, 메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