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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닝 인 스페이스

2015년 4월 20일 — 1

음식 평론가 이용재의 레스토랑 비평을 연재한다. 그 첫 번째는 최근 푸디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레스토랑 다이닝 인 스페이스다.

글: 이용재 / 일러스트: 이민진

파인 다이닝의 환경과 셰프의 성장

양식의 맛을 규정할 수 있을까? 있다. 물론 별처럼 무수히 많은 맛의 작은 가지나 잎, 꽃을 일일이 따지기란 어렵다. 그건 맥락적인 개별 과제다. 하지만 전체를 아우르는 일반적인 특성은 정리할 수 있다. 코스에서 치즈를 사이에 두고 짠맛과 단맛의 영역이 갈린다. 편안함을 좇아 단단하거나 쫄깃한 건 식탁에 올리지 않고 육류나 생선의 뼈도 미리 발라낸다. 질감의 대조를 중시해 겉은 바삭하고 속은 부드럽다. 생선이든 고기든 마찬가지다.

이렇게 몇 줄 안 되는 기본에 충실한 양식당을 찾기란 여전히 어렵다. 새롭게 등장한 레스토랑은 좀 다를까. 지난해 9월 1일 문을 연 종로구 원서동의 다이닝 인 스페이스에 발을 들이는 내 마음은 착잡했다. 이곳은 원래 ‘공간’이었다. 한국 현대 건축의 전당, 김수근의 건축사무소 공간 말이다. 경영 악화로 2012년 건물이 팔려 아라리오의 손에서 벽돌 건물인 구관은 뮤지엄으로, 통유리 건물인 신관은 ‘먹자 빌딩’으로 거듭났다. 블랑제리, 카페 등에 이어 꼭대기 5층이 다이닝 인 스페이스의 자리다. 피할 수 없는 변화라면, 레스토랑은 새로운 쓰임새로 최선이다. 발밑으로 창경궁과 서울이 한눈에 들어온다. 일단 환경적 여건은 최고다. 분위기는 잘 갖췄다는 의미다. 한편 노진성 셰프도 반갑다. 3년 전 그의 예전 레스토랑인 신사동 라 세종(La Saison)에서 홀로 먹은 점심을 아직도 기억한다. 음식은 이해했지만 내가 원하는 단정함, 깔끔함의 영역에는 아직 닿지 못한 인상이었다. 그의 성장이 궁금하다. 하지만 메뉴로는 실마리를 잡을 수 없다. 가격과 흐름만 담겨 있기 때문이다. 전채 셋, 주요리 둘, 디저트 둘 등 여섯 가지 요리에 10만원인 고정 가격(Prix Fixe) 코스다. 세심함이 아쉽다. 두 시간은 걸릴 여정이니 각 요리에 대해 세심히 알려줄 의무가 있다. 철이나 달 따라 바뀌는 메뉴라면 홈페이지에 Pdf로 올려 놓을 수 있다. 그런데 다이닝 인 스페이스의 홈페이지에는 ‘저녁 디너 코스’라고만 밝히고 있다. 더 적극적으로 알려야 한다. 출력해 식탁에 꽂아놓을 수도 있다. 규모(약 26석)를 보면 이렇게 안 하는 게 오히려 이해하기 어렵다.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에서는 흔한 서비스로 봉투에 담거나 셰프의 사인을 곁들여 주기도 한다. 기념품으로 가져가면 된다.

여정은 입맛을 돋우는 아뮤즈부슈(메추리알과 셰리식초, 하몽 알갱이, 마늘)로 시작한다. 메추리알이 담긴 유리잔의 벽을 타고 피어오르는 셰리식초의 향이 코에게 먼저 인사를 건넨다. 고전적 조합인 달걀+베이컨의 변주로 읽힌다. 다만 흰자의 부드러움에 비해 하몽 알갱이가 크고 딱딱하다. 질감의 대조를 의도했다면 더 고와야 하고, 그러자면 말리거나 구운 뒤 가루를 내는게 낫다. 메추리알의 바닥(덜 뾰족한 쪽)이 쪼개져 있어 수란처럼 굳지 않은 노른자를 보여주려는 의도인가 싶었다. 하지만 주방을 벗어나면 안 될 조리 실수인 듯하다. 이어 첫 전채 요리인 도미 타르타르가 머리에 풍성한 레몬크림을 이고 등장한다. 싱겁다. 이렇게 지방, 즉 크림을 더한 경우라면 짠맛이 좀 더 두드러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흔히 말하는 것처럼 ‘느끼해’진다. 그래서 크림이 기능보다 장식에 가까워 보인다. 어울리지 않고 없어도 될 것 같다.

두 번째 요리(페이스트리에 얹은 관자)에 이르러서야 코스 전체의 표정이 보인다. 백합과(파·양파·마늘·샬롯) 식물을 열정적으로 캐러멜화 한 향과 단맛이다. 얼핏 단순하고 깔끔해 보이는 요리의 인상에 여러 켜를 더하지만 코스는 나아갈수록 짠맛이나 신맛보다 단맛 쪽으로 기운다. 진한 단맛은 페이스트리와 관자 사이의 양파에서 정점을 찍고 조금씩 잦아들지만 모든 요리에 등장해 지루함의 단초를 제공한다.

