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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어떻게 마실 것인가

2015년 4월 21일 — 2

마트나 시장에서 일상적으로 접할 수 있는 친숙한 식재료들. 그 이면에 담긴 진실에 대해.

글: 정재훈 / 에디터: 이진주 / 사진: 박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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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은 물이다. 당신이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을 방문한다면 무엇을 먹을 것인가, 어떤 와인을 마실 것인가에 앞서 어떤 물을 마실 것인지 제일 먼저 결정해야 할 것이다. 정수된 물, 미네랄 워터, 탄산수 가운데 무엇을 고를 것인가. 브리야 사바랭이 살아있었다면 그 유명한 한마디를 이렇게 수정했을지도 모르겠다. “나에게 어떤 물을 마시는지 말해주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말해주겠다.” 인체의 2⁄3을 차지한다는 물에 대한 우리의 태도는 신중하다. 하지만 진중하지는 않다. 물에 대한 속설을 보면 오랫동안 구전으로 전해지고 반복되는 가운데 사실처럼 굳어진 것들이지만 정확하지 못한 이야기가 많다.

물에 대한 논란은 100여 년 전에도 뜨거웠다. 마크 트웨인은 1897년에 쓴 자서전에서 ‘유럽인은 얼음물을 원하지 않고 마시지도 않는다’ 고 투덜댔다. 미국 남부의 음식을 누구보다 사랑한 그는 유럽여행 내내 음식이 못마땅했다. 특히 갓 구운 뜨거운 빵과 차가운 얼음물 대신 식은 빵과 미지근한 물을 마시는 일이 고역이었다. 건강에 해로울까봐 얼음물을 마시지 않는 유럽인들의 모습이 몹시 유난스러워 보였다. 당시 유럽에는 우리 인체가 차갑고 뜨겁고 습하고 마른 네 가지 성질(Cold/Warm/Moist/Dry)의 체액으로 이뤄져 있다고 믿는 사람이 많았다. 그래서 차가운 얼음물을 마시거나 뜨겁고 습한 빵을 먹으면 체액의 균형을 깨뜨려서 위험하다고 생각했다.

현대의학의 발달과 함께 이러한 체액설은 사라졌다. 와인의 맛을 드라이하다고 표현하거나 뜨겁지 않아도 매운 음식에 ‘핫Hot’이라는 형용사를 쓰는 영어 표현에 그 흔적이 남아있긴 하지만, 체액설때문에 얼음물 마시기를 두려워하는 사람은 드물다. 하지만 식사 중에 물을 마시면 소화액이 희석되어 좋지 않다는 속설은 아직 위력적이다. 음식을 소화시키려면 반드시 소화효소가 필요하다. 여기까지는 사실이다. 하지만 물을 마시면 소화효소가 희석되어 제대로 작용하지 못한다는 이야기부터는 상상이다. 음식을 소화시키려면 물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위장은 소화효소만 내보내는 법이 없으며 항상 물을 함께 섞어서 내어놓는다. 식사 중에 물을 따로 마시지 않아도 하루에 소화액으로 분비되는 물의 양이 평균 7L에 달한다. 우리가 매일 마셔야 한다는 물의 양보다 세 배가 넘는다. 이렇게 엄청난 양의 물을 나도 모르게 마시고 있지만 티가 나지 않는다. 물을 아끼는 우리 몸이 대부분을 다시 흡수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식사 중에 한두 잔 물을 마시면서 혹여 소화에 방해가 되지 않을까 염려할 필요는 없다.

차나 커피를 마시면 카페인의 이뇨작용 때문에 물을 섭취한 것이 헛일이 된다고도 한다. 정말 그럴까? 이에 대한 근거로 종종 제시되는 연구가 1928년 캐나다 에드먼튼에서 3명의 피실험자를 대상으로 한 것이었음을 알고 나면 의심은 커질 것이다. 게다가 그 연구에서는 매일 커피나 차를 마셨음에도 특별한 이뇨 효과가 나타나지 않았다. 2002년 미국 코네티컷대학의 한 연구팀이 10건의 연구 결과를 종합해서 내린 결론도 비슷했다. 커피나 차를 매일 마시는 사람이라고 물만 마신 사람에 비해 수분이 더 많이 빠져나가지는 않았다. 결국 커피나 차로도 수분 보충을 할 수 있다는 말이다. 또 카페인때문에 탈수 증상이 나타날까 불안해할 필요도 없다. 불면과 불안을 겪을 정도로 지나치게 마시지만 않으면 된다. 청량음료나 주스의 수분도 물이다. 당분 과잉 때문에 많이 마셔서 좋을 건 없겠으나 그렇다고 수분이 모자랄까봐 주스를 마시고 나서 물을 한 잔 더할 필요는 없다.

