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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프레 @정동현

2018년 3월 12일 — 0

예술의전당 뒤편, 경부고속도로로 향하는 차들이 10차선 도로를 질주하는 뒤편에 자리 잡은 레스토랑이 있다. 한 요리사가 재료를 다지고 볶고 졸여 만든 소스가 빛을 내고 그 빛을 쫓아 사람들이 모여드는 곳이다. 오래되었지만 젊고 고풍스럽지만 힘 있는 프랑스 요리를 맛볼 수 있는 곳, 이지원 요리사의 오프레다.

text 정동현 — illustration 왕조현

한국에 프랑스 음식은 없다. 대신 프랑스 음식을 먹는 사람들과 날만 있을 뿐이다. 조선호텔 ‘나인스 게이트’를 시작으로 한국에 프랑스 음식이 전해진 지 100년이 넘었다. 우리는 자주 프랑스 아침빵 크루아상을 먹고 프랑스식 달걀 소스인 마요네즈에 통조림 참치를 비비지만 프랑스 음식은 매우 특별한 날에나 한번 먹는 고급 음식이다. 더구나 프랑스 음식을 정기적으로 소비하는 고객층은 한국에 한줌도 되지 않는다. 트렌드에 밝은 젊은 여성이 대부분으로 남성은 그녀들과 함께하는 소수다. 청담동 점심나절, 한가로이 시간을 보내는 그녀들이 먹는 음식은 택시 기사 운전석에서 흘러나오는 철 지난 유행곡처럼 마르고 닳도록 반복된 메뉴들이다. 달팽이 요리와 양파 수프, 스테이크와 감자튀김을 먹는데 이 메뉴는 파리 에펠탑 앞 관광객을 상대로 하는 비스트로에서 마르고 닳도록 파는 메뉴와 똑같다. 다른 곳에 가면 8줄을 넘어서는 메뉴가 A4 세로 사이즈 한가득 깔린 메뉴를 가진 레스토랑이 있다. 갓 외국에서 유학을 마치고 온 요리사가 내놓은 자신만만한 메뉴에는 음식 재료명만 죽 나열되어 있을 뿐 제대로 된 이름은 붙어 있지 않다. 새롭게 만든 음식에 이름이 있을 리 만무. 그것이 해외 유수의 레스토랑들이 메뉴를 만드는 방식이고 또 그들이 배운 것이기도 하다. 테이블 위에 올라온 음식들은 현대 미술을 방불케 하는 기하학적인 플레이팅을 자랑한다. 맛을 보면 현대 미술을 감상할 때와 비슷한 반응이 나온다. “음, 으음, 우우움.” 소 농장에 온 것같이 울리는 길고 낮은 신음 소리. 그 소리의 세기와 강도, 파장에 따라 음식의 맛도 예측할 수 있을 것 같다. 음식을 내온 종업원이 설명을 해주긴 하지만 말을 하는 이도, 듣는 이도 모두 어색하고 불편하다. 마트의 몇 갑절이나 되는 값에 와인 한 잔 시키기가 무섭다. 후에 한우 투 플러스 안심 스테이크를 먹고 나온 계산서를 보면 불편한 마음은 현실이 된다. 결국 한국의 프랑스 음식은 매우 정형화된 패턴을 반복하며 익숙한 기호를, 혹은 아방가르드한 스타일로 지적, 미적 허영을 충족시킬 뿐이다. 이런 기형적인 식문화가 이루어진 이유는 역시 저변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마치 올림픽 금메달처럼 미쉐린 가이드에서 별을 받으면 국격이 올라갔다고 환호성을 지르지만 정작 먹는 사람은 드물고 이해도 빈약하다. 프랑스 요리에 필수적인 식재료, 버터나 각종 유제품의 질이 떨어지는 것은 물론 가격도 비싸다. 한 예로 유지방의 농도가 40% 이상 되는 더블 크림은 소스의 농도를 높이기 위해 필수적인 재료지만 한국에서는 구할 방법이 없다. 그러나 이웃 일본으로 눈을 돌리면 다른 상황이 벌어진다. 