많은 분량도 지루함에 손을 보탠다. 좋게 말하면 후한데, 사실 지루하다. 전채와 주요리 각각 한 가지씩만 추려 디저트까지 세 코스로 내도 충분할 정도다. 마지막 주요리인 스테이크는 눈대중으로도 150g 정도 되어 보인다. 그래서 앞 요리에서 섬세했던 담음새—현대 서양 요리의 건축적인—가 갑자기 너무 단순해진다. 스테이크가 넙적해 입체감이 떨어지는 것이다. 양이 많다고 다 좋은 건 아니다. 한편 가격을 고려하면 이 담론에 끌어들여서는 안 될 ‘가격대 성능비’라는 말까지 목구멍으로 올라온다. 오너가 레스토랑을 문화 사업으로 여겨 단기 전략을 택했다는 인상을 준다. 좋은 첫인상을 일궈 재방문을 유도하는 것이다. 이는 와인 목록에도 묻어나온다. 레스토랑은 음식으로 평균을 유지하고 술을 통해 이익을 얻는다. 그래서 술값이 대개 소매가의 두세 배다. 이곳의 사정은 다르다. 일반 소비자가에 고작 10% 더 붙은 수준이다. 반가우면서도 불안한 전략이다. 20명 안쪽의 손님에 저녁 1회전이라면 ‘박리’라도 ‘다매’는 어렵다. 지속 가능성을 위한 전략이 오히려 발목을 잡을 수도 있다.

좋은 첫인상을 위한 전략은 재료의 선택에서도 묻어난다. 두 번에 걸쳐 전복, 도미, 농어, 조개관자, 바닷가재, 푸아그라, 이베리코 돼지, 한우 채끝을 먹었다. 좋지만 한편 버겁고, 또 뻔하며 단조롭다. 당장 전세를 유리하게 가져갈 수는 있지만 이후 전략을 그대로 드러내는 카드를 한꺼번에 쓴 느낌이랄까. 또한 철과 원산지도 초월한다. 셰프의 내재적 욕망과 반할 수 있는 재료의 연속이다. 파인 다이닝의 요리 목표는 승화나 초월이다. 평범하거나 때로 푸대접까지 받는 재료를 최선의 요리로 일궈낼 때 셰프의 존재가 빛난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계 3대 미식 재료인 캐비아와 트러플, 푸아그라는 양날의 칼이다. 요리는 맛있을지언정 셰프의 역량을 정확히 드러내주거나 빛내주지 않는다. 그래서 회심의 카드로 보이는 세 번째 요리, 버섯소스를 곁들인 배추말이 푸아그라가 가장 덜 매력적이다.

들여다보자. 배추는 간이 배어 있지 않으며 나이프에 저항한다. 애초에 어려운 재료다. 소금에 절였으나 균일하게 숨이 죽지 않아 이파리 끝의 굵은 잎맥이 거슬린다. 속은 겉보다 더 공허하다. 바닷가재와 푸아그라는 그저 나열되어 있고, 특히 전자는 과조리로 뻣뻣하다. 그래서 의도가 궁금했다. 단순히 이파리 채소로 두 재료를 감싸 함께 먹는 맛이 목표라면 더 나은 재료는 얼마든지 있다. 그저 배추를 통한 새로운 시도 (또는 ‘퓨전’)로 주목받고 싶다면 더 효율적인 조리 전략이 필요하다. 코스의 완급 조절도 필요하다. 파스타나 리소토 같은 탄수화물 또는 샐러드를 비롯해 순수한 채소 요리의 자리가 필요하다. 빼어나지 않으며 브로일러에 한 면만 구웠는지 아랫면에 물기가 맺힌 빵의 부실함을 감안한다면 쾌락적 측면을 위해 탄수화물의 입지를 보강해야 한다. 또한 흐름의 측면에서 디저트 전 입가심 소르베는 바로 뒤의 아이스크림과 겹친다. 치즈 코스가 더 나은 선택이다. 우유 거품의 부드러움 위로 훈연 향과 아이스크림의 단맛, 설탕을 녹여 뽑은 실의 아삭거림이 동시에 피어오르는 디저트는 훌륭했지만 라 세종 시절의 카드라 신선하지 않다. 그다음인 프티푸르에서 소금캐러멜은 짠맛과 단맛의 ‘밀당’에 실패해 코스 전체에서 유일하게 완벽한 실패. 너무 짜다.

20세기 초, <미슐랭 가이드>가 출범했다. 목적지 레스토랑(Destination Restaurant)의 발굴이 목표였다. 사람들이 차를 몰고 이런 곳을 찾아다녀야 새 타이어를 팔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문화적 특수성 때문에 서울의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은 21세기에도 여전히 궁극적인 목적지다. 따라서 총체적 경험을 위한 격과 환경을 두루 갖춰야 의미가 있다. 다이닝 인 스페이스의 여건은 완벽에 가깝다. 단기 전략도 이해는 할 수 있다. 그럼 장기 전략을 다듬을 때다. 목표는 다양화다. 무엇보다 철과 원산지를 초월한 재료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누구보다 셰프의 고민이다. 그는 분명 나아졌지만, 나아가려면 시간이 조금 필요해 보인다.

다이닝 인 스페이스(Dining In Space)
실내: 세련된 현대적 느낌, 최고의 입지와 전망.
서비스: 정중하지만 조금 더 당당해도 좋을듯.
분위기: 조용한편,충분한 테이블 간격.
가격: 고정 코스(6가지 요리) 디너 10만원.
와인: 적절한 선택과 집중. 지나치게 합리적인 가격대. 콜키지 2만원.
› 서울시 종로구 율곡로 83 5F 
› 02-747-8105 (예약필수)
www.arariomuseum.org/facility_r6.php
› 월~토요일 오후 5~11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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