음식 속의 수분도 물이다. 오이와 토마토의 수분 함량은 90% 이상이다. 채소뿐 아니라 소고기에도 물이 들어 있다. 지방이 적은 우둔살의 경우 물이 70% 이상 함유되어 있다. 동물의 근육에는 단백질보다 3배나 많은 수분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마셔도 수분 섭취에 도움이 되지 않는 예외적인 경우가 있기는 하다. 바로 알코올인데 술을 마시면 인체에서 수분과 염분을 빼앗아간다. 우리가 맥주를 마시고 나서도 갈증을 느끼는 이유다.

현대인은 탈수 증상을 자각하지 못하므로 하루에 물을 2L 이상 마셔야 한다는 이야기는 어떤가. 역시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린 이야기다. 성인을 기준으로 몸에서 하루에 배출되는 수분의 양은 1.5~3L에 달한다. 추운 날 바깥에 나가 숨을 쉬면 수증기가 날아가는 게 보인다. 미처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호흡으로 날아가는 수분의 양만 350ml 정도다. 가만히 앉아서 숨만 쉬어도 하루에 캔 콜라 하나만큼의 물이 공기 중으로 사라지는 셈이다. 그렇다고 무조건 2L를 마셔야 하는 건 아니다. 소실되는 수분의 절반 가까이는 음식과 소화 과정을 통해 충당되기 때문이다. 땀을 많이 흘리는 격렬한 운동 전에는 탈수를 미리 염려해서 물을 마시는 게 도움이 될 수 있으나, 주로 앉아서 생활하는 대부분의 현대인에게는 갈증이 날 때 물을 마시는 정도로도 충분하다. 하루에 2L의 물을 마신다고 해로울 것은 없다. 그렇다고 몸속의 노폐물이 더 잘 빠져나간다거나 피부가 촉촉해질 거라는 생각에 물의 양을 일일이 계산하며 마실 필요는 없다. 물이 모자라면 노폐물을 내보내기 어려운 건 맞지만, 물을 많이 마신다고 체내 노폐물이 빨리 배출되는 것은 아니다.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레스토랑에서 어떤 물을 고를 것인가? 물맛은 미네랄 농도, 온도, 탄산 농도 등에 따라 다르게 느껴질 수 있다. 칼륨과 나트륨이 과하면 짠맛이, 칼슘과 마그네슘이 지나치면 쓴맛이 난다. 보통 물 1L에 마그네슘 함량이 500mg을 넘어가면 쓴맛과 불쾌감을 느끼지만 맛에 민감한 사람은 100mg 수준에서도 감지할 수 있다. 물맛 평가서 <파인 워터스>의 저자 마이클 마샤에 의하면 미네랄 워터에 대한 지역별 미각차도 상당해서 유럽 사람들은 미네랄함량이 높은 물에 관대한 반면, 미국인들은 미네랄이 적은 물을 선호한다. 커피나 차를 우려내고 맥주와 와인을 담글 때에도 미네랄의 양은 중요하다. 물에 미네랄이 너무 많으면 풍미를 추출하는 데 방해가 되고, 너무 적으면 성분이 과잉으로 녹아나와 짠맛이 나기 때문이다. 단, 건강에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에 미네랄 함량이 높은 물을 골라 마실 필요는 없다. 미네랄이 녹아 있다 하더라도 양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뼈 건강에 중요하다는 칼슘을 보자. 국내에서 시판되는 생수 제품들의 라벨에 표시된 칼슘 함량은 적게는 1L에 2~3mg, 많아야 고작 6~7mg 정도에 불과하다. 하루에 2L의 생수를 마셔도 하루에 필요한 칼슘의 1%에도 못 미친다. 우유 한 잔 만큼의 칼슘을 물로 섭취하려면 제주도산 생수 100L를 마셔야 하는 셈이다. 따라서 미네랄은 물보다 음식으로 섭취하는 게 좋다.

물은 인체에 꼭 필요하지만 어떤 물을 마시느냐는 건강 면에서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세균에 오염되지 않은 깨끗한 물이면 충분하다. 하루 8잔을 세어가며 마시지 않아도 괜찮다. 따로 양을 정하지 않아도 물이 더 필요하면 몸이 갈증 신호를 보낸다. 음식, 커피, 차로 섭취하는 양에 몇 잔을 더하면 충분하다. 그러고보니, 하루에 2L의 물을 마셔야 한다는 이야기를 만들어낸 건 누굴까? 생수병 라벨을 들여다보면 답은 금방 찾을 수 있다.

정재훈은 서울대학교 약학대학을 졸업한 후 캐나다 토론토에서 다년간 약사로 일했다. 음식만큼이나 요리와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사람들과 나누길 좋아한다. 잡지, TV, 라디오 등의 여러 매체를 통해 음식과 약에 대한 과학적 정보를 전하고 있으며, 저서로는 <정재훈의 생각하는 식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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