우선 1970년대 프랑스를 중심으로 펼쳐진 누벨퀴진의 시작은 바로 일본이었다는 사실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1800년대 후반 고흐를 위시한 프랑스 화가들이 일본 화풍에 열광했던 것처럼 식재료에 최소한의 터치를 가미하는 일식 기법에 빠진 프랑스의 신진 요리사들은 버터와 크림 그리고 밀가루와 버터를 볶은 루Roux 위주의 ‘무거운’ 전통 프랑스 조리법에서 탈피해 산뜻한 올리브유와 재료를 갈고 졸여 만든 주Jus 위주로 요리의 구성을 바꿨다. 그래서 일본은 ‘재퍼니즈 프렌치’라고 불릴 만한 독자적인 기풍을 완성했다. 이는 일반인들도 일상적으로 와인을 마시고 프랑스 음식을 즐기는 문화가 바탕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물론 세계 경제 2위 대국이자 농업 강국인 일본과 한국의 상황을 일대일로 비교하기에는 분명 무리가 있다. 그러나 동네 어귀 프렌치 레스토랑도 웬만한 수준을 자랑하는 일본이 부러운 것은 어쩔 수 없다. 그 부러움을 조금이나마 해소할 수 있는 곳이 아예 없지는 않다. 단지 그 수가 적을 뿐이다. 그중 하나인 오프레는 예술의전당으로 가는 골목 어귀에 자리 잡고 있다. 오프레가 생기기 전까지 한국 예술 공연의 중심지라는 예술의전당 주변에는 그에 걸맞은 양식당이 아예 없었다. 공연 전후로 허기진 배를 채우려면 예술의전당 길 건너 순두부집에 가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오프레가 생긴 이후 까만 정장을 입고 등 뒤로 큼지막한 악기를 멘 단원들이 악기를 켜듯 우아한 손길로 와인잔을 기울이고, 나란히 앉아 손을 잡고 공연을 봤을 커플들이 공연의 여운을 속삭일 수 있게 되었다. 공연장 부근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광경, 그러나 오프레의 음식은 그리 흔한 것들이 아니다. 이곳의 음식은 전통적인 프렌치 기법을 따르되 한국에서 흔히 볼 수 없었던 메뉴들이라는 점에서 차별화된다. 오프레의 이지원 요리사가 텔레비전에 나오는 요리사들처럼 뉴욕과 파리의 미쉐린 레스토랑에서 화려한 경력을 쌓은 것은 아니다. 대신 프랑스의 비스트로에서 일하며 그곳의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하지만 그만큼 안정적이며 예민하게 평가받는 요리와 기술을 습득해왔다. 탄탄한 기본기의 방증은 처음 나오는 버터와 빵이다. 버터가 형태를 유지하면서도 버터칼을 넣으면 윤기 있게 잘릴 정도로 적당히 녹은 상태를 한국에선 만나기 쉽지 않다. 빵의 겉 크러스트가 짙은 갈색빛을 내며 구워져 쌉싸름한 맛이 나고 적당히 간이 밴 식전빵을 맛볼 쯤엔 프랑스 음식의 세계로 들어왔다는 것이 비로소 실감이 났다. 이날 준비된 전채 요리인 대파 수프도 오프레의 정체성을 그대로 보여준다. 단순하고 클래식한 요리이지만 또 매우 깔끔한 단맛과 고소한 유지방의 풍미가 느껴지는 대파 수프의 맛은 단정하다는 표현이 가장 어울렸다. 섬세한 조리법으로 재료가 가진 맛의 중심을 잘 잡아 프렌치 특유의 섬세한 소금 간으로 그 맛을 최고치까지 끌어올리는 기법을 만날 때 느껴지는 쾌감. 다 먹고 나면 그 강렬한 감각 탓에 몸에 살짝 무리가 간다 싶지만 그런 쾌락주의가 바로 프랑스 요리의 핵심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그 쾌감이 바로 평범한 수프 한 그릇에 담겨 있었다. 