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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과 인문학 @남기현

2018년 4월 3일 — 0

음식을 먹는다는 건 그 음식에 담긴 역사, 인물,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즐기고 반추하는 행위다.

text 남기현

레드 와인의 주원료인 적포도는 덥고 건조한 날씨에서 잘 자란다. 이런 조건이 가장 잘 갖춰진 나라가 다름 아닌 프랑스이고, 프랑스에서도 아키텐 지역이 포도 재배에 안성맞춤인 곳으로 유명하다. 1122년 아키텐의 영주 기욤 10세에게 예쁜 딸이 생겼는데, 그녀의 이름은 엘레오노르 다키텐이었다. 이 지역은 당시 프랑스 국왕의 영향력이 미치지 못한 곳이었다. 때문에 권력 기반 강화가 절실했던 루이 6세(당시 프랑스 국왕)는 기욤 10세와 친분을 유지하며 그의 아들과 엘레오노르를 결혼시키기로 합의한다. 1137년 기욤 10세가 죽자 엘레오노르가 그 땅을 물려받았다. 아버지의 유언대로 그녀는 루이 6세의 아들과 결혼했다. 결혼 1개월 후 루이 6세가 죽자 그의 아들이 왕위를 물려받아 루이 7세가 됐다. 엘레오노르가 프랑스의 왕비로 등극한 것이다. 하지만 두 사람의 결혼 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루이 7세는 경건하고 소박한 성품의 소유자였다. 정열적인 사랑을 원했던 엘레오노르에게 그는 ‘빈틈없는 성직자’ 같았다. 그녀는 1152년 루이 7세와 헤어졌다.
당시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은 남자가 있었는데 그는 다름 아닌 영국인 헨리 백작이었다. 헨리와 결혼한 엘레오노르는 새 남편에게 아키텐 땅을 선물로 줬다. 그로부터 2년 후 헨리는 영국의 왕(헨리 2세)이 된다. 프랑스 왕비였던 엘레오노르가 영국의 왕비로 변신했고, 자연스레 프랑스 지역에 속한 아키텐은 영국 소유로 넘어갔다. 영국은 아키텐 지역에서도 가장 양질의 포도가 재배되던 보르도에 주목하고, 본격적으로 와인 산업을 키우기 시작한다. 보르도는 현재 프랑스 아키텐주의 주정부 소재지다. 보르도를 중심으로 한 아키텐의 번영을 지켜본 프랑스는 마음이 무척 상했을 것이다. 결국 엘레오노르가 죽고 130년이 지난 후 ‘올 것이 왔다’. 호시탐탐 이 지역을 노리던 프랑스는 영국의 내정 간섭을 비판하며 전쟁을 선포하는데,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백년전쟁’이다. 이 전쟁의 표면적 원인은 양국 간 왕위 쟁탈전이었지만, 실제 이유는 알짜배기 땅 ‘보르도(아키텐)’를 둘러싼 ‘이권 다툼’이었다는 견해가 많은 지지를 얻고 있다. 오늘날 보르도는 와인의 대명사로 불린다. 보르도 와인을 알면 프랑스와 영국의 왕비가 된 ‘세기의 여인’ 엘레오노르가 보이고, 백년전쟁까지 우리의 의식이 미치게 된다. 순두부의 백미는 초당순두부다. 초당은 역모 혐의로 능지처참을 당한 <홍길동전>의 주인공 허균의 아버지, 허엽의 호다. 초당순두부를 알면 ‘비운의 남매’ 허난설헌과 허균의 슬픈 이야기와 함께 조선의 뼈아픈 역사가 보인다. 이뿐 아니다. 설탕은 우리 몸속에 들어가 신경전달물질 중 하나인 도파민 분비를 자극한다. 도파민이 분비될 때 사람은 쾌감을 느낀다. 섹스할 때 느끼는 오르가슴도 도파민에서 비롯된다. 때문에 도파민엔 ‘사랑의 묘약’이란 별명이 붙었다. 16세기 설탕의 달콤함에 흠뻑 빠진 유럽은 원 없이 설탕을 즐길 요량으로 미국, 브라질 등 아메리카 대륙의 식민지 농장에서 사탕수수를 대량 재배했다. 아프리카에서 끌려온 흑인 노예들이 사탕수수 재배에 대거 동원됐다. 영국은 미국에, 포르투갈은 브라질에 광대한 농장을 구축했다. 설탕의 단맛 이면엔 이처럼 흑인 노예들의 피와 땀, 서글픔이 담겨 있었다. 사탕수수 재배는 여간 고역이 아니었다. 낯선 미국 땅에서 고된 노동에 시달리던 흑인 노예들은 음악으로 서러움을 달랬다. 이 노래에 피아노와 기타 등 백인들의 악기가 접목돼 탄생한 음악이 블루스다. 설탕을 알면 제국주의 시작을 알린 유럽의 식민지 건설 역사가 보이고 블루스를 통해 흑인 노예들의 슬픔을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다. 이처럼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음식은 인간의 희로애락과 그 사람들이 만들어온 역사를 담고 있다. 음식의 이 같은 특성은 음식이 왜 인문학과 떼려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에 놓여 있는지 잘 설명해준다. 인문학은 자연과 인간을 제외한 모든 생물을 다루는 자연과학과 달리 인간의 가치와 본질을 탐구하는 학문이다. 인간 내면의 감정·심리·상상력, 인간이 사용하는 언어, 인간이 모여 사는 사회, 인간이 일궈온 역사가 인문학의 탐구 대상이다. 한마디로 말해 사람에 대한 학문이 인문학이다. 강릉을 여행할 때, 우리는 초당순두부를 먹으며 ‘초희’라고 불렸던 허난설헌과 그의 남동생 허균의 기구한 인생을 곱씹을 수 있다. 육즙을 가득 머금은 스테이크에 보르도 와인 한잔을 곁들이면서, 우리는 보르도의 정열적인 공주 이야기를 떠올릴 수 있다. 따라서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무언가를 먹는다는 건 그 음식에 담긴 역사, 인물, 문화, 우리 각자의 추억을 맛과 함께 즐기고 되새기는 행위다. 그러므로 음식에 대한 탐구는 사람에 대한 탐구로 이어지고, 결국 인문학의 중요한 영역 중 하나가 된다.”

남기현은 매일경제신문 기자이자 <음식에 담아낸 인문학> 저자로 이 책은 저자가 유통부에서 1년간 식품팀장을 지내며 관련 산업과 시장, 다양한 음식 문화를 취재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펴낸 책이다. 현재는 증권부에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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