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열기

main

Trend

레스토랑 평가와 과학 @정재훈

2018년 4월 12일 — 0

미각은 지극히 주관적인 감각이다. 그러나 수많은 미식 가이드 서적과 사이트들은 ‘맛’을 객관화시킨다. 레스토랑 평가의 객관성을 성립해줄 과학적 근거를 찾아보았다.

text 정재훈 — edit 양혜연 — photograph 유라규

레스토랑 평가 믿을 만한가

그 누구도 세상의 모든 식당을 다 가볼 수는 없다. 매일 점심과 저녁을 식당에서 먹는다고 가정해도 1년에 고작 730곳이다. 2015년 기준 서울시 음식점만 해도 13만7000개가 넘는다. 한 사람이 다 가보려면 188년이 걸린다. 평생 집밥을 포기하고 바깥으로 돈다고 가정해도 방문할 수 있는 곳의 수는 서울 전체 식당의 절반에 못 미친다. 인생은 짧고 식당은 많다. 새로운 식당을 찾기 전에 다른 이들의 추천과 평가를 찾아보는 일은 지극히 합리적이다. 여행할 때는 더욱 그렇다. <미쉐린 가이드>, 라 리스트, 구글, 옐프, 트립어드바이저를 검색하며 갈 곳을 고른다.
문제는 신뢰성이다. 네이버만 홍보성 후기로 골머리를 앓는 게 아니다. 구글, 옐프, 트립어드바이저와 같은 다국적 온라인 리뷰 사이트에 게시되는 고객평의 상당수도 가짜다. 하버드 경영대학원의 마이클 루카 교수와 보스턴 대학의 조르지오스 제르바스 교수는 보스턴 식당에 대한 옐프의 고객평 가운데 16%가 가짜 리뷰로 걸러진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옐프는 이에 대해 즉각 논평을 발표했다. 전체 리뷰의 25%가 실제 의심스러운 평가로 생각되지만, 기술적으로 이를 필터링하므로 문제될 게 없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별 다섯 개가 만점인 옐프 평점에 별 하나가 추가되면 레스토랑 매출이 5~9% 상승하는 상황이다. 어떻게든 자신의 별점은 끌어올리고 경쟁업소의 평가를 끌어내리려는 업주들의 시도는 계속될 수밖에 없다.
진짜 고객이 작성한 리뷰라고 문제가 없진 않다. 의자가 딱딱했다, 자리가 구석졌다, 조명이 어두웠다, 직원이 무표정했다, 화장실 물비누의 인공 향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는 이야기는 장황하게 늘어놓으면서도 정작 음식에 대한 평가는 단순하다. ‘맛있다’ 또는 ‘맛없다’에 아주, 많이, 너무, 진짜, 정말 또는 정말정말을 붙이는 것으로 마무리한다. 음식 이외의 요소가 식당 평가에 미치는 영향은 너무도 커서, 단순히 비 내리는 날씨만으로도 레스토랑에 대해 부정적인 평가를 내릴 가능성이 높아진다. 추측이 아니다. 미국 조지아 공대와 야후가 84만 곳의 식당에 대한 110만 건의 온라인 리뷰를 분석한 결과다.

식당 평가의 객관성

설립한 지 14년째 되는 신생 회사로 대중의 평가에 의존하는 옐프에 비하면 117년 역사의 <미쉐린 가이드>는 확실히 더 전문적이다. 훈련받은 평가원들이 익명으로 활동하며 레스토랑을 직접 방문한다. 요리 재료의 수준, 요리법과 풍미의 완벽성, 셰프의 개성과 창의성, 가격에 합당한 가치, 언제 방문해도 변함없는 일관성을 기준으로 평가한다. 하지만 <미쉐린 가이드>의 손을 들어주기에는 이르다. 베스트셀러 <신호와 소음>으로 유명한 통계학자 네이트 실버의 2014년 분석 결과, 미국 뉴욕에서 미쉐린 스타와 옐프 평점은 최상위로 갈수록 일치하는 경향을 보였다. 미쉐린 별 셋을 받은 곳이라면 옐프 평점과 리뷰 개수 또한 높게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다.
뉴욕에서 손꼽히는 레스토랑에 관한 한 전문가의 평가와 대중의 평가는 거의 일치한다. 그렇다면 거꾸로 옐프 평점과 다른 리뷰들을 바탕으로 미쉐린 스타 레스토랑을 예측할 수도 있을까? 가능하다. 미쉐린 가이드 미국 워싱턴 D.C. 판이 처음 나오기 전 통계 자료를 기반으로 <미쉐린 가이드>의 평가를 미리 맞혀보는 소규모 대회가 열렸다. 경쟁에서 1등을 차지한 것은 미식에 대한 별다른 지식이 없는 프로그램 개발자 브렌던 수돌이었다. 그는 2017년 워싱턴 D.C. 미쉐린 스타 레스토랑으로 선정된 12곳 중 7곳을 별 개수까지 정확히 맞혔다. 이렇게 알고리즘을 이용하여 예측이 가능하다는 것은 미쉐린 평가원들이 해당 지역 주민과 전문가들의 평가에 영향을 받고 있다는 의미일 수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 다양한 식당 평론과 평가를 관통하는 공통의 객관적 기준이 존재한다는 의미로도 해석 가능하다. 프랑스의 라 리스트는 이를 이용한 새로운 방식의 레스토랑 평가 시스템이다. 550종의 안내서와 출판물, 온라인 평가 사이트의 자료를 수집하고, 표준화 점수를 매긴 다음, 정보의 신뢰도에 따라 가중치를 주는 알고리즘에 따라 취합하여 선정한 레스토랑을 목록으로 정리한 것이다. 라 리스트는 따로 고용된 평가원 없이 데이터를 분석하여 식당별 점수를 내놓는다.
누가 내놓은 평가이든 간에 세상에 나오는 순간부터 논란이 시작된다. 2015년 연말 라 리스트가 처음 공개되자 영국의 월드 50 베스트 레스토랑에 맞서 내놓은 게 아니냐는 말이 많았다. 2016년 11월 ‘미식의 바이블’로 불리는 <미쉐린 가이드> 서울 편이 나왔을 때도 프랑스의 기준으로 한국 음식을 제대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인가 비판과 우려가 쏟아졌다. 하지만 세부 순위가 다를 뿐, 이들의 식당 평가에도 차이점보다는 공통점이 많다. 월드 50 베스트 레스토랑 중 46곳이 라 리스트에도 오른 곳이며, <미쉐린 가이드> 서울 편의 스타 레스토랑 24곳 중 22곳은 국내 최초의 레스토랑 평가서 <블루리본 서베이>에서도 리본을 받았다. 식당 평가에서 공통이 되는 객관적 기준은 존재한다.