그리고 나온 랍스터 카넬로니는 랍스터 껍질을 레몬, 회향, 토마토 등과 함께 볶고 졸여 즙을 낸 비스크 소스를 밑에 자작하게 깔아 냈다. 널찍한 카넬로니는 나이프를 살짝 밀어내는 적당한 탄성을 가지고 있었고 그 속에 든 랍스터는 식사의 격을 높여줬다. 그러나 이 요리의 핵심은 대형 갑각류가 가진 은은한 단맛이 아니라 껍질에서 우러나온 감칠맛이다. 랍스터 같은 대형 갑각류는 100년 이상을 생존하는데 이때 껍질을 벗으며 조금씩 몸집이 커진다. 그리고 조금씩 껍질이 두꺼워지는데 이 껍질에 사실 한 생명체가 살아온 역사가 담겨 있고 또 그 역사가 맛이 된다. 나이프로 소스를 가로지르며 아주 서서히 그 틈이 메워질 정도로 질감이 짙은 소스를 핥다시피 해치우고 나면 뒤를 잇는 것은 오프레의 시그너처 메뉴 볼라이였다. 양송이를 다져 넣어 페이스트가 될 때까지 조리한 뒥셀Duxelles과 푸아그라, 모렐 버섯을 닭 다리살과 가슴살 속에 다져 넣은 이 닭 요리는 한국에서 맛볼 수 없던 메뉴다. 일반적으로 오리를 상급 재료로 치는 프렌치 레스토랑에 닭 요리 자체가 드물다. 특히 닭은 그 맛에 특징이 없다 하여 고급 레스토랑에서는 기피하는 재료다. 그러나 오프레에서 이 평범한 식재료는 오랜 시간, 즉 화구 앞에 서서 불을 조절해 소스를 졸이고, 채소를 다진 뒤 볶고, 다시 닭에 채워 넣는 지진한 과정을 거쳐 어엿한 메인 메뉴로 자리를 잡은 것이다. 이 요리의 맛을 보면 흔히 평범하다고 느끼는 닭에서 깨끗하다는 느낌이 먼저 다가오고 뒤이어 농도가 짙지만 역시 맑은 모순적인 느낌의 소스가 혀에 묻어난다. 채소를 태우듯 그을리고 역시 구운 닭뼈 등과 함께 오래 졸여 만든 소스를 맛보면 ‘역시 프렌치는 소스’라는 말이 절로 생각났다. 달걀노른자를 올려내는 모렐 파스타는 강한 소금 간 덕에 유럽 본토가 부럽지 않을 정도로 강렬한 맛을 냈다. 소금 간이 어떻게 쓰여야 하는지, 그럼으로써 나타나는 효과가 무엇인지 드러나는 요리였다. 마지막을 장식한 것은 미리 주문해놓아야 하는 볼로방이었다. 페이스트리를 도자기 빚듯 동그랗게 쌓아 굽고 그 속에 초콜릿 등 갖가지 재료를 채워 넣는 요리인 볼로방Vol-au-vent은 페이스트리를 균일한 높이로 굽는 것 자체가 까다롭고 시간이 오래 걸려 쉽게 찾기 힘든 요리 중 하나다. 동그란 페이스트리 속에 든 초콜릿 크림과 절인 살구, 홍차크림 등을 맛보며 흐른 시간은 2시간 남짓. 넉넉한 공간 속에 정확한 리듬으로 나온 프랑스 요리를 맛본 것이 얼마만인가 떠올렸다. 식사를 마치고 계산서를 들고 카운터로 향했을 때 새까만 머리에 이마에 땀이 줄줄 흐르고 있는 한 사내가 인사를 했다. 그가 이지원 요리사였다. 요리와 그는 너무 닮아 따로 그의 이름을 묻지 않았다. 그의 땀이, 그의 두꺼운 팔뚝이, 그리고 빛나는 눈동자가 그임을 확인시켜주었기 때문이다.

정동현은 서울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대기업 유통 회사를 다니다가 훌쩍 영국의 요리 학교 탕트 마리Tante Marie로 유학을 떠났다. 호주의 레스토랑에서 늦깎이 셰프로 요리 열정을 불사르며 일했다. 저서로는 <셰프의 빨간 노트>가 있으며, 지금은 신세계그룹 F&B팀에서 ‘먹고(Food) 마시는(Beverage)’ 일에 몰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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