레스토랑 평가서 활용법

작년 10월과 올해 2월, 두 번의 파리 여행에서 미쉐린 스타 레스토랑 14곳을 방문했다(3스타 7곳, 2스타 3곳, 1스타 4곳). 이들 중 <미쉐린 가이드>와 라 리스트에 모두 오른 레스토랑은 11곳이었다. 여행 초기에는 평가가 제대로 주어진 건가 눈에 불을 켜고 찾아봤다. 하지만 중반 이후부터는 마음을 고쳐먹었다. 식당 평가에 대한 체계적 훈련과 용어 교육을 받지 않은 상태에서 어떤 곳의 음식이 훌륭한 이유를 묘사하기는 어렵고, 사소한 흠만 잡기 쉽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레스토랑 평가서를 평가하는 대신, 내가 생각한 평가와 레스토랑 평가서의 평가가 종종 다르게 나타나는 이유를 찾아보기로 했다.
객관적 기준에서는 비슷한 수준의 식당이라도, 주관적 선호에 따른 호오는 다를 수 있다. 레스토랑 평가서의 별점이 충분히 객관적이라면, 동일한 별점을 받은 두 곳의 음식에 대해 내 평가가 달라지는 지점이 나의 개인적 취향을 말해줄 것이다. 예를 들어, 장 프랑수아 피에주의 르 그랑Le Grand 레스토랑과 티에리 막스의 레스토랑 쉬르 메쉬르Sur Mesure는 모두 미쉐린 2스타 레스토랑이지만, 내 친구들은 대부분 장 프랑수아 피에주의 음식 맛을 선호했고, 나는 티에리 막스의 음식 맛이 더 만족스러웠다.
내가 분자요리에 대한 거부감이 적어서 그럴 수도 있고, 또는 쓴맛을 싫어하는 경향 때문일 수도 있다. 쓴맛을 누르고 단맛과 짠맛을 상승시키는 감칠맛의 부드러운 풍미를 선호하느냐, 아니면 감칠맛을 조금 줄이더라도 약간의 쓴맛이 풍미를 강화하는 것을 선호하느냐의 차이일 수도 있다. 또는 사람마다 음식에 대한 위장의 반응이 다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음식 맛을 느끼는 감각 수용체는 혀뿐만 아니라 위와 장에도 존재한다. 위장의 미각 수용체로 맛을 느낄 수는 없지만 음식을 삼키고 나면 이들 감각 수용체는 들어온 음식의 영양 성분을 분석하여 소화를 위한 일련의 대사 반응을 일으키는 데 영향을 준다. 식품 알레르기가 아닌 이상, 위장에서 불편한 기색을 보인다 하여 그 음식이 특정 개인의 건강에 해롭다는 의학적 근거는 없지만, 먹자마자 위장이 거북해하는 음식을 좋아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나에게 잘 맞지 않지만 객관적으로 훌륭한 식당과 음식은 실재한다. 그러니 레스토랑 평가서와 나의 평가가 다를 때마다 실망할 필요는 없다. 그동안 잘 모르고 있던 나만의 개성과 취향이 선명하게 드러나는 순간이니 말이다. 이국에서 낯선 사람들을 만나며 입맛에 맞지 않는 새로운 음식을 맛볼 때도 미소 짓게 되는 이유다. 모든 여행은 결국 자신을 찾아가기 위한 여정이다.

정재훈은 서울대학교 약학대학을 졸업한 후 캐나다 토론토에서 다년간 약사로 일했다. 음식만큼이나 사람들과 요리와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걸 좋아한다. 잡지, TV, 라디오 등 여러 매체를 통해 음식과 약에 대한 과학적 정보를 전하고 있으며, 저서로는 <정재훈의 식탐>이 있다.

이 기사도 읽어보세요
2월의 발품 팔아 찾은 맛집 두 명의 대가가 레스토랑을 오픈했다. 한 명은 연남동에, 또 다른 한 명은 여의도에. edit 문은정 — photograph 양성모, 정현석 진가 © 양성모, 정현석 목란의 이연복, 진진의 왕육성. ...
진진 왕육성 셰프 왕사부라 불리는 그는 호텔을 그만둔 뒤 서교동에 작은 중식당을 열었다. 그리고 2년여 만에 3호점까지 내고, 미쉐린 가이드 별을 받았다. 까맣게 발효시킨 콩인 두자 소스의 전복요리. 예약해야 먹을 수 있는 진...
메르씨엘 @이용재 국내 프렌치 레스토랑의 대표 주자로 떠오르고 있는 메르씨엘. 해운대에서 맛본 두 번의 식사를 평가한다. text 이용재 — illustration 이민진 © 이민진 9월 첫째 주 오후, 나는 완벽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